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8
여행기간 : 2014.1.26 - 1.29
작성일 : 2016.10.19
동행 : 같이 살아 주는 분과 그녀의 아들들
여행컨셉 : 렌트카+등산
우리는 일출봉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섭지코지부터 가 보기로 했다.
그냥 호미곶이나 간절곶처럼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절벽쯤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왠걸 상당히 넓은 초지에 갖가지 다양한 구경거리들이 많은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제주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미로.
형아를 쫒다 길을 잃은 우리 막내.
조금 높은 곳에서 엄마 아빠가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해서 좋았다. 인공적인 구조물인데 자연적인 느낌을 잘 살린... 여태껏 봤던 많은 미로(수목원의 나무 미로, 고성공룡엑스포의 미로 등) 중에서 아이들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부지가 상당히 넓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많이 걸어야 한다. 걷는 게 힘들진 않다. 나무와 돌, 그리고 시원하게 뻗은 잔디밭을 따라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면서 가면 전혀 지루하지 않을 거리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짜잔...
등대를 이고 있는 언덕이 나타난다.
어느 영화에서 한 번쯤 본 듯한 오솔길을 따라 노랗게 물든 초지 언덕길을 내려간다.
그러면 등대가 있는 곳으로 난 계단을 만난다.
둘째 놈은 아까 먹던 사이다를 아직 빨고 있구나.
바람 언덕의 세 모자.
관광지에 더러 적혀있는 '낙서금지'.
참 부끄럽다.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어서 다행이긴 하다.
등대가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해안선도 참 멋지다.
영국 코미디영화 '웨이킹네드'에서 봤던 것 같은 고즈넉한 시골 어촌 마을처럼 보인다.
결국 사이다를 뺏은 엄마와
골이 난 우리 막내.
이후 한동안 삐딱선을 좀 타주셨다.
덕분에 독사진 몇 장 담았지만.
바다에 있는 선돌은 새들의 분비물로 머리가 새하앴다. 근데 갈매기로 보이진 않았는데,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같은 종이 제법 숫자가 되었다.
해안 절벽을 따라 난 길을 가면 예배당이 보인다. 그 일대는 완만한 구릉이고 유채밭으로 유명하단다. 겨울이라 노랗게 물든 풀들만 있었지만, 그것도 나름 운치있었다.
남은 사이다를 버리고 과감하게 컵을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는 엄마와,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쓰레기통을 돌아보는 막내.
엄마와 아들의 물리적 거리는 심적 거리감만큼 벌어졌다. 서로 따로 노는 시선까지.
눈치 없는 우리 첫째놈만 신났고^^
모자간의 분쟁은 칼로 물베기?
다시 심적 거리감이 급 가까워졌다.
그리고 내게서 카메라를 뺏어 찍은 사진.
이 사진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어른들 시각으로 보는 풍경과는 좀 다른... 그럼 우리 애들은 늘 저렇게 난간 사이로 풍경을 보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인식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여행을 프로그램 하도록 더 신경써야 할 것 같은 죄책감까지.
이 사진, 수평은 안 맞지만 구도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아빠가 찍은 사진은 사람 머리가 수평선 아래에 있는데, 막내가 찍은 사진은 아빠 머리가 수평선에 걸려 있다^^.
왔던 길을 버리고 예배당이 있는 구릉쪽으로 난 길로 내려갔다.
이 겨울에 유채일까? 모르겠지만, 색감은 참 좋았다.
뉴에이지 음반 자켓 사진같은...
마눌님도 기분이 좋았나보다. 가족여행은 별 거 없다. 마눌님이 기쁘면 성공, 아니면 실패다.
마눌님의 미소를 얻기위해 전전긍긍하는 일개 남편의 고충이랄까...
입구쪽으로 다 내려오니, 방금 걸었던 코스를 마차를 타고 돌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너무 이른 시간에 와서 이제야 개시하는 지도...
궁금한 게 많은 아이들은 왜 말에게 눈가리개를 하고 있냐를 물었나보다.
아쿠아플레닛
지나다가 '아쿠아플래닛' 간판을 보았다. 떠나기 전 그래도 약간은 검색을 해 본 마눌님, 제주에도 새롭게 수족관이 생겼다는 얘기를 했던 게 생각났다.
나와 둘째는 동물 다큐멘터리 광팬이다. 그렇다고 엄마나 첫째가 그렇게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서 일심단결하여 차량을 주차장으로 밀어넣었다.
대형 가오리가 머리 위에.
새로 만들어져서 깨끗하기 그지 없는 건물이었다. 3D상영관도 갖추고 있었고
펭귄을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관찰할 수 있도록 한 튀는 아이디어의 남극관도 있다.
그리고 아빠, 엄마 모두 국립생태원에서 보고 완전히 반한 수달 가족들.
사실 국립생태원의 수달도 갇혀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수달의 서식지와 유사하게 꾸며서 야외에 커다란 부지를 할애한 우리 안에 있다. 마치 수달 식구들이 사는 동네에 우리가 잠시 인사하러 가는 기분이었는데, 수달이 멀리 가 있거나 숨어 있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수달이 사람을 신기해하고 장난기가 많아서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여기 애들은 그에 비해 좁은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우리 꼬맹이들은 불쌍하다고 했고...
낙동강 경천대에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던 수달 가족들을 우리 애들이 봤더라면... 이제 4대강 사업으로 그 놈들의 보금자리가 사라져 버렸지만.
수족관이고 동물원이고 큰 돈, 수고를 들이지 않고 살아있는 동물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늘 보면서도 씁쓸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같이 드는 게 문제다. 국립생태원처럼 자신이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넓은 부지를 내어준다면 좋으련만...
부산의 아쿠아리움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규모같았는데, 아직 오픈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준비 중인 전시물도 있었다.
저렇게 애들이 좋아할만한 코스를 아기자기하게 마련해 둔 게 큰 특징이었다.
기다릴 필요없이, 우리가 간 시간에 물개쇼가 있어서 보게되었다. 작고 귀여운 애들도 있었지만, 저 녀석 덩치는 장난이 아니었다.
앞쪽에 앉아 있으면 물개의 장난으로 물세례를 받을 수도 있어서 우의나 비닐들을 준비해 주기도 했다.
착하게 생긴, 그리고 젊은 조련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련 과정에서의 가혹행위가 없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래도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이런 구경거리와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곳에 이런 게 있으면 애들이 득달같이 졸라대기도 하고... 참 쉽지 않다. 우리 애들도 생태적 윤리의식 같은 것들이 자라고 나면, 이런 어린 날의 경험이 오버랩되면서 부채감같은 것이 먼저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는, 뭐 그런 자리였다.
어쨌든 딱히 뚜렷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부담이 없는 우리의 제주 여행 3일차의 아침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렌트카를 빌렸지만, 아름다운 그림 속으로 드라이브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도 없이, 이렇게 한 곳에 도착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걸어도 보고 구경도 하고 다녔다. 괜찮을까 걱정을 좀 했는데, 애들도 이제 제법 컸는지, 다리 아프다며 응석피우지도 않았고, 걸으면서 천천히 이것저것 만져보고 얘기하는 과정이 가족여행을 "가족"여행 답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