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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Oct 13. 2017

[팔라완 답사13]혼다베이 소녀

2016.5.4

여행기간 : 2016.5.1~ 5.6
작성일 : 2017.4.21
동행 : 촬영팀 후배 "초이"와
여행컨셉 : 여행지 답사







간만에 푹 쉬고...
실은 밤에 반딧불 체험을 하려고 했는데, 바람도 좀 있고, 날씨도 그렇게 맑지 않아서 포기했었다. 덕분에 잠은 푹 잤다. 그렇게 시끄럽게 울려대던 음악소리도 피곤하니 자장가처럼 들렸고...




 

다시 혼다베이로


오늘은 혼다베이에 다시 간다.


거의 일자로 쭉 이어진 길을 달리다가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 왔다고 이제 길눈이 생겼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멀리 동북아시아쪽에서나 볼 법한 한옥 풍의 큰 집이 있다. 지붕 색이 금색이다. 한자를 보니 사찰같다. 교회는 흔히 봤지만, 절은 첨이다. 그것도 이런 외딴 팔라완 외곽에서 말이다.


필리핀에선 아주 이국적인 담과 지붕


바다로 뻗은 길의 끝이 보인다. 필리핀 국기 걸고 한 장은 박아줘야지.


오늘의 목적은 호핑투어다. 필리핀의 바다색은 워낙 유명하니까... 스노클링을 안 하고 갈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지난 번 보다 좀 늦은 시간에 왔더니 벌써 사람들이 많다. 저들 대부분이 호핑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라 서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난 자유롭게 근처 구멍 가게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린망고

그린 망고가 모든 계절에 맛 볼 수는 없지만, 필리핀에서 발견한다면 꼭 먹어봐야 한다. 골드 망고처럼 무턱대고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약간 상큼한 청량감이 있어 좋다. 
나처럼 신 것 못먹는 사람이 추천하는 살짝 시큼한 단 맛.


동네에서 가장 번듯하고 큰 가게. 2층까지 있다.


사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가게에 진열된 상품들은 즐비하다. 오늘 저녁 만찬을 위한 벌이는 되어야 할 텐데...




 

산미구엘 모델 출신과


남는 시간 안나는 폼 억지로 함 연출해주고


오늘 가이드 여자친구가 동행해도 괜찮으냐 길래, 그러마 했다. 마닐라 아가씬데 우연히 놀러 온 날이 우리의 일정과 겹쳤단다.


본인은 쑥쓰러워 하지만, 한때 산미구엘 모델까지 했었다고 남자친구가 자랑을 한다. 산미구엘은 필리핀의 대표맥주다.
붙임성이 좋아서 금새 허물없이 대해준다.
 




호핑투어 신청 절차


오픈에어로 된 혼다베이 투어 플래폼의 벽에는 많은 그림들이 붙어있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듯 호핑투어 장바구니에 넣을 섬들을 고른다.
판단은 가 봤고... 호핑투어로 꼭 간다는 카우리 섬과 루리섬, 팜바토 리프 등을 선택한 것 같다. 이날 가이드의 친구되는 다른 가이드도 한국팀을 인솔하게 되어서 그 분들과 아예 일정을 맞추고 같은 곳을 다니기로 했다.


한 쪽에 붙은 가격표를 참고해서 고른다.


각 섬들이 어디 붙어 있고,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시각화해 놓은 정보도 보면서 말이다. 사진 오른쪽 아래 KFC 느낌적 아저씨는 팔라완 시장님이시란다.


그러고 나면 메인카운터에서 서류를 쓴다. 호핑 목적지들과 인적사항을 기록한다. 인적사항 기록은 같은 배를 탈 사람들끼리 반드시 같이해야 한다. 뒤섞이면 아예 출항을 못할 수도 있다. 
이 작은 방카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관리하는 필리핀 경찰을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보다 여러 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되진 않을 필리핀도 이렇게나 엄격하게 관리를 하는데, 세월호는 우리를 순식간에 미개한 지구의 소수 종족으로 만들어 버린 범죄였던 거지...


여튼 이제 돈만 내면 된다. 환경세를 납부하고 인지를 받은 다음,


수납창구에서 최종 결재를 하면 된다. 여기서 필요한 스노클 도구를 대여료를 내고 빌릴 수도 있다. 
기억이 맞다면 현금 결재만 되었던 것 같다. 혹시 페소 대신 달러도 가능하다. 권하지는 않는다. 계산하는 환율 때문에 무조건 페소보다 손해니까.
 




소녀의 미소


한 쪽에 관광객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들이 벤치에 앉아 있다.
지난 번엔 너무 일찍 와서 못 봤던 사람들이다. 여긴 팔라완 관광 코스 1번지 항구고, 당연히 현지인들에겐 삶의 터전인 곳이기도 하리니. 우쿠렐레를 연주하는 아저씨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저 자리를 지켰다. 1인 버스킹에 큰 돈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뒤에 힘없이 앉아있는 소녀는 딸일까?


호핑을 기디리는 사람들 대부분 서양인들이다.


어린 꼬마들이 있는 가족들도 있었다. 나도 아마 이 모습을 보고 여름 가족여행을 여기로 올 결심을 한 것 같다^^


오동통하니 귀여운 남매의 장난질을 몇 컷 담고 있는데 그 너머에 또 다른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비슷한 또래의 현지인 꼬마다. 
의도치 않게 값싼 감상을 억지로 만드는 그림 따위를 연출한 것 같은 불편한 맘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오토바이를 만지작 거리는 아이에게 다가간다.


그때 이 소녀의 표정을 봤다. 오빠인지 동네 친구인지 모를 그 남자아이 바로 앞에서 어쩌면 한 번도 가 본적도 없는 먼 나라에서 놀러 온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가득한 안쪽을 응시하는 소녀의 표정.


평일인데 학교도 안가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아빠를 따라 온 걸까? 
우쿠렐레 연주자의 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잠시후,


그녀도 지금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일하러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아이스캔디를 사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스박스의 한기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 테이프로 완전히 꽁꽁 싼 저 상자 안 아이스캔디들이 결국 안 팔리고 다 녹아 버리면 어쩌지. 
불행 중 다행. 같은 또래 꼬마들이 많았던 우리팀 한국 관광객들이 아이들에게 아이스캔디를 하나씩 사 주었다. 
일행들이 방카를 향해 떠났지만 난 좀더 기다렸다. 정말 담고 싶은 한 컷이 있어서...


그리고 이내 안도하며 담을 수 있었다.
이 다음에 커서 상자 속 팔지 못한 아이스캔디처럼 녹아버릴 것 같았던 시절을 추억하면 어쩌나 하는 내 얄팍한 동정의 시선이 무색하도록 저렇게 환한 얼굴을 담을 수 있었다. 
나는 어쩌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어설픈 감상에 젖은 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남아야만 했던 것 같다. 저 미소는 그녀가 내게 준 위로다. 
선민의식이나 동점심 같은 부끄러운 감상들에 한 순간 홀려버린 스스로가 너무 창피해서 극복할 뭔가를 갈구하던 내게 보낸 그녀의 위로.

누구의 삶이나 힘든 부분은 있고, 상대적으로 못 누리는 듯한 자괴감도 있다. 하지만 순간 순간 삶이 주는 행복의 순간조차 없는 건 사는 게 아니다. 난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행복은 늘 순간이고 찰라가 아닐까. 너무 많은 걸 놓지 못하느라 그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고 흘려 보내기 마련인 찰라 말이다. 저 소녀의 어린 시절 삶의 기억 속에 혹시나 아무런 행복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지나가는 찰라를 붙들어 매 놓은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 기억보다 더 강하게 회상되길 바래본다. 비록 그 기억의 소유주가 이 소녀가 아니라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겠지만...
뭐, 이 또한 오로지 내 감상의 발로일 뿐이지만... 

간절히 바래본다.
저 천진한 웃음을 가진 소녀가 제발 오늘이 가기전, 
상자 속 아이스캔디가 다 녹기 전에 몰래 하나 뜯어서 지 입 속으로도 하나 넣어버릴 수 있는 철부지이기를... 너무 빨리 철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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