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22
여행기간 : 2013.4.18 - 4.23
작성일 : 2016.9.1
동행 : 인턴기자, 박사코스 유학생 그리고 존경하는 그
여행컨셉 : 영상 촬영 출장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알아내고는 아침 일찍 나와야 했다. 도저히 여기가 어떤 곳인지를 모르고 누워있는 게 편치 않은 이 놈의 몹쓸 병.
정말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새들이 어찌 많은 지 처음엔 좋던데, 약간 소음으로 인식되기 직전까지 갔다.
영국인들이 정말 새를 좋아하는 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건, 집앞 가로수나 좁은 현관 앞 마당(영국인들은 앞마당 보다 뒷마당을 크게 만드는 듯 하다)에 있는 나무에 새 모이통을 걸어 둔 집이 많았다.
그리고 영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짐승들이 사람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다. 꿩에 이어 이 길양이도... 내가 존재감이 별로 없긴 하지만^^
간단하게 몇 블럭만 돌고 오려다가 제법 멀리까지 뛰어 갔다 와 버렸다.
지하철 역 Turnham Green까지 오니 제법 번화가였다. 조금만 더 가면 템즈강이었으나, 굳이... 어제 질리도록 봤는데 하며 되돌아왔다.
돌아오니 벌써 떠날 채비들을 하고 있었다.
후배의 남편 "Z"는 출근을 해야 해서 먼저 나서고, 후배와 애기 "N"까지 우리 모두는 히드로 공항으로 갔다. 루프트한자의 일일 파업을 듣긴 했지만, 오늘 꼭 떠나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에...
루프트한자 카운터에서는 우리 여객 일정과 거의 비슷한 시간대로 브리티쉬항공 편을 대체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다만 2자리만 된다고...
내가 양보했다. 두 분은 절대 가야한다고 해서.
그렇게 그와 여기자님과는 이별을 했다. 나는 그 다음날 떠나는 루프트한자를 타고 또 프랑크푸르트 거쳐서 인천 거쳐서 부산에 가야했다. 이번엔 혼자서만 ㅜㅜ
공항에서 모두와 헤어졌다. 안내를 맡아서 고생했던 박사님과도 헤어졌다.
그리고 후배, 유모차 안의 조카 "N"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 남았다.
선배. 뭐 별다른 계획 없죠?
그냥 오늘 나 따라 다닐래? 아님 혼자라도 어디 갈래?
어떻게 대답했는 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유모차를 낚아채서 먼저 밀고 갔던 것 같다.
그렇게 후배를 따라 나온 곳은 Hammer smith라고 이 근방에선 제일 큰 상업지구였다. 대도시지만 군데 군데 공원도 많고 저런 광장도 많은 점은 참 부러웠다. 무엇보다 저렇게 굵은 나무가 제멋대로 클 수 있다는 점이.
후배는 같이 영어를 배우면서 친해진 이탈리아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뭐 줄게 있다했는지 받을 게 있다했는지...
내 또래거나 한 두살 많아 보이는 이탈리아 아줌마가 나타났다. 후배가 나를 소개하자 공손하게 양손을 다리에 붙이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려는 나의 두 어깨를 잡더니 느닷없이 얼굴에 자기 빰을 갖다 대었다.
헉!
정말 깜짝 놀랐다. 그 꼴이 재밌다는 후배 얼굴이 잠시 보이더니 이내 다른 쪽 빰도 그렇게...
근데 이게 참 이상했다. 악수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랄까.
아주 어린 아이거나 젊은 여성과의 악수보다는 주로 굵직하고 두터운 손의 남자들은 첫 인사에서 악수를 많이 한다. 이때 굳은 살이나 거친 살갖의 표면이 주는 느낌, 아니면 땀으로 젖은 찜질한 느낌이 들 때도 많다. 그래서 이걸 굳이 사람들 간의 환대의 표현인 스킨쉽이라고 하긴 좀 뭐한 점이 있다.
그런데 빰이, 미처 몰랐다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환대 받는 구나 하는 느낌. 베르나르의 <향수>에서 본 것 처럼 향수 하나로 사랑의 감정까지 단번에 끌어 낼 수 있었던, 빰과 빰의 스킨쉽으로 경계심이나 긴장이 순식간에 무장해제 되어 버리는 경험을 했다.
그 이후 찻집에 앉아서 난 애기만 보고, 두 사람의 알아들을 수 없는 수다가 이어졌지만, 이 짧은 스킨쉽은 처음 만난 이 여자분에 대해 너무너무 좋은 첫인상을 남겼고, 참 사랑스런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게 했다. 심지어 지금은 얼굴이나 그날의 입성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빰으로 전해진 따스한 온기는 완벽하게 기억이 나니 참...
여기에 입으로 가볍게 키스할 때 내는 소리까지 더해주면 촉각과 청각으로 환대의 감정을 극대화해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겠구나. 서양사람들 참, 의례적 인사 표현으로 짧고 강렬하게 한 방 깊은 인상 남기는 법을 오래전부터 구사할 줄 아는... 환심을 사기위한 술수의 그레이드가 다른 사람들이구나. 뭐 이런 생각까지 오는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허리 숙이는 인사 < 악수 < 눈인사 < 포응 < 빰 맞추기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인사를 통해 상대에게 환대를 표현하는 강도가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국서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눈이라도 마추치면 살짝 웃어주는 눈인사를 많이 받았는데, 이 또한 악수보다 더 강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물론 악수는 익숙했고 눈인사는 그렇지 않았기에 더 그렇게 느꼈을 거라 생각하지만, 빰 맞추기는 포응으로도 따라 올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준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이후 아직까지 더는 경험할 수 없었다는 게 애석하지만.
그렇게 수다를 떨던 두 여인이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 때문에 반차를 내고 직장에서 바로 이쪽으로 넘어온 후배 남편 "Z"와 합류해서 내게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그렇게 데려간데가 인디안 레스토랑이다. 이 동네에선 유명한 집이라 했다. 이름이 "Shilpa"였던 것 같다.
입이 그렇게 짧진 않지만, 인도 음식은 입에 잘 맞지 않았는데... (실제 그 다음 출장으로 갔던 인도에서 고생 좀 했다)
누린내 양컷 내며 '나는 양이다'라고 코에 대고 신원 밝혀주는 스테이크. 한국식으로 순화된 카레도 평소 잘 안먹는데 정말 정통 인도식 커리(카레와 발음만 다른 게 아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리고 안남미까지. 후배는 푸짐하게도 시켰다.
제일 맛있었던 건 바로 이 "난"
영국까지 와서는 인도 음식을 사주냐는 핀잔에
정말 영국에 그닥 내세울 음식이 없어요.
그런다. 신대륙에서 건너온 감자가 없었다면, 바이킹 조상들이 전해 준 대구 등의 생선하고 돼지만 먹었단 말인가? 영국의 음식. 뭐 이런 게 정말 없었는지, 그 후배가 바깥 나들이를 많이 안한 건지는 아직도 모른다.
거의 매일 먹었던 '피쉬앤칩스'만 아니면 다 좋아라고 했던 내가 말하자면, 쓰레기차 피하려다 X차에 부딪힌 격.
오해는 마시라.
정말 인기있는 인디안 레스토랑이었고, 음식들이 전부 정갈하고 푸짐했고 맛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그냥 내가 인도 음식에 들어가는 일부 향신료를 못 견디는 것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