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4
- 타이베이에 와서 딱 하루 저녁만 시내 구경을 해야하면 어디 가꼬?
- 음... 중정기념당하고 쓰린야시장 가면 되겠네?
여행 기획단계에서 심작가 행님과 나눈 대화의 핵심이었다.
이튿날은 버스투어를 해라는 조언에 따라, '예스허지 투어'라는 생소한 이름의 투어를 예약한 상태라, 신경쓸 일이 없었지만, 오늘은?
체력이 그나마 가장 왕성한 첫 날에 숙소에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여행 기획자는 적당한 운동량과 휴식량을 조절해야는 게 기본이니까...
그래서 대화 내용에 충실하게 움직인다. 먼저 중정기념관으로.
여행기간 : 2018.1.4~1.13
작성일 : 2018.8.6
동행 : 대가족 3대, 11명
여행컨셉 : 가족 여행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은 지하철 타고 이동해라고... 고작 두 코스긴 하지만, 어른들을 모시고 걸어갈 거리는 아니란다.
중정기념당과 쓰린시장 정도면 일일패스보다는 전부 편도로 이용하는 게 더 낫다는 조언까지...
대만 지하철 플래폼은 우리처럼 양쪽으로 줄서지 않는다. 우측통행으로만...
그리고 사선으로 줄을 서도록 가이드라인까지 그어져 있다. 질서를 위한 이런 조치들은 아주 편리한 규약같지만, 이런 걸 볼때마다 이런 디테일까지 자율성을 믿지 못하고 규약화하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저렇게 기울어진 대기선에서 정말 한 발치도 어긋나지 않고 줄서는 타이베이 시민들...
대만에 고작 48시간 정도 있었지만, 대만 사람들이 일본사람들과 많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볼 땐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커야 할 텐데도 일본문화가 너무 자연스레 녹아있기도 하고, 행동이나 관계도 일본인들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 물론 한 나라의 서울에 사는 현대인들은 어딜가나 비슷할 수도 있는 거지만, 쌍방 민폐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과 단절을 초래할 것 같은 이런 미세한 규칙들이 자연스럽게 일상화되어 있는 분위기.
모든 사회 규약들은 더 편하자고 하는 거니 외부인의 시각으로 입댈 일은 아니지만, 살짝 삭막한 느낌을 받은 건 사실.
지하철 내부는 약간 더 넓나? 대동소이.
나중에 알았는데 객차 안에서는 음식물을 먹으면 안된단다. 우리 애들은 그것도 모르고 음료수를 들고 탔었는데...
중정기념당 역에서 나와서,
조금만 걸으면 아주 넓은 광장과 정성들여 만든 듯한 건축물들이 멀찌기 사각의 네 면에 하나씩.
웅장한 관문에 "자유광장"이라고 씌어져 있다. 저 네글자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다.
이번 여행의 손님들... 우리 식구들인데 마치 내가 쓰루가이드가 된 기분.^^
그래도 진상부리는 손님들은 없었다. 가끔 우리 꼬맹이들 둘이 진상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걔들 엄마가 알아서 핸들링 해 주었으니... ㅋㅋㅋ
때마침 국기 하강식을 하는 중이더라.
군인지 경인지 구분은 잘 안되지만, 철모까지 쓴 건장한 두 젊은이가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어 담고 있는 사이에서 절도있는 동작으로 움직인다.
국기게양식이나 근무교대식이 대단한 볼거리라는 말을 들었는데, 하강식이라 그런지 단촐하다.
그렇게 걸어서는 기념당 쪽으로 가 버린다.^^
기념당은 외관 수리공사 중이라서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뭐 이렇게 대만 공기를 콧구멍으로 넣어보는 게 목적이라... 그닥 아쉽진 않았지만서도.
비교적 최근에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과 그 전부터 거주했던 본성인, 그리고 아주 옛날부터 뿌리 내리고 살아왔던 원래 원주민들이 동화되어 사는 곳이 대만이란다.
중국에서는 대만을 자국에 있는 여러 행정구역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나라인 것도 같고, 한 나라에 속한 자치정부인 것도 같은... 근대 국가의 영토 개념이 확실한 외지인의 눈에는 정체성 파악이 난망한 독특한 곳이 대만이다.
중국과 대만은 서로 다른 언어(번체와 간체로 쓰는 문자도 좀 다르다)를 쓴다. 이중 언어야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때 대만과 수교를 맺은 적도 있다. 중국과 수교를 맺으려면 대만과의 수교관계(일개 지방정부와 수교를 맺은 나라와 국가간 수교를 맺을 수 없었겠지만)를 끊어야만 해서 지금은 수교관계가 아니다.
각각의 정당이 지배하는 지역이 다른 동일한 국가인 건지,
독립 국가이지만 다수가 소수를 지배 영토로 일방적 주장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한때 공산당보다 더욱 강성했던 국민당은 국공합작이 파괴되고 소수파가 되어 대만으로 피난을 떠난다. 근데 또 마오는 그렇게 싸워대다가 도망간 대만 국민당 정부를 끝까지 쫓지도 않는다. 오늘날의 복잡한 양안문제의 시발점 되시겠다.
여튼, 대만의 이런 정체성에 크게 일조한 사람이 바로 장개석일진데, 그를 기념하기 위해 이 거대한 공간을 할애하고 엄청난 노력을 들인 점... 이걸 또 용인하고 있는 중국... 더 헷갈린다.^^
공사중인 중정기념당 건물 입구엔 그가 자애로운 미소로 앉아있다.
그렇게 자애로웠는지에 대한 판단은 드라이하게 역사서만 봤던 이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부를 축적했다고도 하고, 자금성에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역사 유물과 국부를 대만으로 가져가 버렸다고도 한다.
그의 좌상 뒤에 적힌 논리, 민주, 과학, 그리고 그의 자애로운 미소가 서로 따로따로 떠다니는 느낌만 들었다는 정도로 이때의 감정을 정리해 본다.
양안문제나 국가 개념과의 대척점, 장개석에 대한 평가 등은 좀더 식견을 넓힌 후에 다시 한 번 시도해 봐야 할 영역으로 남겨두고 오늘은 쓰루가이드에 충실하기로...
중점기념당은 장개석 개인을 기념하는 공간에 가까웠다. 아니 그렇다.
몇 개 층으로된 건물 중에서 중심 층 홀.
상당한 정성이 들어간 아름다운 문양들의 천장 아래,
기념당의 축소 모형과 함께 그가 살아 생전에 사용했던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정도면 거의 물신화에 가까운... 국부? 머 그런 의미? 우리 이승만 대통령처럼?
그와 가족들의 사진?
기념당 완공후, 밀랍인형으로 만든 그의 주위에 가족들이 서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안쪽 방엔 실물크기의 그가 앉아있는 당시의 집무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거든.
여튼하고 인자한 인상^^
그가 타던 자동차들까지.
내가 너무 홍군의 입장에서 적힌 책들만 많이 봐서 생긴 편견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장개석 개인에 대한 리스펙이 과한 느낌이 좀 있다.^^
그렇게 기념당을 주마간산하고 나오니 이미 어둑하다.
중정기념당을, 역사니 뭐니 다 빼고 그냥 즐기기엔 가장 좋은 시간때 같다. 아까와는 달리 화려하게 조명이 들어간 건축물들과 한 톤 떨어진 정원의 수목들 색감이 그만이다.
기념당에서 정면, 광장 끝에 보이는 저 문도 대단히 이쁘지만,
양 옆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극장과 국립음악당 쌍둥이 건물의 붉은 기둥들이 유난히 자태를 뽐내는 시간이다.
심작가의 말대로, 타이베이에서 딱 하루 시간이 난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으로 유명한 곳이 이곳 중점기념당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논란의 소지, 궁금한 점도 더 많이 자아내는 곳이기도 한 것 같다.
대만의 국론은 다양하다 들었다.
지금보다 더 아예 대륙의 지방정부로서의 지위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부터,
한족들 다 몰아내고 원래 원주민들의 땅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양극단 속에 다양한 층위로 나뉘었다고 한다. 우리가 볼땐 그들이 하나의 사회 단위로 통합해서 지내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의 스펙트럼인데...
중정기념당은 뭐라고 갖다대도 장개석에 대한 숭배의 성지로 읽힌다. 장개석의 위상, 역사적 의미가 대만에서도 변화함에 따라, 기념당의 내일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미세한 사회적 규약에 의존하는 어쩌면 우리나라와 달리 덜 다이나믹한 대만인임을 감안하면, 극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것 같지는 않지만...
한때 관심 많았던 대륙의 근현대사의 여러 대목들이 머리속을 장악하지만,
이내 다리아프다고 보채는 어린 것들 덕분에 금새 쓰루가이드^^의 본분으로 돌아온다. ㅋㅋㅋ
중점기념당 역으로 향하는 이쁜 오솔길을 지나,
이번엔 쓰린야시장으로 향해 지하철 역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