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양산 산행 : 천성산01

2025.06.29.

by 조운

산을 타면 인문 지리가 읽힌다


여행기간 : 2025.06.29

작성일 : 2025.07.06

동행 : 바야

여행컨셉 : 여름 계곡 산행



양산은 부산, 울산이라는 메트로폴리탄 사이에서
베드타운을 담당하는 도시다.


이렇게 말하면 발끈할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양산 거주 20년차 이주민인, 나에게는 그렇다.

양산도 화려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것도 한반도 역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국가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신라시대 때부터 근대 이전까지는 상당한 중요도를 자랑하던 그야말로 이 동네 최대 도시였다.

지금은 아파트 촌이 되어버렸지만 과거 물금 들은 쌀 소출면에서 김해를 제외하고는 인근에서 으뜸이었다. 물금(勿禁)이라는 말도 실은 이두 표기로 ‘물(水)로 금(선)을 그어놓은 곳’, 즉 “논”이 많던 곳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

쌀이 풍부하면 인구가 모이는 게 당연. 서라벌 입장에서도 각별한 위상을 부여할 수 밖에 없던 곳이다.

부산 서면이 원래 양산 관할이었고 그래서 양산에 동면과 서면이 있었는데,

부산이 서면을 차지해 버릴 정도로 거대해지면서 양산에는 서면 없는 동면(부산-양산 경계)만 남게 되었다고도 한다. 거기에 반해 과거 부산, 울산은 국경 수비의 중요성 때문에 군이 상주한 곳일 뿐, 깡촌 중에서도 깡촌이었다. 그런 주위의 깡촌들을 넓게 관장하던, 오늘로 치면 도청 소재지 쯤이 양산이었으리라.

지금의 부산이라는 개념은 근대 개항 이전에는 아예 없었다. 고대국가 거칠산국이 존재했을 거라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연산동 언저리를 차지한 좀 큰 규모의 부족마을 정도지 않았을까(동래에 있는 박물관에서 그렇게 표현한 걸 본 것 같은…). 끽해야 부산진(군항)을 포함해서 몇 개의 분절된 어로 초가가 흩어져 있던 빈 땅이다시피한 곳이라고 알고 있다.


대마도가 지척에 있다보니 왜구의 한반도 진출 경로가 되었고,

안보상의 중요도 때문에 수영을 중심으로 해군이 상주했고,

그런 상주군의 지원을 위해 동래가 행정타운 역할을 했으며,

어로를 주업으로 하면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작은 자연 어항을 중심으로 공동체 부락을 이루며 살던 곳.

수도와 멀다는 이유로 사화때마다 유배지 정도로 인식된 황야, 딱 그 정도의 위상이 부산, 아니 부산진 인근의 촌동네 위상이었다. 지금의 부산처럼 하나의 통합 개념으로 부를 필요도 없던.

그러던 부산이, 그다지 중요한 외교 상대도 아니고 자꾸 패악질을 일쌈는 왜를 어르고 달랠 목적으로,

외교 비슷한 걸 허락하되, 반드시 여기서만 해라는,

나름 외교 통상 역할의 왜관을 이 땅에 허락 하면서 전에 없던 상업이라는 것이 들어설 여지가 생겼다.

드디어 개항이 되면서 큰 배들이 오갈 수 있는 항만 시설이 갖춰지고, 이내 수탈을 위한 철도가 건설되면서 장사치들이 모이고 그들이 거주할 주거촌이 막 생겨나고 사방팔방 길이 얽히고 설키면서… 어라, 어느날 갑자기 벼락(?) 도시가 되었네?

하이라이트는 한국전쟁 때 불어난 피난민들로 인구 포화 상태가 되면서 밖으로는 도시가 확장되고 안으로는 산비탈까지 판자촌이 생긴 때다. 마치 브라질의 파벨라같은 독특한 산복도로와 시가지가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쟁 이후 재건을 위한 원조나 수입물의 관문이 되면서 전국 최고의 상업도시, 장사꾼들의, 장사꾼들에 의한, 장사꾼들을 위한 도시로 자리매김한다.

울산은 더 한데, 군부 독재가, 부족한 정당성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경제 성장에 목숨 걸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 아래 인위적으로 성장시킨 곳이 울산이다.


자, 양산이여,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상실한 권위를 이대로 그냥 보아 넘길소냐?

그래서... 뭐, 어쩌라고.

과거 인근에서 양산이 어떤 위상이었건, 지금 다시 그 영화를 누리겠다는 욕심이 있냐면? 그건 또 아니다.

양대 광역시의 위성도시 격이 되다보니 토박이 보다는 나처럼 최근에 이주한 사람이 많아졌다. 양산의 화양연화를 다시 꿈꾸기는 커녕,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뜻.

게다가 양산은 둘로 완전히 쪼개져 있다. 거대한 천성산이 도시 한 가운데에 떡하니 들어 앉아 있다보니 동과 서는 지역 공동체 의식, 이런 거 희박하다.


과거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산은 고개가 있으면 그나마 좀 낫지만, 그래도 범이나 산적이 도사리고 있어 왠만한 일 아니면 (시험 보러가는 유생이나 먹고 살기 위한 장돌뱅이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넘어갈 일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하기 쉽지 않은 장벽이었다.

그에 반해, 강은 삿대로 저어 건널 수 있는 배 정도만 대면 되니까 나루 하나 뚝딱 만들어서 왠만한 날씨에도 건널 수 있는 훨씬 쉬운 이동 경로였다.

그들 입장에서 산너머는 아득하고 강 건너는 지척이었다.

양산(구도심) 입장에서는 낙동강 건너 김해가 가깝지 천성산 너머 웅상이나 서창은 먼 곳이었다.

게다가 천성산은 원효봉-비로봉-정족산이라는 높은 마루금(능선)이 제대로 된 고개(령) 조차 허락하지 않는 지형이기에 굳이 건어편에 가겠다면 둘러가는 게 낫다. 부산의 금정산 북쪽 끝자락과 양산의 천성산 남쪽 시작 지점인 지금의 다방동-사송-노포 라인 정도가 둘러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경로였다. 불편하다.

지금이야 둘러가든 새로 생긴 터널로 가든, 자동차로 얼마든지 오갈 수 있지만, 이미 서로는 의존의 필요, 교류의 필요없이 이만큼 각자 발전해 버렸고, 필요가 있더라도 동쪽은 울산과 서쪽은 부산과 더 빈번히 왕래하면서 해소되어 왔다. 울산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주로 웅상이나 서창에 살고, 부산에 출근하는 사람은 물금이나 범어에 산다. (최근 해운대쪽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웅상쪽이 더 낫긴 하지만, 해운대로의 출근이 늘어난 건 아주 최근의 일!)

모두 비슷한 시기에 신도시로 개발되었고 비슷하게 자치 생활권으로 성장한 아파트 촌들이다.

이쯤되면 오히려 궁금하다. 어쩌다 어정쩡하게 이 둘을 하나의 도시로 합한 걸까? (실제 웅상쪽 일부에서는 경남 양산시에서 분가해서 경남 웅산군으로 독립하고 싶다 얘기하는 흐름이 있고 반대로 구도심 양산은 부산으로의 통합을 진지하게 모색하던 때도 있었다)

계획성 있는 넓은 도로와 엄청난 공급 능력의 주택수로, 베드타운의 자격 충분하고, 산단이 발달해서 세수가 빠방하다는 공통분모가 있긴 하다. 특히 타이어, 화공 등 환경문제가 제기될 소지가 큰 기업들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 아래, 소문듣고 많이 모여 들었다.

최근 신도시로 개발된 사송은 천성산을 빙 둘러서 왕래할 수 있는 길목에 있긴 하지만 둘 사이의 연결 지점이라기 보다는 천성산을 중심으로 동, 서에 이어 남쪽 자락에 터를 잡아 또 하나의 자족도시로 성장할 가능성 농후.

이거야말로 공명이 그렇게 주창하던 ‘삼분지계’의 양산판 완성이 아닐 수 없다.

천성산에 도로, 터널을 내 행정적으로 불편한 부분들을 메우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 사는 사람은 이대로의 대면대면한 상태가 또 그리 불편하지도 않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확장되면서 금정산-백양산 능선 너머, 만덕을 시발점으로 낙동강벨트로도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원래 강 어로나 일부 농지를 중심으로 자생마을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이 능선이 도시의 중앙에 위치해 버린 꼴이 되었다.

흡사 양산과 같은 지리적-심리적 분단이 된 건가?

그렇지는 않다. 부산 사람들의 인식은 양산시민들과는 다르다.

양산의 동, 서가 비슷한 시기 위성 도시 역할을 위해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인위적으로 올렸고 각자 따로따로 두 광역시와의 연결이 충분했기 때문에 서로간 교류의 필요성 자체가 없었지만, 부산의 낙동강 벨트 도시화는 부산 토박이들(그래봐야 이들 대부분도 자신 또는 한 두 세대 전에 부산으로 이주한 이방인이지만)이 고장을 벗어나지 않고 이룬 뉴타운인데다가 대부분 산 너머 주도심과의 높은 생활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천성산이든 금정산든 도시 한가운데 과도하게 넓은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화합의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다.

심지어 두 산 모두 낙동정맥의 한 자락인데다가 주변의 등산 애호인 뿐만아니라 시민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곳이다. 천성산은 금정산에 비해 주위의 여러 산들과 함께 만들어 내는 웅장한 풍광, 그리고 비교적 거친 산세를 자랑하면서 등산 좀 즐긴다는 분들에게 주는 매력이 사뭇 큰 명산이다.


천성산 어딘들 원효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할 정도로 원효대사의 에피소드가 묻은 장소들도 많다.

불국정토를 꿈꾸며 후학을 키워냈던 거대한 산실의 쓰임을 받아, 장소별로 원효스님과의 전설만 옮겨도 책 한권이다. 게다가 ‘산정습지’라는 희귀한 현상이 무더기로 존재해, 사시사철 물도 콸콸콸.

다행히 위에서 말한 원효-비로-정족의 담벼락 구조, 이와 쌍으로 아주 깊은 계곡이 평행하게 이어져 있는 험한 산세 덕분에 인간의 손이 타지 않아서 깨끗하고 풍부한 물이 많다. 그러다보니 인근의 인간들이 만든 크고작은 농사용, 식수용 저수지에는 늘 물이 가득하다. 대표적인 곳이 법기수원지. 참 이쁘기도 하고.


두 산 모두 도시인들에게 동네 뒷산이긴 매한가진데, 산 아래 어느 동네에 사는가에 따라 산에 대한 이미지나 접촉면이 사뭇 다르다. 지구인은 늘 달의 같은 면만 볼 수 밖에 없는 것 처럼.

금정구나 동래구에 사는 사람들은 숲속의 흙길로 된 등산로로 능선에 오르고, 북구에 사는 사람들은 숲 속 흙길과 함께 암릉으로 된 가파른 길로 능선에 오른다.

천성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코스도 어디에 살고 있냐에 따라서 사뭇 다르다.

천성산의 서쪽, 그러니까 물금-범어-북정쪽 사람들에게 천성산은 시원한 내원 계곡이나 홍룡폭포를 잠깐 맛보고는 내내 암릉 구간 또는 가파른 코스로 가다가 갑자기 확 트인 평지같은 화엄벌의 산정습지가 있는, 고진감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평산-웅산-소주동 사람들은 미타나 안적의 골짜기를 따라 시원한 코스로 올라서 ㄷ자로 완만한 산길을 오르면 금새 원효-비로봉 사이의 능선에 도달하는, 그렇게 힘든 느낌을 주진 않는다. 이 코스가 비로봉까지의 최단 코스이기도 하고.

양산 서쪽 주민들이 주로 만나는 천성산 제1봉, 원효봉을 오르면, 맨 먼저 산 정상의 장관에 시선을 모두 뺏기고 만다. 서쪽 사람들의 천성산은 끝에 부드럽고 넉넉한 도원이 기다리는 곳이다.

반면 동쪽 사람들이 만나는 천성산 제2봉, 비로봉은 날카롭고 거친 야생의 맛이 기다린다. 그 정상에 서 보면 정상이 아니라 360도 산 아래 마을이나 둘러싼 준봉들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왜 양산의 동쪽과 서쪽이 대면대면한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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