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23~7.24
난 병을 앓고 있다.
내 몸속에 가득 들어있는 "노마드 유전자"가 폭주 하지 않도록 "혼캠"을 주기적으로 가주지 않으면 안되는 병^^
하지만 자만은 늘 금물임을 뼈에 새기는,
그래서 한동안 유전자의 폭주 따위 걱정않아도 되는 캠핑을 갔다왔다.
아니 살아 돌아왔다.
여행기간 : 2016.7.23~7.24
작성일 : 2017.6.20
동행 : 독고다이~
여행컨셉 : 자전거 캠핑
많이 덥긴 하다. 그렇다고 유전자가 어딜 가나?
집에는 딱 1박만 하고 오겠다고 통고... 아니 사정을 하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점심까지 챙겨먹고 집을 나선다.
양산천을 타고 낙동강 하구까지 내려왔다.
하구로 향할지, 상류로 향할지는 기분따라 정하자는 맘으로...
하구 쪽은 텐트를 칠만 한 곳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화명둔치는 여기저기 "야영, 취사 금지"라고 플랭카드가 붙어있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을숙도까지 해 지기 전에 도착할 자신은 없고...
그래서 상류로 방향을 잡았다. 아무래도 도심지역이 아니다 보니, 야영에 대해서 조금은 자유로울테니까.
어디까지 가겠다는 목표도 없다. 그냥 해 지면 멈추고 밥 해 먹자는 심산.
삼랑진
그렇게 해서 해가 뉘엿뉘엿할 즈음 삼랑진역을 지나 고속도로가 낙동강을 건너는 곳까지 와 버렸다.
시간상으로는 더 가도 될 것 같긴 했으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가는 건 무리라 판단.
텐트를 쳤다.
그리고 커피부터 한 잔^^
온 몸에 땀 투성이지만 무엇보다 즉석 모카포트 한 잔이 더 간절한 순간이었다.
진하게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밥을 지었다.
강바람이 불기도 하고 해도 넘어가서 좀 시원해지려나 했지만, 하필 이 곳은 바닥이 초벌구이한 타일이다. 한낮의 열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더위가 가시지는 않는다.
이곳을 야영지로 선택한 건, 낙동강 변 자전거 도로 곳곳에 있는 화장실 때문이다.
여기에도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는데,
식수만 달랑 몇 리터 챙겨온 나로서는 밥이나 국을 해 먹을 물에다가, 목욕을 할 수 있을 법도 해서...
밥 냄새가 날 쯤, 황혼이 찾아든다.
맥주까지 한 캔 하고 나니 사위가 더욱 어두워졌다.
근데 난관이 몇 개 있다.
1. 우선 너무 더웠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누웠더니 뜨거울 정도로 지열이 그대로 올라온다. 냉기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기를 막기 위해서 침낭을 깔긴 했지만^^. 조금만 지나면, 여름 침낭 사이로 열기가 그대로 올라왔다.
블록 틈으로 대충 박았던 팩을 전부 다시 뽑고 물을 뿌렸다. 왠만큼 뿌려서는 다 흡수해 버리기 일쑤.
흥건하도록 뿌렸으나 한여름에 온돌방에 누워있는 듯한 건 어쩔 수 없었다.
2. 땀내 나는 몸을 씻기가 곤란했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해 볼까도 생각을 했지만, 삼랑진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계속 밤마실을 나와서 왔다 갔다 했고, 밤이 되어도 자전거들 탄 사람들이 들락거려서 곤란했다.
샤워 호스가 달린 수낭에 물을 가득채워 와서 나뭇가지에 걸었다. 그리고 판초로 어떻게 간이 샤워실을 만들어 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웃통만 벗고 반바지 차림으로 샤워를 해야했다. 바지는 타일 바닥에 널면 금새 마늘 것 같았으니 뭐...
3. 밤새 너무 시끄러웠다.
완전히 어두워지자 갑자기 트레일러 한 대가 들어와서는 내 텐트 앞에 자리를 잡더라는...
그리고는 발전기를 돌렸댔다. 자기들은 에어컨까지 갖춘 트레일러에서 문 걸어 잠그니 상관없었겠지만, 발전기가 내는 모터소리는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텐트를 친 위치가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가 지나는 다리 바로 아래라, 밤새 차량의 굉음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새벽에 까무룩 잠이 들긴 했나보다. 어스름 여명이 밝아오는 걸 느끼고 눈을 뜨니 여전히 시끄러운 잡음들이 들렸고 온몸은 땀 투성이였다. 팬티만 입고 잤는데도...
본포교
대충 아침을 챙겨먹고 짐을 꾸린 다음 또 잠시 망설인다.
이제 어디로 가지?
아직 6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집으로 다시 돌아가자니 너무 이른 것 같고.
좀 더 올라가기로 했다. 가다가 정 안되면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낙동강 좌안을 따라 올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밀양강을 따라 밀양 시내쪽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건너는 다리를 만난다. 그리고 다시 낙동강 쪽으로 나와서 창녕 방향으로 이동... 빙 둘러가야 하지만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니...
사실 여기서 바로 밀양시내로 들어가서 기차를 차고 돌아왔어야 하는데... 나중에 엄청 후회를 했다.
날은 점차 뜨거워지는 가운데 어느새 창녕 본포교까지 올라와 버렸다. 기차역과는 너무 멀어졌지만, 뭐 아직 시간이 이르니...
그나저나 저 녹차 라떼는 어쩔 것인가...
임해진
<개비>를 지나 구불구불한 절벽길을 타 넘으면 임해진이다.
바닷물이 들락거렸다는 뜻의 임해진. 하구뚝 이전엔 여기까지가 기수역이었다는 소리다.
심지어 함안에서 발견된 강변 신석기 유적에는 고래뼈도 있었다 하니...
이제 길곡면 함안보까지는 거의 평지다.
그래 여기까지 온 김에 오랜만에 함안보까지 한 번 가보자.
내집처럼 들락이며 카메라를 들이댔던 곳. 보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보가 세워지는 과정 전체를 기록하며 많이도 싸웠던 곳.
흉물을 보고 싶은 맘은 없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오로지 그런 맘으로 달린다.
마을 옆 둑길을 따라 달리다가 이 녀석을 발견했다.
사이즈는 딱 황조롱이 쯤으로 보이는데 조류를 구분할 정도의 지식이 없어서 자신은 없다.
이미 눈과 배가 푹 꺼진 걸로 봐서는 이 더위에 죽은 지 제법 지난 놈 같다.
그러고 보니 낙동강에서 황조롱이를 참 많이 담았었다.
정지 비행의 대가.
얘네들이 정지 비행을 한다는 건, 들쥐같은 먹이를 발견하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
맹금류치고는 덩치가 작은 녀석이지만 비행실력과 민첩성으로 유명하다. 다른 놈들과 달리 낮게 정지비행을 해 주어서 카메라에 담기도 좋고^^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비명행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이 더위에 바닥에 잠시만 있어도 곧 죽어버릴 것 같긴 하다. 나도 사실 살짝 몸에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하니...
멀리 '보기 싫은' 함안보가 보인다.
보 아래 거대한 모래 사장이 가득했던 곳은 이제 육화되어 풀들이 덮고 있다.
한창 보 공사중일 때, 건설 현장사무소로 쓰이던 자리엔 보 관리사무소가 세워져 있고, 한쪽에 이런 게 눈에 띈다.
2MB 임기내 완공을 목표로 공기 단축에 매진했던,
그래서 크고 작은 현장 사고가 많았던 4대강 사업으로 목숨을 잃은 인부들을 위한 위령비란다. 참...
돈 벌이를 위해, 자연에 분탕질을 해 댄 것에 지나지 않는 짓거리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에게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라는 수식어를 달아뒀다.
미친 새끼들...
살짝 더위를 먹은 것 같은 몸 상태에서도 피가 꺼꾸로 치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들 욕심으로 잡아먹어 놓고, 애국 운운하는 몰염치들... 염통도 없는 것들.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구석탱이에 알량한 이런 비석 따위나 세워두고는...
더 올라갈 엄두는 못 내고 아무도 없는,
심지어 오가는 차들도 드문 함안보 주차장에서 죽어가는 수목을 한참 쳐다봤다.
멀쩡한 버들을 죄다 뽑거나 베어버리고는 더위나 물에 약한 엉뚱한 수목들을 심어서는 그대로 고사시키고 있다.
10시가 지나자 살이 타는 듯하다. 인근에 있던 아름드리 나무들을 죄다 뽑아 버리고 나니 쉴만한 그늘도 하나 없구나. 쩝...
오늘 여기까지!
다시 왔던 길을 되밟아서 내려간다.
둑길 말고 강변쪽으로 내려가서 자전거 길이랍시고 난 곳으로 가 본다.
인적이 거의 없다. 한참을 가다가 임해진 좀 못 간 곳에서 길에 퍼질러 앉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둘이 있다.
아저씨, 전화기 잠시만 빌려주실 수 있나요?
서울 사투리다.
아빠와 서울서부터 부산까지 자전거 캠핑 중인데 아빠와 거리가 벌어졌는데 오래 지나도 오질 않는단다.
나도 더위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중이라 이참에 좀 쉬려고 앉았다. 사방이 핑 돈다.
통화를 하고 잠시 후, 서울 일행이 합류했다.
'아빠'라는 분이 타고 있는 로드는 러그드방식의 크로몰리로 아주 낡았지만 클래식한 멋을 가진 옛날 첼로 모델이었다. 지금은 귀하디 귀한 건데 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문제가 조금씩 발생하는지 끌바로 걸어오고 있다.
체인 빠진 걸 넣고, 내가 가진 십자 드라이버로 드레일러를 조금 조정하니 괜찮아졌다.
어쩌다 그 일행들에 묻어서 본포까지 같이 간다...
아니다 본포 좀 못 가서 현기증이 왔다. 한기도 함께.
이대로 더 가다가는 의식을 잃을 것만 갔았다.
새벽 5시에 누룽지만 한 그릇하고 이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식량이라고는 쌀 한 줌이 전부다. 실은 저녁, 아침만 대충 해결하고 나머지는 사먹을 생각이었는데...
삼랑진에서 출발해서 이제까지 밥집 한 군데 찾을 수가 없었다.
크게 걱정 안했던 건, 삼랑진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삼랑진 읍내에서 점심 거하게 먹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버텼더니...
아저씨, 괜찮으세요?
얼핏 아까 그 중학생이 말을 건넨 것 같기도 한데, 한 쪽에 퍼질러 앉아서 의식이 왔다갔다 하고 이명현상도 느껴진다.
사이드 백을 뒤졌다.
당분이 필요한데...
혹시나 해서 늘 꿀을 20cc 쯤 들고 다니는데, 지금이 그걸 쓸 때구나.
식수는 아까 그 서울 일행들에게 거의 다 줘 버리고 한 컵 정도만 남아있다.
우리 꼬맹이들 시럽 감기약 병에 담아 온 꿀을 한 입에 떨어 넣었다. 찾아보니, 믹스 커피도 두 어 개 보인다. 커피는 버리고 설탕만 다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렇게 물까지 마시고 한 5분쯤 퍼질러 있으니 의식이 돌아온다.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늘 하나 없는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는 열사병에 탈수까지... 지체할 수만도 없었다.
본포교를 건너 낙동강 우안을 따라 쭉 내려오는데 몸에 힘은 없고, 갈증은 계속되니 속도가 전혀 나질 않는다.
이러다 정말 큰 일 나겠다 싶어, 강변길을 버리고 마을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딘지도 모르고 마을에 가면 민가에서 식은 죽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유청마을>. 나중에 지도를 찾아보니 창원시 대산면이다.
아뿔싸 대낮이라 모두들 일하러 나갔는지 아무도 없다. 누굴 찾아 헤맬 정신도 없다.
마을 입구 버스 정류소에 있는 정자에서 한 30분 누워 있었으나, 비 오듯이 흐르는 땀과 한기가 느껴지는 이상 증세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밥을 지었다. 아무도 없는 경로당 앞에 수도꼬지가 있어 물을 담고 쌀을 붓고는 그냥 끓였다. 반찬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니...
채 한 줌도 되지 않는 쌀이라 밥을 해도 종이컵 하나 분량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말 살기 위해서 먹었다.
현기증은 별로 가시지 않았지만 기력은 한결 회복되었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후 2시 고작 함안보에서 여기까지 4시간이나 걸렸다.
이러다가는 저녁이 되어야 삼랑진까지 겨우 갈 것 같았다. 기차는 없을테고... 하루를 더 잘 수는 없는 노릇이고...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다시 출발해야 한다.
차라리 가장 뜨거운 시간이었던 저 때 그냥 좀 더 쉬었더라면... 결과론적이지만 판단 착오였다.
살아돌아 오다!
당연히 얼마 가질 못했다.
눈에 삼랑진 철교도 들어왔는데, 앞이 아득해지더니...
나도 모르게 쓰러졌나보다. 몸이 땅에 닿는 느낌도 났다. 빰에 닿은 아스팔트는 쩔쩔 끓었다.
이렇게 햇볕 아래 누워있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지나는 사람도 없는 이런 곳에서...
가끔 대형 트럭이 지나는 걸 진동으로 느낄 순 있었지만, 내 자전거나 내가 그들의 행로에 방해가 되진 않는 모양이다. 그냥 스치고 지날 뿐...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괜찮아요?
중년 남성의 목소리다.
입술에 물이 닿는 느낌도 든다. 얼굴에 젖은 수건이 닿기도 한다.
내 상체를 끌어다가 그늘로 옮기는 모양이다. 얼굴에 닿던 화끈한 기운이 좀 덜하다.
그렇게 한참 물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주고 물을 조금씩 축여준 덕분에 의식을 차리고 일어났다.
얼마나 오래 눈을 감고 있었던 건지, 순간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는 지나다가 이 날씨에 햇볕아래 쓰러져 있고, 자전거는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어서, 사고를 당한 줄 아셨단다. 이 분은 50대 중반정도로 보였는데, 티탄 MTB를 타고 있었고 몸이 아주 짱짱해 보이셨다.
자초지종을 듣고 큰일 날 뻔 했다면서 과욕은 금물이라며 주의를 주더니 삼랑진까지 동행해 주시겠단다.
그렇게 정말 빈사상태에서만 겨우 깨어나서는 그분 꽁무니만 따라 갔다.
철교를 건너자마자 보이는 편의점에 먼저 들어가시더니 물과 아이스크림을 사서는 건네주신다.
삼랑진역에서도 겨우겨우 쫒아가는 나보다 먼저 역사로 들어가서는 표 두 장을 끊어서 또 건네주신다. 이런...
넙죽넙죽 받기만 할 수 없어 기차표는 내가 끊어드리려 했는데...
기차역에는 우리처럼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이 많다. 그 중 학생들 몇몇은 앞 차에 자리가 없어서 못 탔단다. 혹시 못 타게 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 분이 또 사정 이야기를 해서 내 자전거를 기차에 싣는 것까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했다.
물금역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도 진 상태,
안라 하세요~
그 분의 마지막 인사를 받고 몇 번이나 고개숙여 감사를 표했다.
말하자면 생명의 은인인데...
성함이나 전화번호를 여쭤도 한사코 사양하면서, 라이딩하다보면 또 만나겠죠 하신다.^^
아저씨, 오늘 사람 한 명 살리셨어요~
당연 집에 와서 마눌님한텐 비밀로 했지만,
이제서야 이 글을 보면 모든 걸 알꺼고... 어쩌면 홀로 자캠 나가는 거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겠지 ㅜㅜ
그러고보니 나도 이후 한 번도 자캠을 가지 않았군...
그럼 간만에 주말을 이용해서 또 한 번 가 볼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