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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일주05_야쿠시마, 시라타니운수 계곡

2015.8.11

by 조운
야쿠시마 사슴, 야쿠시마의 마음 얻기


야쿠시마에 도착하자마자 시라타이운수계곡부터 가자고 한 건, 그 만큼 우리 부부의 기억에서 각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이 맞다면 탐방객이 원하는 시간만큼 골라서 다닐 수 있는 적당한 길이의 탐방코스를 여러 개 제안해 주고 있기 때문에 오후에 도착한 우리들에겐 첫날 한나절 일정에 딱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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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타이운수계곡은 섬의 서쪽 끝에 있는 파숀관에서 다시 미야노우라항으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서 계곡쪽으로 난 절벽 도로를 한참 올라야 한다. 섬들이 보면 보통 해안선을 따라 일주 도로가 있고 중앙에 한 두 개의 산까지는 아주 가파른 등고선을 만드는데, 전체적으로 복주머니 모양의 단면도를 가진 야쿠시마도 예외는 아니다. 사라타니 운수계곡은 이름에서 처럼 물이 풍부해서 제법 큰 중류의 강(그래봐야 우리의 천 정도지만) 풍광도 만날 수 있고, 산쪽으로 다가갈수록 기후대도 달라져서 쭉쭉 뻗은 삼나무가 마치 아무르 강 어디쯤인가 착각할 정도로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한때 TV에서 전세계인 모두를 화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교육자였던 밥 로스 아저씨가 자주 그리던 바로 그 로키산 침엽수림의 강 풍경같은...
삼나수 숲 사이에 데크를 설치해서 다니기 편하게 해 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자연스런 오솔길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제법 긴 코스를 택했다. 여기서 마음만 먹으면 사실 산 정상까지도 갈 수 있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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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한국에서 비행기로 야쿠시마에 들어오게 되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으니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산행루트인 이곳으로 등산을 시작해서 정상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일정은 7,000살의 죠몬스기를 만나고 나서 그 근방의 코야(小屋, 작은 산장)나 텐트에서 1박을 해야한다. 그리고 섬의 남단으로 내려오면(우리는 내일 그 코스로 등산을 잡았다) 야쿠시마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셈이 된다. 1박을 더하고 하루나 이틀은 해안선을 따라 구경을 다니면 짧은 일정으로 산과 바다 등 야쿠시마를 두루 즐길 수 있을 듯하다.
다음에 마눌님과 꼬맹이들 버리고 내가 이렇게 한 번 와보고 싶다는^^


%EC%8A%A4%ED%81%AC%EB%A6%B0%EC%83%B7_2017-02-03_11.31.18.png?type=w773 각양각색으로생긴 삼나무들. 원래 쭉쭉 뻗은 잘 생긴 나무들은 벌써 벌목되어 사라지고 이런 기이한 놈들이 더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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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을 염려는 별로 없지만, 진짜 산길이다.
인공적으로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곳들이나 숲과 분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쳐져 있는 곳도 있지만, 저렇게 삼나무뿌리들이 자연적인 계단 역할을 해 주는 곳들도 있다.

우리 애들은 아빠한테 단련이 된 편이라 많이 걷는 거로는 투정을 잘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막 여행 시작한 단계기도 하고... 해서 제법 긴 코스(3~4시간)로 길을 정했다.
최소한 엄마 아빠가 사진으로 담았던 "모노노케 (히메)의 숲"에서 네식구 사진 한 장은 다시 박아야 하지 않겠냔 말이다... 라고 하고 진짜 가서 사진을 찍었지만... 아, 사진을 잃어 버린 게 이렇게 상실감이 크다니 ㅜㅜ

"모노노케 (히메)노 모리" 근방에는 정말 사슴신이 앉아 있는 듯한 모양의 거대한 삼나무도 있다. 애들은 보자마자 외쳐댄다.

사슴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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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영화를 보고 왔고, 또 걷다가 숲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야쿠시마 사슴(야쿠시카)은 애들에게 신비로움 자체다.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어서 종종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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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슴들은 우리를 만나도 어느 정도 거리만 유지되면 태평하다가 섣불리 다가가려 하면 딱 그만큼의 간격을 유지했다. 애들은 약이 오를만도 한데, 지치지도 않고 사슴을 만날 때마다 "컨택트"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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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장의 사진들이 머리에 떠 다니는(ㅜㅜ) 시라타니 운수계곡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마무리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은 산을 약간 깎아 만들었는지 한 쪽에 나무로 방책을 세워뒀는데, 그 위에 한가로이 먹이를 뜯는 사슴 두마리가 있다.
두 꼬맹이들은 이끼를 뜯어서 먹이로 유인해보려는 심산^^. 딱 1미터를 남겨두고 물을 건너버리는 야속한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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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사슴이 먹이를 먹던 곳에 이끼를 내려두지만 사슴은 고개만 돌려 쳐다볼 뿐이다. 근데 사슴이 먹던 게 이끼는 아니지 않았을까? 이걸 얘길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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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그 녀석은 숫컷인데 뿔이 중간 쯤 자란 걸보니 아직 어린 녀석 같았다. 암컷과는 부부 사이인 듯 보였는데 암컷이 경계심이 더 많아서 먼 거리를 유지했고, 숫컷은 암컷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아슬아슬 꼬맹이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만 하지 접촉을 허하진 않는다.

계속 이끼로 마음을 표현하는 우리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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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사슴은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게 만들더니 떠나 버렸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엄청 실망한 건 아니고...
자연에서 살고 있는 동물과의 교감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다르게 생긴 생물 특히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거부감(남자는 여성들에게 죄인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을 실제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교육이리라.

아참, 사진을 보니 생각이 났다. 야쿠사마 카페리에 있는 동안 애들은 첨 보는 슬럿머신 오락기기가 있는 오락실에서 한참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식당과 마주보고 있는 지라, 음식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보내줬는데 음식이 나와도 올 생각을 안해서 찾으러 갔더니, 어떤 아저씨가 오락하고 있는 모습을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바로 저 시계를 차고...???
아저씨가 뽑기로 얻게 된 시계를 갑자기 주더란다. 그걸 또 동생이랑 서로 갖겠다고 실랑이를 했겠지(안봐도 비디오 아닐까...)
내가 갔을 때 막, 그 아저씨가 손목시계를 하나 더 받아서 주고 있었다. 뭐 조악하기 그지없어서 이 삼일만에 망가져버리긴 했지만^^


IMG_1231_wide1080.jpg?type=w773 시라타니운스이쿄 -> 미야노우라항 행 버스 시각표


탐방로를 나오면서 안내소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담았다. <버스시각표>.
시라타니운스이쿄에서 미야노우라 항까지 운행하는 버스 시간이다. 아마도 산행을 마치고 이곳으로 하산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겠지. 아, 정말 야쿠시마에 산행하러 다시 오고 싶다는... 물론 내일 애들과 함께 죠몬스기를 만나러 갈 예정이지만, 진정한 산행은 코야나 텐트에서 비박 함 해 주야 하는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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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는 당장 내일 우리들이 탈 버스에 대한 거라서 담았다.
우리가 가려는 죠몬스기가 있는 등산로가 '아라카와'라는 군. 코맹이들과 같이 가야만 하는 우리는 최대한 일찍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10년 전과 달라진 건, 따로 운행하는 버스 말고 일반 승용차는 아예 토잔구찌(등산 입구)까지 갈 수 없도록 했다는 거... 그래서 죠몬스기를 만나기 가장 무난하고 짧은 코스인 이곳으로 가려면 무조건 야쿠시마 자연관에 주차를 하고 버스를 이용해야만 한다.
우리는 05:20분 버스를 이용해서 산행을 최소 06시에는 시작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나중에 숙소에서 히다카상한테 예상 하산 시간을 물어서 17:00정도의 버스로 돌아오면 되겠다는 힌트를 받았다.


바다 거북의 알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있자니, TV를 보며 이웃과 환담을 나누던 히다카상이 맥주를 권한다. 맥주는 두고 커피를 한 잔 얻어 먹었다. 민숙은 예전의 생기는 많이 잃었지만, 그 자리를 편안함 같은 걸로 많이 채웠다. 맥주고, 밥이고 커피고 음료고 원하는 사람이 알아서 챙겨서 먹으면 된다. 그렇다고 비용이 얼마니 하는 것도 없었다. 그만큼 안면이 있는 단골들만 찾아온다는 걸테고...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노력 같은 게 별로 없는^^

우리의 야쿠시마 여행일정을 얘기하다가 10년 전 처럼 바다 거북이 산란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지금은 산란철이 좀 지나서 어렵단다. 대신 이른 놈들은 벌써 부화를 해서 모래 밖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이 나온 김에 같이 가서 보자며 바로 나선다.

팬션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왕복 2차선인 섬 순환도로고 그걸 건너면 바닷가다.
모두 슬리퍼 바람에 히다카상의 랜턴 불빛을 따라 바닷가 모래밭으로 나아갔다. 좌우를 살피던 히다카상이 갑자기 꿇어 앉아서는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17-02-03_11.26.54.png?type=w773 산호사가 아닌 해안모래사장은 화산 활동의 부산물이라서 색깔이 검다


한 두 군데 정도를 파던 손이 멈추더니 탁구공보다는 좀 작고, 메추리알보다는 약간 큰, 알이라고 하기에는 구에 가까운 하얀 거북이알을 꺼냈다. 그리고 꼬맹이들 손에 쥐어 준다.
애들 눈빛이 마냥 반짝인다. 낮에 사슴과의 조우는 보기좋게 실패했지만, 더 어리고 연약한 생명체와의 조우로 그 기억조차 완전히 날려버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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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10년 전 엄마, 아빠가 느낀 그 따뜻한 알의 감촉은 없었다. 이미 낳은 지 좀 지난 애들이라서... 그때 10년 젊었던 히다카상은 산란하고 끈적한 액체가 묻어있는 걸 우리 손에 올려주었는데, 지금은 부화가 임박한 알을 꺼내서 우리 애들 손에 올려주고 있다^^

껍질이 곧 찢어질 듯 얇아진 약간 말캉말캉한 알들이 혹여 깨지거나 찢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받아들었던 녀석들... 이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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