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13
이틀 뒤에 있을 워크숍은 하루 종일해야...
워크숍 준비를 오랫동안 해 왔지만, 전인미답의 길이다보니 정답이라는 게 없다, 사람들마다 생각도 완전히 통일되지도 않았고. 한 번 더 상의하고 정리하기 위해서 상해 사무실로 간다.
대부분 정리가 되어 있긴 하지만,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있을지, 누구 하나 자신있게 확언할 수도 없다.
벌써 몇 번이나 정리했지만 다시 한 번 전체 사업의 윤곽과 미진한 부분에 대해 점검을 해야했다.
여행기간 : 2017.4.13~4.16
작성일 : 2017.10.31
동행 : with 곡's & J 그리고 초이
여행컨셉 : 워크숍 참석 출장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과 사무실까지는 걸어 가기엔 약간 멀고 차를 타면 5분만에 가는 거리다. 시내 중심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메가시티인 상해는 곳곳이 부도심인 듯, 길에는 차와 자전거가 끊임없이 지나고 있다.
4월이지만 아직 바람은 쌀쌀한 편, 아침 저녁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는 개인 교통수단인 전기 스쿠터는 저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한 도구들을 한 가득씩 싣고 있다. 쫌 꼬질꼬질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헬맷만은 핑크^^.
깔끔한 건물에 사무실도 넓다.
역시 차의 나라...
사무실의 응접 소파세트에는 이렇게 차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 테이블이 하나씩 꼭 있는 것 같다.
핵심 멤버들이 모였다. 그동안 구상했던 내용을 복기하고 내일 발제 순서에 맞게 꼼꼼하게 재검토한다.
전체 사업을, 개념도로 정리하기 위해 유리벽 하나를 빼곡하게 채우는 곡's.
나름 개념도가 완성되고 나니, 시간이 상당히 흘러 창 밖으로 보이는 상해 시내에 오후 햇살이 내려앉고 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중국에 오면 이렇게 산이 없는 평야가 끝이 안보이게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심심찮게 보게된다.
대충 각자가 맡은 파트가 정리가 되고 나서, 나머지는 곡's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섰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해까지 왔으니 거리 구경이라도 하자는 속셈.
그새 퇴근시간이 된 건지, 도로는 더욱 분주하다.
사무실 인근은 대형 가구점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상해에 처음 온 남자들 몇 명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들을 가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어 볼 수도 없고, 저녁시간 전까지 돌아오라고 하니 무작정 쏘다닐수도 없고...
근방에 냇가가 있다해서 정말 집앞 산책하듯 방향만 보고 움직인다.
그러고보니 상해는 수로의 도시다.
북쪽으로는 장강이 바다와 만나고 한 쪽은 바다, 남쪽에도 거대한 강이 있어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어마무시하게 큰 호수가 떡...
서울의 한강이나 파리의 세느강처럼 상해 한가운데로는 황포강이 흐른다.
뿐만아니라, 거대한 도심 전체가 실핏줄처럼 시냇물이 얽히고 설켜 흐르는 물의 도시가 상해다.
상해부터 항주까지를 일컷어 "수향"이라고도 한다.
아마 상해는 장강이 운반한 토사가 쌓인 삼각주가 아닐까 싶은데, 삼각주가 다 그렇듯 산이 있을리 만무하고 오로지 수면보다 약간 높은 넓은 충적토만 있는... 그러니 말 그대로 "물의 동네"가 될 수 밖에.
물이 합쳐지는 곳이 한 두군데겠냐만은 우리가 지나는 거리 이름이 '합천로'다.
이때 벌써 사드문제가 심각해지려 하고 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로 돌아서기 전이기도 해서일까?
수인번호 503번이 탄핵되고 나서, 북경의 한국 상가에는 하도 손님들이 안 들어와서 "한국성"이라는 간판을 아예 내려 버렸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때만 해도 한국 상사 주재원들의 숙소처럼 보이는 아파트 벽에 "한국성"이라는 간판을 그대로 달아 두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기긴 했다.
한국성 옆으로 물길이 나타났다. 지도상으로는 작은 실개천처럼 보였는데 폭이 제법 넓다. 물의 도시라는 이야기에서 상상했던 모습대로 냇가로 이어지는 자연스런 경사면 같은 건 없다. 그러기엔 전체 육지 고도가 너무 낮으니까. 베네치아나 네델란드처럼 물의 공간과 인간의 공간을 억지로 구분해야만 삶이 가능한 곳이다.
서울에 사는 후배를 데리고 낙동강을 같이 다녔던 적이 있는데, 4대강 사업의 이전의 창녕구간이나 그 위쪽은 땅의 경사면이 강과 자연스레 만나는 구간이 많다.
이렇게 생긴 강은 처음 본다고 했던 후배. 원래 한강도 한때는 그랬는데, 강폭을 좁히고 도로나 육지로 이용하려다 보니 날카롭게 경계를 지어야 했고, 없던 고수부지니 저수부지 같은 완충 지대를 필요에 따라 만들어야 했던 건데... 그 전 모습을 본 적 없는 세대는 모든 강이 한강, 템즈, 세느와 같은 줄 알 수 밖에...
여튼 우리가 다닌 상해의 수로 산책로는 고수, 저수 같은 구조조차 없다. 한강보다는 템즈나 세느에 더 가까운 모델이다.
친수공간(물과 친한 공간? 별로 친해보이지 않는데... 어디 언어도단이 이것 하나 뿐이랴만은, 쓰고 보니 말이 웃긴다)은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가 전부다.
그나마 나무 데크로 만들면 금상첨화인...
삼각주이면서 아직도 복잡하게 수로가 있는 도시, 그 도시가 거대해지면서 물과 인간이 공유하려고 최선을 다한 모습일테지.
수변 산책로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어렵사리 들어간 이후로는 다시 나오기도 쉽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선 이제 거의 볼 수 없는 능수버들이 산책로를 따라 심어져 있다.
버들류가 물 근처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수변에 심기에는 딱 좋다. 게다가 버드나무가 가진 살균 성분으로 각종 유해균을 잡아주기도 하고, 변태 전의 어린 무당벌레가 자랄 동안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기도 하기때문에 익충의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물만 있으면 빨리 자란다.
여러모로 도심에서 가로수로 기르기에 참 좋은 식물인데, 나무가 물러서 베어내기 쉬워서인지, 도심 재개발이 이루어지면 늘 맨 먼저 없애 버린다.
어린 시절이 버들피리 소리를 한 번 내보고 싶어서 뒷골이 아플 정도로 불어대던 기억은 아재들의 추억담이 되어버렸다.
어라?
저건 뭐지?
T자로 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마주보고 고기를 잡고 있다.
대나무를 엮어서 크게 틀을 잡고 그물을 팽팽하게 묶어서 물 속에 가라앉히더니,
때때로 줄을 당겨 끌어 올린다.
지나는 물고기가 그물 위를 지날 때 낚아채는 아주 비효율적인 방식 같은데...
한 번씩 들어올리면 꼭 그물에 한 두마리씩은 걸려 들어 있다.
뜰채에 걸린 놈 덩치가 장난이 아니다.
주로 붕어류 같아 보이고 쏘가리처럼 보이는 놈들도 끼어 있는데 그 수가 장난이 아니다.
낙동강도 한때 저러했는데... 이제는 고작 350만 정도가 사는 부산에서 대부분의 개천과 강에선 고기가 거의 씨가 말랐다.
2,400만이나 밀집해서 사는 거대한 상해의 이 조그만 수로에서 저렇게 큰 고기들을 떠서 건져 올리다니... 중국인들의 환경 인식이 어쩌니 저쩌니 하며 입댈 처지가 못된다 싶다.
최소한 MB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아직도 감옥에 보내지 않은 나라 국민들은 말이다.
해도 많이 기울었고 저녁 식사 시간도 다 되어가서 그만 물가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으나, 나가는 통로 찾기가 쉽지 않다.
거의 사무실까지 다 와서야 나가는 출구를 만났는데 바로 직전에 이런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포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님 댁 마당에 있는 포도나무의 싹 트기 전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상해라는 도시는 인간이 살기 위해서 물로 덮인 곳을 개간해서 육지로 만들었으리라.
물은 영토를 뺏기면 한번씩 돌려달라고 성질을 내는 지라, 물과의 불필요한 신경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비록 인공적인 틀이긴 해도 상당량의 지표면을 수로로 내어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상해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쌓은 상해인들의 노하우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왕 그렇게 된 바에, 사람들이 빡빡한 도심 속에서 쉬면서 재충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테고, 되도록 아끼기로 하지 않았을까.
하필 인구수가 너무 많은 땅에 태어나서, 나면서부터 경쟁이 일상화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중국인들에게 염치나 눈치, 배려를 기대하지 말라고들 한다. 이기적으로 보이는 몰염치한 행동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라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보더라도 더러 눈쌀을 찡그리게 만드는 행동들때문에 중국인들은 어딜 가나 크게 환대받지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이날 둘러 본 상해 어느 귀퉁이 수변산책로의 느낌은 '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지켜야할 것들을 지켰을 때 얻을 수 있는 귀한 것들이 보였다.
중국은 전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은 비틀거리거나 꾀죄죄한 느낌으로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저들에겐 수천년의 역사와 그 증거물인 기록을 간직하고 있는 민족이다. 갑작스레 서세강점의 세파에 노출되어 수난과 역경을 겪어서 잠시 정체한 듯 보일 뿐, 늘 세계의 중심이었고 스스로를 부정한 적이 없는 공동체다.
그들의 꽌시는 배타적인 보호막의 공동체를 만드려는 생존 습관의 산물이지만, 보호막의 필요성이 생기는 순간 그들은 필요한 만큼 큰 보호막을 짜 낼 것이다.
그들 전체를 하나의 보호막으로 뭉치게 만드는 적은 필패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중국은 멸시하고 냉소하기에는 너무 무서울 정도로 거대한 공동체의 힘을 숨기고 있는 나라다. 사대하지 않으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는 게 그래서 참으로 어렵다.
못 믿겠다면 상해 시내를 걸어보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