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7
여행기간 : 2014.1.26 - 1.29
작성일 : 2016.10.18
동행 : 같이 살아 주는 분과 그녀의 아들들
여행컨셉 : 렌트카+등산
정말 이날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한라산의 완만한 눈 평원 얘기를 듣고 생각해낸 게 바로 눈썰매. 비료푸대를 들고 갈까도 생각했는데, 우연히 검색하다가 휴대용 접이식 일인용 썰매를 발견하게 되었고, 즉시 결재까지.
사면서도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예상 적중.
마눌님을 제외한 우리 셋은 온통 하얀 도화지 여기 저기를 질주하는 꾸러기 선들을 만들었다.
남벽 분기점 좀 못간 곳에 윗오름세 언저리부터는 완전히 눈 밖엔 없었다. 중간에 길도 완전히 눈에 묻혀서 흔적도 희미하고, 더멀리 낭떠러지는 자연스럽게 평지라서 빠르게 썰매를 타더라도 그렇게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그 어느 눈썰매장보다 로프길이도 길고.
저네들 둘만을 위한 초대형 눈썰매장이라니.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 둘 하산을 하는데도 이 녀석들 좀체 가려고 들지를 않는다는 거다.
두 시간 가까이 수십 번을 그렇게 썰매타기로 보내다가 급기야 엄마가 나서서 썰매 압수^^.
하산하기 전에 윗오름세 전망대에 올라서 기념 촬영.
셀카봉이니 뭐니 이런 것도 하나 없는 우리들. 자동 타이머 걸고 대충 난간에 두고 찍어서 바다까지 담을 수는 없었지만, 어느 쪽을 배경으로 찍어도 모두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주위가 너무 고요하고 스치는 바람소리만 들리는 평화로움... 어라, 다들 어디갔지?
그제서야 이 넓은 눈밭에 우리만 남았음을 깨닭았다.
급하게 하산 길에 올랐다. 어리목코스로 내려가보면 좋겠다 싶었지만, 우리는 영실코스 입구 주차장에 차가 있어서 다음으로 패스.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게 출발했고 빛의 색깔도 점점 발그레하게 바뀌고 있었지만, 너무너무 빨리 내려왔다.
바로 썰매 덕분. 애들은 완만하게 기울어진 하산길 전체를 썰매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엄마, 아빠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내려와준 기특한 놈들...
배낭때문에 정말 힘들었지만, 중간중간에 기다려주시는 착한 심성을 가진 아들들 덕에 겨우겨우 전원 무사귀환 할 수 있었다.
주차장까지 내려오면서는 완연하게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마눌님이나 아이들은 전혀 몰랐겠지만, 참 대책없는 스케줄러 아빠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아직 집엔 그 썰매가 있다. 그리고 겨울만되면 또 한라산에 가자고 조르는 꼬맹이들도 키만 조금 컸지만 그대로 아직 집에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 가 봤다는 핑계로 다시 영실코스를 와 보자는 약속은 아직 보류중이다. 한라산을 통째로 거대한 눈썰매장으로 인식하는 장대한 스케일의 꼬마들이 더 크기 전에 약속을 지켜야 할텐데...
제주도 겨울 여행이후, 지인 중에 겨울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을 만나면 꼭 휴대용 눈썰매를 사서 가라는 얘길했다. 갔다와서 '고맙습니다' 인사 할 거라고.
이 사실을 눈썰매 제조사가 알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