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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겨울이지 6_ 성산 일출봉

2014.1.28

by 조운

여행기간 : 2014.1.26 - 1.29
작성일 : 2016.10.18
동행 : 같이 살아 주는 분과 그녀의 아들들
여행컨셉 : 렌트카+등산



노루 천국?

하산하고 바다를 향해 쭉 뻗은 길을 따라 운전하다가 숲에서 튀어나와서는 무단횡단 중인 노루를 만났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 사진은 못 담았지만, 꼬맹이들은 좋아라 했다.
지금도 가끔 제주도에 노루는 잘 있을까 물어보는 우리 둘째놈.
어릴 때 시골에서 한 두번 귀여운 흰 털뭉치를 달고 다니는 노루를 봤던 게 전부였지, 낙동강 촬영 중 수없이 만난 애들은 전부 물을 좋아하는 고라니였다. 뭍에는 이제 노루 구경하기가 힘든데, 제주에는 고라니는 없고 노루가 득세란다. 천적이 없어 급격하게 불어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간은 자신 외에 뭐든 자연이 준비한 이상으로 집단규모가 커지면 유해하다고 결론 내린다. 농장주 입장에서는 정말 죽이고 싶을 거고.
최근에 제주 노루도 유해조수로 분류되어서 사냥이 더러 허가된다는 얘기까지 애들한테 할 수는 없었다.




천지연 폭포의 야경

영실 주차장에서 천지연 폭포로 가는 길에 약간만 둘러가면, 강정포구로 갈 수가 있다.
어차피 식구들 모두 가는 길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해서 몰래 강정으로 길을 잡았다. 정말 우리 가족들만을 위한 시간을 잡기로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갈 순 없을 것 같았다.

결국...
근처까지만 갔다가 나와야 했다. 포구쪽으로 다가갈수록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거대한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입구엔 남다른 패션으로 서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강정지킴이들도 보였다.
놀러와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텐데... 괜히 내 마음 편하자고 차에서 내려서 현장을 살펴 볼 자신이 없었다. 애들은 골아떨어져 있고, 마눌님한테만 여기가 강정이라고 하고 잠시, 정말 잠시 인적없는 바닷가에 차를 대었다가 내리지도 않고 이내 출발했다.
많은 단어들이 머리 속을 스친다. 그 중에서도 "삼성".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공동체... 이런 심미적 감정을 싹 걷어내면 저평가된 땅, 미개발지, 천문학적인 국가정책 자금이라는 눈먼 돈이 보이나보다. 건설비용에 정책결정권자에게 들어가야 할 뒷돈, 개인 사회 국가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명분이 있는 듯 포장할 수 있는 홍보비(언론에 들어가는 검은 혹은 회색빛의 돈을 포함해서), 거센 저항을 무마할 보상금까지 주판으로 튕겨도 '남는 장사'라면야 강행해야 하는 건가보다.
이 딴 걸 밀어붙이는 거야 일도 아니다. 오히려 힘든 건, 그런 눈먼 돈이 발생할 여지를 찾을 수 있냐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것도 못 알아보고 기획할 줄도 모르는 것들이 심미안으로 바라보라느니, 국토를 사랑한다느니, 마을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이 우선이라느니 떠드는 나약한 발상에 얼마나 진저리를 칠까.

딸 아이 하나 대학 학생신분을 보장해주는 기브만 주고도 전폭적인 국가 예산을 지원해 주는 대학 사업을 테이크할 수 있다면, 그런 천우신조가 찾아왔다면 당연히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최경희는 본인이 탐색하고 기획해서 얻어낸 눈먼 돈도 아닌데, 굴러 둘러온 걸 감히 쳐낼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마스크를 낀 젊은 여자 애들이 그렇게 강하게 80일 넘게 총장실을 점거할지는 몰랐을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밀쳐내는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가지고도 실패했다는 쪽팔리는 사례를 남긴 정말 몇 안되는 경우 빼고, 다 가져간다. 그들이 더 열심히 기획하고 찾아내고 만들어 내는 세트플레이가 무서울 뿐이다.

사드는 도대체 어떤 세트플레이일까?
뭐, 잠시잠깐 이런 생각도 해 보면서 깊어가는 저녁 시간에 쫒겨 폭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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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숙소로 돌아오기 아쉬워서 들른 천지연폭포. 그냥 가면 볼 수 있으려니 했는데, 야간에는 출입을 통제한단다. 다행히 야간 개장을 하는 중이랬다.
밤에 오니까 할로겐 조명을 켜 두어서 폭포 소리와 함께 신비로움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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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폭포보다는 냇가에 있는 오리들이 더 신기한 듯. 자리를 뜰 생각을 않았다.
둘째의 동물 사랑이란... 물론 지가 귀찮지 않을 때만.




이번에도 일출은 못 본, 성산일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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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산행의 피로 따윈 없나보다. 애들은 제법 일찍 깨웠는데도 잘 일어났다. 어쩌면 여행을 제일 잘 즐리고 있는 건 아이들일지도...
오늘 밤은 숙소도 바꿔야 해서 짐을 모두 챙겨나온다고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일출봉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으니 뭐, 일출시간엔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총각 때 'J'와 성산일출봉에 올랐을 땐(아직 제주도에 중국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때였다) 해무였는지, 구름때문이었는지 일출을 볼 수 없었지만, 이날은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날씨였다. 구름이 완전히 걷히진 않았지만, 언듯언듯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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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새벽이라고 손전등까지 챙겼지만, 이미 주위는 훤했다.
거의 다 올라갈 때쯤 환호성이 들렸다.
그랬다. 일출을 보며 지르는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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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헐레벌떡 올랐을 땐 이미 저렇게...
그래도 어제 산행의 피로가 남아서 아침부터 뛰어서 일출붕을 오를 순 없었다. 나의 시간 계산 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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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광객이 대부분인 일출봉 정상에서 어떻게 사진 한장을 찍어주고 품앗이로 찍게 된 사진.
이미 떠버린 태양이지만 사진엔 그마저도 없게 찍어줬더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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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국인을 찾아서(정말 한국인은 별로 없고 전부 중국 사람들이었다), 다시 한 번 찍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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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단은 예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비록 일출은 못 봤지만 20대 말 고민많던 우리 둘은 그렇게 아침 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앉아서 동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멋진 풍광 앞에서 여러 생각이 스몄고, 나도 모르게 이런 저런 잡념들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원래 별로 말이 많지 않은 'J'가 묵묵히 내 얘길 듣고 있었다... 고 생각했는데, 슬쩍 돌아보니 혼자 이어폰을 끼고 인생의 멋진 순간을 배경음악으로 장식하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뜨거웠던 20대 후반의 고민들은 나 혼자 떠들고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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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작아서 망원경만 올려다 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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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번에도 일출을 보는 건 간발의 시간차로 실패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구름이 없으니 양 사방이 훤하게 잘 보이는 고도인데다가 못 보던 데크 길이 생겨 아기자기한 그림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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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노을 빛에 물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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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온통 하얀색 속에서 보내다 왔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노란색 속을 헤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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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비비고 바로 나온 우리들은 성산일출봉 매표소 주차장에 위치한 롯데리아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자,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산행 일정 외에는 그닥 계획도 없고, 그야말로 내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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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캄캄해?
괜찮아. 어디든 제주도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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