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남부 여행 1_달라이라마를 찾아

2013.12.23 ~ 12.24

by 조운

여행기간 : 2013.12.23 - 12.31
작성일 : 2016.9.2
동행 : 대학 한의학 교수 및 대학교 직원, 스님, 자원봉사자들
여행컨셉 : 영상 촬영 출장



12월23일

04:30 부산 출발. (공항리무진 버스로 약 5시간 이동)

10:00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집결

13:50 인천 공항 Air India 317 출발 (비행기로 약 11시간 이동)

21:35 델리 도착

22:30 첫 번 째 숙소 : Radisson Blu Hotel (인도 수도, 뉴델리 외곽)


12월24일

09:30 델리 공항 Air India 506 출발 (비행기로 약 3시간 이동)

12:15 벵갈로르 도착

13:30 점심식사 후 쿠살나가르로 이동 (버스로 약 4시간 이동)

18:00 쿠살나가르 도착




집을 나서서 40시간.
기차, 비행기, 버스 등 이동 수단 안에서 보낸 시간만도 24시간.
막상 도착해서 지도를 보니, 버스로 한 두 시간만 더 가면 아라비아해에 닿을 거리까지 와 버렸다.



인도로 가는 길


홍콩 근방 어디쯤인 듯 했다. 첫 번 째 비행이었다


이번 출장도 혼자 촬영을 맡았다.
한의대로 유명한 국내 대학의 한의학 교수님들과 봉사활동을 많이 해 오신 스님, 그리고 자원봉사자들로 꾸려진 해외 의료봉사팀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
출정식이 있던 날, 잠시 만난 PD님한테 전체 프로그램의 방향과 이번 행사가 프로그램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의 비중으로 다루어 지게 될 것 같다는 의도를 전해 들었는데, 종합하면 왠만한 건 다 찍어달라는...^^

그 날 이후 전체 출발 인원을 모두 만난 건 인천공항에서의 미팅 때가 처음이었다.
지난 번 영국에서 잃어버린 카메라와 동일 기종 (소니a77)을 재구매했고, 현장 대응력은 좋은 편이라 이번에도 간택. 그리고 혹시나 해서 보조 캠코더 하나. 영국 때와 장비는 동일했다.

그런데 일행 분들이 내가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 파견되는 동영상 기록이라는 걸 인식 못하시고(몇 번을 얘기했지만 허사였다. 그냥 사진 나보다는 잘 찍을 것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신 듯...^^), 전체 일정 내내 사진을 찍어달라셨다. 들고다니는 카메라도 분명 사진기였으니...
방송 프로그램용으로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되는 범위 내에서 사진 찍다 동영상 찍다 뭐 그랬던 것 같다.
막상 다녀와서 방송국에는 전체 영상컷을 넘기고 끝이었는데, 동행했던 분들은 자기 사진 좀 보정해달라, 잘라달라 등등 훨씬 더 많은 연락(?)과 접촉이 있었다.

여쨌든 첫 새벽에 올라가서 델리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인원이 25명 가량 되다 보니, 여행사 직원도도 한 명이 같이 동행을 했다.
인도는 우리나라와 시차가 3시간 30분이니까. 오후 2시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경유 포함 11시간을 날아서 델리에 도착했지만, 현지 시간으로는 같은 날 밤 9시 반 정도였다.
델리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면서 가장 먼저 이국적인 감각을 느낀 건 후각이다. 인도 음식 특유의 향이 공항 전체에 퍼져 있었다. 정확하게 어떤 향신료에서 나는 냄새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후 인도땅을 떠날 때까지 이 냄새는 잠에서 깨어 있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공항을 빠져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암흑 속을 달려 델리 중심부에서 약간 북동쪽에 있는 호텔부터 찾아갔다.
오지 의료봉사라고 해서 각오하고 갔는데,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도 있고해서 호텔 수준은 제법 괜찮았던 것 같다.

다음날 새벽. 조식 식당이 오픈하자마자 밥을 먹으러 갔다.
아메리칸과 현지 스타일이 결합된 뷔페 조식을 먹었다. 사실 인도에 도착하면서부터 나기 시작한 향신료 냄새(고수나물 냄새라고 특정하기에는 좀... 고수를 기본으로, 뭔가가 첨가된 냄새였다. 커리에서 특히 강하게 그 냄새가 났다)가 진동을 해서 인도에서의 첫 식사는 완전히 빵과 익히지 않은 채소, 과일을 주로 먹어야만 했다. 우유가 있어서 그나마 반가웠지만, 우유에서도 독특한 비린내가 느껴졌다. 약간 달짝지근한 커피에는 뭔가가 첨가되었는데, 그게 우유의 맛 같기도 하고... 여튼 그렇게 거부감이 들진 않아서 커피만 두세잔 비웠던 것 같다.

안개 자욱한 새벽에 아직 멀고도 먼 목적지를 향해 모두들 다시 행랑을 꾸렸다.

창밖으로, 어제는 밤늦게 도심을 지나쳐서 전혀 보지 못했던 델리가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경찰인 듯 보이는 말 탄 젊은이를 도촬하는데 하필 그와 눈이 마주쳤다. 좀 무서웠다는... 그는 내 웃음에 저 표정으로 화답했다.

다시 델리 공항 청사 출입구.
인도 공항에선 항공권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공항 건물로 들어갈 수 없다. 경기관총을 들고 문 앞에서 모든 사람의 티켓을 살펴보는 제복 입은 사람을 거쳐야 했다.

짙은 안개에도 불구하고 벵갈로루행(켐피고다 국제공항) 국내선 탑승과 이륙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켐피고다 공항은 벵갈로루 외곽에 있었다. 벵갈로루는 인도 남쪽의 최대 도시라고 했다.
인도를 찾아가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대부분 북인도를 간다. 델리와 겐지스강이 주요 탐방 지역이겠지.
우리는 그런 곳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남쪽으로 비행기만 3시간을 타고 내려와서는 또 벵갈로루를 거쳐서 더 남쪽으로 향할 참이다. 차로만 7시간 거리를 달려야 한단다.

우선 공항과 벵갈로루 사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은 화려했다. 수영장까지 달린 호텔 내 레스토랑이었다. 이름도 "Royal Orchid".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는 것.
용기를 내어서 뷔페 메뉴 중에서 현지식으로만 잔뜩 골라서 급 현지 적응을 시도했다. 음식 맛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음식점 바깥으로 나오려는데 처마 끝에 저런 게 달려있다. 둥근 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건 분명 숯과 고추다.

뭐야 이거. 우리네 금줄을 장식하던 것과 똑 같잖아.


여기 식당 사장님의 국적이 한국인이거나 한국인과 유대관계가 깊은 사연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잡귀나 질병을 쫒으려는 관습 계통상의 어느 지점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지 않을까...
인류문화학에 문외한인 나로서야 궁금증을 해소할 길은 없었다.
아니면 고추가 가진 매운 성질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된 주술적 상징이 어느 문화권이든 비슷하게 활용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숯이 가진 항균성이야 옛날부터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을테니... 어쩌면 자연발생적 관습이 낳은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겠지만, 저 처마의 작은 장식 하나가 문화의 계통적 전래가 이루어진 어떤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지고 있진 않을까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런 상상이 우연한 일치보다는 재미있으니...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산은 산이되, 우리 인왕산처럼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이뤄진 게 아닐까 싶은, 가도가도 평원만 지속되는 곳에서 제법 불룩하게 솟은 저 산이 잠시나마 노곤한 일정을 위로해 주었다.

벵갈로루 시내로 들어서자 한창 공사중인 고가도로며 건물들이 보였다. 인도'대륙'이라 불릴 정도로 큰 땅덩어리가 균형적 발전을 할 만큼의 충분한 근대적 시간에 노출되지 않았을 인도는 북부와 남부의 발전(?) 격차가 제법 있을 거라 짐작한다.
주변 경관을 완전히 바꿔버릴, 가공할 스피드로 다가올 '부흥' 또는 '발전'이라 불리는 탐욕. 우리는 그 탐욕의 아가리에 무방비로 빨려들고 있는 벵갈로르 중심부를 향해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시내 중심부에는 건물들도 많았고 교통 체증도 심했다. 그래서 고가도로를 짓는 거겠지만.

길이 막히던 몇 블럭을 통과하자 다시 한적한 길로 들어섰다.

길가에서 노숙을 하는 듯한 어머니와 소녀가 해먹에 멍하니 앉아 있다.

우리의 전체 일정을 동행 안내한 인도인 가이드 "샤시 부산"의 말에 따르면,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점점 엷어져 가는 듯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아직 철저하다고 했다. 자신은 중상류 계급에 속한다고 했으며 남부 사람들 태반은 낮은 계급이란다.
그는 상층의 기득권 계급이 키도 크고 좀더 피부가 하얗고 잘생겼으며 똑똑하단다. 반대로 낮은 계급 특히 남부 사람들은 작고 새까맣고 못생겼으며 멍청하다고 표현했다. 제법 유창한 한국말로 이런 말들을 내뱉으며 보인 표정에서 낮은 계급 특히 남부사람들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짚게 느껴졌다.
21세기에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에서 카스트제도 같은 게 아무렇지도 않게 공고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그가 설명하는 동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그 기득권의 윤리적 명분을 찾게 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명분이라는 것이 통용되면, 스스로 도덕적 딜레마 따위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사회 바깥에 있는 사람의 눈에 비친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인종차별주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인종의 다름으로 차별을 당연시 할 수 있는 오래되고 공고한 제도적 장치가 카스트였다.
카스트제도에 대해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을 뿐이다. 카스트제도가 같은 민족, 같은 인종들 안에서 권력과 부를 세습하기 위한 제도로만 알았는데, 이건 정확하게 인종차별이었다.
원래 인도 대륙의 원주민들은 유전 형질적으로 키가 좀 작고 피부가 까맸다. 그들은 오늘날의 큰 민족국가를 형성하기 이전, 북쪽에 살던 러시아 계통의 이민족에게 침략당하고 말았다. 침략자들은 덩치가 컸고, 신체 활동면에서도 우월했다. 이들은 원주민들 위에 군림했고, 이때부터 왕족이나 귀족의 기득권만 점유하기 위한 여러 규칙들을 만들어 냈을 테다. 원주민들과 피가 섞이는 것을 막아서 순수혈통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함께.
아무리 막으려해도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순수 북쪽 침략자의 혈통은 차츰 희석되었지만, 지역(인도 북부), 신체적 특징(상대적으로 하얀 피부와 큰 키, 잘생긴 외모), 재산이나 직업으로 신분을 촘촘하게 수직 서열화하는 작업을 누대로 진행한 결과(기회의 불균등), 계급적 차이가 바로 신체적 특징과 연결되어 인식되면서 신분제가 당연하다 또는 합리적이다라는 사회적 합의 같은 게 공고해진 것이리라.

"불가촉천민"이 역사책 밖에도 있는 나라.
인도의 역사적 맥락이 더욱 궁금해졌으나, 가이드를 독점하고 계속 질문을 쏟아내는 나를 주위 분들이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그쯤에서 마음을 접어야 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필요한 부식을 사기위해 들른 Channapatna라는 곳이다. 일행분들은 절에서 늘 그렇게 해 왔듯, 봉사 기간동안 모든 끼니를 직접 해서 먹기로 했단다. 인도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이 해결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

그렇게 번화한 곳은 아니었지만, 인근에 학교가 있었나보다. 그것도 여대? 젊은 여성들 한무리가 책을 끼고 골목에서 우루루 등장하더니 헤어지고 있다. 더러는 낯선 우리에게 손을 흔들거나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이 동네 뿌리열매(감자를 닮았는데 이름은 모르겠다)와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나물용 야채들을 구매하고 다시 몇 시간을 더 달려... 늦은 저녁, 여행의 목적지에 그나마 인접한 숙소까지 당도했다.

국경을 넘어와서 하루 자고, 다시 하루종일 날아서, 달려서 또 숙소까지...
어디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비포장로를 달려서 내린 숙소.
주위에 불빛이라고는 없는 암흑 가운데 리셉션엔 당장이라도 눕고 싶은 평상만이 우릴 반겨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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