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8~1.29
여행기간 : 2014.1.26 - 1.29
작성일 : 2016.10.20
동행 : 같이 살아 주는 분과 그녀의 아들들
여행컨셉 : 렌트카+등산
신라호텔 제주, 야경속으로
어찌보면 참 불쌍한 여인이다, 우리 마눌님.
요즘 결혼한 부부 중에 풀빌라는 아니라도 유명 휴양지에 있는 멋드러진 호텔 한 군데 안 가본 사람 없을텐데, 아직 우리집보다 더 나아보이는 호텔방에 한 번 자 본 적 없는 사람.
이번 제주 여행도 차량 렌트만 했다 뿐, 장구통만한 배낭과 등산화에 아이젠까지 꼭꼭 챙겨서 왔으니... 하늘하늘한 드레스, 트렁크 가방에 넣고 근사한 풀이 딸린 호텔에서 짐 풀어보는 로망은 늘 꿈만 꿔야 했던 사람이다. 그 로망 잘 알면서도 이제껏 살면서 애써 외면해 온 남편쟁이를 크게 원망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아예 마지막 투숙지는 본인이 알아서 정한댔다.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아내가 여행일정, 코스, 각종 예약 등을 진행해 본 적은 없다. 모든 것을 맡기고 몸만 따라 오던 양반이 이번엔 그 로망에 조금 근접하겠다는 의지 양컷 발휘하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 4명은 난생 처음으로 5성급 호텔이라는 곳에서 자게 되었다.
중문은 20년 전 'J'와의 자전거 여행에서도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만한 큰 가게가 있는 곳 이상이 아니어서, 그냥 지나쳤던 곳인데 이번엔 투숙지가 되어버렸다.
"신라호텔 제주"
로비부터 사람 기죽이는 규모 자랑하는 삐까한 곳이긴 했다.
이 돈으로 회나 한 사라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런 말은 절대 하면 안된다는 걸 알 정도의 인생 경험은 했나보다. 끝까지 잘 참았다.
단 하루밤만 주어진 좀 낯선 세상을 접하고는 우리 아이들이 가장 먼저 난리였다.
우리 방은 정원으로 나가는 통창과 문이 있는 1층이었다. 4식구 넉넉하게 자고도 남을 침대들과 한식으로 꾸며진(신라호텔이라 그런가) 인테리어가 온화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요약하자면, 하루 자는데 좀 과했다.^^ 애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숙소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생각지 않던 것들 조차 어제의 숙소를 더욱 초라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아, 이런 거 어릴 때 맛들이면 곤란한데... 심지어 둘째는 우리집하고 바꿨으면 좋겠단다. ㅜㅜ
짐풀기도 전에, 아니 옷도 갈아 입기 전에 애들을 쫒아 본의 아니게 호텔 부지 구석구석을 둘러봐야 했다.
벌레를 잡기 위한 등까지 이뻤다. 그 뒤에 보이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풍경은 로비라운지 같다. 우리 꼬맹이는 지 눈높이에서 보이는 것들만 구경한다^^.
발길 닿는 어느 곳 하나 허점이 없다. 깔끔하고 고급지다.
근사한 느낌을 연출할 줄 아는 사람이 조명 배치를 한 것 같았다.
여행 내내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냐고 핀잔만 주던 마눌님이 이쁜 조명 아래 사진빨 좋을 것 같은 곳에서 셔터를 누르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응해 준다.
호텔 부지는 생각보다 넓었다. 빌딩 옆으로 가니 글램핑 촌도 있었다. 실제 운영도 했다. 호텔 투숙 중 옵션으로 글램핑을 신청할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나야... 왜 편한 객실 두고 그러냐 싶을 뿐^^.
집 뒷동산이 대한민국 비박의 성지이니... 언제든 맘만 먹으면 올라갈 수 있다. 3분만에 집이 되어주는 텐트만 지고 가면 되니까... 더구나 왜 우리집보다 더 화려하고 좋은 객실을 잡고 다시 텐트에서 자겠다고 신청을 하는지... 실제 경험하지 않은 걸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할 수야 없지만, 특이한 경험을 하고 싶으나 애들 데리고 등산은 버겁고 하니 찾은 선택지리라 생각한다. 글램핑 내부엔 열선이 깔린 침대가 있는 침실과 독립된 거실, 화로, TV까지 구비되어 있다한다.
마눌님 부끄러울까봐 품위있는 척하고 돌아다녔지만, 별천지를 접한 눈동자가 좌불안석.
저기 난간에서 바라보이는 풀은 따뜻한 지 김까지 피어올랐다. 그러다가 우리가 여기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자, 우리는 우르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섰다. 이 겨울에 노천 온천같은 곳이 눈앞에 있는데 어쩔 수 없잖은가.
가족들 모두 수영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관계로 제법 오래 풀에서 놀았다.
실내와 실외가 연결된 풀을 따라 밤늦도록 노닐다가 지쳐서 졸립다는 애들을 데리고 느즈막허니 방으로 와서는 잤다.
체크아웃까지 최대한 즐기기
신혼여행 때도 하루 정도는 호텔 조식을 먹어봤고, 난 출장때마다 여러 나라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받아봤지만, 이제껏 먹어 본 중 호텔 조식 중 제일 괜찮았던 것 같다. 이제껏 자 본 호텔 중 제일 비싸기도 했지만.
마눌님은 어떻게 알았는지, 애들을 위한 아침 프로그램이 있다며 식사를 재촉했다.
호텔에서 기르는 가금류나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화려한 금계에게 먹이를 주는 막둥이.
아빠 아침 먹다 뛰쳐나오게 하고, 저 짐승들 먹이려고... 하...
손끝에 토끼 입이 닿았다고 좋단다. 아빠는 별로일세.
호텔 정원 가운데에 만든 수로에 사는 비단잉어에게도 먹이 하사하시고.
먹이를 다 주고 프로그램도 끝났는데, 주위에서 풀을 뜯어서 미니피그 같은 동물한테도 온정의 손길 베푼다. 장하다 ㅜㅜ
뭐, 덕분에 일찍 일어나기도 했고, 겨울이지만 따뜻한 햇살 받으면서 파도소리도 듣고 좋았다.
내친 김에 바닷가로 갔다.
빌딩에서 계단을 따라 좀 내려가니 프라이빗 비치가 나왔다.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할 수 있게 도구까지 갖추고
그렇게 잠시 모래놀이를 하더니, 아예 발을 둥둥 걷고 물가로 뛰어가 버렸다. 남국의 겨울이 좋긴 좋았다. 오전인데도 햇살이 내리쬐니,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수없이 반복되는 파도와의 숨바꼭질은 질리지도 않는 듯했다.
그러다 온 몸이 새하얀, 조그만 게가 나타나면 또 그 녀석과 숨바꼭질.
애들한텐 자연의 모든 것이 다 놀잇감이다.
그런 싱그러운 깔깔깔을 보고 듣고 있는, 바로 그 순간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리고 행복감은 늘 곧 끝날 것 같은 아쉬움과 함께 온다. 아쉬움이 따라오지 않는 행복이 있을까? 이 순간이 조금만 더 길기를 바라는 마음,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이 노는 동안 저기 비치 라운지에서 발 찜질도 하고 차도 한 잔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애들을 보러 바닷가로 나왔다.
마지막 날인데, 이후 일정을 어떻게 할까라는 절체절명의 고민거리에 심취한 아주머니 한 분 보인다.
발이 시려워진 녀석들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온다.
그제서야 주위에 시선이 갔다.
잠깐. 여기 언젠가 와 본 적 있는 곳 같은데?
그래, 기억이 났다.
몇 해 전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이미 체결된 미국과의 FTA.
당시 협상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수차례 진행되었다.
뼛속까지(to the core) 미국인이었던 김현종과 김종훈이 우리나라 협상단 대표였다. 그때 협상장소 중 한 곳이 제주였고, 이 호텔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중문단지에 있는 해변가 호텔 중 한곳에서 협상이 벌어졌다. 난 그때 이 자리에 있었다.
FTA는 미국 내 자본이 전세계의 부를 흡입하려고 진행했던 다자간 협상이 난항을 겪자 맨투맨으로 한나라씩 먹겠다는 의도로 진행된 약아빠진 협박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 외교 정책은 삼성경제연구소나 외교부의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고 있던 면이 컸는데, 이 그룹이 거의 검은머리 미국인 같은 사람들이었다.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뒤에서 정책적 영향력을 동원해서 국가를 복무케하는(이명박은 그 짓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앞에서 대놓고 저지른 보기 드문 케이스이고)...
어쨌든 전국적으로 찬반양론이 뜨거웠고, 그 협상을 막아보겠다고 협상이 벌어질 때마다 전국에서 반대 시위의 대열에 동참해서 모였다. 그 과정을 다큐로 담기위해 부산에서 팀까지 꾸리고 덤볐던 게 기억난다.
왜 이 해변을 잘 알고 있냐면...
당시 늦가을이거나 초봄이었는데, 협상장으로 향하는 모든 통로가 경찰들에게 가로 막히자, 농민들을 중심으로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 20여 명 정도가 옷을 입은 채 협상장인 호텔을 향해 헤엄쳐 갔고, 난 카메라를 들고 도저히 물에 들어갈 수 없어서 육로를 빙빙 돌아서 바로 여기 이 호텔,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에서 줌을 당겨서 그들을 찍었다.
1km 남짓되는 거리를 헤엄치고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이 백사장에 등장했는데 이미 경찰이 거기까지 방어를 해서 모두 체포되어 끌려 나오던 장면이었다.
그랬구나. 바로 여기였구나.
그 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신나게 놀았구나 생각하니...
우리 사회는 유래가 없던 빈부격차와 노동 유연화 마저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일 정도로 비자발적인 구성원들로만 이루어진 사회가 되었다. 자기 삶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과정에 그다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 구성원 말이다. 이런 정치 혐오를 조장한 놈들이 먼저인지, 정치혐오 때문에 더욱 그 인간들이 마음대로 하는 게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그런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요인 중에는 FTA 같은 말도 안되는 불평등조약을 나라 살린다는 허구로 밀어부친 것들과 순진해선 안되지만 순진하게 속은 또는 한통속이었던 위정자들이 한 몫 했을 테고.
지금 생각하니, 차라리 우리나라의 문제가 이런 것들에 국한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대놓고 지 잇속 챙기기를 완벽하게 성공한 2Mb 이래, 자신들의 부적절한 부의 축적을 위해 여론을 호도하고 언어도단의 사회를 만들고, 본인들 이외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애국을 외치는 꼬락서니를 매일 목도해야만 하는 국가에서 뭔들...
누구는 이걸 악의 보편화라고 하더라.
모두에게 악이 있고, 왠만한 악을 보더라도 내가 더 악랄하지 못해서 상대적으로 손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인간 삶의 조건이 흉악해진 세상. 이런 세상에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들이 무슨 감자 뿌리처럼 캐도캐도 계속 나오는 요즘.
그래도 나라 팔아먹는다 아니다 가지고 싸움이라도 하던 그때가 호시절이었다...고 자조해야하는 서글픈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