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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Aug 12. 2018

[하이난 생활기_20] 중국에서 운전면허&계좌개설 도전

소속감이라 해야할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라 해야할까?
세상에는 이런 걸 흔들림없이 정의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난 한반도 남쪽에 산다.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부터 이 땅에 나고 자라왔다.
80년대부터 2,000대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사회화 과정을 겪었다. 거기서 지금 내 친구, 가족의 얼개도 만들어졌다.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아내와 만나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다
주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모국어를 사용한다.
생활을 영위하는 거래 수단으로 '원'이라는 화폐를 쓰고, 그 숫자를 듣는 순간 교환가치에 대해 즉각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콩이나 고추를 발효시킨 후 2차로 생산하는 대부분의 양념과 요리들에 익숙하고, 자포니카종 쌀로 지은 밥을 선호하며, 같은 밥이라도 불 조절, 뜸 여부, 심지어 쌀의 생산 년도나 상태까지 추측해 낼 정도로 미세하게 식감 반응을 할 수 있다.
...
즉, 비교적 흔들림없이 정의할 수 있는 사람군에 속한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사람을 다소 억지스럽게 구별하자면,
"디아스포라"와 "객"으로 나눌 수 있겠다.

본인과 부모님의 출생국이 다르거나, 가족과 쓰는 언어와 바깥에서 쓰는 언어가 다르거나, 교육관 사회관이 일관되지 않은 사회화를 겪거나, 사회에서 동질감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일을 비일비재 겪거나...
우린 이런 사람들을 디아스포라 혹은 동포라고 퉁쳐서 부른다.

출생과 동시에 평생을 따라다니도록 예정된 운명이 디아스포라라면, "객"은 스스로의 선택과 판단으로, 일시적으로 사회의 소속감과 일관된 정체성을 벗어나는 사람들이다.

외국에서 고작 며칠을 여행해도 우리는 평소 익숙해서 무감각해졌던 오감들이 긴장과 활성화 상태로 변함에 스스로도 놀라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은 스트레스다. 단,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법. 우리가 무뎌진 감각이 되살아나는 (마치 회춘하는 듯한) 경험을 하고, 삶의 의지가 강해지는 순간을 반복하기 위해 다시 캐리어를 꺼내고 지도를 펴는 건 당연한 일. 살아있음을 느꼈던 자신에게 다시 그런 체험을 주려고 돈을 모으고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 헤매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여행은 중독일 수 밖에 없는 듯.
외국에 파견을 가거나, 제법 장기 여행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살아야 이 정체성 혼란 증후군이 사라질까?

1년 이상을 여행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들에 시큰둥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고고 그런다. 이건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아니면 적응 현상으로 보인다.
가벼운 정체성의 혼란이 주는 기분 좋은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이것도 내상으로 연결될 수 있고,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과 정신이 스트레스를 차단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그는 그 순간이후 힘들었다고 했지만, 여행이 특별한 일탈에서 드디어 일상이 되는, 도약의 순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난 이걸 정착민의 정체성과 반대쪽에 있다는 의미로 노마디즘이 일상이 된 정체성, "노마드 정체성"이라고 지어붙여본다.

낯선 매일에 익숙해진 상태. 캬~


이게 뭔 소리다냐 싶거나,

익숙한 매일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대여~ 떠나라~~

잠깐 그자리 비워도 지구 돌아간다 ㅋㅋ




하이난에서 있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짧은 여행에서만 느꼈던 '살아있음'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내게도 고작 두 달만에 몸과 정신의 스트레스 저항 반응이 찾아왔다. 이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놀라운 경험 만큼이나 놀라움을 준다.

그래서?
이 참에 더욱 더 "노마드의 정체성"을 강화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고... 다른 중국인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내 일상이 되도록 만들어 보려 했다.
평생을 일본에서 자란 나이드신 동포 2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디아스포라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지구상에 없다고 했었다. 그는 일본에서도 디아스포라, 한국에 와도 디아스포라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중국인이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땐땐해 보이는 같은 민족, 내 나라… 실은 찰나의 스침에 의해 구성된 우연이다.

이미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우주에서 왔고,

내 몸의 구성 분자 중엔 주라기의 난폭했던 어느 티라노의 배설물이었던 녀석이 없으란 법도 없고,

20년 전 화염병을 던지던 내가 가지고 있던 거의 대부분의 세포들은 이미 죽거나 늙고 전혀 다른 세포들 구성비와 장악력이 높을진데…

실존의 항상성이라는 게 이다지도 허술한데…

서두에 말한 한민족, 한국인의 유사점이라는 것도 허약한 논리일 뿐이다. 하물며 왜 굳이 중국인이되려 하겠냔 말이다.

모두 찰라다. 다이어트로 얻게 되는, 내가 원했던 몸매가 찰나이듯...ㅋㅋ

절대 허무주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개똥도 아닌 철학이지만 모든 정체성은 무엇으로 되어보기 아닐까? 정체성의 의미는 시간 개념이 있는, 찰나의 상태 규정이어야 말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찰나지만 일정한 지향성이 있는 상태.


종교가 없는 내게, 석가는 ‘노마드 정체성’의 대선배뻘~

그가 말한 ‘공’도 니힐니즘은 아닐꺼야. 어느 상태로의 도달,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한 정진이 삶의 목적이 되어라는 지극히 계몽적, 실천적 가르침이라 본다.

그러고보니 <대학>의 3대 강령 중 하나라는 “지어지선”은... 음... 선의 지경에 이르러 머문다라... 종의 다양성 인정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지을란다 ㅎㅎㅎ

감히 석가를 빌어와 개똥도 아닌 소리에 힘을 실으려 든다 욕하지들 마셔~ 역마살이 병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임을 깨닭은 자가 성현의 가피 좀 빈다고 성낼 분도 아닐텐데...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겨우 찾았고 궁극의 어느 지점에 도달해서 머무는 게 아니라, 허리에 고무줄 매고 사력을 다해 반대쪽 벽까지 가서 터치하고 돌아오는 게 삶의 이유라고 믿으니 참 개운하다는 소리니까...


여튼 그래서 이방인이 현지인 되어보기에 근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그 사회구성원들의 의사소통 수단을 익히는 것... 허나 중국어 너무 어렵다 ㅜㅜ
약간 우회하는 전략을 찾는데, 그게 운전면허, 은행 거래, 그리고 대중교통 이용이다.
아마 중국에 파견된 노동자나 유학생들이 현지에 적응하기 위한 첫번째 노력과 같겠지?


 





여행기간 : 2017.11.4~12.31 (2개월)
작성일 : 2018.7.12
동행 : 홀로
여행컨셉 : 해외 파견




 

중국에서 운전면허 따기


사회주의에 대해 내가 가진 정체성에 혼란을 주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디테일한 사회의 제도들은 논외로 하고 자본주의 국가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다소 폐쇄적인 정책을 취하는, 체제 보호 정책이 강한 국가다.
수많은 인터넷 기반 서비스가 차단되어 있다.
무비자 협약을 체결한 나라가 몇 개국 없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가입한 국제운전면허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즉, 국제면허증을 발급 받아 가도 무용지물이다.

 

중국의 어느 도시나 참 크다. 땅이 넓으니...
걸어서 구경다니기엔... 제일 갑갑한 게 지척에 따뜻한 수온의 바다를 두고 갈 수 없다는 것.
동생들이 일어나는 시간을 고려해 봤을 때, 새벽 6시 정도에만 일어나면 혼자서 바다수영을 하고 돌아와서 식구들 깨워서 같이 출근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도보로는 왕복에는 90분...
동생 차를 빌려서 가고 싶으나... 면허가 필요하다.
검색부터 좀 해 본다. 자주 바뀌는 외국인 면허 발급 정책때문인지, 설명들이 상이하다. 이럴땐 부딪히는 게 최고~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교통국으로 갔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참 많다. 중국에서 공무원은 참 괜찮은 직업같다. 점심시간엔 관공서 문을 닫아버린다. 아침일찍, 점심시간이면 교통국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시간이 되면 업무 끝. 줄을 섰다고 모두 그날 용무를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대도시에선 밤새 노숙을 하며 줄을 서는 경우도 있다고...
여튼 이날 싼야 교통국에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외국인의 면허 취득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안내부스에 있는 분께 간다.
헉, 안내부스에 계신 분 주위에도 사람들이 몰려있다. 그 분들 용무가 끝나기를 기다려도 인파는 줄지 않는다. 중국에선 중국인처럼 해야 하는...
우리도 차례고 뭐고 없이 그 분 앞으로 가서 용건을 번개같이 밝힌다.

 

안내문이 적힌 팜플렛과 서류 양식을 주더니 작성해서 다시 오란다.
음...

팜플렛에는... 물론 전부 중국어지만...
여튼 필요 서류나 인근 병원에서의 신체 검사 등 준비물에 대한 안내가 적혀있다.

면허 발급 조건.
3개월 이상 중국에 체류했다는 증명(여권상의 출입기록 등)이 있거나
거주지가 확실하다는 증명(거주지 주소 등록)을 제출해야 한다.
최근 조건 변경이 한 차례 있었다고 한다.

고작 두 달 지내는 사람은 안된다는 거~
조건이 안된다는 걸 확인하고는 더 이상 해석해 보지도 않고 깔끔하게 덮었다.




 

중국 은행 계좌 개설 or 카드 발급

중국문자는 참 어렵다. 오죽하면 마오가 학자들을 시켜, 좀더 간단하게 획수를 줄여서 대중들이 배우고 익히기 쉽게 간체자를 만들어라고 했겠는가?
간체자라도 디지털에 적합하지는 않다.
덕분에 대체할 수 있는 도안으로 기기간 소통하는 문화가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필요가 수요를 낳은 좋은 사례랄까? 대표적인 게 QR코드다.
일찌감치 결제 방법으로, QR코드와 모바일 스캐닝 기술의 응용이 활용되었고 이제 거지도 가슴에 QR코드를 걸고 구걸을 하는 수준이란다.
길에서 꼬치 하나를 사 먹어도 위챗이나 알리페이 앱으로 스캐닝을 하는 모습이 일상이다.

그래 나도 앱을 깔자.

 

어라~ 위챗을 깔았지만,
동생들과 좀 다르다. 사진 아래로 즐겨찾기 등 메뉴가 5개 있는데, 동생들은 더 많다.
내꺼엔 <지갑>이라는 메뉴가 없다.
중국 은행 계좌나 카드를 등록해야 지갑이 생긴단다.
'행님이 계좌 개설이 될까요?'
동생들도 잘 모른다.

상해는 최근 애플페이도 사용이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그때만 해도...
중국 애플 계정을 만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 봤다. 동일한 문제에 봉착했다. 애플 계정을 만들려면 중국은행과 연결된 결재수단이 있어야 한다. 우이씨...

뭐든 부딪혀 보는 게 가장 확실하다. 나가 보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근엔 은행들이 많다. 아니 중국에는 정말 은행이 많다. 중앙은행인 중국은행부터 산업 분야별로, 지역별로 은행들이...

 

들러본 곳은 총 세 군데. 비슷한 답변...
'잘 모르겠는데?' 아니면 '잘... 아마도... 안될껄요?'
우리나라의 산업은행 격인, '공상은행'에서 확실한 답을 주더라.
"안되요!!"
중국 내 직장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아 오란다... 3개월이상 근속했다는 증명이라야 한단다. ㅋㅋㅋㅋㅋㅋㅋ 동양사회는 참 숫자 3을 좋아하는 가봐 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

 

그때는 포기하고 돌아섰지만,
지금은 위챗에 <지갑>이 생겼다.
마스터카드나 비자카드는 등록이 가능하도록 정책이 변경되었거든.

쓰는 카드가 두 개 있는데, 카카오뱅크 체크카드가 마스터카드 더라는...
그걸 등록하니 이렇게 지갑이 생겼다.
하이난에서 돌아와 수 개월이 지난 시점에 말이다 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

지금은 내 지갑 안에 몇 십 위안 정도 돈도 생겼다.
지갑이 생기면 위챗 친구끼리 서로 돈을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얼마전 북경에 갔을때는 북경사무실 동생한테 30위안을 넣어달라고 해서 직접 길거리 음식을 결제도 해 봤다는...

노마드의 일상화는 쉬운 게 아니다. 특히 중국같이 다소 폐쇄적인 국가에선 말야...



ㅎㅎ 나도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거~ 여튼 우회했지만 위챗결제는 접근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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