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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일주06_죠몬스기 만나러 가는 길

2015.8.12

by 조운
아라카와 등산입구까지 가는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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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일 ~ 11월30일까지(친절하게도 "275일간"이라는 표시까지^^) "죠몬스기 아라카와 노선"은 자가용이나 렌트카 등으로 오를 수 없단다.
그 노선이라는 게 바로 사진 아래쪽 박스에 있는 빨간색 선이다. 총 길이 4킬로의 구불구불한 언덕길.
10년 전에는 운전해서 올랐었는데, 그 사이 정책이 바뀐 듯하다. 한 겨울을 제외하면 버스를 이용하는 수 밖엔 없어 보인다. 그새 야쿠시마 자연관이 생긴 건지, 아님 10년 전에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는지... 여튼 거기서부터는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중간에 거대한 수력 발전용 댐도 있고, 산정 터널도 지나고 해서 재밌었던 기억(야쿠시마 신혼여행기3 포스트 내용을 보니 오다테댐이군.)이 나는데... 이젠 따로 내려서 구경할 순 없는 듯 하다. 물론 등산할 때 걸어서 가면 되지만 완전 무리데스일테고, 하산길 4킬로야 도전해 봐도 좋을 듯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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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많은 분들이 와서 줄을 서 있다. 우리도 정류소에서 티케팅을 하고 줄을 섰다. 야쿠시마는 관리를 위한 전문 레인져(우리로 치면,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이 배치되어 여행객들에게 편의와도 제공하고 감시(?)도 하고 있다. 정류소에서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뭔소린지는 대부분 못 알아들었지만^^

시간이 되자, 버스가 내려왔다. 도로가 좁아서일까 대형버스는 아니고 중형 정도의 크기.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이다 보니 가운데 복도에 까지 간이 의자를 배치해서 가득 싣고 나서야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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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기온이 시시각각 변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산뜻한 바람이구나 하는 순간 도착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엄마가 만든 김+밥(김과 밥과 소금만 있는^^)을 질겅이면서 기념으로 한 장씩 찍었다. 이 놈들은 7,000년 동안 살아왔던 어떤 생명체와의 조우에 양컷 고양된 상태였지만, 8월 오키나와보다 위도상 약간 위쪽에 있는 섬에서 쌀짝 한기를 느끼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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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지점은 실은 예전 야쿠시마에서 살벌하게 삼나무 벌목이 진행될 때, 나무를 실어내려오던 철길의 종점이었던 곳이다. 사진에 보이는 기차를 여기서는 "토잔도라쿠"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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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지점에 적혀 있는 정보만 봐도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현위치 해발고도가 600m 정도인데 다카즈카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죠몬스기는 1300m에 있다. 트레킹 거리도 11km 정도 되는 군...ㅎㅎ 죽었다 이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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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고 신나서 촐랑대는 놈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저 뒤에서 우리 가족들 인적 사항을 적고 있는 듯하다. 혹시나 사고에 대한 대비라 생각하고 꼼꼼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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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시작하면 한동안 계속 철길을 따라 움직인다. 별로다. 철길은 보폭을 편하게 할 수가 없어서 과외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리고 흙길보다 발의 일부부만 닿아서(누적해서 같은 부분만 닿는다) 쉬이 피로해 지기도 한다. 어른의 경우고, 애들은 훨씬 편했다고 한다. 발이 작아서 그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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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우리 뒤를 따라 오는 것처럼 보이는 저 팀은 일본인들이다. 맨 앞의 터벅머리 총각은 가이드이다. 죠몬스기 등산을 우리처럼 가이딩없이 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 전문 가이드와 함께 움직였다. 가이드는 식생이나 역사, 문화 등 해설가 역할도 했지만, 약간 위험할 수 있는 산행의 안내자이자 보디가드이기도 했으니... 우리나라야 워낙 등산인구가 많아서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 이 정도의 긴 산행은 전혀 일상적인 것이 못된다. 그래서 전문가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저 가이드들은 본인 손님들에게는 상당히 친절한 해설가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좀 쌀쌀맞게 대했다. 일부러 들으려는 것도, 들어도 이해되는 것도 아닌데... 자꾸 신경을 쓰고 말야... 여행하면서 원주민에게 물을 수 있는 일상적인 질문(하산길은 얼마나 남았나? 인근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은 어디냐? 등등)에도 건성건성 대꾸했다. 고객들에게 더 집중하려는 거라고 좋게 생각했지만...


터널을 지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어둡고 긴...
이상한나라의 앨리스나 센과 치히로의 모험 등 수많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다분히 봐왔떤 터널의 이미지와 완전히 겹쳤다. 그리고 실제 저 터널을 지나면 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어어... 잠깐.
이 터널 혹시?


2006.5.30

역시. 그랬구나.
우리 부부 신혼여행 때도 여기까지는 왔었구나. 아무리 등산을 하자고 맘을 먹었지만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하루를 완전히 산에서만 보내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3000년 된 삼나무만 봐도 어마어마한테 굳이 7000살 나무를 봐야 할까하는...

그렇게 10년 전엔 딱 이 터널까지만 와서는 사진 찍고 돌아갔었구나.


아, 그때 저 처자 참 고왔는데...^^.
10년이 지났는데도 몸매는 아직 뭐^^.
근데 성격과 목소리는 왜 남자로 변하셨나요?~~ ㅜㅜ
아들 셋(?) 키우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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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게이트 같은 터널을 지나면 완연한 숲이 갑자기 나타나긴 한다.
지붕으로 절벽의 물을 받아서 반대쪽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저런 곳을 지나는데 마치 하나의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건너가는 두 번째 게이트라고나 할까.
사진만 담으려하면 손가락 두 개를 자동으로 올리는 촌스런 사내녀석들과 사진만 담으려하면 쑥쓰러워 하는 촌스런 아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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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뒷모습이라도 담겨야 겨우 등장하는 촌부^^까지. 식구들은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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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김밥 만들고 애들 깨워서 입히고... 정신이 없어서 DSLR을 숙소에 두고 왔다. 사실 사진을 담자면 오늘이 하이라이트인데...
그래도 인생사 세옹지마라고... 지금 DSLR 데이터를 홀라당 잃어버린 상황이 되다보니, 그나마 이 날 하루 동안의 사진은 모두 다 가지고 있다는...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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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 생긴 삼나무를 만나면 사진을 많이 담았고 고맙게도 사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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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쿠 길을 따라 걷다보면 너무 맑아서 이 세상 물빛 같아 보이지 않는 계곡위로 건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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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좀 되어서 애들이 따라 올까봐 내려가 보질 못했다. 손이라도 한 번 담궈 보고 싶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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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은 물 속에 뛰어 들고 싶으나, 혹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닐까 약간 두려웠고 손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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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일본 삼나무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야쿠시마. 과거 군수물자 징발 시절의 살벌한 경험을 토대로 지금은 벌목한 만큼 조림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야쿠시마 땅 반 이상이 세계문화유산에 올라와 있기도 해서 여기저기 새롭게 조림한 어린 삼나무들이 많이 있다. 자기들 키만한 삼나무를 보며, 지들이 결혼하고 다시 오면 얼마나 커 있을까를 얘기한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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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아도 돌아도 철로길이다. 슬 지쳐갈 무렵 이정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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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걸어 온 길이 고작 70분 밖에 안된다고 ㅜㅜ.
그리고 이 철로길이 앞으로도 60분이나 더 지속된다는 말은 고작 철길 반 정도를 왔다는 말...
윌슨그루터기까지 90분, 죠몬스기까지는 175분. ㅋㅋㅋ
한자건 일어건 전혀 모르는 애들한테는 비밀이다.
조금만 있으면 묻기 시작할 테지.
"아빠 얼마나 남았어?"를 1분마다 말이다. 그럼 난 또 "다와가~"를 1분마다 외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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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시라타니 운수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되는 분기점이기도 한 모양이다.
지금까지의 산행을 종합해 보면 풍광면에서는 시라타니에서 올라오는 게 훨씬 탁월한 선택일 듯 싶다. 그리고 여기 분기점에서 이 철로와 만나 1시간 정도만 철로를 따라 걷고, 다시 산길을 따라 죠몬스기까지 가는 것이 제일 좋은 코스 같다.

두번 쯤 와보니 대략 감이 잡힌다. 남은 생 동안, 막 잡은 이 감을 활용하러 한 번 더 와봐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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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에서 처음 만난 식수가 나오는 코야. 화장실도 딸려 있고 등산로 바로 옆이라 위치도 좋고... 다만 굳이 등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 곳에서 1박을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서 아무도 쓰지 않는 집인 듯하고, 사람이 쓰지 않으니 더 낡고 지저분해 보였다.
여기서 우리는 가지고 간 수통 4개(총 2리터 분량)에 가득 물을 채웠다. 물론 전부 내 가방에 들어가지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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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곶자왈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짙은 그늘의 삼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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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삼나무.
이름대로 한 세대 위에 그 다음 세대가, 다시 세 번째 세대의 나무가 성장하고 있는 나무란다. 그림대로 1,500년 전 1대에 해당하는 나무의 그루터기 위로 2대가 덮으면서 자랐고, 그 2대 마저 베어지고 남은 그루터기에 3대째 나무가 자라서 이 만큼 성장한 거라는...
그 사이 1대 나무는 모두 분해해서 먼지로 돌아가고 지금은 나무 밑둥이 공동으로 뚫린 거란다. 죽음과 탄생이 등을 맞대고 있는 듯 보이는가? 마주보고 있는 듯 보이는가? 어쩌면 둘은 사람들 머리 속에서만 갈라놓은 하나의 현상에 대한 개념적 분리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이성이 상상해 낸, 개체가 있고 피아가 있어야만 버틸 수 있는 우리 이성의 한계가 만들어서라도 버텨야만 하는 개념적 상상. 개체란 그냥 관념적 상상 또는 믿음의 산물은 아닐까?
뭔 말도 안되는 소리냐 할테지만, 저런 나무를 보고 있자면 절로 그런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IMG_1289_wide1080.jpg?type=w773 3대 삼나무. 몇 몇 굵직한 모타리의 나무들에는 이름을 지어 주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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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한 시간 정도 걸었다. 갑자기 조용하던 숲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설마했는데, 아까 봤던 그 도라쿠가 실제 운행도 가능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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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다가오는 도라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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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째는 운전하는 저 일본인에게 저 찰라의 순간, 큰 소리로 외친다.

아저씨, 태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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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유유히 고개를 돌아 가버리는 매정한 도라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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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약간 움푹 들어간 절벽 아래 저런 게 놓여있다.
혹시 가시거든... 정말 궁금하거나 급하지 않다면 그냥 지나치시라... 수세식 화장실은 아니라는 힌트만 남기고 패스하기로... 아이디어가 재밌긴 하지만, 두번 다시 보고 싶지는 않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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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걷는다. 사람들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고 했다잖은가... 올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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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이건?
아까 봤던 그...
운전기사와 보조석의 아저씨는 어딜 간 건지... 여튼 여기가 철로의 끝이다.
그리고 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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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물이 있다. 2층이 공중 화장실인데 아주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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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정말 편안하게 낭창낭창 산보하는 코스.
이제부터가 다카츠카 산의 속살로 들어간다고 봐야한다.

새벽에 일어난 데다가 갑자기 많은 양의 운동으로 고단해 하는 어린 것들...
그것들을 독려해 가면서 산행을 마무리해야하는 일생일대의 모험 앞에 선...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한 가장의 고뇌와 애환의 회고는 다음 포스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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