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25
여행기간 : 2016.6.23 ~ 6.27
작성일 : 2017.6.12
동행 : 절친 'J'와
여행컨셉 : 여행지 답사
우붓은 생각보다 멀었다. 발리 향 가득나는 촌락이나 산 능선도 좀 지나고, 작은 개울이지만 물도 한 두 번 건넌 것 같다.
차는 울창한 숲 속으로 난 길로 접어들더니 잠시 후 세운다. 원숭이들이 많아서 '몽키포레스트'라 불리는 곳이란다.
입구는 원숭이를 테마로 한 여러 조각상과 안내문이 보인다.
매표소에는 외국인들이 많다.
마침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라 안쪽 숲은 짙은 나무 그늘로 대낮인데도 어두침침해 보이기까지 했다.
입구에서부터 열대우림을 방불케한다.
근데 원숭이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라는 순간 길가에 떡하니 한 마리가 눈에 띈다. 그 이후로는 여행 온 사람보다 많은 원숭이 떼가...^^
조금 들어가니 중간에 커다란 반얀트리 하나를 기준으로 갈림길들이 뻗어있다. 나무 둥치의 크기며 홀로 떨어져 넓은 그늘을 만들고 있는 모습에 포토존 역할까지 도맡고 있었다.
이때 먹을 것(현지 직원인 듯한 분들은 고구마 같은 걸 주던데, 여행객들이 주는 바나나가 다 떨어지면 손을 대지 별로 즐기지는 않는다)을 줘야 겨우 다가오지 사람보길 돌보기처럼 대하던 녀석들이 한 중국인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려 포즈를 취한 사이 다가온다.
그러더니 저런다^^
신기방기 재밌다.
허나 그건 약과라... 저렇게 두 발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쫒아가며 대놓고 적선을 부탁하는 놈들도 있다.
그러다가 드뎌... 오늘 나와 "Deep impact"한 녀석들이 나타났다.
장화신은 고양이 저리가라 할 정도의 저 처절한 눈빛 연기...
우리의 눈 높이 쯤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아 있던 녀석들 중에서 작은 녀석이 사건의 발단이다.
잠시후 그 모습을 담고 있던 'J'의 어깨로 점프를 해 왔다.
울루와뚜의 원숭이들보다는 순하다고 들었던 이곳 몽키포레스트의 원숭이들이지만, 아디는 순간적으로 지갑이 든 가방을 움켜 쥔다. 이 녀석이 노리는 게 작은 가방이라 본 게다.
완전히 어깨까지 올라간 녀석은
'J'의 어깨에 가만히 앉아 있다. 난 또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느라 여념이 없었고,
근데 이 녀석, 감히 렌즈를 툭 친다. 마치 찍지말라는 듯한 저 무심한 표정이란...^^
하지만 그건 완벽한 페이크 모션...
이 놈은 J의 어깨를 발판 삼아 다시 도약해 '아디'의 어깨로 점프.
정말 순식간에 아디의 앞가슴 주머니에서 뭔가를 빼내더니
입에 물고는 다시 옆에 나무로 점프.
담배였다.
졸지에 우리의 풍경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으로 접어들고
이 녀석 하는 짓은 점점 가관이다.
이걸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조금씩 다가가서 찍고 있었나보다.
이 사진을 위해 셔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왼쪽 다리에 뭔가 강하게 무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쳐다봤다.
아까 이 녀석과 나란히 앉아 있던 덩치 큰 놈이 바닥에서 날카롭고 긴 송곳니를 잔뜩 드러내고는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다리를 문 것이다.
아마 내가 지 새끼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다가가는 것으로 본 모양이리라.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 놈 얼굴에서 느낀 살기에 질린 게 더 컷던지라 뒤로 몇 걸음 물어난 것 같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극심할 것까진 없었지만 통증도 좀 느껴졌고.
자리를 좀 피해 바지를 걷어보니 뚜렷하게 이빨 자국이 보이고 송곳이가 물었던 자리는 약간 피가 맺혀있고 피멍도 베어 있다.
이거 뭐야? 나 원숭이한테 물린거야?
야생동물에 물려 본 적은 처음 아닐까?^^ 살짝 겁 먹은 것은 사실이다. 에볼라 같은 몹쓸 전염병도 원숭이들이 옮기는 걸로 알고 있고...
아디는 내가 너무 걱정할까봐, 괜찮을 거라고는 하지만 눈빛에서 걱정스런 맘이 다 읽힌다.
이런 강한 임팩트 이후에 사실 고통이 지속되었더라면 응급조치를 생각해 봤겠지만, 그렇게까지 지속되는 통증은 없었다. 바지에도 못에 걸려 뚫린듯한 자국이 보이고, 바지 천이 건드릴 때마다 약간 쓸리는 듯한 느낌이 좀 있는 정도.
멋진 풍경과 즐거운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대수롭지 않은 척 계속 걸었다.
보슬비로 젖은 타일 바닥과 매끄러운 조각상들, 그리고 윤이 나는 열대의 나뭇잎들을 보며 한적한 숲의 기운을 만끽하자니 어느새 통증도 잊게 되었고.
원숭이와의 강한 접촉만 없었더라면, 숲의 기운과 색감에 100% 몰두할 수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긴 하지만.
숲 중간에도 사원이 있다.
사원 입구 맞은편에 있는 남녀의 뱀 형상(?)과 그 안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원숭이 상.
사원 맞은편엔 큰 건물이 하나 있다. 발리의 마을마다 자주 만날 수 있는 큰 공회장같은 건물.
때마침 빗줄기가 조금 굵어지자 사람들이 비를 피해 건물 안으로 피신한다.
사람 뿐이랴... 원순이들도 비를 피해 들어오...는 건지 아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먹을 걸 바라고 따라 들어오는 건지...
바나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올라간다^^
빗줄기는 폭우로 바뀌고 사람들은 그나마 원숭이들 덕분에 무료를 달래지만 그네나 우리나 다 오도가도 못하는 입장은 매한가지일세...
이 수염 덥수룩한 이태리 삘 나는 아저씨는 ET와 엘리엇의 감동적인 한 장면 오마주에 들어가 주시고...
심지어 눈빛까지 교환한다.
...
ET의 한장면?^^
그 와중에 가화가 만사성임을 통달한 단란하기 그지없는 원숭이 가족들이 빗속에 여운을 더하는 포즈로 뷰파인더에 더러 잡힌다.
좀체 비가 잦아질 기미는 안보이고, 우린 우산을 챙겨왔으니, 그냥 빗속을 걷기로 한다.
연인들이 쓰면 어땠을까 싶은 꽃무늬 우산 아래 가이드와 저 남정네도 나름 아름답...^^
비를 피했던 건물 아랫 길을 따라 놓인 데크 끝엔 구름다리가 거대한 반얀트리를 배경으로 서 있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풍기며 말이다.
먼데서 보니 두 연인(?) 더 아름답네^^
이날 마지막으로 우리를 배웅해 준 원숭이는 좁은 다리를 막고는 한창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디서 난 건지 무슨 락카 스프레이 깡통을 힘으로 열어보려 애 쓴다. 먹을 거라 생각한 듯...
그렇게 원숭이들과 온몸으로 뜨겁게 접촉한 몽키포레스트를 나오니
어느새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도 그치고 온통 반얀트리가 터널을 만들어서 컴컴하던 숲은 온데간데 없이 맹한 하늘이 열린다. 반얀트리가 두 세계의 관문같다.
우붓 관광을 위한 진입로이기도 한 이곳 몽키포레스트 출구 쪽.
차량들이 줄을 잇고 젖은 거리에는 관광객과
그들의 시선을 얻기 위한 예술공예품 가게들의 좌판이 어지럽게 섞여있다.
잠시 하늘과 분주한 맞은 편 모습에 얼이 빠져 있다가 둘러보니 출구를 나서자 마자 오른쪽에 이런 건물이 있다. 이제 다리에서 더 이상 피가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무실에서 소독이라도 할 요량으로 들어간다.
어떤 조치가 가능한 지도 모르지만...
막상 들어서니 흰 까운을 입은 의사나 간호사가 있을 걸로 기대한 것과 달리 핫핑크(?) 의상을 차려입으신 여자분이 홀로 앉아 계신다.
아디의 통역으로는 더러 원숭이에게 물려서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과산화수소수로 몇 번 닦아주는 게 전부였다.ㅋㅋㅋ
그래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 심적인 플라시보 효과랄까, 안심도 되고, "원숭이에게 물린 생각"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