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
여행기간 : 2016.5.1~ 5.6
작성일 : 2017.4.4
동행 : 촬영팀 후배 "초이"와
여행컨셉 : 여행지 답사
판단섬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푸에르토프린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치, 사방비치.
이번 여행의 목적은 팔라완이 가지고 있는 여행 인프라를 확인하는 거니까, 등급별로 괜찮은 숙소를 찾는 것도 그 중에 하나다. 사방비치 입구에 있는 쉐리단 리조트를 먼저 보기로 했다.
한진에서 만든 도로를 따라 사방비치로
팔라완이 푸에르토프린세사를 중심으로 2시 40분의 시계바늘 모양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모양새다. 푸에르토프린세사나 혼다베이가 동남쪽 술루해를 바라보는 해안인데, 사방비치로 간다는 건 산을 넘어서 반대쪽 남중국해를 바라보는 해안으로 가야한다는 말이다.
멀다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의 길을 가야한다.
길은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다. 시멘트가 단위 면적당 가성비가 최고니까, 다만 분진과 타이어 마모, 비가 올 때 미끄러움이 아스팔트에 비해 단점이다. 여기처럼 더운 곳은 아스팔트가 녹아서 시멘트로 도로를 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재밌는 건, 이 도로를 만든 곳이 우리나라 기업 "한진"이다.
한진이 우리나라에선 대한항공과 땅콩회항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필리핀에서는 "수빅조선소"로 유명한 곳이다. 몇 해 전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했던 짓이나, 땅콩 회항 따위 등으로 드러난 총수 일가의 마인드나 짓거리는 참 못났다. 하는 짓은 국내에서나 필리핀에서나 비슷한데, '수빅조선소'에서 죽어나간 필리핀 노동자들이 그렇게 많단다.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존재, 자신들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종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최고경영자인 회사... 들 중에 하나겠거니 한다. 그 사람들이 수빅조선소를 세우면서 미 개발 지역의 도로 건설을 약속했고, 그 중 하나가 여기란다.
설명하는 가이드나 듣는 우리나 그렇게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뉘앙스의 대화는 아니었다.
"도로를 낸 회사가 '한진'이다." 라는 팩트만 전달하고 나도 그러려니 했다. 가이드가 부러 더욱 감정없는 표정으로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오히려 부끄러웠다.
인공 수로로 큰 피해를 당하고 이제 다시 천문학적인 액수로 자연을 복원하는 유럽 사람들이, 왜 너흰 가리 늦가 4대강 사업을 하냐고 묻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도체 회사인 삼성이 반도체 만들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상황까지 알고 있는 외국인을 만나거나...
이제 하나 더 늘 것 같다. 굿하고 우유주사 맞는다고 사람 목숨 구할 시간을 놓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가끔 이렇게 한국인인 게 부끄럽도록 만드는 것들을 만날 때마다, 난 늘 속으로 되뇌인다.
난 지구인이다. 지구인... 지구인 중에서 국적 없이 사는 게 불가능해서... 그렇다고 다른 나라 국적을 얻기도 귀찮고 해서, 태어난 국적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어디와 비교해도 빠지지않을 아름다운 산하가 있기도 하고.
비 오는 쉐리단 리조트
가는 동안 그렇게 맑더니, 리조트 도착 직전부터 빗방울로 바뀐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려니 장대비가...
리조트 진입로는 흙길이다. 근무 교대인지 한 직원이 우산을 받쳐 들고 기숙사에서 나와 리조트 쪽으로 향하고 있다.
로비 입구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며칠간 둘러 본 호텔들이 모두 그랬는데, 여기도 대부분 아주 젊은 직원만 있다.
쉐리단은 원형에 가까운 로비 건물이 따로 있었고, 여기를 기점으로 비치까지 길게 객실 두 동이 자리하고 있는 길쭉한 형태의 리조트였다.
컨시어지 바로 옆에 유명한 도시의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가 진열되어 있다.
로비 건물에서 호텔을 안내해 줄 매니저와 만나서 반대편 객실 방향으로 나선다. 아직 비가 많이 온다.
나오자마다 바로 풀이다. 비가 와서 아무도 없겠거니 했는데, 한 가족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는 이게 지리 시간에 배운 스콜성 기후라는 거구나 싶게, 거짓말같이 비가 뚝 그쳐버렸다.
다복한 집안의 엄마와 아이들.^^ 수영장은 풀바를 중심으로 나뉘어 있고, 가족들이 있는 이쪽이 수심이 좀 낮고 자쿠지가 여기저기 있어서 엄마가 이쪽으로 애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우리를 안내해 준 매니저도 아주 젊고 잘 생긴 총각이었다. 유창하지만 쉬운 영어로 설명을 잘 해 주었다.
그를 따라 방 몇 개를 둘러보았다. 스탠다드와 스위트룸.
창문 테라스를 통해 풀을 볼 수 있다.
객실 두 줄이 병렬식으로 배치되어서 한 쪽은 마운틴뷰, 한쪽은 풀뷰. 1층은 창문을 통해 바로 풀로 나올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룸타입은 거진 비슷했고 풀을 마주보는 두 건물의 맨 끝 방들만 스위트룸이었다.
건물의 끝엔 1, 2층 모두 이렇게 소파와 테이블이 비치된 제법 넓은 공간이 있다.
스위트룸까지 객실 타입별로 둘러보니, 전체적으로 조명이 너무 어둡게 설치된 느낌이다. 아늑함을 극대화 하려는 것이겠지만, 사진 찍기는 참 지랄같다는...
매니저는 객실이후 다른 부대시설들로 우리를 안내한다.
마사지하면 중국이나 타이니까, 불상이나 불교적인 색채를 많이 강조하는 인테리어를 둔 듯하다.
실내에도 승려의 조각상이 있다. 부처 조각의 장식이 많다.
마사지 샵까지 보고 나오니, 아까는 안 보이던 사람들이 풀에서 수중 농구를 즐기고 있다.
중국인(아니면 대만인)이다. 요즘은 어딜 가나 중국인들이 참 많고, 그들의 언어가 가진 특징상 3명만 있어도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라... 관광지에서 중국인들과의 조우는 필연이다.
키즈풀과 성인풀을 가로지르는 라운드형의 풀 바에는 음료를 즐기며 한가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과 서빙에 열중하는 직원들 모두 한가롭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부끄러워들 한다^^. 서비스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 짓는 가식적이고 사무적인 미소는 참 싫다. 그들이 처한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엿보는 듯한 불편함, 굳이 그렇게 억지 친절 흉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느끼는 불편함 때문에 차라리 틱틱거리는 욕쟁이 할매가 더 편하기도 한 법. 이렇게 쑥쓰러워 하는 모습은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로 만나는 느낌도 상쇄되어서 너무 편하고 좋다.
서비스업체에서 신규 사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시, 이런 고객의 니즈가 꼭 어필되었으면 한다.
여행지나 호텔 등에서의 이런 만남은,
1번 - 주로 나의 캐릭터와 그 또는 그녀의 만들어진 캐릭터가 만나는 것을 상정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뭐, 이 정도만 해도 불편하지는 않다. 좀 사무적인 만남이 될 뿐.
2번 - 최악은 나의 캐릭터와 그가 만드는데 실패한, 어색한, 만들래야 만들수가 없을 정도로 메롱인 상태에서 억지로 만든 캐릭터가 만났을 때이다.
3번 - 무엇보다 가장 기분 좋은 만남은 나의 캐릭터와 그의 꾸미지 않은 캐릭터가 만났을 때가 아닐까?
풀 바에서 일하는 그녀들 중 한 명은 끝까지 1번을 유지했지만, 두 사람은 3번으로 나를 대해 주었다. 여행 중 비록 찰라의 스침이라도 좋은 기분을 갖게 하는 가장 기본 같다.
드디어 사방비치로 나간다.
날씨가 좀 구려서 그런지, 사방비치가 그렇게 유명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고 당시만 해도 생각했는데, 이틀 뒤, 다시 여길 찾아서는 황홀한 빛깔과 금모래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가 그렇게 폭이 넓지는 않았지만, 선베드 등도 갖춰져 있고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기에도 나쁘지 않아 보이긴 한다. 다만 파도가 조금 있어서 수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실 이 정도 파도야 오픈워터 즐기는 나로서는^^.
일반인들에겐 역시 안전한 풀이 낫겠지 뭐. 가이드 말로는 혼다베이가 장판같이 잔잔하다면 이쪽 사방비치는 대체로 좀 거칠긴 하단다.
저 멀리 지하강투어로 떠나는 배들이 출발하는 항이 보인다.
"언더그라운드 리버" 좀만 기다려라... 내 곧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