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7
여행기간 : 2013.12.23 - 12.31
작성일 : 2016.10.11
동행 : 대학 한의학 교수 및 대학교 직원, 스님, 자원봉사자들
여행컨셉 : 영상 촬영 출장
12월 27일.
일행은 슬슬 빡빡한 일정에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가지고 간 옷 중에 고르고 골라 깔끔한 예복을 갖추고 세라성원으로 향했다.
바로 오늘이 달라이라마가 직접 법문 하는 날이기때문이다.
불자도 아닌 나도 세계적인 인물을 만난다는 설렘, 그것도 가까이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는데, 다른 봉사자 분들은 오죽했을까.
붐빌 것이 예상되어서, 여느때보다 일찍 세라성원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인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대사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선 앙코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빵을 나눠주는 젊은 승려들이 있었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하나씩 나눠주었다.
대사원 앞에는 직접 달라이라마를 접견할 수 있는 대사원 출입증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대부분 이미 발급받은 상태였지만, 불자가 아닌 나와 내 룸메이트가 문제였다. 한때 동국대에서 유학을 했던 지인 티벳스님이 동국대 분들의 요청으로 급조해서 인증서를 발급해 주려 노력했다.
그는 티벳 행정부의 고위 공무원이라고 했는데도 쉽진 않았다. 다들 평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달라이라마 친견 장면을 기록해 줄 내가 혹시라도 출입증을 받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해 했는데, 다행이 막판에 겨우겨우 임시 출입증을 달 수 있었다.
며칠 째 대사원 밖만 보았지만 실제 들어와보니 규모나 장식이 압도적이었다.
어렵사리 구한 출입증을 메고 한 컷.
딴에는 가장 조신한 옷으로 입었는데...
옆으로 같이 갔던 봉사단 일행들이 한 줄로 맨 앞줄에 앉아있다. 그 행정부 요직의 승려분이 배려해 준 덕분이라 했다.
외국의 기자들로 예상되는 카메라맨이나 다큐 감독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잠시 후 달라이라마가 법문할 자리는 무척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금불상의 후광이 네온이라 재밌기도 했고.
드디어 그가 등장했다.
동영상을 찍고 있었기에 그의 입장부터 법문까지의 사진은 없다.
그가 꽤 긴 법문을 마치고 나자, 많은 사람들이 친견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옆에 노란머리 외국인은 수년 째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있는 유명한 감독이라고 알려줬다.
힌두 쪽 사람들로 보이는 분들도 있었고
저렇게 강한 임팩트로 '가피를 내려주는(거기서 이 표현을 처음 알게 되었고 정확한 정의를 찾지는 못했지만, 사용하는 늬앙스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부처님의 하늘과 같은 사랑으로 품어 보호하고 불심으로 끌어안는 종교적 경험을 뜻하는 듯했다)' 장면도 보였다.
저기 달라이라마가 가슴으로 끌어안은 스님은, 나중에 내가 사진으로 자신이 달라이라마로부터 가치를 받는 장면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는 찾아와서 자신의 아이덴터티 카드를 보여주면서 사진을 출력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말하자면 대학 학생증처럼 보였다.
그의 생에 중요한 한 순간을 담긴 했지만, 이메일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 그런 것 없다고 우편으로 달라고 했다. 결국 보내지 못했다. 저 사진의 정보로는 도저히 어디로 보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그가 거의 퇴장할 끝무렵에나 차례가 돌아와서 겨우겨우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들도 그와 단체 사진을 찍을 수 있긴 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걸음걸이나 동작들이 그렇게 왕성해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 피부는 참 좋아보였다.
포탈라 궁에서 여기까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찾아와 준 것 만으로도 감사한 사람들은 그가 또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떠야하는 상황에 아쉬워 하긴 했지만, 응석을 피우진 않았다. 그저 그렇게라도 현신이 귀한 시간을 내 준 것에 감사해 마지 않았다.
그가 떠난 마을은 평소보다 더 휑했다. 아마 다들 달라이라마를 따라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에도 한가로이 매 한 마리만 돌아다녔는데,
달라이라마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꼬마 동자승들이 조용한 거리에서 장난치며 몰려 다니기만 했다.
사실 동자승이라해도 우리로 치면 그냥 초등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린포체가 아닌 이상.
린포체는 현신이 열반하고 나면 다시 환생으로 태어나는 다음 생불을 의미한단다. 린포체가 한 번에 세분 정도로 나타난다고 하고 그 중에서 지도자가 한 명 선정된단다.
우리 의료 캠프에도 린포체 한 분이 들른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냉병을 호소했는데, 줄을 서려고 하자 모두가 그를 가장 앞으로 보내어서 오자마자 진료를 받고 갔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생불로 태어난 신적 존재로 보이진 않았다. 그냥 착하고 순진한 총각으로만 보였다^^.
대충 보니, 중간에 있는 스님이 돈이 조금 있는 듯 한데, 뭔가 달달구리라도 사먹자고 조르는 것 같았다. 설득에 성공한 스님들에 질질 끌려서 노점상 쪽으로 막 뛰어 갔으니까.
노점상이 들어 찬 후문 쪽 거리에 복장은 승려인데 티벳에서 껌 좀 씹으셨던 것 같은 사춘기 승려들도 더러 보였고^^
간만에 엄숙한 생활의 틀에서 벗어난 그들은 플라스틱으로 된 온갖 장난감에 매료되어서 이것 저것 사려고 북새통이었다.
나는 사진을 담는다는 핑계로 더러 봉사 캠프를 빠져나와서 이것 저것 카메라에 담았는데, 저 간단한 프레스기에 눌리고 있는 건 사탕수수다. 아저씨 손이며, 쥬스를 담아주는 컵이며 그닥 식욕 돋게 생긴 구석이라곤 없는데, 마셔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달다. 얼음이라도 하나 띄운다면 근사할텐데, 여기서 가장 귀한 게 얼음 같았다.
그리고 열대과일하면 떠오르는 야자수. 통째로 주둥이를 큰 칼로 툭 쳐서는 빨대를 꽂아주는데 생각보다는 덜큰하면서 닝닝한 것이 확 잡아당기는 맛을 주진 않았다. 가격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사탕수수 쥬스나 야자수 통쥬스가 정말 저렴해서 놀랐던 건 기억난다.
다시 한산한 거리를 지나 캠프쪽으로 오자 역시 인파가 먼저 맞이해 주었다. 캠프 안은 물론, 바깥도 혈압 체크를 하려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냉병"이라 불리는 증세를 호소했다.
스님들이 특히 더했다. 스님들이 걸치고 있는 붉은 색 복장은 부처님이 생전에 입고 있던 의복이라는데, 긴 천을 순서에 따라 둘러서 저렇게 긴치마처럼 입는다. 인도 북부나 티벳 고산지대처럼 추운 곳에서 수행하면서도 난방도 안하니까 당연히 찬기운이 뼈속까지 침투해서 다들 기침을 달고 사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유학오신 스님들은 보통 5년 혹은 10년이 넘으신 분들도 있는데, 경전을 연구하다보니 티벳어에 능통한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이 돌아가면서 환자들과 의사의 가교 역할을 해 주었다.
환자가 티벳어 중에서도 사투리를 하면 서 있는 티벳 스님이 티벳 표준어로 통역을 해 주고, 다시 저기 옆으로 앉아 있는 우리나라 스님이 그걸 의사한테 우리말로 해 주는... 참 힘든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