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
여행기간 : 2016.5.1~ 5.6
작성일 : 2017.4.5
동행 : 촬영팀 후배 "초이"와
여행컨셉 : 여행지 답사
마닐라공항 제3터미널, 국내선공항
택시를 탔지만 그닥 택시같지 않았다. 뭐지? 그냥 자가용 같은 느낌... 기사도 어린 애 같고...
새벽으로 달려가는 시간인데 도로는 또 왜 그렇게 막히는 건지... 우리야 미리 대금을 지불하긴 했지만, 뭔가 불안하고 불쾌한 기분이 영 가시질 않으면서 지도상 차로 한 5~10분이면 충분할 것 같은 거리를 30분 걸려 도착했다.
국내 청사는 음... 약간 낡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오면서 봤던 제4터미널(화물 전용)보다는 괜찮아 보였다. 뭐 그런거야 하며 일단 빨리 들어가자고 걸음을 재촉한다. 제발 맨 바닥이라도 좋으니 좀 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모든 문은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통과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게 경비를 세워 두었다. 입구를 물어보니 건물 반대쪽 끝으로 가란다.
가면서 내내 한줄로 길게 선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왠지 이 줄의 끝이... 불안한 마음은 뭘까?
건물 끝에 붙어 있는 입구에는 화물 검색대와 보안 요원이 지키고 있었고, 역시 그 줄은 유일하게 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 앞에서 끝이 났다. 그렇게 한 명씩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줄은 천천히 앞으로 행진 중이었다.ㅜㅜ
다시 줄 맨 뒤로 향한다. 처음 줄이 시작되던 지점보다 이미 두 배쯤 늘어난 줄 끝에 섰다. 그리고 우리 뒤로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오늘 탑승객 중 마지막으로 청사에 들어가게 된 거^^.
한마디로 운수 대통의 하루라는 거지. 첫 마닐라 방문한 사람이 참 이런 기록까지 세우다니...
마닐라는 계속 사람 정신력 테스트하는 곳이구나.^^
줄이 끝나고 검색대까지 가는데만 1시간 쯤 걸린 것 같다. 눕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그냥 서 있기도 애매하게 남은 시간에 겨우겨우 들어온 청사 안은 또 이게 뭐란 말인가^^ 촛불 집회라도 하는 건지, 헤집고 다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붐빈다.
모두 보딩 패스를 끊기 위해 줄을 서거나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이 타 지역으로 간다는 건 7,000여 개나 되는 섬 중에서 한 군데로 간다는 거고, 섬 사이 이동 수단인 비행기는 우리의 시외버스와 비슷한 개념이리라. 당연 국내선 청사에는 그렇게 출장, 여행, 친지방문을 목적으로 한 필리피노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을 수 밖에.
그렇게 보딩패스를 받고 나면 2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 여기서도 티켓 소지자만 가게 한다는 거.
2층으로 올라왔다. 1층에 비해 인구밀도야 그나마 좀 낮지만, 역시나 모든 벤치와 기둥 옆엔 잠든 사람들이 가득하다. 인기 좋은 자리 2위는 벤치고, 3위는 전원 콘센트가 있는 기둥옆인데, 1위는 당연히 전원 콘센트에 가까운 벤치다. 흡사 난민촌 같다.
심지어 시골에서 화투칠 때나 펼치던 그 담요, 맨바닥에서 모란꽃이 커다랗게 그려진 장모 담요를 한 가족이 깔고 덮고 있는 풍경도 여기저기...
우리는 5시에나 보딩이 시작될 푸에르토르린세사행 비행기를 기다리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 3층까지 올라왔다. 3층은 푸드코트가 늘어서 있는 곳이었는데, 왠만한 곳은 벌써 잠자는 사람들이 다 차지했다. 그렇게 3층으로 올라와서 다시 건물의 반대쪽 끝까지 가 봤다.
거의 끝부분에 우리에게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맥~
커피라도 하나 시켜야 앉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우린 남은 시간을 지탱해 줄 작은 테이블과 의자 2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도 사람들이 몇 분 누워 있었는데, 그 앞에 공항내 숙소를 홍보하는 배너판이 있었다.
뭐 이제와서 한 두시간 자기도 애매하지만, 그래도 호기심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The Wings>라는 곳인데, 도미토리든 독실이든 쪽잠을 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꾸며놓은 침대를 제공하는 듯 했다. 샤워나 마사지, 식음료의 서비스도 가능하고... 절실하게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남은 시간이래봐야... 이런 곳도 있구나 하고는 다시 돌아나왔다.
(몇 달 뒤 우리 가족들 여행에서 이곳을 이용했다. 후기는 다음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앉아서 뭐 할게 있나...
우리가 환전한 페소나 세고 앉아 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필리핀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그려진, "등가 교환의 편리를 위한 공인 증서"^^
이렇게 말하고 보니, 돈이 돈 같지 않고 다른 어떤 것처럼 느껴진다. 낯선 외국돈을 들고 있으니 평소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던 화폐가 다르게 보이는 군.
비몽사몽간인데도 머리는 말갛다 ㅎㅎ.
보딩 개시 안내 방송을 듣고 짐을 챙겨서 움직였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우리가 부산에서 받은 티켓에 적힌 게이트를 찾을 수가 없는 게 아닌가.
2층 구조로 된 게이트(비행기와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게이트는 몇 개 없었다. 대부분 셔틀을 이용해서 활주로 안쪽 비행기까지 이동해야 했다)를 다 뒤졌다. 그래도 없다.
어딜가나 사람들로 북새통인 그곳에서 공항직원이나 필리핀항공 직원 찾기도 쉽지 않았고, 겨우겨우 물어서 바뀐 게이트 넘버를 파악하고 아슬아슬하게 보딩에 성공했다. 와우~
드뎌... 저것만 타면 일단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세상에 집 떠난지 만 하루도 안됐는데, 이상하게 피곤하네^^.
원래 자유여행이라는 게, 더구나 이렇게 물색 모르는 자유여행이라는 게
이런 맛으로 가는 거지 뭐... ㅜㅜ
모든 걸 잊게 해줄 장관과 감상
필리핀에서 비행기가 연착되더라도 정신 건강을 위해 노여워하지 말라는... 얘길 많이 들었다. 그만큼 연착이 다반사라는 뜻이고 오히려 정시 출발이 좀 의외의 일로 여겨진단다.
우리도 5:20분 마닐라 발로 되어 있었지만, 거의 6시가 되어서야 기체가 기동했다.
비행기가 마닐라공항 활주로에 내린 이후, 쭉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이제서야 긴장이 좀 풀린다. 그리고 창 밖으로 들어온 풍경이란 참...
태양과 마주하고 있는 지구의 밝은 면을 따라 움직이는 여행은, 만나는 모든 것들이 드라마틱하다.
반면에 태양과 등진 지구의 어두운 면을 따라 끝도 없이 깜깜한 우주의 하늘을 이고 여행하는 것은, 그것도 비행기에서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은 고단하고 지루하고, 방향 감각도 없이 그냥 문명이 이룩한 거대한 동력에너지에 의지해서 방황하는 느낌만 주기 일쑤이다.
하지만, 한 순간.
거의 밤 새어 노곤한 눈 가죽을 붙이고 불편한 비행기 좌석에 기댄 줄도 모른 채 스르륵 잠이 들려는 바로 그 순간.
한 쪽 빰에 전해지는 따뜻한 느낌. 한참을 잊고 지낸 익숙한 행복감이 떠오른다.
수평선 너머 구름떼 위로 떠오르는 엷은 주홍빛은, 낯선 곳을 여행하는 어떤 이의 고단한 몸과 마음에 한 없는 위로가 되어 준다. 그 느닷없는 충만감에 때로 사람들은 종교적 경험을 했노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취한 사람처럼, 동작에 뭔가 개연성도 없이 카메라를 주섬주섬 찾아 뽑아낸 사진은 결국 이 순간의 행복을 대변해 줄 정도의 퀄을 담지 못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따위가 그다지 아쉽지도 않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다.
모닝 커피와 빵을 들고 "Sir?"라며 감흥을 흐뜨리는 승무원은 제법 오래 내 정신을 돌리기 위해 손짓을 한 게 분명하다.
어릴 적, 봄 방학이면, 나른하고 상쾌한 기상을 도와주던 내 방 창의 그 햇볕 한 줌.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깨울 수도 있니^^?"
바로 그 기억이 새삼, 잊혀졌던 중요한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발견한 듯, 오늘 다시 내게 위로가 된다.
밖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지만, 나같은 아나키한 이들에게 여행이란 나를 더욱 지구인답게 길러주는 체험 같다.
지구별에서 매일 매일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에 이렇듯 오감으로 공감하고 때로 위로받고, 그리고 다시 꿈 꿀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 바로 그런 인간. 지구별의 인간이 되어가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팔라완 상공
그렇게 벅찬 순간이 주는 정신적 위로는 몸이 간절히 원하는 부족한 잠에 대한 요구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어느덧 비행기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지나 팔라완 섬 위로 날고 있었다.
겨우 아침 7시.
공기의 질이 다르니 이렇게 멀리서도 물과 뭍의 경계가 만드는 선예도가 다르다.
도착도 하기 전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기대된다.
과연 어떤 느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