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20-7.22
늘 그렇듯, 이실장은 느닷없이 전화하고 당황스런 제안을 해 온다.
"낙동강 따라 쭉 촬영 한 번 합시다.~"
낙동강에 안 나가 본 지가 벌써 얼마인가?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때 어쩌다가 촬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촬영분이 쌓이고 전체 사업 진행상에서의 문제, 말도 안되는 사업 자체의 문제들을 하나씩 담게 되고...
특히 사업이 진행되면서 공동체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고,
사람들을 포함해서 물에 기반한 생명들이 어떻게 와해되고 죽어가고 떠나는지를 담고 말았다.
그래, 의무감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의제들에 날카롭게 정의의 이름들이 뛰어들지만, 정작 인간 사회 외부(자연, 환경)의 문제는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하다.
4대강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천문학적인 눈먼 돈이 줄줄 새어나가는 문제,
그렇게 돈을 들여서 엉뚱한 짓을 했다는 문제,
다시 복원하는 비용과 에너지의 문제가 떠오르면서부터다.
이걸 인간까지 포함한 뭇생명들의 공존시스템의 파괴나 그 공존의 역사성이 와해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려니... 일개 다큐 제작자의 능력, 지혜, 통찰력, 노력의 부족을 절실하게 경험하고야 말았다는...
결국 영화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내 마음속에 커다란 돌덩이로, 또 사무실 한 켠에 먼지를 가득 안고 있는 원본 테잎과 하드드라이브로 남아있다.
낙동강은 내게 그런 존재다. 촬영에 빠져 한창 돌아다닐때는 누군가 사진만 들고 와도 수백 km의 강 중에서 어느 동네쯤에서 촬영한 건 지, 카메라의 포지션이 어디였는지 대번에 댈 수 있을 정도로 환했는데, 공사의 마무리를 보지 못했더니 (공사로 천지가 개벽한 낙동강을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고...)
이젠 누가 데려다줘도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어졌다.
여행기간 : 2017.7.20~22
작성일 : 2018.3.1
동행 : 생명그물 실무자분들
여행컨셉 : 촬영, 특히 드론
답사, 모니터, 촬영 등 갖은 타이틀로 낙동강을 돌 때마다 따라 다녀봤지만, 늘 시작은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태백의 은대봉샘부터 출발하는 건 아니고...^^
사실 태백부터 승부까지는 차도도 없다.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태백선 기차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야 하는... 절경 속을 달리는 맛은 있지만 정말 큰 맘먹고 길게 일정을 잡지 않으면 촬영하기 험난한 코스.
이번엔 특히 말썽 많고 탈 많은 곳들을 중심으로 돌기로 했다.
4대강 사업 이전부터 심각하게 문제제기가 되었던 석포제련소와 그 영향으로 고통받는 안동댐.
4대강 사업으로 금수강산이 쓰레기장처럼 되어 버린 내성천의 영주댐.
그리고 낙동강 중간 중간을 잘라서 호수로 만들어버린 상주보부터 하구까지.
봉화쯤 지나자 이미 황혼녁이다.
석포에 그나마 가장 근접한 곳에서 1박을 해야했고, 우리가 선택한 곳은,
오래된 여관.^^
감사하게도 심하게 코를 골아대는 아저씨 두 분이 한 방을 쓰고, 내게는 따로 룸 하나를 내 준다. 내일 촬영에 지장이 있으면 안되니까 푹 쉬어란다.^^
저 노란색 장판도 참 오랜만이라 정겹기도 하지만, 밖은 한여름인데도 선선할 정도의 첩첩산중이라 암흑 속... 오로지 이 방만이 유일하게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대명천지다.
어젯밤에는 그냥 작은 여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침에 보니 제법 규모가 있는 숙소다.
한창 때는 기업연수나 학생들의 수학여행 등 대규모 인원들을 소화했을 법 한데, 지금은 살짝 철 지난 느낌... 스산하다...
그래도 더러 단체로 산행을 즐기는 분들이 투숙하거나 밤차로 와서는 아침 식사를 여기서 해결하고 등산을 시작하는 요긴한 곳이란다. 그래서 유명하다고, 시설 경쟁력은 필요없어 보인다. 일대에서 유일하니까^^
무진랜드 바로 앞은 31번 국도에서 곁가지로 나온 지방도인데, 도로와 나란히 이런 청옥같은 물이 흐른다. 그래서일까, 지방도의 이름도 "청옥로"
낙동강은 태백부터 부산 을숙도까지의 물을 이르기도 하지만, 보통 안동 아래 내성천과 영강까지 합류되는 '삼강'부터 낙동이라 부르고 그 위로는 안동천이라고들 한다.
영강 합수부 지점, 퇴강리 강가에는 "낙동강 700백리" 시점이라고 거대한 상징물을 둔 공원까지 있다.
사진에 보이는 물은 태백에서 안동까지 가는 낙동강 상류(안동천)의 지천인 현동천.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계신 분의 안내를 받아 석포 제련소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마을로 왔다.
제련소가 보이기 전부터 더없이 깨끗한 공기 속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끊임없이 연기를 피워올리는 공장터가 등장한다.
"영풍"이라는 회사 소유의 제련소다. 영풍문고의 바로 그...
서울이라는 삭막한 도시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아름다운 서점으로만 알고 있지만, 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아연을 제련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아연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투여해야 하는 좋지 못한 약품들과 침출수, 연기과 낙진은 인근 산의 나무들을 모조리 고사시키고 있다. 침출수를 몰래 강에 내다버리는 과정이 수십 년 째 묵인되고 있고, 최근엔 내부 고발까지 있었지만 별 다른 조치가 더해지진 않고 있다.
이날 오후, 집단으로 백로와 왜가리가 서식하고 있는 안동호의 한 지점으로 갔다.
집단 서식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안내해 주신 안동 활동가 분이 우산과 비옷을 먼저 건넨다.??
워낙 큰 무리라서 꼭 한 번은 새들의 분비물을 머리나 몸에 맞게 되어 있다고...
당일 아침만 해도 몇 마리의 시체를 수거했다는데,
나무와 수풀을 헤치고 높은 나뭇가지에 잔뜩 앉아 있는 그 놈들 밑으로 걸어 들어가자, 다시 몇 마리의 사체가 더 늘어 있었고,
날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우리를 피해 달아나는 놈도 보였다.
안동호에서 먹이활동을 쭉 이어가고 있는 이놈들은 가물거나 특정 시기가 되면 이렇게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반복된단다. 영풍 제련소의 침출수가 흘러내려와서 물고기 몸에 누적되고, 그걸 먹은 큰 새들이 이렇게 근육, 신경계 등에 이상을 일으켜 날지 못하게 한단다.
새가 날지 못한다는 건, 사망 선고를 의미한다. 먹이활동이 불가능해지면 며칠 안으로 아사해 버린다고...
눈도 감지 못한 저 녀석은 불과 수 시간 전만 해도 살아 있던 녀석이었다고...
원망조차 하지 않는 멍한 눈동자를 클로즈업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알에서 구더기 한 마리가 기어 나온다. 마치 상징적으로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처럼...
그나마 안동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절대 낙동강 물을 먹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구미 아래 사람들만 이 '독물' (예전엔 낙동강 물을 똥물이라 불렀는데, 틀린 표기란다. "독물"이 더 적확한 표현이라고...)을 식수로 마시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낙동강의 전체 수계를 총체적으로 흔들어 놓은 4대강 사업의 힘 앞에서 불거져 나온 수많은 문제들도 있지만,
이런 상류의 심각한 오염원 문제를 비롯, 오래전에 용도 폐기된 소수력 발전에 대한 대책 마련의 문제 등 많은 부분을 한 번에 쭉 모니터하면서 강을 따라 내려온다.
충격적인 장면들의 연속이었지만 실은 이날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내성천에 뜬금없이 생겨버린 영주댐.
그 아름다웠던 내성천의 모래는 어디에?
연 강수량이 적기로 유명한 이곳에 세워진 영주댐에 물을 채우는 것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채운 물은 금새 썩어 들어가고 정말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을 유발하는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아름다운 물가에 있던 금광마을, 평온마을 사람들이 강제 이주당한 집단 거주지는 이 모양 이꼴로...
높다란 언덕받이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이들의 삶의 형태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신도시형 타운이 조성되어 있었다.
계절에 따라 자족적인 삶을 살아가던 이 노인분들은 집앞에 아스팔트와 주차장이 깔린 이 곳에서 대체 뭘 하라는...
안동 시내에서 1박을 추가하고 다시 남쪽으로 향한다.
중형 SUV 뒷자석엔 오스모, 드론, DSLR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원래 사진과 간단한 트레킹샷 중심으로 촬영하려고 했으나, 그 동안의 변화상을 내가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상공에서 촬영을 해 봐야겠다고 판단하고 들고 갔던 팬텀4.
그렇게 드론샷을 몇 번 찍었더니 아예 전체 촬영 컨셉이 바껴버렸다.
"낙동강 전체를 드론으로 찍어서 쭉 내려오는 영상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헉!!
화면 분할로 촬영중인 지점의 좌표값과 생태, 인문학 등의 중요한 정보를 한쪽에 표시하면서 구간별로 몇 편의 시리즈를 만들자는 제안.
교육용, 사료용으로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 될 것 같긴 하지만,
아직까지 체공 시간이 15~20분 밖에 되지 않는 드론으로 도대체 수백 km를 며칠동안 촬영해야한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구체적인 프로젝트 진행은 이후에 하더라도 시범 삼아 구미 쯤에서 항공촬영을 하면서 내려오기로...
차량에 탑승한 채, 강을 끼고 있는 도로를 따라 드론의 속도에 맞춰서 차량을 몰면, 드론을 다시 불러들이는 시간과 배터리 사용량 만큼 더 많은 거리를 촬영할 수 있을 터.
'무조건 강의 한 가운데로, 높이는 150m로 일정하게 유지해서'
드론을 띄우고 조종하는 동안 차량은 달린다.
배터리 상황을 체크하고 착륙지점으로 드론을 불러들이기를 여러 번.
한 번에 17~25 km 씩 이동이 가능했다.
총 3개의 배터리를 들고 다녔는데, 차량에서 급속 충전을 위해서 시거잭에서 220v로 변환해 주는 인버터도 구입^^
생각나는 건 바로 해 보자는 성격들만 모여서...
하지만, 드론을 날릴 때마다 바짝 긴장해야 하는 나로서는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령교 근방 위천 쪽에서는 강과 인접한 도로도 없었다.
중간에 송수신을 방해할 만한 것이 없는 개활지도 있었지만 아파트나 산 등이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강폭이 확 넓어져서 차량과의 거리가 훅 떨어지기도...
신호가 약해질 때마다 조마조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위험천만한 작업.
여튼 샘플로 진행해 봤더니, 구미~대구~창녕까지 오후 한 나절에 진행이 가능했다.
더 할 수는 없었다. 더운 날씨에 드론의 모터가 금새 고온이 되었고 연속 작동을 하자, 뻗어버리기 일쑤.
드론이나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도 쉬긴 해야 하지만, 열 일하며 열 받은 드론을 달래가며 각 턴마다 식혀가면서 간격을 두자니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할 수도 없었다.
혹 좀더 선선해지면 더 좋은 성과가 있지 않을까 정도의 결론으로 마무리.
낙조하면 다대포.
아름다운 낙조를 찍기위해서 쉬지않고 달려 부산에 입성했다.
하구쪽에 새로 연결된 을숙도대교가 낙조 덕분에 흉물스럽지 않게 고즈넉한 맛을 낸다. 배경이 이리 중요하다니까^^
아미산 아래 전망대에서 촬영하는 것 보다는 해발고도 제로에서 띄우는 게 좋겠다는 판단으로 현란한 석양이 시작된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마지막 촬영을 진행한다.
공항으로부터 일정 거리 안은 드론 운용 불가 지역이다. 다행스럽게도 다대포는 살짝 벗어난 곳...
저 붉은 빛을 향해, 하구 앞에 발달한 여러 등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장면은 과연...
오늘 찍은 다른 모든 것들을 버리더라도 이거 하나로 만족이다 싶은 맘이 들 정도^^.
3일간 바람난 아저씨들이 마지막으로 계획과 상관없이 들른 감천문화마을의 야경놀이^^로 전체 일정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