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11
야쿠시마로 가는 페리호
일본 비지니스 호텔의 조식 수준이 어떤지에 대한 경험이래봐야 10년 전 신혼여행이 전부인 마눌님은 호텔 조식에 대해 대단히 만족해 했다. 먹성 좋은 나야 마눌님과 애들이 잘 먹어주니 다행일 뿐이었고...
갑작스레 정한, 그래서 시설에 비해 다소 비싸게 묵은 느낌이 있는 호텔이었지만 대체적으로 가족들 모두 만족해 했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야쿠시마로 들어가는 카페리는 미리 예약을 해 둔 상태였다. 쉽진 않았다.
제법 공을 들였던 작업이었다. 홈페이지를 정말 어렵사리 찾아내었다.
야쿠시마로 들어가는 배가 한 종류가 아니었고, 그 중에서 카페리를 찾아내는 것, 우리가 가려는 시간대와 맞는 것, 더구나 나올 때는 일본 오봉절과 겹쳐서 배편이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한 답변 등등...
이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라... 당시만 해도 번역이 조악했던 구글 번역 서비스를 빌려, 일본 선사 담당자와 메일로 질문과 답변을 거듭했다.
우여곡절 끝에 예약을 했고, 10년 전과 거의 변화가 없는 터미널까지 차를 몰고 갔다. 항구까지 우리 호텔에서 몇 블럭 거리였다. 알고보니 우리가 묵은 곳이 가고시마에서 제일 번화가에 속했더라는...
일본에서 차량을 배에 싣고 섬으로 들어간다?
좀 긴장을 했다. 예약확인은 어디서 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 지 등등... 주고 받은 메일에는 현장에서 승선을 거부 당하거나 추가 운임을 요구 당할 수도 있는 조건들을 언급했던 것도 있어서(오래되어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더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우리가 타야 할 배가 어떤 건지도 몰랐으니 뭐...
우리 순박한 가족들은 나의 긴장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마냥 즐겁다^^
어떻게 묻고 물어서 찾아 간 곳은 항구의 맨 끝에 있는, 마치 경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긴 곳이었다. 정말 격납고처럼 높고 큰 문이 한 쪽만 열린 곳으로 들어가니 어둑한 가운데 저 안쪽에 아래 위가 원피스로 된 기름 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테이블에 앉아 있다. 출력해 갔던 메일 답장들은 필요도 없었다. 여권 달란다.
예약 상황 확인하고 현금으로 결제하고, 차량 검사를 했다. 차종과 번호를 적더니 귀찮다는 듯 저리가서 줄을 서란다.
하루 한 번 운행하는 카페리니 당연 배 근방에 차들이 선 줄을 의미하는 것이라 믿고 불안하지만 맨 끝에 줄을 섰다. 승객들이 모두 오르고 지게차들이 섬으로 가져가야 할 각종 물자들을 싣고나니 민간 차량들의 순서가 되었다.
아래층에 주차를 해 놓고 좁은 철 계단을 올라와보니 우리 말고도 많은 관광객, 섬 주민들이 탑승해 있었다.
배는 생각보다 컸다.
매점 겸 기념품 가게, 식당, 대욕장(요금 별도), 오락실, 루프탑 라운지까지 왠만한 것들을 다 구비하고 있었다. 비록 3시반 정도의 운행이었지만, 이른 조식을 먹고 한참이 지난 지라 배가 많이 고팠다.
식당이 협소한데 반해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너무 많았고, 우린 또 줄 서는 거 별로 안좋아라 하는 체질들이라... 바닷바람 좋아하는 아들들 델꼬 망망대해를 한참 눈으로 쫓았다.
날씨가 좋아서, 그리고 북 태평양의 바다 위라서?
엊그제까지 부산에서 일상을 보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재 상황인데도 순간순간이 간절하고 그립다는 게 뭔지 알 듯한...
더구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야...
멀어지는 사쿠라지마(가고시마의 활화산) 화산을 담는 부자들.
식당에선 우동, 라멘, 그리고 삼각김밥을 먹었던 것 같다. 좀 한적해지고 나서 갔는데도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급하게 먹어야 했다.
밥을 먹고 맨 위층 라운지로 올라갔다. 전망이 좋은 실 내외 공간이 있었지만, 실내 소파와 테이블 공간은 섬 소년, 소녀들과 일본 관광객들이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더러 파란 눈의 서양인들도 보였지만, 긴 소파에 아예 드러눕는 얌체 짓을 서슴치 않고 해 댔다.
어떻게 조그만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서 거기서 그냥 앉아서 수다나 떨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모르긴 해도 배 안에 한국인은 우리 밖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미야노우라 항
미야노우라항은 여전했다. 조용하던 항구에 우리가 도착하자 갑자기 활기가 돌았다.
큰 배가 항구에 정박하면 으례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갑판에 고정된 작살 총 같은 게 있었다. 항구에 거의 닿을 무렵 선원 한 사람이 그걸 쏘자 끈이 매달린 작살은 항구에 떨어졌고, 항에서 그걸 주운 한 분이 줄을 계속 당기고 배에서 풀려 나가는 줄은 점점 두꺼워지더니 나중엔 밧줄이 되어 배를 안정적으로 결박했다. 이 모든 과정이 그다지 많은 시간을 요하지도 않았고... 어디나 달인들은 있는 거니까.
차를 가지고 나올 때는 식구들을 바로 태우고 나올 수 있었다. 벌써 우리차는 빨래감과 과자 부스러기 등등으로 네 식구 엉덩이만 살짝 걸칠 수 있는 단계가 되어 버렸다는...
배에서 내리자 아래위로 하얀색 옷을 차려 입은 노신사가 서 있어다. "히다카상"^^
10년 만의 재회.
그때 우리들은 부부가 된 지 채 48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지만, 이제는 네 식구로 늘어났고 히다카상은 그새 좀 늙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다부진 몸매와 건강하게 태운 피부와 하얀 백발이 더없이 좋아보였다.
안타깝게도 "파숀호"는 더이상 없었다. 그 멋진 사륜 구동 4인승 픽업차에도 우리의 추억이 좀 베어 있는데, 이미 팔고 없단다. 아저씨가 타고 온 차는 정말 작은 경차였다^^. 할리데이비슨을 꿈꾸던 분이 이제 철이 좀 드신 걸까 ㅋㅋ
따지고 보면, 인생에서 두 번째 만남인데... 어찌 그리 반가울 수가 있었을까^^. 잘 통하지도 않는 일어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둘이 아주 신이 났었다. 아이들과 애 엄마가 가자고 보채기 전까지 말이다.
신혼때 묵었던 방, 파숀관
우선 자신을 따라 오라고 했다.
그의 차를 따라 도착한 곳은 그가 일하는 사무실이었다.
그가 여행사를 했었구나. 10년 전에도 그럼 여행사 직원이었단 말인가^^ 물론 사장일수도 있는 거고...
미야노우라 항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한길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차를 세워두고 직원이 주는 시원한 음료도 맛보고 이것저것 야쿠시마의 관광 자료도 좀 얻었다. 그리고 맛집 추천을 해 달라니까 바로 맡은편에 있는 식당을 알려주었다.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지만 맛집인 건 확실했다. (우리는 늘 배가 고프니까 객관적인 잣대라기에는...)
메뉴에 그림이 들어가서 대략 뭔지를 알고 시킬 순 있었고, 인기있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해서 먹었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것 말고는 좋았던 것 같다.
식사까지 마치고 파숀관으로 갔다.
파숀관도 10년 동안 많이 낡아 있었다. 방의 인테리어 나무들도 낡아있었고, 그새 여러가지 냄새들도 좀 베어 있었다. 우리의 신혼 추억이 담긴 그 산뜻한 이미지는 더 이상 없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아니 오히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게 살짝 감상에 젖게 만들었다.
신혼때 우리가 묶었던 곳에 또 묵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런 감상적인 의미 부여가 실은 아이들한테는 너무 신기했나 보다. 우리보다 더 흥분을 해서는...
특히 둘째는 자기도 커서 결혼을 하면 여기로 신혼여행을 오고 싶단다. 그리고 엄마 아빠처럼 자신의 아이가 생기면 다시 그 아이들과 여행을 오겠다고^^
이런 상황이 버거울만큼 흥미롭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실제 야쿠시마로 신혼여행을 오진 않겠지만 우리 집안 만의 전통 아닌 전통으로 계승해도 좋을 문화를 하나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자자, 정신 차리고 이제 점심 조금 지난 시간인데, 그리고 야쿠시마에 얼마나 가 볼 데가 많은데...
히다카상은 다시 일하러 가셨고 우리는 오후는 알아서 관광하겠다고 했다.
차에서 뺄 짐들만 내리고 다시 출발~ 목적지는 시라타니 운수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