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22
여행기간 : 2013.4.18 - 4.23
작성일 : 2016.9.1
동행 : 인턴기자, 박사코스 유학생 그리고 존경하는 그
여행컨셉 : 영상 촬영 출장
도심지에서 점심을 먹고, 부부는 나를 어디에 데리고 가야할 지 논의를 좀 했다. 그리고 자기들도 아직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가자고...
그곳이 "WWF(Wildfowl and Wetlands Trust, 영국 야생조류와 습지 트러스트) London Wetland Centre"였다.
이 런던 다국적 식구들, 내가 습지 찍으러 출장 왔다고 하니, 주구장창 습지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건지, 아님 이번 기회에 근처에 있으면서도 평소에 못 가 본 곳을 가려는 심산인지...
런던 습지센터는 의외로 런던 중심가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후배집에서도 멀지 않아서 템즈강만 건너면 바로였다.
직접 와서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넓은 습지를 부동산 가격 비싸기로 소문난 런던 한 복판에 두고 있는 걸까?
정말 영어가 좀 되면 관계자를 만나서 꼬치꼬치 캐 묻고 싶을 정도였다. WWF라고 해서 세계자연기금 (World Wide Fund for Nature)인 줄 알았는데, 팬더 마크 대신 새가 로고에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니 약자만 같지, 전혀 다른 곳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단체이기에 이런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시도를 이뤄냈단 말인가. 그 안에서 본 새들의 한가로운 모습들은 부러움과 고마움 뭐 그런 감정들을 불렀다.
일행들 공항에 배웅하고 후배 볼 일보는데나 따라 다닐꺼라고 카메라도 두고 집을 나선 게 후회될 뿐이었다. 나중에 후배한테 꼭 다시 조카 데리고 놀러가서 사진 좀 많이 찍어서 달라고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내가 보고 느끼는 대로 찍어야 그게 내 사진이거늘.
궁금한 것들 투성이지만 물어 보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우선 눈에라도 담자는 마음으로 해 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런던 세 식구들은 그런 나를 말리지도 못하고...
저 할아버지는 얼마나 오래 저기에 서 있었는지 모른다. 저 철새인 듯 보이는 오리류들은 사람이 있건 없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한가하게 이리저리 쏘다니고... 그래 "쏘다녔다"가 맞다. 우리는 새들이 먹이활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어딜 가거나 도망가는 모습만 봤는데, 그냥 시간을 낚으면서 쏘다니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 여기 새들은 다 쏘다니고 있었다.
내가 핸드폰으로나마 촬영을 하던 말든...
할아버지가 서 있던 낮은 담벼락 안쪽은 웅덩이가 있었고 그 웅덩이를 둥글게 벽이 감싸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고니 한 녀석이 자고, 한 녀석은 지키는 건지, 깬 건지... 나와의 거리는 채 1.5m나 될라나.
낙동강하구 명지에서 줄잡아 1,000마리는 되어 보이는 고니떼가 넓은 강폭 사이에 이리저리 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많은 고니가 부산에 매년 찾아온다는 것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4대강 사업때문에 먹이문제로 요즘은 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단다. 대체지로 주남저수지를 찾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먹이문제로 더 줄어들 지 모른다고 들었다.), 그 놈들은 늘 빵빵한 망원렌즈를 달아야만 촬영을 허락할 정도로 인간과의 거리를 100m 이상 유지했었다.
영국의 모든 백조는 여왕의 소유라고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백조를 괴롭히지 않아서 "무해한 인간"이라는 경험이 유전자에 각인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새들이라...
웅덩이 반대쪽 담벼락에 있던 이 놈들도 마찬가지.
한 놈은 아예 코를 박고 무장해제 상태로 곤히 자고 있고, 한 놈도 잠이 막 쏟아지는데, 나 때문인지 졸리는 거 깰라고 우리로 치면 케겔운동이라도 하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참...
영상에는 바람소리 때문에 잘 잡히지 않았지만, 이놈들 숨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낙동강의 구미 고아습지에서 만난 재두루미 4마리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담아보려고 거의 50m를 모래사장에서 낮은 포복으로 기어갔던 일이며, 그 겨울에 무릎까지 오는 물을 건너 하중도에 들어가서는 젖은 신발을 신고 위장 텐트 속에서 만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도 1.6크랍 바디에 달린 20배 줌 렌즈로도 '아, 재두루미구나'라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밖에는 못 담았는데, 내 아이폰5로 이렇게 찍어대도 날아가기는 커녕 숨소리까지 들려주다니...
참 신기한 건, 사람이 평소에 내는 숨소리와 잘 때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다르듯, 이놈도 고개는 주억거리고 있지만, 분명 숨소리는 새근거리고 있었다는 거다. 잠이 와서 죽을 것 같다는 저 초점없는 눈도 그렇고... 혹시나 나를 의식할까봐 나오는 웃음도 참아야 했던 잊을 수 없는 경험.
숫컷 청둥오리들, 우리 애들이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닭>에서 봤던 파수꾼의 현신이라도 되는 듯, 정말 다른 무리들이 물에서 노닐고 있는 동안 이 놈들 여기서 한 쪽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실은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건 지들이나 나나 다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원앙(고니도 천연기념물이지만 우린 낙동강 하구에서 떼로 한 1,000마리 씩 물에서 노는 걸 볼 수 있기에 그렇게 희귀한 줄 잘 모른다)이 저렇게 노니는 모습도 이렇게 가까이서 맨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다.
다큐영화 <곡선>의 모티브가 되었던, 어느날 신문에서 봤던 '천성산 법기리에 나타난 원앙' 기사가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법기리 수원지에서 원앙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습지센터는 웅덩이, 초지, 갈대밭, 숲 등 다양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군데군데 탐조를 할 수 있는 벙커 같은 것도 지어져 있었다. 벙커 안에 마련된 망원경에 아이폰을 갖다대고 찍은 오리의 모습.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비지터센터(메인 빌딩)에 들어서면 아예 탐조를 위해서 한 쪽은 통창으로 반대쪽은 스탠드로 만들어 둔 곳도 있었고, 기념품샵, 식당과 카페도 있었다. 야외 한쪽에는 어린이 놀이터와 환경관련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배치되어 있었는데, 내가 새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찬찬히 더 둘러보지는 못하고 쓱 한 번 보고는 이내 집으로 와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WWF와 런던습지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다. 런던습지는 한 때 런던 수도물 공급을 위한 콘크리트로 구축한 저수지였다고 한다. 1993년 그 필요가 사라지면서 용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결국 트러스트가 주축이 되어 지금의 상태로 새롭게 인공습지를 조성한 거란다. 5년 정도의 공사기간 동안 다양한 지형으로 새들이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2000년에 오픈했다고...
트러스트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환경 보존 운동 방식이다. 내셔널 트러스트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전세계에서 보존의 가치가 높은 곳을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아예 구입을 해서, 자본의 힘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는 활동으로 유명하다.
모든 재산의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불가역적이며 양도불가능한 사회적 유산으로, 많은 사람의 공동 자산으로 묶어두기"라는 탁월한 아이디어.
한국내셔널트러스트도 있다고 한다.
그도 한 때,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와 유사한 방식으로 내성천에서 '한평사기운동'을 벌이기도 했었다. WWF가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와 같은 단체인지, 무관한 지는 모르지만, 100년도 전에 내셔널 트러스트 특별법까지 만들어 낸 영국 사회의 성숙도로 보면, 자기나라 수도의 금싸라기 땅을 이렇게 보존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했던 것이리라.
부산은 하야리아 부대가 정말정말 금싸라기 땅을 수십년간 차지하고 있다가 떠났고, 지금 그곳은 "시민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런던습지센터처럼 입장료(그렇게 비싸지 않다)를 받지도 않고 부산의 중심부에 도시 속 허파 기능을 하고 있지만,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기존 시설물들을 개량해서 보존했더라면, 시민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새들 아니면 다른 생물들이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더 고민을 했더라면, 식당이나 카페테리아를 입찰로 외주화 하지 말고 애초에 당감동 등의 지역민들이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해서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 그게 주민들의 자부심으로 연결되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뭐, 애초에 WWF처럼 시민단체에게 위탁해서 시민들의 참여를 더욱 높였더라면, 지금처럼 시가 주도해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문가들만 알아서 완공했을 때보다 훨씬 지역민들의 자긍심 고취에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결국 시민 사회의 성숙도(=참여도) 차이리라.
돌아오는 2층버스에서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가고 싶었으나, 신기방기한 버스를 타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서 맨 앞자리에 핸드폰 들고 관광질... 의 교본을 시연한다고 그러질 못했다.
런던 현지인들은 아무도 2층에 올라가지 않았다. 2층엔 사람이 거의 없고 한 두명도 나처럼 외지인처럼 보였다. 우린 동질감으로 서로 잠시 미소를 주고 받았던 것 같군.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 들어오는 길에서 도대체 언제적 모델인지 알 수 없는 클래식한 볼보 자동차 한대를 만났다.
주인장을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후배 집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이다.
오직 붉은 벽돌로 이뤄진, 낡고 이끼낀 자태도 멋있지만,
저 간판에서 주는 울림이 정말 사람 울렸다. 5명의 아이들이 가진 피부색과 휠체어까지.
당시에는 영국인들 참 근사해 보였다.
아복기포(我腹旣飽)하면 불찰노기(不察奴飢)랬어도, 역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중요한 윤리원칙이구만... 이렇게 여겼다.
아, 근데 브렉시트는 뭐지?
영국인들이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자기배가 고파지니 표독(?)해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행운인지 아닌지 항공사의 파업으로 주어진 런던에서의 완전한 하루를 유모차를 끌면서 보내고 노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배웅나오려는 후배를 만류하고 홀로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타고 부산까지 다시 20시간만에 도착해서 이 여행은 마무리를 했다.
세월은 살같이 흘러 녹차라테 운운하며, 우리는 딱 1년에 한 번씩 강에 관심을 보내며 매해 여름을 맞는다. 올해는 기상관측 이래 전 지구가 가장 더웠단다. 9월에 접어드는데도 아직 녹차색 강물은 그대로라고...
사회적 자산을 버리고 사유화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고 사회화 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지에 대한 자신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투표며, 지금은 한 풀 꺾였지만 트럼프에 대한 미국민들의 지지가 그랬고, 두테르테의 압도적인 당선 결과가 그랬다.
그래도 오랜 시간 같이 당사자들이 머리 맞대는 과정, 그 결과에 대한 승복, 그리고 혁신도 당사자들의 힘으로 해 보는 것 말고 더 안전한 방법을 아직은 모르니까.
꼭 아이들과 런던습지를 다시 오마 기약해 본다. 그때는 이 나라의 강들이 다시 "강"이라 불리고 있길 바라고, 템즈강을 보며, 어쩌면 영국민들의 무심함에 안타까운 마음을 보내는 아량이 내게도 생기길 바란다.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