2016.1.10
여행기간 : 2016.1.9~1.10
작성일 : 2017.4.3
동행 : 영상팀 후배들과
여행컨셉 : 비박 캠핑
간밤에 밖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추워서 안으로 옮겼고, 오로지 배낭 무게를 줄여보려고 남은 삼겹살 우겨 넣다넣다 잠이 들었다. 대충 이너텐트와 플라이 사이에 남은 고기와 코펠을 던지듯 놓고 잤더니, 밤새 무슨 짐승인지 모를 녀석이 플라이 안으로 발을 넣어서 코펠을 긁어대는 소리에 잠이 깨 버렸다. 우모 침낭 속에서도 그렇게 포근한 느낌은 아니었던지라, 일찍 깬 잠을 다시 이루기 힘들어 전전반측 시간을 보내다가 텐트 밖이 어스름해 져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모 침낭이 이 정도였으면 후배놈들 고생 꽤나 했을텐데... 누워서 멀뚱 거리면서 수시로 뒤척이는 두 놈들의 사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신불재의 아침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상해 주지 않는가...
보통 이런 데 오면 나이순으로 서열따라 배낭 무게가 결정이 되는 건데, 워낙 저질 체력인 후배놈들과 왔더니 비박산행으로는 과한 3.5키로 무게의 저 텐트며, 부식까지 왠만한 건 내가 짊어져야 했다. 능선만 탔으니 망정이지... 셀파도 이런 셀파가 없다.
시시각각 다른 빛깔로 밝아 오는 새날. 잤는지 말았는지 어쨌든 더 누워있기는 민망한 후배들이 하나씩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밥을 짓고 식사 준비를 했다.
욕심을 내서 아침 식단으로 잡은 계란탕.
하지만, 밥이 되기 전 에피타이즈로 즐기는 수 밖에 없었다. 저렇게 날계란이 꽁꽁 얼어버렸으니...
샤베트처럼 시원한(?) 날계란이 입에서 살살 녹았(?)다. 뭐 이런 맛에 겨울산 비박하는 거니까...ㅜㅜ
계란 뿐 아니라, 물티슈는 통째로 벽돌이 되어버렸다. 비박의 설겆이는 주로 그 친구들로 해결했는데, 한장씩 어르고 달래서 겨우겨우 뽑아 쓸 수 있었다. 차라리 따뜻한 물을 끓여서 넣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점심 전에 산을 내려갈 수 있겠다 싶어서 설겆이는 집에서 하는 걸로...
첫 새벽에 일어났지만, 좀 더 따뜻해지길 기다렸다가 움직였다.
이 정도면 여느 호텔 부럽지 않은 조합아닌가.
물 구하기 좋고, 평평한 바닥에 바람도 없는 골짜기고... 잔반은 무슨 짐승인지 모를 친구들이 와서 비워도 주고... 라고 말했더니, 아무도 대꾸 하지 않는다. ㅜㅜ
다시 신불재 능선쪽으로 오른다. 신불재와 샘터의 거리는 불과 100~200미터다. 배내고개에서 영축까지의 코스에는 굳이 물을 많이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신불재, 간월재의 샘물만으로도 충분하다.
영축까지의 코스는 어제의 코스에 비하면 그냥 평지다.
우선 저 억새밭 언덕만 오르면 거의 끝이라는...
신불재와 간월재는 인근 혹은 멀리서도 많은 비박 쟁이들이 찾는 곳이기도 해서 억새 규모가 자꾸 줄어들었다 한다. 민둥산이 된 이곳을 다시 억새평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놓인 데크는 필요악이라 해야하나... 걷기는 참 지랄같지만, 덕분에 식생 훼손을 막아주는 효과도 크다. 일부러 길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만, 하룻밤을 보내다 보면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치 못하게 말뚝을 넘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낮이면 그나마 좀 낫지만(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뭘 하는 지 잘 볼 수 있지만^^) 밤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특히 저기 신불재 한 가운데 갈림길 데크 인근은 말이다. 저 인근에서 데크 밖으로 내려간다는 건, 거의 똥밭으로 가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만 데크 밖으로 향하도록 앉아서 큰 볼일을 보는 신공을 시전하기도 하지만, 실제 시도해 본 결과, 성공할 수 없었다. 왠만한 내공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다. 자칫 소변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참 난감하다는...
그러거나 말거나 언제 어디서든 연출 사진에 능숙한 후배님들^^
설악이면 모를까, 신불산 한 번만 오른 사람들이라면 저 폴대 끝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다들 잘 알텐데...
억새 평원과 고산 습지 능선
배내봉까지의 계단을 제외하면,
배내봉에서 간월산까지의 아기자기한 바위 능선 구간
간월산에서 신불재까지의 억새 능선 구간
그리고 신불재에서 영축산까지는 좌우 고산습지평원과 절벽 사이를 따라 장쾌한 풍광속을 걷는 구간이다.
이 장쾌한 맛은 끝(영축산)이 빤히 보이고 그만큼 시각적인 즐거움이 크다는 말이다.
화강암 지반이 많은 우리 산에서 정상 인근이 솥단지 모양으로 된 곳들은 고산습지가 발달했을 확률이 높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활엽이 해마다 수북이 떨어져서 축축한 물단지에 갖히면 그게 오랜 세월 이탄층이 된다. 푹신한 스펀지 역할을 하면서 정상인데도 늘 많은 물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의 식견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인근의 고산 습지는 이런 지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덕분에 걷는 내내 질척거리는 진창으로 걸음이 무거워지는 구간이기도 하고...
이렇듯 좌우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참 맛갈나는 천지조화다.
빤히 목적지가 보이니 훨씬 쉽지? 물어보니...
근데 행님. 더 멀어지는 것 같아요~
이제 정말 코앞이다. 평평한, 그래서 우리나라 산 같지 않은 저 넓직한 능선을 따라가면 오늘 산행 종점이다.
예의 그 연출 사진. 지가 포지션과 화면 비율 등 다 정해준다. 난 그냥 셔터만 눌러란다^^
한 놈이 하면 또 반드시 세트로다가...^^
억새밭 복원을 위해서 가는 내내 말뚝이 박혀있다. 그전에는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마구 다니긴 했다. 그도 그럴것이 쇠등처럼 잔떨이 난 따뜻한 고원에서 옹기종기 밥도 먹고, 또 남들이 밟은 길은 질척이기 일쑤라 안 다닌 길로만 골라서 다니기도 하고...
억새들 수난이 많았던 곳이리라.
관목도 귀한 이곳에 덩그러니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서 있고, 애들은 또 연출 연출...
영상하는 녀석들을 데리고 다니니 힘은 들어도 이럴때는 좋다. 알아서 구도, 포지션 잡아서 잘 담아준다.
이제 저 길을 따라 가면 끝이다.
마지막 억새 평원을 다 지나면서 들어서는 완만한 오르막부터는
너덜 구간이다.
신기하게도 습지 구간엔 억새가 단일 우점종인데, 너덜구간에 들어서면 관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진행할수록 관목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 열악한 곳에서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일테지.
영축산 정상
후배들한테는 여기까지가 종점이라고 했고, 차츰 가까워지는 종점을 보면서 안도하고 또 힘을 내기도 해서 겨우겨우 끌고왔다.
종점에 왜 차가 없나요?
음, 우리의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았던 게 문제다.
통도사 아래까지의 내리막은 그렇게 힘들지 않을꺼라고 아예, 코스에 넣지도 않았던 나와는 달리, 애들은 영축산이 산행의 끝이길 기대했던 것이니...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산 정상까지 차가 다닐 수는 없지 않냐고 했지만, 실망이 큰 저 얼굴들, 어쩔껴?
아직 점심까지 시간도 좀 있고, 재충전을 위해서 좀 쉬었다. 물을 끓여 따뜻한 믹스커피도 한잔하고...
눈으로 들어오는 360도의 장관도 넋을 놓고 감상도 좀 하고...
배가 슬 고파질 쯤, 하산 채비를 서둘렀다.
영축 정상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요렇게 생긴 샘터를 만날 수 있다. 스테인레스로 박스까지 만들어 두었고, 뚜껑을 열면 맑은 물이 한 가득이다. 어쩔 땐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는데, 이날은 제법 졸졸졸 고이고 있었다.
참고 : 발포 매트의 장단점
집에 있는 폼매트 3개를 몽땅 들고왔다.
요즘 대세는 에어매트지만, 집에서도 침대를 쓰지 않는 나로서는 당최 공기층 위에 누워 있는 게 마뜩잖아서... 그래서 몇 년 전 아예 폼매트로 구매를 했다.
평소 추위도 많이 타는 편이고, 한 겨울에 광안대교까지 수영하고는 저체온증으로 실려나온 적도 있고해서... 얼어죽지 않으려고 당시 제일 두꺼운 걸로 구입을 했다. 폭도 제일 넣은 거로다가...
그러다보니 잠자리는 편한데 이동시 약간 애로가 있다. 90리터 배낭이라 안에 넣어도 되긴 하지만, 비박 후 배낭을 다시 꾸릴 때 맨 먼저 넣어야 하니, 찬 바닥에서 나머지 짐을 챙기는 게 여간 싫은 게 아니다. 그래서 박 후에는 맨 마지막에 말아서 배낭 밖에 매단다.
집에서 나설 때는 배낭 안에 배낭 각도 잡을 겸 넣고, 1박 후에는 보통 저렇게 배낭 하단부에 노출해서 달게 되는데, 폭이 넓다보니 좁은 산길 갈 때 많이 걸린다. 그래서 세로로 달아도 보았는데, 그래도 나뭇가지에 걸리기 일쑤라...
한 쪽은 은박코팅에 전체적으로 앰보싱 무늬로 어떤 바닥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휴대시 부피 부담은 더 크다. 70리터 이하 배낭에는 내부 휴대가 아주 힘들다. 최근엔 롤방식말고 지그재그로 접어서 쓰는 게 나오고 있어서 휴대시 부피감을 최대로 줄여주기도 하지만, 역시나 사각모양으로 보관해야 하기에 배낭 안에 넣기 어렵다는 점은 매 한가지.
그럼에도 난 앞으로도 쭉 폼매트를 사용할 것이다. 휴대성의 불편을 만회하고도 남을 쾌적한 잠자리와 놀라운 방한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가볍다는 점과 막 다뤄도 좀 튿어져도 상관없다는 점은 아웃도어의 거친 환경을 전제로 한 비박시 가장 큰 매력이다. 에어매트의 경우 수리키트가 있기도 하지만, 실제 사용하시는 행님들 말씀으로는 작은 구멍이라도 생기면 참 난감하고 공기를 주입하기 위한 펌프를 따로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공기 채우기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 들었다. 자충매트가 있긴 하나,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무게는 훨씬 무겁고, 부피감도 폼매트보다 약간 더 작아지는 정도니 뭐...
욕심을 부려서 저것보다 한 5미리 정도 얇은 걸로 폭도 한 치수 좁은 걸로 사고 싶은 욕망은 늘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세 개 모두 평생을 써도 될 정도로 튼튼한 것들이라,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욕망이라는 게 문제지만^^. 난 중복 아이템 구매를 아주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내 장비는 트렌드, 깔맞춤, 뭐 이런 것들과 무관하다.
산행 끝
영축에서 통도사로 내려오는 길은 참 가파르다. 특히 <취서산장>까지의 길은 너덜 구간이라 여차하면 무릎에 무리도 많이 간다. 취서산장부터의 내리막도 지름길처럼 난 등산로를 선택하면 상당한 경사를 각오해야 하지만, 이날은 거의 다 죽어가는 후배 놈 덕분에 그냥 지그재그로 놓인 임도를 따라 내려왔다. 그렇게 지산마을까지 도착. 산행은 끝났다.
젊은 애들이다보니...
터미널까지 걸으면서 만난 구멍가게 앞을 지나자, 제일 먹고 싶었다는 걸 꼭 먹여야 한단다.
"콜라"^^
느낌상 이 놈들과의 산행은 마지막이 아닐까?
파란 옷을 입은 친구는 그래도 작년 중산리로 천왕봉까지 동행하기도 했지만, 체력 조건은 더 나빠져 있었던 걸 봐서는.... 다시 따라 오겠다는 소린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