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가을 공룡능선

2014.10.11

by 조운

여행기간 : 2014.10.11
작성일 : 2016.11.23
동행 : 어느 산악회를 따라
여행컨셉 : 백팩 트레킹



단풍놀이에 나이가 있나요~


단풍놀이라...
벌써 내 나이가 그렇게 되었나?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비슷한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 방학은 여름과 겨울. 놀러 가는 곳은 바다, 계곡 아니면 눈밭일 수 밖에 없다.
졸업을 해도 남아있는 관성이 있어서 휴가는 대부분 여름, 간혹 겨울에 떠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애가 크고 다시 이 놈들이 학교를 다니면 우리는 다시 학기와 방학이라는 계절을 살아간다.

결국, 꽃 구경, 단풍 구경 다닐 수 있는 때는?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다.
'꽃 구경'과 '단풍 구경'은 촌스럽고 고루한 느낌을 준다. 단어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뜨는 이미지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지 않나?

내 나이도 벌써...
라기 보다는 주 5일제로 근무 패턴이 바뀌면서 이제 방학이 아니라도 다른 계절에 짧게 다닐 수 있게 된 거라고 스스로를 진정시켜 본다.ㅜㅜ



24:00. 부산 출발


24:00. 늦은 밤? 이른 새벽?
집결지에 모여서 대형 버스에 올랐다. 큰행님이 소속된 산악회에서 설악에 공룡 잡으러 간다고 신청을 받았다. 고등학교 수학 여행때 울산바위 한 번 안 밀어본 사람은 없지만, 두 번 간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우리 나이에는. 좋은 기회라 싶어 신청을 했다. 더구나 토왕성폭포를 다시 공개한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보고 가고 싶은 맘도 컸던 때였다. 비록 우리 산행 일정에 그 폭포가 포함되진 않았지만.
저번에 사무실 후배들과 갔던 지리산에도 따라왔던 'K', 그리고 우리 산행대장님 내외, 그리고 민씨누님과 우리 수영동호회 회장 '요요'행님까지. 우리들 멤버만 해도 7명이 같이 신청을 했다.
'K'를 데려오면 다른 분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좀 했는데, 시골스런(스스로의 표현이다) 구수함도 있고 끈기도 있는 편이라 괜찮을 것 같기도 했고, 지리산에서도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전진하는 모습을 봐서 행님들께 천거(?)하게 된 것. 여쭤보니 괜찮다 하셨다.
젊은 아가씨가 온다는데 마다할 게재는 아니지^^

하지만 만약 퍼지면 내가 메고 다녀야 한다는 것 정도는 생각하고 있어서, 산행 내내 페이스 조절을 주문하면서 따라다녀야 했다.


image_8663582851479951144651.jpg?type=w773 출처_http://pepuppy.tistory.com/290

버스에는 빈좌석이 많았다. 단풍 시기만 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에 밀려서 산행을 해야하는 곳이 설악이다. 단풍구경왔다가 사람 구경만 할 수도 있다는...
그래서 피한다고 피했더니 이미 다녀오신 분들이 많아서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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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잠든 버스가 구정휴게소에서 우리를 내렸다.
휴게소 주차장에서 아주 이른 아침 식사를 했다.

낮은 산이라 얕보고 아침 일찍 빈 속에 천성산에 올랐던 적이 있다.
화엄벌에서 촬영을 해야했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고, 도시락은 커녕 물 한 통 없이 카메라만 챙겨서 뛰었다. 정말 거의 뛰다시피 산정 습지까지 4~50분에 주파했다. 그리고는 바로 철쭉 밭에 드러누워야했다.
그때 지나가시던 분들이 물과 도시락을 나눠주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발견해주지 않았더라면...
산행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걸, 자칫 오만하면 그대로 갈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끼고 그 뒤로는 바로 겸손해지더라는 거지.
그래서 꾸역꾸역 많이 먹었다.



설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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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동 주차장에 내렸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일출을 보는 건 어려울 듯 했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 단풍놀이라면 이 정도의 북새통은 각오해야 하는 구나^^ 이게 어른들의 세계인 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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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세계는 단체사진을 특히 좋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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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앞의 널찍한 공원을 지나, 제법 넓은 임도를 따라 많이 들어갔다. 길이 넓으니 사람들이 많아도 별로 못 느꼈는데, 막상 와선대 앞 오르막이 시작되는 좁은 산길로 들어서니 병목현상으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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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작이다.
비박이 아니라서 배낭이 가벼우니 너무 좋았다. 행님들하고 가면 늘 찍사를 해야하니, 카메라가 좀 거추장스러운 거 빼고는 날아갈 듯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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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속초시와 도시가 내뿜는 잡광들이 낮은 하늘에 번져서 마치 불이라도 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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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양은 이날을 위해서 배낭도 하나 장만했다. 장하다. 암벽등반까지 배우고 있으니 괜한 걱정을 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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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안 좋은 요요행님. 오르막은 괜찮지만 벌써 내리막을 걱정하신다.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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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주구장창 오르막이었다. 가스로 주위도 잘 보이지 않고, 당연히 해가 뜨지 않아 더 그랬다. 앞 사람 뒤꽁시만 보고 계속 가는 수 밖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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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가스다.




마등령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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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마눌님이 등산바지를 사 주어서 입고 다니지만, 저때만 해도 그 흔한 등산바지 하나 없었다. 사실 등산바지가 정말 편하긴 한데, 금정산같은 낮은 산에도 완전히 스포츠맨처럼 입고 다니는 우리의 액티비티 동호회 문화가 싫어서, 일부러 등산복을 구매않고 있었다.
면바지에 면티. 나만의 등산 패션이다. 그래서 늘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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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령 분기점 못 미쳐서 어디쯤.
철 계단이 나타났다. 편한 산을 오를 땐 내 보폭과 맞지 않는(누구의 보폭과도 맞기 어려운^^) 계단을 오르는 게 참 힘들던데, 여기선 오히려 반가웠다. 땀을 머금은 바지는 무릎 구부리기도 힘들었고 간혹 발을 많이 올려서 내디뎌야 할 때는 무릎에 무리도 가고, 에너지 소모도 상당했는데, 그나마 일정한 높이가 유지되니 훨씬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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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를 몇 개를 넣었는지 빰이 터질 것 같은 다람쥐 한 마리.
줌 렌즈가 없어서 그 앙증맞은 빰을 담지 못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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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령 분기점. 해발 1260m.
설악은 워낙 해발 고도(200m 정도)가 낮은 곳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는데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수직으로 1km를 걸어와야 도달한다는...



공룡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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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이 끝나자 이제부터는 돌바우들만이 기다리고 있다. 길도 거진 너덜길이다.
이길을 가리켜 공룡능선이라 한다. 공룡의 등처럼 뽀족뽀족한 바위에 매달려서, 때론 기어서 다녀야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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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에선 전혀 꺼내지도 않다가 분기점에서 카메라를 꺼내드신 현명한 우리 큰 행님^^.
가스로 인해 단풍을 담기에는 애로가 있다고 계속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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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맘에 뽀샵을 너무 하신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고생해서 찍어 준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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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무릎이 남아나지 않는데, 아직 희운각까지 4km나 남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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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가 좀체 걷히지 않는 가운데 차갑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 저렇게 공룡을 잡...지는 못하고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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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양도 제법 잘 따라왔다. 아직 내리막이 남았지만, 대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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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걷히지 않았어도 웅장한 바위산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들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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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 반 정도를 지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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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또 정체구간이 나타났다. 뭔가 속도를 낼 수 없다는 뜻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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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잘못 디디기라도 하면 아찔한 구간이었다. 이때 순식간에 하늘이 걷히고 파란색이 빼꼼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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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로프를 놓고 카메라를 켜고...
지금 생각하면 왜 꼭 그래야 하나 싶게 무모한 짓을 했다. 그러고 찍은 게 고작 이 사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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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장 청명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한다. 단풍이 약간 덜 들었지만, 그래도 좋다.


金剛 秀而不雄
智異 雄而不秀
雪嶽 秀而雄

금강은 수려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나 수려하지 않고,
설악이 수려하면서도 웅장하다고들 한다.

세 곳을 모두 가 본 나로서는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설악에 대한 평가에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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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 돌길에서 그나마 먼 산이 약간이라도 보일 때, 다들 세워놓고 한 장 찍었다. 다른 이유면 귀찮아하지만, 사진찍는다는데는 모두 좋아라하는 어른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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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 사진이 없어서, 이제 이런데서 셀카는 버릇이 되어버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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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들은 무릎아프다고 죽겠다면서도 이런 사진 포인트로만 목숨 걸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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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큰행님이 나도 찍어 주신다.
지난 번 광안대교까지 수영하고 돌아오다가 저체온증으로 진짜 죽을 뻔 한 이후, 체온 조절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그날 요요행님이 레스큐 튜브를 안 들고 왔더라면...
이날도 얇은 바람막이와 좀 두꺼운 바람막이 두개를 챙겨서 수시로 입고 벗고 했다. 안 죽으려고^^



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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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이지만 구름이 걸쳐있어 바로 앞에 범봉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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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봉의 위용을 담으려고 대포렌즈에 삼각대까지 갖춘 찍사들이 여기저기 세월을 낚고 있었다. 우린 또 이런과는 아니니까... 그냥 지금 이순간 보이는 만큼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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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담은 사진 5장을 연결했다. 내 카메라의 와이드 기능이 신뢰할 수준이 아니라서 이렇게 해야만 한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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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같은 곳에서 아이폰으로 찍었는데, 폰 사진이 더 낫다는 이도 있고 뭐...쩝.



희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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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을 잡은 건지, 먹힌 건진 모르지만, 여기까지 왔다.
'희운각'이다. 희운각대피소에서 밥을 먹는다.
마지막 식사는 언제나 얼큰 해장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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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에서 목도 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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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에 늘 고전인 우리의 K양.
무릎 아픈 요요행님 무릎 보호대까지 뺏아서는 한 쪽에 차고 결국 공룡능선을 넘었다. 욕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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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운각대피소 앞 고목에는 운지가 저리 늙도록 그대로 남아있다. 보통 길가에 있는 고목의 운지는 파랄때 다 따 가버리고 마는데, 어떻게 저래 늙도록 남아 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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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헬리콥터를 세 대나 만났다. 그만큼 사고나 부상이 많았다는 거겠지? 희운각에서 출발하자마자 우리 앞의 누군가를 급히 싣고 있었다. 바람이나 소음이 장난 아니었다.


"저거 타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K양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내리막길 걱정에 진지하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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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이륙. 셔터스피드를 높여서도 한 장 찍고 조금 내려서도 한 장 담았다.



천불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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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산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이름난 세 곳 중 하나라는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한다.
얼마전까지 통제구역이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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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聞不如一見
갑자기 눈이 호사라, 그냥 무턱대고 눌렀다. 누르면 전부 엽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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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대, 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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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이 끝나면 훨씬 넓은 계곡의 바위들과 만난다.
비선대까지 내려가는 길은 여정을 적당한 사이클로 마무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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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자세히 보면 적벽을 기어오르는 클라이머들이 보인다. 아찔하다.
산행대장 행님이 과거 오르고 개척했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감회에 젖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형수님과 나란히 오르던 그 시기가 눈앞에 펼쳐지는지.
"조운아. 행님한테 암벽 배울래?"
그러신다.
"음... 예... 다음에"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동경은 하고 있지만, 자신은 없는 종목이라 선뜻 대답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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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대 매점에서 막걸리로 산행의 피로를 씻는 사람들과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사람들 속에서 마지막으로 적벽의 웅장한 모습을 담았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구름과 안개로 덮여서 앞만 보고 갔던 이번 산행.
4.5km 정도의 공룡능선은 정형외과 예약하고 올라와야 한다는 말이 과장된 너스레가 아님을 확인해 주었다. 다들 초행이 아니신 행님들은 아름다운 경관을 못 봐서 아쉬웠다는 평이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초행인데, 신비감 잔뜩 안겨준 첫 인상이 오히려 너무 맘에 들었다.
또 오고 싶게 만드는 힘.
설악 참 매력있다.
다음엔 아들들과 함께 하리라. 생각만 해도 흐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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