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북진 : 5구간] 02영축산~간월재

2017.3.25

by 조운

가랑비라도 우중에 비맞고 처량하게 도시락을...
하지만 그렇게 평온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차가운 습기가 감싸는 구름 속에서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느낌...
산행 중에 자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밥알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물도 넉넉하겠다, 영축산 정상부터는 쭉 능선길이기도 하고, 해 떨어지면 그냥 아무데고 그곳이 비박지가 되는 거지 뭐^^





여행기간 : 2013.25~3.26
작성일 : 2017.10.28
동행 :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정북 방향으로 외길 능선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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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 좋다.
시시각각 가스도 지나간다. 단조늪 어디쯤을 지나는 동안, 저 멀리 신불산 정상이 점점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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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후배들과 왔을 때는 쨍한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노랳는데, 한 톤 다운된 색도 나름 새롭다.
이곳은 한 때 종교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낸 카톨릭 신자들의 공회가 있던 곳이기도 하고,
그 이후에는 빨치산들이 토벌을 피해 생명을 부지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산이 험했다는 소리겠지.
어느 시대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산성터가 남아있는 걸로 봐서는 훨씬 이전부터 전략적인 요충지 역할도 했던 모양이다. 천성산처럼 산정습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인데, 고산습지의 특성상 나무들은 별로 없고 온통 물기를 좋아하는 풀들이 펼쳐져 있어, 시원하게 시야를 열어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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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길이 나오는 걸 보니 신불재가 가까워 오는 갑다.
저 아래 신불재 한 가운데의 교차로는 가스가 심해 잘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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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가시거리를 가늠키 어렵도록 구름이 나타났다 지났다를 반복하는 와중에 신불재에 도착했다.
어쩔까 싶다. 좀 이른 시간이긴 한데, 여기서 퍼질러 앉을까 아니면 신불산을 넘을까?

아직 간월재에서는 비박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으니 넘어가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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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 계단이라 힘들어서 그렇지, 신불재에서 정상까지는 완만한 편이다. 어느새 정상이다.
표지석 위에 앙증맞은 눈사람 두 명이^^
<겨울왕국>이 정말 대유행을 하긴 했구나 싶다. 아니 이런 게 바로 헐리우드 영화의 힘이고 미국문화의 확장 능력이라는 걸까?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오래된 미래>에서 본 라다크는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으로 삼기 충분했다. 그 이후 라다크는 꼭 한 번은 다녀오리라 맘 먹었던 곳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오랜 세월 라다크에 지내고 나서 다시 펴낸 후속작에선 이미 미국문화가 범람하면서 변화된 그곳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가 본 적도 없는 곳, 공동체가 외래 문화에 유실되어 붕괴되어 버렸다는 게 슬프다니...
실제 컨텐츠가 가진 힘이란 대단한 것 같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징기스칸의 부대가 대륙을 휩쓸고, 건륭황제가 한족땅에 나라를 세워도, 중국의 오랜 문명과 문화의 힘에 밀려 영토만 장악하고 문화는 잠식당해 버렸으니... 강한 햇볕 아래 비바람의 흔적이 증발해 버리듯, 역사 속에서 창칼의 힘이 문화의 힘을 당해낼 수 없다는 증거는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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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이라는 컨텐츠 이전의 눈사람보다 이제 울라프형 눈사람이 더 흔하니...
미국의 핵무기보다, 미국의 커피, 청바지, 미국식 사고방식의 힘이 더 무서운 거다.
눈사람이면 당연히 머리와 몸통이었는데, <겨울왕국>의 울라프를 알게 된 이후, 만나게 되는 눈사람은 대부분 머리-가슴-배의 세 덩이로 변해 있다.
한국 눈사람은 사라지고 외래종이 우점종이 된 현상으로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IMG_1915-_Wide1080mark.jpg?type=w773 신불산 정상의 상고대

신불산 정상 인근에서 눈사람보다 더 놀라운 모습도 발견한다. 상고대다.
집에서 시내버스타고 걸어서 온 신불산 정상이 아닌가.
헌데 상고대라니...
곧 잎사귀를 틔워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계절에, 잔뜩 몽우리를 거내 들고 있는 철쭉 가지의 말단마다 상고대 향연이다.
영남 "알프스"라는 칭호가 그냥 생긴 게 아니구나^^
한 겨울 지리산, 설악산에서도 늘상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여기 경남 땅 끝부분에서 3월에 상고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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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차바의 피해를 신불산 정상도 피하지는 못했나 보다. 저번에는 제법 종 모양으로 잘 서있던 신불 정상 돌탑이 와르르 무너져서 저런 띠를 다 두르고 있다. 신불산은 역시 바람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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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앞 나무데크 전망대는, 이제 그만 걷고 여기서 마 자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간월재의 억새평원도 이국적인 맛이 뛰어나지만 이렇게 정상에서 맞을 아침만 상상해도 멋지지 않은가. 다만 밤새 바람소리에 잠을 설칠 생각에 그냥 간월재로 향하기로 맘을 다잡아 본다.
꼭 한번은 신불 정상에서 텐트를 펼쳐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만 추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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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 정상을 넘어서려니 온천지 나무에 상고대다.
상고대의 모양만 봐도 바람의 세기를 짐작케 한다. 아침 운해라도 핀다면 정말... 아서라. 오늘 비박은 여기가 아니다. 귀할수록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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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 정상의 너덜 암반을 벗어나자마자 이런 진창길이다.
상고대에 진창길이라... 경상남도 겨울 산행의 특수성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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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가스가 옅어진 틈 사이로 간월재의 억새평원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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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오늘 정말 사람이 없다.
비박 시즌이 끝났다는 의미기도 하고, 오늘 날씨가 그만큼 비박하기에 대중적인 날씨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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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어디서 시작된 건가,
누구의 기획인가,
여튼 우리 산들에 저런 돌탑이 여기저기 많이 세워져있다. 간월재는 양쪽의 봉우리가 바람을 막아줘서 그런지, 무너진 흔적도 없이 제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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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도 가볍고, 혼자라 페이스대로 능선길을 따라 오다보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와 버렸다.
아무도 없고 텐트를 치기엔 좀 이른 시간이다.
"간월재 휴게소" 건물에는 아직 퇴근 전인가 보다.
'간월재 휴게소'라 씌여 있지만, 관리하시는 꽤 엄한 분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다. 산에서의 비박이 금지되어 있거니와 간월재가 "1박2일"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급격하게 비박 인구가 몰리면서 단속도 심해졌다.
그래도 이 분들 퇴근하고 나면 텐트를 쳐야 덜 미안한 거니... 기다릴까?
우선 화장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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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서 배내고개까지 낙동정맥 구간 중에서 유일한 화장실이 여기에 있다.
휴게소까지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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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쓰지 않는 친환경 화장실이라기에 웃기지만 변기통을 한장 박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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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있지만, 정말 개수대가 없다^^.

머시마들이야 굳이 화장실이 없어도 쉽게 볼 일을 볼 수 있지만, 추운 밤 귀찮다. 시간도 때울 겸, 아예 큰 볼일까지 완벽하게 치르고 휴게소를 지나 간월산 방향으로 조금 오른다. 중간 중간 전망 데크가 두어개 보였는데 너무 대놓고 휴게소 앞에 진을 치는 것보다는 약간 더 올라가서 텐트를 치는 게 덜 미안하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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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도 없는 알프스 어디쯤 같다^^. 휴게소 건물의 모양 덕분에 더욱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듯. 억새밭의 한쪽 끝에 붙은 상록수 관목 군락도 그런 느낌에 한 몫해 주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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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망 데크에는 사람들이 텐트를 두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두 동이나... 패스
두 번째 데크를 향해서 조금 더 오르는데...
엥? 얼굴에 뭔가 닿는 느낌이...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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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구나 했더니 이내 함박눈으로 변하고 사방도 자뭇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이것 참, 3월의 영남알프스엔 상고대에 진창길에, 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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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에 그대로 박혀 있는 규화목 화석이 있는 곳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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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 장가계의 '크라운 프라자 호텔' 정원에 수없이 많이 전시된 규화목 생각이 난다. 우린 이 두 개의 화석만으로도 참 귀한 경험을 하는데 고작 호텔 정원에 백여 개가 넘는 규화목들이 울타리처럼 늘어서 있었으니, 뭐든 대륙의 스케일이란...
사람들은, 한 생명이 분해자를 거쳐 누구 다른 생명의 분자가 되지 못하고 저렇게 무기물의 형태로 살아 있을 때와 비슷한 모양을 갖춘 걸 신기해한다.
신기함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한 때 티라노사우르스의 심장세포나 삼엽충의 각질 세포, 고대 식물의 수관을 이뤘던 조직 일부가 수많은 세월 흙이나 식물, 혹은 다른 인간의 몸을 거쳐 내 어머니의 몸을 이어 내몸의 중요한 구성인자로 들어 온 게 더 신기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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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휴게소 건물이 보이지 않는 위치까지 와서야 위쪽 데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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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은 더욱 힘차졌다.
기온이 높으니 눈이 데크나 땅에 닿자마자 녹아서 금새 질척해진다. 빨리 텐트를 치지 않으면 이러다 내일 아침 축축한 텐트를 짊어지겠군.
데크 위에서 텐트를 칠 것 같아서 나사형 핀을 미리 챙겼다.
겨울 날씨에 젖은 데크의 이음새 틈으로 나사를 돌려 넣는 게 쉽지 않아서 맨땅에 텐트를 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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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샛노란 플라이 위로 함박눈이 하나씩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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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되자 눈이 싸래기로 바뀐다. 어두워지자 기온도 뚝 떨여진다. 덕분에 텐트마저 약간 쳐질 정도로 눈이 쌓인다. 3월 말 영남알프스는 참 다양한 경험을 주는구나.^^. 밤엔 그냥 한 겨울 날씨다.

본의 아니게 이른 저녁 먹고 나니 7시. 더 이상 할 게 없다.
침낭 속에서 체온 유지를 위해 물주머니까지 하나 끼고 멀뚱멀뚱 누워있는데 발소리가 들리더니 데크위로 한 무리가 올라선다.
다늦게 옆에 나타난 남자 셋.
꽤나 시끄럽다.

자려고 해도 시끄러워 전전반측.
다른이를 피해 부러 가장 먼 데크에 텐트를 쳤는데...
데크 위에선 한사람만 걸어다녀도 지진 난 듯 울리고 흔들린다.

얼른 자야 하는데... 내일은 본격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니 일찍 움직여야 할 테고.
비를 맞으면서 가지산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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