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 재약산 사자봉-수미봉 01

2025.06.22

by 조운

영알, 사자, 수미... 이거 무슨 과자 이름이야?


여행기간 : 2025.06.22

작성일 : 2025.07.03

동행 : 바야

여행컨셉 : 여름 계곡 산행





1. 영남알프스 호칭 논쟁


AD_4nXdHBtOBo3Hvu5rFjUM_Y5wKFhkmopTVkXdyRynwt6RWwjAHwqN5IkQrWifELoCNnizQA5ACJ2fmad5JUEJcrJkYUvRtZK1IOCBcMiK77SRKNk8D2tkn1pTwqP1D_nrA7RQhfbTaaw?key=Ke9PjOua-1fgi_Rvndni2g 신불산 쪽에서 내려다 본 간월산과 간월재


울주-밀양-양산-청도-경주에 걸친 여러 산봉오리들 중에서 1,000미터를 넘는 애들만 추리니까 딱 아홉.

이 아홉 개의 높은 봉오리를 흔히 영남알프스라 그런다.

그 중에서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은 정상까지 가장 손쉽게 접근 수 있는 곳이다. 밀양 얼음골 쪽, 가지산 자락의 백운산을 마주보는 곳에 케이블카가 생기면서 사자봉과의 거리감이 확 당겨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배내고개까지 자차를 몰고가면 제법 고도가 높은 데서 출발하는 잇점이 생겨, 거의 평지에 가까운 등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봉오리 사이에 천황재(다소 찜찜한 이름이긴 하다, 그 이유는 후술에서)를 두고 비슷한 거리에 비슷한 높이로 쏫아 있어서 흔히 두 봉을 세트로 다녀온다.

간월재, 신불재, 단조성터의 억새평원, 그리고 재약산 아래 사자평의 억새밭이,

마치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뛰어놀 법한 그림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는 바 없지 않지만,

누가, 어떤 유사성에 착안해, 언제부터 영알(영남알프스)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른다.


오래 전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1박2일’ 일수도 있다)에서 간월재에서의 비박이 전파를 타면서 ‘대한민국 산정 비박의 성지’로 1차 유명세를 탔고, 최근 몇 년 동안 울주군이 야심차게 진행중인 영알 완등 인증 메달(지금은 기념 은화로 변경) 덕분에 지자체의 브랜딩 사례로는 신기원을 달성했다 평가될 만큼, 동네 뒷산이라도 좀 탄다는 대한민국 국민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확실한 브랜드가 되었다.

근데 왜 영남알프스일까? 우리나라에서 알프스라는 말을 붙인 유일한 알프스 이미테이션인데, ‘한국알프스’나 ‘한반도알프스’가 아니라 왜 영남알프스라 할까?

바로 옆 일본에는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남알프스라는 산세 높고 험하기로 유명한 산봉오리 군락이 있다.

메이지유신 시절 광맥을 조사하던 영국인 아저씨가 야리가다케를 올랐단다.(槍ヶ岳, 야리는 창 + 다케는 악산. 즉, “창악산” 또는 "창악봉" 쯤 되는데, 실제로 정상이 쪼빚하게 생겼다. 야리가다케 코스 중 가장 대중적인 가미코지 입구에는 이 영국 아저씨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바위에 붙여놨다. 다녀온지 오래돼서 정확하진 않지만, 야리가다케의 해발고도는 3,100~3,200미터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일하러 간 건지 관광 온 건지 모르지만 여튼 이 아저씨 왈, 마치 유럽의 알프스 같다고 해서 이 일대 악산 군락을 ‘일본알프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과 모방 문화가 유행하던 때라, 가 본 적도 없는 알프스에 견줄 정도의 명산이 일본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정말 엄청난 등산 붐이 일었다고… 지금도 생각보다 일본의 등산 인구, 특히 비박 인구는 많은 편이다. 야리가다케에서 좀 내려와서 가라사와산장이라고 아주 넓은 계곡이 있는데(그래도 해잘 2500미터 이상이었지만), 산장 앞에 쫙 펼쳐진 형형색색의 텐트들이 수백배가 널려있는 모습은 그것 자체로도 장관이었다.


일본 전역에서 후지산을 빼고는 3,000미터가 넘는 이런 험준한 산들이 잘 없는데, 유독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나가노부터 도쿄까지의 혼슈 내륙 한가운데가 일본의 지붕처럼 울퉁불퉁하게 쏫아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야리가다케 말고도 쭉 이어진 남쪽의 악산들도 즐비하다는 뜻. (설악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강원도 전체가 산들로 꽉 찼다는 거지.)

한국 남자들도 좋아라하는 일본 역사 무협소설 "대망"이라고 있다.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로 이어지는 막부시절, 전국을 통일하고 논공행상을 하는 과정에서, 풍신수길은 미래의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뻘밭이나 다름없던 도쿄, 당시 에도를 줘버린다. 속 없는 이에야스는 또 이걸 묵묵히 받는다. 막부정권이 있던 오사카에서 에도로 가려면 후지산과 바로 이 일본알프스를 지나야만 한다. 이에야스가 깡촌에 아무것도 없는 에도를 받고도 아무 소리가 없었던 건, 히데요시에게 저항하지 말아야 한 시기라고 생각한 전략적인 판단이었겠지만, 막부의 감시를 피해 몰래 힘을 비축하기 좋아서 후사 도모로는 최적지라고 봤기 때문에 딱히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이런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로 속을 알 수 없는 과묵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이에야스와도 딱 어울리는… 여튼 일본알프스는 험하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자체의 사업 베끼기는 어디나 존재했나 보다. 갑자기 야리가다케에서 한참 남쪽에 있던 지자체가 그 지역의 높은 산들에 ‘남알프스’라는 작호를 내려 버리네.

그럴 수 있지, 북부산IC, 서부산IC… 뭐 이런 거 정할 때 국민투표하고 그럴 것 까진 없지.

문제는 졸지에 일본알프스가 애매해졌다는 거. 우여곡절 끝에 나라 이름 대신 방향으로 구분하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남알프스가 아닌 쪽은 북알프스로 불리게 되었단다.

그럼 남과 북에 다 걸친 지자체는? 그렇지. 법으로 막아 놓은 것도 아닌데, 우리도 이름 붙여 보자, 덩달아 ‘중앙알프스’를 런칭!!
종국에는 사이좋게 일본알프스는 아무도 쓰지 않는 걸로 하고,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남알프스가 일본 비박 또는 중레벨 이상의 등산 트래킹의 성지로 정리가 된 거지. (투머치 같지만, 남북으로 뻗은 일본의 알프스를 동서로 종단하는 코스를 알펜루트라고 하는데, 우리로 치면 지리산 성종종주, 한라산 성관종주, 아 부산도 있구만, 금백종주에 해당 되시겠다. 영국 아저씨가 올랐던 야리가다케는 북알프스의 간판스타. 그래서 알펜루트도 북알프스에 있다. 여튼 이런 거 만들고 도전하고 성취하면 동호회에서 트로피주고…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

일본의 알프스 논쟁이 다 완결되고도 한참 후, 우리나라도 이에 질쏘냐, 한 두명이 영남알프스라는 말을 쓰다가 산악인들 사이에서 점점 번져나가다가, 현재는 지자체의 공식 브랜드로 사용중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게, 알프스 이미테이션 브랜딩으로 대성공한 사례가 옆 나라에 있기도 하고(사랑에 국경도 없지만, 지자체 사업 베끼기에도 국경, 그런 거 없어~) 조사해보니 북알프스의 작명 히스토리 또한 지자체간 배려 문화창달에 큰 울림 주고 있는 바, 아름다운 1,000미터 이상의 9봉을 통칭할 작명에서 국호는 언감생심, 그냥 일부 산악인들의 애칭이었던 영남알프스를 공식화하자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전적으로 아무 근거는 없는 뇌피셜 돌려 본다.

근데 그 처음 작명한 그 분은 왜 하필 영남을 갖다 붙였을까? 대한민국을 서울과 서울 외 시골로만 개념화하고 있는 서울-경기 사람 중에 하나 아니었을까? 멀리 영남(이 용어가 가진 기준 자체가 한양 임금님 중심이니까)지방에 있는 알프스 삘 나는 산 덩어리들이 있는데, 영남이라는 시골에 있는 알프스라고 부르자, 뭐 외우기도 쉽고 좋네. 하지 않았을까? 라는 두 번째 뇌피셜… 은 여기까지.



2.천황산 호칭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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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호칭 이야기는 오롯이 뇌피셜이지만, 천황산 호칭은 실제하는 논쟁이다.

나도 처음엔 천황산, 재약산이라만 알고 있었다. 지도앱은 물론 현지 팻말에도 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

대충 알아 듣기 쉬운 말로 뜻을 보면, (학술적 엄밀한 없음, 논문 쓰는 중 아님)

천황_하늘에서 내려온, 아니면 낙점한, 최소한 우리와는 태생이 다른 그 집안 족속 중에 고른 지도자 또는 부처님의 극락을 지키고 악을 무찌르는 4명의 힘센 전설 속 아저씨들,

재약_좋은 약을 적재한, 약빨 좋은 약초들이 많은, 또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만병과 고통을 떨칠 수 있는 약의 보고,

쯤 될 것 같다.

일종의 중의어인데, 나도 최근까지는 표충사가 지척이고, 산 이름이 하루이틀만에 생긴 게 아닌 다음에야 이왕이면 부처님이나 유명한 승려에서서 유래한 용어로 지어진 케이스 중 하나일꺼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올해 살펴보니 길안내 팻말에는 재약산(수미봉), 사자봉(천황산)으로 병기되어 있는 곳들이 많았다. (하나는 산에다가 괄호에 봉으로 병기하고, 하나는 봉에다가 산을 괄호로 병기하는… 뭐 이런 통일성도 없고 범주 구분도 없는 병기법은 누가 기안하고 누가 결재한 건지, 참. 뭐 이것까지는 이해하고 넘어가자)


의문점은 표충사 앞에 있는 산에 대한 안내문에서 출발한다.

표충사 주차장에 차를 내고 가람 안으로 들어서면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이 병풍처럼 오목하게 감싸고 있는, 풍수지리를 전혀 몰라도 대단한 기운이 모이는 자리에 절이 앉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충을 표시한다는 이름처럼 승병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라가 힘들때 땀을 흘린다는 믿기 힘든 비석도 있는데 더 믿기 힘든 건 그 땀이 忠자 모양을 띤다나 뭐라나. 승려들이 충을 제대로 실천(표현)했고 이어서 바위마저 말 그대로 충을 표시하는 곳이니, 표충사! 이 작명의 무난함이라니.

여튼, 표충사 안내문에는 분명하게 두 봉을 모두 재약산(載藥山)이라 하고, 사자머리를 닮은 사자봉과 불교 경전에서 상징하는 수미산에서 따온 수미봉으로로 설명하고 있다. 한때 '파르티잔3'이라는 등산 동호회(파르티잔=빨치산, 3라는 건 이미 1, 2까지 있다는 말일텐데… 우리나라 등산동호회에도 상당히 과격한 분들이 많은 건지도)를 이끌었던 유명한 부산의 문화예술계 선생님을 우연히 표충사에서 만난 적이 있어, 여쭤보니 일제가 여기저기 우뚝 쏫은 지존격 산에 천황이라는 이름을 은근쓸쩍 붙였다고 분기탱천 하셨던 기억이… 지금이라도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사자봉과 수미봉으로 호칭해야 한다고.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에라도 지자체 홈피에 댓글 달고 공적 기관에서 그러시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호통치고 팻말 다 뽑고 수정하고… 해야겠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천왕, 천황 등이 일본 천황만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게다가 순수하게 불교 용어였다면 어쩌려고 같은…)


이들의 주장은, 자연 발생적인 호칭이라는 것. 최초 사용자에게서 차용의 냄새가 농후한 영남알프스의 경우처럼 입에 잘 붙고 의미가 나쁘지 않으면 자연스레 널리 사용되는 게 살아있는 언어일진데, 그걸 글자가 같다고 해서 정확한 근거도 없이 일제 잔재라고 터부시 할 필요가 있냐는 주장이다. (이분들이 역사 왜곡을 밥 먹듯이 일삼는 뉴라이트가 아니라는 걸 전제로...)

여튼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된다는 정도로 정리하고(일물일어설 주창하신 그 프랑스 분이 들으면 대노할 일이긴 하지만), 그럼 별칭이 없는 천황재(고갯마루)는 어쩔 것인가? 사자재로? 현재 그 누구도 사자재라 부르는 사람은 못 봤다. 그래서 좀 찜찜하지만 뭐 일단 천황재로…


오래 전에 백기완 선생님 살아 계실 때,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다.

언제나 정갈한 소복 차림에 국어 사랑이 유별나서 아름다운 순 우리말을 찾아내서는 사용하곤 하셨다. 인터뷰 시작할 때, 동행한 카메라 감독한테,

“롤~ 액션~”

이라고 했다가 핀잔을 한 번 들었다. 근데 또

“프레임 조금만 더 타이트하게~”

라고 하는 바람에 재대로 시작도 못하고 쫒겨날 뻔 했다.

“사진 촬영 틀을 조금 더 좁게~, 이렇게 써도 의미 전달이 충분한데 왜 굳이 영어를 써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오염시키느냐? 내가 누군줄 알고 그러느냐?, 당장 나가!”

다행히 호통만 쳤지 정말 쫒아내진 않으셨는데, 옳은 말씀이긴 하다.

정말 존경하는 세종(진짜 너무 존경한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맨 먼저 가서 알현해 보고 싶을 정도로, 동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게 한이라 여길 정도로 보고 싶고 보고 싶다)께서 시력을 다 잃으면서도 놓지 않고 끝끝내 창제에 성공한, 내가 쓰고 있으면서도 놀랍기 그지없는 정말 사랑하는 한글, 우리말이지만, 그래도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언어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유기체라 생각한다. 그 시대 사용자들이 이유가 있어서 변형하고 비틀어 쓰더라고 그걸 언어공동체가 용인할 수준이거나, 오히려 환영한다면? 코로나 침투 막듯 코호트 조치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주의다. 냅두면 자정 작용이 알아서 거를 건 걸러주고 살릴 건 살리면서 다음 세대로 또 전달되는 게 아닐까? (개똥철학이지만, 집단지성은 뛰어난 개인보다 대체로 옳다는 입장이랄까?)

언어공동체가 오남용에 노출될까봐 법칙의 문턱을 높이고 관리하고 훈계하는 건, 결국 공동체의 지성을 믿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자주적 판단을 내릴 만큼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계몽하고 관리 보호해야 한다는 선민의식이 오랫동안 권력 불평등의 근거가 되기도 했으니… 난 반댈세.

선거 때 더러 얼척없는 결론이 날 때가 있었는데, 이런 결정을 한 공동체 구성원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야 하나 진저리 쳐질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체로 집단의 결정이 옳다고 믿고 싶다.

한번은 페미니즘이랄까 젠더 감성이랄까 좀 예민한 남자 후배와 만난 적이 있는데,

“자네 아내는 잘 있고?” 했다가,

“행님, 아내가 뭡니까, 아내가? 안에만 있는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남존여비 사상을 강화하는 봉건적인 발상인데, 알만한 사람이 그런 말을 씁니까?”

“그런가? 그럼 뭐라 하노?”

“와이프라 해야죠, 자네 와이프는 잘 있나? 이래야죠”

음… 글을 쓰다보니 백기완선생님과 이 후배, 둘이 대화를 하게 해 보게 하면 어떨까 싶네.


천황이든 사자든 더 편하고 이왕이면 이쁜 글자로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난 사자와 수미가 천황과 재약보다 더 친구 이름같고 이쁘다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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