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7
여행기간 : 2014.1.26 - 1.29
작성일 : 2016.10.18
동행 : 같이 살아 주는 분과 그녀의 아들들
여행컨셉 : 렌트카+등산
아이들까지 데리고 설산을 오르자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가장 짧은 영실코스를 선택했다. 백록담은 다음에 또 오르면 되니까, 그리고 한라산 정상의 남벽면의 장관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정상을 가는 것보다 더 좋을 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어제 저녁에 왠만한 짐은 다 꾸려두고 잤다. 다른 무엇보다 애들 걸음으로 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영실 산행 일정을 일찍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식사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간단한 요기를 준비하고 또 비상식량이나 점심 도시락들도 챙겼다.
덕분에 창문을 통해서 이런 말도 안되는 색깔을 만날 수 있었다.
초승달이 화룡점정.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감.
우리가 나설 때 쯤에는 또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침, 자연의 연출 덕분에 마눌님의 숙소에 대한 실망감을 약간은 상쇄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 지도 몰라, 물어물어 어떻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 중간 차들이 다니는 길빼고 땅은 온통 눈이었다.
8살, 6살인 이 놈들, 엄마 아빠가 예전에 쓰던 아이젠을 부츠에 끼웠는데 약간 헐거운 듯 했지만, 산행 중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엄마가 이번 겨울에 사준 곰돌이 뒤통수 모자가 좀 심하게 웃긴다.^^
영실매표소 근방에는 길가 주차장 뿐만 아니라 차도에도 승용차들이 엉켜 있었다. 도로를 따라 제법 긴 거리를 걸어 온 우리들은 약간 짜증이 나는 풍경...
하지만 도로가 너무 미끄러워서 여기저기 접촉사고들 내주시는 차들이 많았다. 차주들의 난감한 표정을 보니, 좀 걷긴 했지만, 널찍한 주차장에 잘 세워뒀구나 생각했다.
매표소 앞에는 까마귀들이 많았다.
저기 뒤로 기암괴석의 병풍바위가 보인다. 다들 영실기암이라 불렀다.
해발 1,200m에서 출발해서 겨우 수직으로 500m만 오르면 된다. 등산코스로는 6km남짓.
짧지만 눈길이고 애들과 함께라서 안심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서둘러 출발했다.
여기서부터는 도로를 벗어나 산을 향한다. 경사도가 그렇게 심하지 않다. 한라산답다.
작은 녀석은 벌써 힘들어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얼마 남았어?
방금 출발했거든~
"숲은 동물들의 은신처"라는 그림에서 지들이 알고 있는 동물을 찾고 있다. 니들도 동물같다는...
지금은 우리 네 식구 모두 등산 스틱을 갖추게 되었지만, 저 때만 해도 내꺼 한쌍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산행 시작 직후 한 개씩들 빼 가버렸다.
어느덧 하늘이 열리고 주위 사방이 훤한 개활지로 나왔다. 그리고 지금부턴 능선을 타고 걷기 좋게 데크가 설치된 길을 가면 된다. 데크를 걷는 건 참 피곤한데, 애들이나 연세 많으신 분들에게는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데크가 자연훼손도 많이 막아준다. 답압은 길을 통제하고 몇 년이 지나도 다시 풀도 자라지 않게 하는 강한 힘이니까. 최근엔 스틱의 텅스텐강으로 된 촉이 바위들을 갉아대는 것도 심각해 보이고...
영실의 하이라이트. 표지에는 한여름 장대비가 오면 저 뒤의 기암들 사이로 비폭포가 만들어져 그 또한 장관을 연출한단다. 사계절 사랑받는 한라산의 명품 코스라더니...
눈과 검은 바위의 은근한 색조합에 시리도록 파란 하늘(얼굴은 많이 탔지만)이 연출하는 강렬함이 더해져서 그야말로 선경.
병풍바위 앞에서 한 컷. 병풍바위를 다 가려주는 센스 ㅜㅜ
우리 꼬맹이들과 마눌님의 편안한 등산을 위해 각자 필요한 패딩이나 식, 음료 등 모든 것들은 내 등에 있다. 아빠의 무게랄까? ㅠㅠ
고맙게, 고맹이들도 씩씩하게 여기까지 잘 올라왔다.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 멀리 제주 앞바다까지 눈이 시원한 풍광이 한 눈에 펼쳐진다.
한라산은 완만하다가 막판에 경사도가 좀 있다. 애들도 마지막까지 화이팅 중.
중간중간 사진 찍는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배낭의 무게도 한층 더 느껴지기 시작하는 코스였지만, 셔터만 누르면 다 그림인 것을...
당 떨어질까 걱정되어서...라기보다 빨리 배낭 무게를 좀 줄이고 싶어서 거의 다 와서 좀 널찍한 데크가 있길래, 바로 간식 흡입을 시키고.
다시 오름과 평원,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 속을 걸어갔다.
드디어 나무데크가 끝나고 평평한 곳으로 올라왔다. 비탈에선 거의 없다시피하던 관목 군락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저기가 거의 제주를 200도 넘게 조망해볼 수 있는 포인트.
날씨까지 받쳐줘서 둥근 제주의 해안선을 따라 지도를 보듯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백록담 남벽이 저렇게 딱!!
등산로를 따라 길 양옆으로 이어진 기둥들이 눈에 파묻힌 상태로 지금 쌓인 눈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남벽분기점에 가까워질수록 관목은 없어지고(정말 없는 건지, 눈에 파묻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얀 눈 평원만 나타났다.
아이들은 질리도록 눈을 봤어도 눈 장난에 여념이 없다.
굳이 가족여행에 산행 일정을 잡아야겠냐고 핀잔을 주던 저 여인도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모두를 즐겁게 하는 곳.
오길 정말 잘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저것은 이날을 위해 인터넷으로 주문한 비장의 카드.
카드의 비밀은 다음편 포스팅에서 공개하는 걸로 하고...
아이폰으로 찍은 파노라마샷인데 현장의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할 뿐이군.
우리는 자가용을 이용해서 왔지만, 보통 산행을 하는 분들은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고 들었다. 다른 계절에 영실을 한 번 더 찾으면 참고하려고 찍었다.
영실코스가 비록 한라산 정상까지의 길을 차단하고 있지만, 초심자들 심지어 6살 꼬맹이도 너끈히 오를 수 있는 쉬운 길이고, 오르는 곳곳이 진경산수화같은 아름다운 곳이라서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다. 다른 계절에도 그 맛이 절묘하다지만, 설산의 진풍경을 오롯히 느끼기에는 기가막힌 장소같다.
동절기 입산은 12시까지만 허가를 한다는 점만 유의하고 출발한다면 어른들은 그렇게 이른 아침에 출발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일행은 그렇게 일찍 서둘러서 왔건만 이 날 이 산에서 맨 마지막으로 하산했다. 정말 우리 뒤엔 아무도 없었다.
왜냐구? 하산이 힘드냐구?
애들이 내려가지 않으려 해서다. 아, 얘기하자면 길어서, 오늘은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