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28
작성일 : 2005.09.04
여행기간 : 2005. 08.26 - 08.28
여행컨셉 : 무전여행에 가까운 백패킹
동행 : 인생의 절친
12시 반. 도동항 도착.
마침 점심시간이라 표를 살 수 없어서 우리도 점심을 먹었다. 남은 금액이 빠듯해서 따개비 비빔밥을 사먹기로 한 계획은 포기를 하고 우리 배낭에 아직 남아있던 짜파게티로 한끼 떼우기로.
쌀이며 반찬도 태하분교에 두고 왔으니...
취사할 자리를 물색했다. 도동항은 포구라고 난, 좁고 쑥 육지로 들어온 만을 빼면 전부 절벽이 바다를 행해 있는 곳이다. 그 절벽을 따라 철다리를 놓아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우리는 악천후로 인해 출입금지라 적은 푯말이 있는 문을 넘어 들어갔다.
한 쪽 발을 뻗으면 바다에 닿을 딱 고만한 자리에서 면을 끓인다. 다 먹고 터미널 화장실에서 설겆이를 하는 동안 'J'가 가까스로 표를 사왔다.
"내 바로 앞에 아저씨가 140만원 어치 표를 사는 바람에 식겁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아슬아슬한 맛을 즐겨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표는 일반석이 없어서 우등이었다. 그것도 배에 오르고서야 알았지만.
자, 밥도 먹고 표도 있고, 기념품 사러 가자~.
오징어는 조업철이 아니라서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호박엿으로...
오후 2시.
출항까지는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우리는 아쉬운대로 남샘이 말씀하신 행남등대를 가보기로 했다. 도동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저동이다.
도동은 여객을, 저동은 물류를 담당하고 있는 듯. 항구에 있는 안내 센타로 가서 저동가는 길을 물으니 도로따라 가는 길 뿐이란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큰길을 따라 고개를 넘었다. 그게 생각보다 아주 깔딱고개라는...
멀리 첫날 팔각정에서 봤던 저동항이 눈에 들어왔다.
막상 도착해서 길을 물으니 다들 잘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등대가 있는 곳은 실은 저동과 도동을 연결하던 유일한 길이었는데, 새로 도로가 고개를 둘러 오면서 옛길은 이제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 되었던 것.
우리는 엄마찾아 삼만리 애니메이션에서 본 듯한... 언덕에 첩첩이 붙어있는 집들 사이를 가다가 어느 고등학생인 듯 보이는 남자애한테 길을 물었다.
"저 집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근데 조심하세요. 심심찮게 사람들이 떨어져 죽었어요."
하하하... ``--
살짝 겁을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의지가 꺾일리 만무하잖아?
울릉도에서 나리분지 외에 평지는 없다고 보면 된다. 어차피 언덕 오르는 것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고개를 넘었는지...
"헙아, 이제 시간 얼마 안남았데이"
'J' 입장에서는 도동에서 고개를 넘어 저동에 겨우 도착했는데 다시 도동 쪽으로 산행을 해야하니 어처구니가 없었을 거다. 난들 알고 한 건가만... 남샘이 '저동에 있는 행남등대'라고 해서 저동으로 일단 온 것인디...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은 길인 것은 분명했다. 수풀을 헤치고 겨우 어느 인가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도 숲속.
할머니 한 분이 막 밭에라도 다녀오셨는지, 맨발과 손에 가득 마른 흙을 묻힌 채로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앉아 계셨다. 투막집이나 너와집의 구조를 닮은 빨간 페인트를 칠한 양철 슬레이트 집이었다. 울릉도만의 전통 가옥은 바람이 심하고 보온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여느 시골처럼 쪽마루에 방문이 나 있지만 그 모두를 "덧벽"이 감싸고 있다. 지금은 난방장치며 전기도 들어오지만, 아직도 투막집과 같은 구조로 집을 짓고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은 여기 뭐 파먹을 게 있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왠 걸요. 여기도 땅에 뭐 심으면 나고 그것 먹으면서 살만해요~."
물 한잔 부탁에, 냉면 그릇같은 대접에 믹스커피를 가득 타서 내 주신다. 도시 사람들은 이런 거 좋아하더라면서... 사발 커피를 앞에 두고,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는 해방 때 소학교 6학년이셨단다. 지금은 일흔다섯 정도 되신거지. 정정하시고, 검게 그을린 얼굴이지만 밝은 웃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천부가 고향이고 도동으로 시집와서는 쭉 여기서 사신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도 권총소리 한 번 못 들은 곳이 여기 울릉도였단다. 그냥 가끔 바다로 군함이 지나가고 사람들 사이에 난리가 났다는 소문만 있었단다. 지금도 이런데 당시엔 얼마나 외진 곳이었을까?
"할머니 다시 오면 꼭 들를께요."
"예, 내년엔 오지말고요. 내 후년에 와요. 지금 등대를 교체한다, 공원으로 만든다 해서 정신없고 먼지도 많아요. 그 때쯤 공사가 끝날 꺼에요."
그러고는 할머니께서 원래 도동과 저동을 연결했다던 바다 절벽길을 가르쳐 주셨다. 배 시간도 30분 정도 남았고 해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 울릉도를 다시 찾지 못했다. 할머니는 아직 잘 살고 계실까?)
할머니께서 안내해 준 길은 울릉도가 주는 마지막 감동이었다.
안내센타 아줌마는 왜 이 길을 몰랐을까?
할머니 댁에서 바다쪽 절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는 것은 마치 성지곡 수원지의 산책로를 따라가는 듯 했다. 물론 그 보다는 자연미와 야성미가 더 강했고, 또한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원없이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J'가 가져온 디지털 카메라의 마지막 남은 한 장의 공간을 거기서 사용했다. 용량이 한계라 지우고 지우면서 찍었는데 더 이상 지울 것 조차 없어서 푸념했다.
그렇게 지나가는 분께 부탁한 사진이 초점이 나갔을 줄이야^^. 그래도 우리에겐 참 소중한 사진이다.
애띤 것들 둘이 낯설다 ㅋㅋ
결국 행남 등대는 어딘지도 모르고, 도동등대는 공사중이었지만, 우리가 남은 두시간을 그렇게 보낸 것은 참 행운이었다. 역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곳은 가 봐야 하는 법! 도착은 못해도 반드시 뭔가가 기다리고 있으니...
산을 넘으면서 체력의 바닥을 보이던 'J'의 원망스런 눈빛도 다시 밝게 빛났다.
돌아오는 배에서는 타자마자 잠에 빠졌다가 동해바다 한가운데 쯤에서 깨어났다.
우리 옆자리에 초등학교 4학년, 6학년 형제가 앉았는데, 방학 시작과 함께 울릉도 할머니 댁으로 왔다가, 이제 곧 개학이라서 돌아가는 길이란다.
지금은 부산 화명동에 살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지들도 울릉도 주민이었다고 말하는 동생이 귀엽다. 최진욱어린이, 최수현어린이.
그 애들과의 이야기꽃으로 울릉도를 떠나는 아쉬움을 풀려는 내 마음.
결국 객실 뒤에 우둥석에만 있는 발코니 같은 곳으로 가서 음료수도 뽑아먹고 육지쪽으로 지는 석양도 바라보면서 4명이 잠시지만 일행이 되어서 보냈다.
"아저씨 코펠있어요?"
"응"
"그럼, 불나오는 거도 있어요?"
"버너? 응."
"와, 그럼 아저씨들은 '여행자'시구나"
"하하하"
"겨울방학때도 와요? 사동에 꼭 오세요. 할머니 댁에 저도 올껀데..."
끝까지 울릉도는 사람 사귀기가 쉬운 고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