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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Jul 30. 2018

뱀파이어 유형론

예전에 <뱀파이어 헌터 D Blood lust>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논문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뱀파이어의 유형을 분류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형성 방식을 비교하면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중에서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의 유형을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이 애니메이션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뱀파이어 헌터 D』라는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30여년간 연재되고 있다고 하니 많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는 시리즈라 할 수 있겠습니다.


<뱀파이어 헌터 D Bloodlust>에는 새 명의 뱀파이어가 등장합니다. 

먼저 고전적 캐릭터인 괴물로서의 뱀파이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카밀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카밀라는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된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캐릭터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캐릭터에 비해서 더 도드라지게 유형화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카밀라의 겉모습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1992)>의 드라큘라의 모습을 많이 따왔다고 생각됩니다.

출처 : <뱀파이어 헌터 D Blood lust>
출처: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

위는 카밀라고 아래는 드라큘라입니다. 양갈래로 특이하게 올려튼 헤어스타일과 입고 있는 붉은색의 복장은 둘 사이의 공통점을 짐작하게 합니다. 특히, 저 헤어스타일은 원작인 『드라큘라』에서도 서술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때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찝찝힘을 가지게 합니다. 둘 사이의 유사성은 외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출처 : <뱀파이어 헌터 D Blood lust>
출처: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

위의 두 스틸컷을 보시면 방향만 다를뿐 두 캐릭터의 복장 및 구도가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감독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라는 거장이 만들어낸 뱀파이어 캐릭터를 일부 차용하여 본인의 오리지널 캐릭터의 생동감을 좀 더 살리고 싶어하지 않았을까요? 

재밌는 건 이 둘은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정체성에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큘라가 야수(때때로 야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카밀라는 거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밀라의 성인 체이터 성 곳곳에는 거미의 이미지가 반복해서 나타나며, 카밀라의 사냥법은 거미줄을 치고 날아든 사냥감을 잡는 거미의 그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 두 캐릭터가 비슷한 외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둘 사이의 성별의 차이가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카밀라의 성별은 드라큘라와 달리 여성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원형은 여성 뱀파이어 캐릭터인 세퍼뉴의 「카르밀라」의 카르밀라와 실존인물인 바토리 백작부인에서 따왔다고 생각합니다.. 

카밀라와 카르밀라의 이름의 동일성(실제로 카르밀라의 원어명은 'Carmilla'입니다. 읽기에 따라서는 카밀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카밀라가 살고 있는 '체이터'성과 바토리 백작부인의 '체이테'성의 명칭의 유사성은 카밀라의 캐릭터 원형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렇기 떄문에 카밀라는 젊은 여성의 피를 뒤집어쓰고 재생하는 여성 뱀파이어라는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더없이 유연한 팔다리, 탄력적인 피부, 그리고 납관 바닥에서 이십센티 높이까지 고여 있는 핏물에 시체의 상당부분이 잠겨 있는 것은 바로 뱀파이어의 존재를 알리는 흔적이자 증거였다.
죠셉 셰리든 레퍼뉴,「카르밀라」,『뱀파이어 걸작선』,pp. 117~118.


젊은 여성의 피가 자신이 잃어버린 젊음을 되돌려 줄 것으로 굳게 믿게 되었다......(중략)....그리고 이들을 잔인무도하게 고문한 끝에 죽이고, 그 피로 목욕을 즐겼다.
한혜원,『뱀파이어 연대기』, p.68
카밀라가 샤를롯의 피로 되살아나 관속에서 나오고 있다. 출처 :  다음 영화

카르밀라, 바토리 백작부인, 카밀라 셋 모두 관 또는 욕조에서 핏물에 자신의 육체를 담가서 재생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또한, 셋 모두 감정적 동조의 여지가 없는 악역입니다.


나머지 두 뱀파이어는 카밀라와 다르게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입니다.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이후 인간적이고 고뇌하는 뱀파이어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두 뱀파이어 역시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마이엘 링크는 낭만적인 캐릭터로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는 뱀파이어입니다. 속칭,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로맨스 소설, 팬픽 등에서 많이 등장하는 뱀파이어 캐릭터입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이와 같은 뱀파이어 유형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에드워드가 있습니다. 이 유형의 뱀파이어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피를 빤 적이 없으며, 사랑하는 대상은 인간 여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전적 유형에서는 괴물의 일종이었던 뱀파이어와 열애라는 소재가 엮이는 것일까요?

첫번째로 뱀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귀족적 이미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처음 뱀파이어가 문학적으로 형상화 된 것은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에서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인 루스벤 경은 오싹한 매력을 가진 미남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빼앗는 유혹자로 등장합니다. 다만, 마이어 링크 등의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뱀파이어들과는 다르게 여성들을 유혹하여 생명을 빼앗는 괴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루스벤 경의 캐릭터에서 괴물로서의 모습을 없애면 매력적인 귀족 뱀파이어의 모습이 그려질 것입니다. 

두번째로 뱀파이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섹슈얼리티한 이미지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는 물론 뱀파이어를 다른 문학에서도 뱀파이어는 섹슈얼리티한 내용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이미지를 내포합니다.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와 테오필 코티에의 <죽은 연인>은 섹슈얼리티한 내용이 서사의 일부분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죠셉 셰리든 레퍼뉴의 <카르밀라>는 동성애적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뱀파이어들이 성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은 그들이 인간의 피를 빠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실례로 드라큘라가 미나의 피를 빨고 자신의 피를 먹였다는 서술이 서로의 체액의 교환이라는 모티프로 성관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흡혈행위가 번식을 위한 행위이므로 마찬가지로 성적 관계로 연관짓기도 합니다.

흡혈행위는 단순히 자기 유지를 위한 영양 섭취만이 아니라 종족의 번식을 가능케 한다. 흡혈귀들에게는 섭식과 생식이 하나의 행위로 통일되어 있다. 그래서 흡혈행위는 일종의 성적 결합으로 묘사되어 흡혈귀가 된 여인들은 정조를 잃은 것처럼 생각한다.
장영란, 『죽음과 아름다움의 신화와 철학』,p.206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변형적 발현이 이러한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뱀파이어 소비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서사가 발달되면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백마탄 왕자라는 평면적 캐릭터보다는 귀족적이지만 어딘가 위험해보이고, 섹슈얼리티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강력한 뱀파이어라는 입체적 캐릭터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유형의 뱀파이어들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속성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개념과 비슷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여러가지 점에서 현실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이상적인 연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변형이라고 생각됩니다. 낭만적인 뱀파이어들이 여성 타깃의 로맨스 소설 등에서 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웅적인 뱀파이어 캐릭터입니다. <뱀파이어 헌터 D Blood lust>에서는 주인공 D가 그러한 캐릭터입니다. 

출처 : 다음 영화

D와 같은 캐릭터의 본질적 속성은 뱀파이어라기보다는 오히려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헌터에 가깝습니다. 뱀파이어 헌터라는 캐릭터에 뱀파이어의 속성을 덧씌운 것이 이들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캐릭터는 일반적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이거나 '괴물을 상대하는 자는 스스로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두 가지의 존재형식을 갖습니다. 전자의 예로는 <헬싱>의 아카드가 있고, D는 후자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뱀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괴물성이 극도로 발휘되는 모습으로 나오거나, 오히려 뱀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귀족성을 부각하여 괴물적 특징을 귀족적인 이미지로 덮어버리는 전략을 취합니다. 후자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속성을 모두 가진 존재로 설정되며, 따라서 경계에 선 자신의 존재 양식에 대한 고뇌 혹은 불안이라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D 역시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인 '던필'입니다. 뱀파이어의 힘을 가지고는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뱀파이어가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의 경계에서 불안해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 뱀파이어 헌터, 뱀파이어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 등은 마치 영화 <블레이드> 속 주인공 블레이드를 연상시킵니다.

<블레이드>의 주인공 블레이드 출처 : 다음 영화

<블레이드>에서 블레이드는 흔히 '데이워커'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이 별칭은 블레이드라는 캐릭터를 꿰뚫는 정체성입니다. '데이워커'라는 별칭은 말 그대로 '낮을 걷는 자'이며, 뱀파이어지만 밤 하늘 아래를 걸어다니는 뱀파이어와는 다른 빛에 속해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D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낮을 걷는 자'이며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뱀파이어보다는 빛의 존재인 헌터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모와 설정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뱀파이어적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행동은 초월적 힘을 가진 헌터의 그것과 같습니다. 

이들의 영웅성의 근간에는 뱀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초인적인 능력들이 있습니다. 강력한 힘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특출한 생명력 등의 뱀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힘은 이들을 특별하게 하고, 뱀파이어들을 압도하게 합니다. D의 경우에는 고대 영웅적인 신이한 혈통이라는 옵션이 하나 더 붙어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알 수 없지만 부계의 혈통은 뱀파이어 왕입니다. 신이한 혈통을 가지고 있는 D는 던필임에도 순혈 뱀파이어들보다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수명 역시 던필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또한, D는 아버지인 뱀파이어 왕이 카르밀라를 쓰렸뜨렸듯이 아버지의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계승자로서의 지위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많은 영웅들에게는 조력자가 있습니다. <블레이드>의 위슬러처럼요. D의 조력자는 특이하게도 그의 왼손에 붙어있습니다. 외모와 목소리, 기생이라는 생존방식을 생각해보면 괴물입니다. 그리고 그런 괴물이 D의 왼손에 속해 있다는 것은 마치 D가 가지고 있는 뱀파이어로서의 괴물적 특징들을 한 곳에 모아서 치워두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괴물적 속성이 별개의 객체로 빠지면서 D가 가지고 있는 헌터로서의 빛의 체제적인 영웅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저는 <뱀파이어 헌터 D Blood lust>에 등장하는 세 명의 뱀파이어들의 유형을 나누어보았습니다. 뱀파이어라는 괴물의 역사는 굉장히 길고, 정말 많은 콘텐츠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의 유형을 이 세 가지 유형으로 모두 나눌 수는 없습니다. <뱀파이어 헌터 D Blood lust>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의 유형을 분류한 것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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