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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Dec 17. 2017

팔라완 10_ 코론 호핑 : 망망대해에서 막내를 잃다

2016.8.18

결국 사단이 났다.
엄마는 체력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너무 멋진 풍경을 조금이라도 보려고 배 바로 옆 물속에 떠 있고, 첫째와 아빠는 남은 체력 아낌없이 쏟아붓던 중, 막내를 잃어 버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이 넓은 바다에서 갑자기...
 





여행기간 : 2016.8.16 ~ 8.23
작성일 : 2017.7.4
동행 : 마눌님, 두 꼬맹이들
여행컨셉 : 가족여행




하루종일 물에서 놀면서 지친 사람들은 아침의 그 싱그러웠던 기운들을 찾아보기 힘든 얼굴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방카는, 예정된 호핑 일정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장소를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코론 앞바다의 모든 섬들이 훌륭한 피사체다. 다만 황홀경에 빠져, 균형감각을 이미 잃은 내 카메라가 그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지 못할 뿐.
 

마지막 장소에 거의 다 왔다. 
늦은 오후의 햇살은 굳이 가이드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여기가 오늘의 마지막 지점이라 짐작하게 했다. 대략 맵서비스 앱을 통해서 위치를 확인한 결과, 저멀리 보이는 큰 섬이 부수앙가섬이고, 마키닛 온천이 위치한 섬의 남동쪽 끝부분이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동력도 없는 작은 배에 앉은 어부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집앞의 그물을 살피러 나온 마을 사람같았다. 여차하면 여기서 마키닛까지 헤엄쳐서 바로 갈 수도 있을 만큼 가까워 보였다. 
한 1km정도... ^^
 

이번 지점은 딱 한 군데가 아니고 이 일대를 조금씩 맛보는 방식으로 진행. 
산호군락지인 이곳 포인트와 아주 완만해서 거의 수심이 무릎에서 허리까지만 오는 넓은 산호사 터 두군데에서 입맛에 맞게 즐기게 해 주었다.

호기롭게 들어간 물 속에는 다양한 빛의 산호와 아쿠아리움에서나 보던 알록달록 물고기떼가 숨바꼭질하는 모습에 바로 빠져버렸다.
첫째를 데리고 제법 멀리까지 구경을 다니면서 영화 <니모>로 유명한 두동가리와도 한참을 실랑이했다. 
암컷이 보금자리에 있는 동안 수컷이 나의 접근을 막으며 위협하는 모습이 자못 진지했다. 제법 깊은 곳에 둥지가 있어, 쭉 내려가서 살피면 나를 향해 공격적으로 들이대는 수컷^^. 큰아들은 위에서 이렇게 작은 물고기에게 맥을 못추는 아빠를 위에서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흘러 수면위를 살피니 모두들 가이드를 따라 다른 쪽으로 수영해서 가고 있다.
따라 잡아서 가 보니 거긴,



전혀 다른 환경.
얕은 수심으로 백사에 반사된 영롱한 빛이 감싸는 곳이었다.
그렇게 낯선 물고기들을 쫓으며 부자지간에 망중한을 즐기길 얼마나 했을까?

멀리서 마눌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강산이가 안보여~


정말 주위를 둘러보니 파란옷을 입은 꼬맹이가 안 보였다. 카양안에서부터 지친 기색을 보이던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필리핀 바다에 흠뻑 빠져서 끝까지 따라 나섰는데... 분명 좀전까지도 같이 있었는데...

방카에 다시 혼자 올라가버렸나 생각도 했지만, 혼자서 가기엔 거리가 좀 있는데...
혹시 다른 일행들을 따라 섬 뒤로 돌아간 건지도...

큰놈과 마눌님한테는 방카쪽을 찾아보라고 하고 일행들이 가고 있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헤엄쳐갔다. 어느 수영대회를 가도 그렇게까지 전력질주를 해 본 적은 없을 만큼 숨이 턱에 찰때까지...
허나 가이드를 비롯, 이국인들 누구도 꼬맹이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저 건너 섬 앞의 물속에 있는 다른 방카 팀 무리에서 파란옷의 꼬맹이를 발견했다. 
아니 어쩌자고 지 혼자 저리 멀리까지 갔단 말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그쪽을 향해 간다. 거리는 150~200m 정돈데 이미 살짝 지친지라 아까만큼 속도가 나지는 않았다. 헉헉대며 도착한 곳에서 파란옷의 주인공은 강산이가 아니었다.

실은 이때까지만 해도 어딘가 혼자서 잘 놀고 있겠지 생각해서 크게 걱정은 않고, 오히려 만나면 혼이라도 내리라 맘 먹었는데, 막상 이 망망대해 어디서도 발견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섬을 한바퀴 돌았다. 지쳐서 구명조끼도 없이 떠 있으면서 조류를 타고 떠내려 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영은 좀 하는 놈이고 발에 핀도 끼고 있으니 그대로 누워만 있어도 물을 먹거나 하진 않았을 거라고 기대하며, 아니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쳐서 아빠가 부르는 소릴 듣지 못해도 제발 의식은 잃지 말고 어디든 그대로 떠 있기만 해 달라고... 온통 불길한 생각들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순간 머리를 흔들면서 전력 질주를 해 댄다. 사라진 때부터 시간을 계산해서 조그만 녀석이 헤엄을 치든 떠내려가든 도달할수 있는 예측 반경을 거의 다 뒤졌으나 보이지 않는다.
점점 내 몸의 기운도 빠지기 시작하고 나머지 가족들도 각자 흩어져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가이드가 이제 떠날 시간이라고 모두들 방카로 모여달라고 한다.

나를 지나쳐 방카로 향하는 사람들을 질러 간다. 정말 혹시나 하는 마지막 기대로 방카까지 도착하니 배 위에는 선장만 타고 있다. 선장이 우리보다는 높은데 시선이 있으니 한 번 봐달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오기전에 이 근방 배로 한바퀴만 둘러보자고...
그랬더니, 선장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당신 아들은 여기 있는데.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배 위.
허겁지겁 올라가보니 배 위 그늘에 큰 대자로 뻗어서 잠들어 있다. 발에는 핀을 끼고 심지어 스노클과 수경은 이마에 그대로 매단 채 말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한다. 
이 녀석은 몸이 너무 고단해졌는데도, 아빠와 형아가 너무 신나게 노니까 따라다닐 체력은 안되고 해서, 일찌감치 방카까지 혼자 가서는 드러누워 버린 걸테지.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보니, 온몸의 긴장도 한꺼번에 풀리고, 또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는 중에 일행들이 하나씩 도착한다. 헌데 저 멀리 섬쪽에서는 마눌님과 큰아들이 아직도 작은놈을 찾아 헤메고 있다. 거리도 상당하다. 가이드한테 내가 데려올 때가지 기다려 달라 얘길하니, 우리 식구들이 있는 곳 바로 옆에 있는 방카에 세 명이 타란다. 방카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타면 선창으로 가면서 옮겨타도록 해 주겠단다.

실은 내 몸도 힘이 다 빠져서 다시 수영을 할 엄두가 안 나긴 했지만, 사람들이 하나씩 이쪽으로 와서 배에 오르는 동안에도 맘 조리며 수색작업(?)을 할 두 사람 걱정에 내가 먼저 가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배를 그들이 있는 쪽으로 둘러가게 하기도 미안하고...

그렇게 막내만 두고 다시 수영을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을 이끌고 낯선 방카에 오르면서 또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 배에서 마눌님한테 받은 구박이란... 

'아빠라는 사람이 지 논다고 정신 못차리고 아들이 혼자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방카에 가도록 몰랐다는 게 말이되냐...' 

이런 소리를 내내 들어야 했지만, 목소리에서 안도의 기운이 느껴져서 다행. 

두 배는 나란히 달려서 복귀하고 있다.
우리 장난꾸러기 가이드는 나란히 달리면서도 우리 가족들의 상봉을 지체하면서 장난을 친다. 그새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끼고 잠에서 깬 막내도 영문을 몰라,


왜 아빠, 엄마, 형아는 그 배에 있어?


이렇게 소리를 질러댄다. 잠시 후 두 배가 마주보더니 우리를 반대편으로 옮겨주는데, 짖궂게 깔깔대는 가이드가 왜 그렇게 미운건지^^. 돌이켜보면 우리를 비롯 배에 탄 모든 사람에게 작은 추억을 남기긴 했지만.

아빠가 왜 그렇게 미안해하는 지 모르는 막내는 잠시 잤다고 다시 팔팔해져서, 팔딱거리는 갓 잡은 생선처럼 생기가 돌고, 나머지 세 명은 배에 탄 어느 누구보다 지쳐서 멍한 채로, 그렇게 가족들의 첫 호핑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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