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 재약산 사자봉-수미봉 02

2025.06.22

by 조운

애정생활과 취미생활의 조화를 위한 충언


여행기간 : 2025.06.22

작성일 : 2025.07.04

동행 : 바야

여행컨셉 : 여름 계곡 산행




여름에도 산이 그리우면, 표충사 5폭포


초등? 중등? 고등? 언제였나 싶네 참 세월이… 퉁쳐서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 높새바람이 불어와도 연을 날리면서 놀면 철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게된다는 구절의 수필이 있었다. 애 어른 할 것없이 농경에 투입되어야 할 농촌 생활에서 농번기가 시작되는 시기기도 하고, 또 높새바람은 연날리기에 적합한 조건도 아니라는 설명이 따라왔던 기억이...

무릇 모든 것에 임할 때 타이밍은 참 중요하다.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편, 실은 집구석에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향인 것 같다.

여름이면 바다수영, 겨울이면 등산. 마치 차렵이불과 솜이불을 교체하듯... 벌써 꽤 오래된 루틴이다.

부산의 수온은 공기의 그것과는 두 달 정도의 시차가 있다. 3~4월이면 동장군이 물러가고 옷차림도 좀 가벼워지지만 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차다.

바다수영에 한참 미쳐있을 때는 계절도 없이 한 겨울에도 주말만 되면 즐기곤 했다. (지금도 이런 미친 사람들 많다)

3~4월, 스트로크를 하면서 물 속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얼굴이 갈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다. 숨을 쉬러 얼굴을 돌리면 (햇살이 있다면 더더욱) 좀 살만하다. 차고 따시고 하는 순간을 부지런히 2~30분 정도 반복하면 몸이 데워져서 좀 견딜만한 계절이 봄이다. 반대로 가을이 되면 물은 온탕 같다. 숨을 몰아쉬면 코끝이 찡할 정도로 찬 공기가 아리하게 몸으로 들어온다.

이걸 기준으로 대략 무리해서 바다수영을 시작한다면 4월부터, 통상은 6월부터가 시즌이라 할 수 있다.

11월에도 미지근하지만 12월에는 수온이 더 내려가서 살짝 힘들다. 더 어려운 건 수영을 마치고 나올 때, 꽁꽁 얼어있는 모래사장에 올라선 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도 수반한다. 그리고 이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단풍철이 다가오면 이미 마음은 산으로 가고 싶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기도 해서 대략 반년은 수영, 반년은 등산으로 채우는 게 삶의 질적 측면에서 합당한 선택이 된다.

대한민국이 나한테 해 준 게 짜달시리 뭐가 있나, 빈익빈부익부는 갈수록 심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유대감을 잃고 영악하게, 그것도 바로 코앞만 보고 엉뚱한 결정을 하는 아주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뭐 이런 사회부적응적 아노미를 느끼는 분들이라 해도 정말 이 나라에 태어나길 잘했다 싶은 게 있을 거다. 나도 두어 가지 있는데, 다들 동의하지 싶다. 하나는 한글, 하나는 사계절이다.

한글은 이미 전세계 언어학자들이 경찬해 마지않는 논문들 수두룩하니 내 놓고 있고, 사계절 때문에 옷도 더 많이 사야하고 귀찮은 게 많다 싶지만 실은 이런 역동성이 우리 삶을 정말 풍부하게 해 준다.

경제나 민족 기질에 미친 영향만 봐도, 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에서 지금은 방산 수출이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로 나온다. 강추위와 무더위를 모두 견디는 K-방산의 기술력은 강추위와 무더위만 있는 나라에도 다 수출가능.

오늘 평온한 듯 해도 좀 있으면 반드시 극단적인 날들이 이어지는 게 일상이라는 걸 체득한 경험.

이런 걸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인 개인들이 집단적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밖에 없다는 걸 DNA로 전달하고 있는 민족이다.

나처럼 리버럴하면서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인 양 살자, 주의자들에게도 다양한 계절은 그만큼 즐기고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면에서 장점이다. 아무리 좋아도 질릴 때가 있는데, 이건 뭐 질릴만 하면 즐길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마구 몰려든다.

그래서 이 맘때는? 이제 바다로 가야지^^


이맘때 산을 타면, 좀 높은 산은 그나마 기온이 살짝 낮아서 괜찮은데, 낮은 산은 내내 고역이다. 더구나 그 놈의 모기들. 어떻게 모기들은 움직이는 착륙장에 그렇게도 잘 내리는지… 걷고 있어도 물리는데야 답이 없다. 남부 지방은 아직이지만, 중부 위쪽으로는 최근 러브버그들의 극성도 산행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 한다.

이제 바다에 가겠다는, 가고 싶다는, 이미 갈 때가 한참 넘었다는 건데, 같이 사는 분은 바다수영에는 취미가 없으시다. 그럼 각자 바다로 산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무료 가드겸, 세르파겸, 운전기사를 대동하지 않고는 산에 잘 안가신다는 거.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산에 여자 혼자 등산하다가 뉴스에 나는 거 못 봤어?”

그러면서 또 굳이 관련 기사를 찾아서 보여준다. (혼산해도 그닥 위험하지 않으실 것 같은 외모… 라는 말은 다행히 입밖으로 나오기 전에 자체검열)

이번주는 경주 남산, 다음주는 연화도, 그 담엔 천황봉…

“여름 지리산도 좋다네. 힘은 좀 들겠지만.”

얼척이 없다. 천황봉이 무슨 동네 뒷산인 줄 아나. 겨울에 올라도 힘들어 죽겠던데…

장소 선정부터 준비물, 원점회귀를 위한 적당한 코스 선정과 점심 해결 등등, 등산복, 선글라스, 본인만 사용하는 고급 썬블록 정도를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을 세르파 담당으로 지정해 놓으셨었는데, 최근 장소 선정 의견이 많으시다. ‘의견이 많으시다’는 것과 ‘지정해 주신다’는 건 또 전혀 다른 문제다… 더 말을 말자.

이 분은 웃비가 있는 날은 산행을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신다, 고맙게도. 하지만 산행에서 웃비는 그닥 가부 판단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아랫비가 더 문제지. (젖은 신발, 질퍽이는 흙길… 산행의 질에 상당히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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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토요일까지 이틀간 비가 좀 왔지만 당일 비소식은 없기고 해서, 예정 대로 경주 남산을 좀 알아본다.

경주 남산은 원점회귀를 하지 않아도 삼릉에 주차하고 입산, 금오봉 찍고 용장리나 와룡사 중 선택해서 하산하면, 버스를 이용해서 주차장까지 올 수 있겠다 싶었다. 맑은 날 용장사지 삼층석탑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멀리 금정산 고당봉도 보이니 만족도야 뭐... (산을 자주 오르면 내 삶의 지리적 범위가 훨씬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 경남 살면서 부산으로 출근하는 20년 세월 덕분일 수도 있지만, 여튼 지역 통합적 마인드 장착이 절로 된다다)

“근데 비온 다음에 표충사 5폭포가 그렇게 장관이라던데.”


오, 그렇지. 잊을만 하면 한번씩 이런 순간이 다시 오지.

이럴 때는 정말 살얼음판 걷듯 긴장해야 한다. 이세돌 같은 고도의 수 계산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 시점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화성인들에겐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이런 류의 발언은 일종의 ‘시험에 들게 하는’ 상황 발생이라는 거. 이런 ‘시험에 들게 하는’ 상황, 앞으로 빈번하게 발생할 거다. 여러 번 말 안할테니, 가슴에 새겨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재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줄이길 바란다.

우선, 여성의 말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안된다, 정도는 이미 체득하셨을 테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계획 변경에 대한 귀찮음이나 준비했던 과정의 억울함 따위의 감정에에 휘둘리면 안된다는 거. 그리고,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밑줄 쫙~, 별표 5개)

위 말을 금성 언어로 직역하자면, “경주 남산은 다음에 가고 이번엔 표충사를 가자.”라고 할 수 있다.

땡. 아주 위험한 직역이라는 거.

“경주 남산도 좋지만 비 온 뒤에만 볼 수 있는 표충사가 그렇게 좋다던데, 우리 계획을 다시 제로 베이스에서 비교해 보고 더 나은 곳이 어딘지 한번 알아 봐.” 가 훨씬 의역된, 발화자의 진심에 가까운, 그리고 무엇보다 현명한 번역(처신)이다.


음… 초보 화성인들은 위 번역의 차이가 만들어 낼 결과를 전혀 짐작도 못하리라.

자, 잘 들으셔들~

첫 번째 번역에 대한 결과 중에서 그나마 변경한 표충사가 좋았다면 다행이지만,

표충사 5폭이 너무 힘들었다거나, 생각보다 별로거나, 아랫비 때문에 온몸이 진흙 칠갑이 된다거나 할 수도 있고, 그럴 때,

“자네가 갑자기 계획을 바꿔선 말이야, 응? 이게 뭐니 이게. 그냥 마 경주 남산 갔으면, 어?...”

뭐 이런 상황에 직면할 개연성, 높다. 한마디로 싸움나기 딱 좋다는 거지.

두 번 째 번역에 의한 결과는,

“당신 덕분에 표충사로 변경하길 잘 했네. 정말 좋다. 좋은 구경 놓칠 뻔 했다야.”로 그분을 제갈공명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도 있거니와,

최악이라 해 봐야,

“아, 당신이 알아보라 할 때, 내가 좀 더 잘 알아 볼 걸. 이런 것까지 예상하진 못했네. 미안.”이 되면서,

일단 변심이 죽끓듯 하는 금성인이 꼴배기 싫을 때도 있지만 무조건 책임으로부터 금성인을 보호해야 한다.

면밀한 검토 끝에 근거에 기반해서 남산과 표충사 중에 비교 우위를 제시하고 최종 결정까지 하거나, 합의하에 결정했던 프로세스 어딘가의 문제, 즉 결과가 나쁘더라도 남자가 잘못한 거 아니면, 시스템의 오류에 책임전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래야 만사가 편하다는, 그러면서 가정의 평화가 보장된다는 이야기.


연애를 시작하는 화성인이여. 당신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한다는 건,

챗GPT 가 끊임없이 버전 업 하듯, 통번역 역량을 갈고 닦아야 하는 끊임없는 수련의 과정이고

그걸 위해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해야 하는 딥러닝의 과정이며,

데이터센터 운영에 투입되는 막대한 전력 소비를 감당할 수 있도록 정신적 육체적 체력 방전을 늘 예상하고 비상 발전을 대비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거거든.

혹시 청혼했을 때, 상대가 어떤 대답을 주든, 이런 말은 말줄임표로 속에 다 들어있다 보면 됨.

“니, 내 감당할 수 있겠나?”

겁주려는 의도 전혀 아니고, 이 정도만 감당할 수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삶의 기쁨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인생을 제공받을 수 있으니, 남는 장사임을 명심토록. 다만 제품 생산비, 물류비, 창고보관료 등등, 장사라는 게 코스트가 아주 없진 않다는 걸 미처 예상하지 않았다면, 장사 시작도 말고 하다가도 접으라는 소리.


그래서 표충사 5폭은 좋았냐고?

비온 다음 날, 표충사 5폭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물 많은 날은 6폭까지도 가능했다. 5폭을 다 도는 게 힘들면 하이라이트 층층폭포만 봐도 충분하다. 표충사에서 층층폭포까지 가는 동안 흑룡(or 홍룡), 구룡, 이름은 없지만 구룡보다 더 멋진 폭포까지 총 4개의 폭포를 볼 수 있다.

층층폭포까지가 멀다 싶은 사람은 한계암쪽 계곡을 선택하면 웅장하고 힘이 넘치는 은색의 은류폭포와 금색일리 없지만 멋진 금강폭포까지 한방에 볼 수 있다. 특히 금강폭포는 두 계곡의 합수부에 있어, Y자로 떨어지는데, 이 우렁찬 소리와 기운 사이에 작은 암자가 마치 고즈넉한 세한도의 그것처럼, 안들린다, 안들린다를 시전하는 듯 앉아있어 묘한 분기위를 연출한다.

장마철이니 비온 다음날 기회가 될 때, 한번은 층층을 비롯한 3폭(혹은 4폭), 한번은 금강을 비롯한 2폭 따로따로 감상하면 등산화 없이도 충분히 이때만 볼 수 있는 표충사 5폭을 즐길 수 있을 듯.

참고로 겨울 층층폭포 또한 장관인데, 개인적으로는 사그러 들면서 촛농을 가득 품고 있는 굵은 촛불 모양을 한, 겨울 층층폭포가 더 진귀한 풍경이 아닐까 한다.


여튼, 뭇 남자 중생들이여, "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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