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6
여행기간 : 2016.5.1~ 5.6
작성일 : 2017.4.29
동행 : 촬영팀 후배 "초이"와
여행컨셉 : 여행지 답사
푸에르토프린세사에서 다시 마닐라로
간밤은 화끈했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어린이였던 거다.
아침에 마닐라로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넉넉하도록 공항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와서 청사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다는...
문이 열리지마자 거의 맨 첫 고객으로 공항에 진입. 일사천리로 수속을 밟았다.
우리는 전 항공편을 필리핀항공으로 했는데, 여긴 세부퍼시픽까지 두 군데의 항공사만 있다.
공항세를 납부하는 부스에 따로 가서 인지를 받아야 티케팅이 가능하다.
순서를 꺼꾸로 생각하고 줄을 섰다가 맨 먼저 청사에 들어온 메리트가 사라져 버렸다는...
뭐야 이거?
떠나는 날까지 쾌청하기 그지 없다. 5월은 푸르구나~ 필리핀이든 한국이든.
멀어지는 열도와 바다, 그리고 솜털 구름이 만드는 3차원의 스크린을 보면서도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반드시 이번 여름 휴가때 가족을 동반하고 재회하리라는 강한 의지...
짧은 마닐라까지 가는 동안 빵이 나왔다. 팥방인데 맛있다. 그리고 든든하다. 너무 일찍 나와서 호텔 조식도 못 먹고 나온 우리들에게 아침 한 끼로 충분할 정도.
가깝다. 금새 마닐라 상공에서 고도를 낮춘다.
헉, 그림이 다르다. 도시같다.
마닐라 시내버스, 아무거나 타기^^
마닐라다. 정신없다. 엄연히 한 나라의 수도구나.
시간적 여유가 많다.
마닐라에서 잠시 짬이 나면 뭘 하면 좋을까 물어보니,
대부분 도박장이나 마사지를 추천해 준다. 엥? 마닐라에 그렇게 볼 게 없단 말인가?
아마도 잠시 짬을 내서 어딜 갈 엄두를 내기 힘든 교통 체증때문에 이런 제안들을 한 걸지도 모른다.
그냥 국제선 터미널로 가기로 한다. 그 대신 무작정 버스로 이동해 보기로 한다. 혹여 버스로 가다가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려서 시간을 보내자고...
만약 터미널 간의 이동이 목적이라면...
지난 필리핀 입국때 언급한 대로 필리핀항공을 이용했다면 굳이 청사 밖으로 나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공항 안쪽 그러니까 활주로 가로 운행하는 터미널간 필리핀항공 수송 셔틀이 있다.
그리고 언급한 대로 우린 그런 거 몰랐다^^
저기 앉아 있는 분한테 물어봐도 귀찮아 할 뿐 몇 분 뒤에 도착한다는 얘길 정확하게 해 주질 않는다.
우리 그냥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국제청사 터미널에서 제일 가깝게 지나가는 버스를 묻고 물어서 덥썩 타 버렸다.
더위에 극도로 취약한 초이도 낯선 곳을 다니는 건 좋아라 하는 성격이고, 나야 뭐 일부러 둘러다니기로는 둘 째 라면 서러운 남자아니겠는가^^
낯선 마닐라의 어느 골목 투어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서 들어간 골목이다.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마치 어린 시절 우리 동네 같은 이곳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 골목 투어를 시작하기로...
평일 낮인데 사람들이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동네에도 늘 이렇게 꼬마들 젊은 엄마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백수 아저씨들도 많았고^^
사진에 보이는 저 반가운 코카콜라 마크가 있는 집은 이 동네에서 거의 유일한 구멍가게. 우리도 음료수 하나씩,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먹기로 했다.
근데 문이 잠겨있다. 그것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쇠사슬까지 채워져 있다. 주인이 어딜 갔나보다 하면서 실망스레 돌아서려는데 철망 사이로 작은 창이 열린다. 마치 영화속 전당포의 그것처럼.
그리고는 뭘 찾느냐고...
호오. 이렇게 주문하고 구매하는 방식인가보군...
돈을 지불하고 받아든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주위를 둘러보다 아차 싶은 생각에 등꼴이 오싹해졌다.
골목에는 대낮, 아니지... 아직 점심 시간도 안됐는데 좌판에 낮술을 잡숫고 계신 아저씨들 그룹도 군데군데 보였다. 우리가 지나가자 대뜸 한국인이냐고 물어본다.^^
표가 나나보다. 인상이 좀 험하다.
한국을 좋아한다고, 근데 이런 골목엔 왜 왔냐고... 그닥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았지만, 취객은 다 무서운 지라... 당황하지 않은 척 얼른 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기실 구멍가게 하나에도 저렇게 철망과 쇠사슬로 보안을 유지해야만 생존 가능한 그런 곳에 우리가 지금 와 있는 건...
머리속에선,
필리핀 여행에서 술 한잔 먹고 일어나보니 팬티만 입고 시골길에 버려진 채 잠에서 깼다는 아는 형의 이야기도 떠오르고, 신문에서 접한 더 험한 이야기들도 막 생각나고...
다행이랄까 아니면 정말 근거없는 이방인의 기우였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냥 애들이나 어른이나 외국인에 대해 과도하게 관심이 많던 딱 내 어린 시절 그 사람들 마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그렇더라도 우리 동네에선 외국인한테 먼저 말을 걸고 그러진 않았는데, 눈도 못 마주쳤지 아마.
남자 둘이었으니 해 본 경험이지, 가족들과는 절대 해 볼 엄두를 낼 수 없을 듯한...
빡빡한 일정에 지친 몸에 곤죽이 될 정도의 더위에도 우리 둘은 서로 말은 없었지만, 바싹 긴장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골목은 행사가 있어서 그런 건지 골목 통째로 형광색으로 된 장식물을 달아 놓았다.
그 아래엔 CD^^
가까이서 보니, 음료수 병을 잘라 별 모양으로 만든 거다.^^
오로지 구글지도에만 의존해서 갔다. 길이 하도 구불구불하고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자칫 길 잃기 십상이겠더라고. 두려움 반, 모험심 반 방향만 설정해 놓고 우리는 자꾸 골목 깊숙이 탐방길을 잡고 있었다. 정확하게 우리가 골목을 헤매는 동안 단 한 명의 관광객도 만날 수 없었다. 우린 전혀 이방인들이 들어와 보지 않는 순수하게 필리피노들만 사는 자연 촌락을 경험했다.
그리고 무사히 골목을 빠져 나왔다.
뜻하지 않은 시간에 뜻하지 않은 긴장감 만땅의 여행이었다ㅋㅋ.
여행이 원래 이러기도 해야... 하지 않나^^
아이스커피!!
다 필요없고 딱 아이스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대로가에는 사람이 없었다. 자전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는 사람마다 카페가 있냐고 물었다.
아이스커피 값이란?
그렇게 찾아낸 카페.
에어컨에 무료 와이파이까지. 천국이다.
간단하게 요기까지 하고 슬슬 공항으로 가기 위해 다시 뙤약볕으로 나선다.
이 햇살 아래 저런 인력거(?)꾼이 도로 위를 달리곤 하는 게 보였다.
새까맣게 탄 피부와 잔잔하게 인이 박힌 팔다리 근육의 저 아저씨에게 공항까지 가자고 했다.
요금을 물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말도 안되게 싼 가격을 얘기했다. 우리는 흥정이고 뭐고 없이 그대로 드리고 출발했다.
에어컨 빠방한 그런 교통시설은 아니다. 후덥지근한 공기 속을 자체 보온 효과 빠방한 갑바까지 씌운 좁은 공간에 둘이 앉아서...ㅋㅋ
이 낡은 바퀴달린 좌석과 연결된 더 낡은 자전거 위에서 미친듯이 패달을 밟는 아저씨를 보면서는 불평을 해댈 수는 없었다. 그는 정말 있는 힘껏 저었다. 오르막은 없었지만, 도로 사정에 따라 멈추고 가기를 반복하면서 안장 위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댄싱(서서 패달질 하기)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더구나 그늘도 아니다.
한 30분 정도만에 국제 터미널 앞에 내려준다.
기억에는 원래 달라고 했던 돈 보다 좀 더 드렸던 것 같다. 그래봐야 우리가 먹은 아이스커피 값의 반에 반도 안된다. 참... 마음이...
어쩌면 그의 영업 노하우가 동정심 유발일지도 모르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그렇게 왕복을 해도 과연 하루에 커피 몇 잔 값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니...
고작 4박6일 간의 짧은 일정이었는데, 마치 한 달 정도 살다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만큼 많은 경험들이 있었다는 뜻이겠지.
한 군데 진뜩하니 즐기지 못하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건 답사라는, 출장여행이라는 한계니 뭐...
그래도 많은 것들을 담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에 새로 들어온 것들이 파열음을 내고, 또 다른 형태를 빚어내는 경험들은 소중했다.
아쉬워야 또 오지.
이 말도 맞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통 여행 가는 모습을 보면 꼭 안 가본 곳만 가는 경향이 강하다. 한 번 갔을 때, 내 인생을 흔들 정도의 감흥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을 흔드는 건 피곤하다.
흔들리는 동안의 멀미하며,
다시 체계를 세워 정리해야 하는 귀찮음도 그렇고...
쉬운 건, 완고하게 내 세계는 유지하되, 어딜 가서든 살짝 발만 담그고 오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여행 패턴은 바로 귀차니즘 때문에 생긴 게 아닐까?
그만큼 삶이 퍽퍽하니까 다 귀찮은 거다.
내가 가진 돈이든, 체력이든, 욕망이든 소비해야만 제대로 된 여행이라 생각하는 건 헬조선 사람들의 문화로 안착해 버렸다.
부지런한 몸둥이를 상품으로 판매 해야만 살 수 있는 나라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여행에서 굳이 부지런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몸은 굼떠도 된다. 다만 생각과 마음만 닫아 놓지 말자는 거다.
우리는 지불한 금액이 아까워서 여행에서 이미 몸은 부서져라 부지런을 떨고 있다. 다만 마음에 들어오는 어떤 것도 나를 귀찮게 하지 못하도록 꽁꽁 싸매 놓고 여행하는 것 같다.
반대로 해 보길 강추한다.
몸은 게으르게 대신 마음과 생각은 부지런히 들어오는 모든 정보와 감상이 제멋대로 휘젖도록 내버려 두는 여행을 말야.^^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