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닮은 Oct 15. 2021

단정함의 미덕

나는 아빠를 닮았다.



어려서부터 엄마한테 너는 참 단정하지 못하다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자랐다. 이런저런 나의 성격적 특성에 대해 엄마는 불만을 늘어뜨리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데, 가끔은 나를 싫어해서 저러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부정적인 어감을 담은 말들은 나를 자주 무너뜨렸다.


엄마와 언니는 대체로 성격의 결이 비슷해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성격과 정 반대다. 언니와 엄마는 내향적인 편이라면 난 외향적인 성향이 짙고, 그들이 대체로 말을 아끼는 편이라면, 나는 내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말하기를 즐긴다. 엄마는 이 점에 대해 어디든 가서 말하는 것도 좀 줄이라고 잔소리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가 내게 하는 말들을 다 적어보면 나는 장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내가 맘에 안 드는 것일까. 가끔은 슬프기까지 하다.


날 낳아준 엄마가 나를 이토록 맘에 안 들어하는데 나도 나의 단점만 보았다. 당연히 타인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테니 조심히 굴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생긴 건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울 것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타고난 성질에 맞는) 자라온 환경(엄마가 하는 말들이 곧 법인)에 의해서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많이 어려웠다. 내 성격을 제어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 매력을 어필하기가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 하건 별로 상관도 관심도 없는데(나는 아빠를 닮았다.) 나에겐 엄마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 엄마의 눈치를 살피던 것이 대중에게 옮겨갔다. 인기를 얻는 것이 곧 성과인 나의 직업에서 나는 대중의 눈치를 많이 살피게 되었다. (내게 대중이라 하면 인스타 팔로워나 좋아요 수치 정도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반응이 없으면 의기소침해졌다.


엄마는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 부족함을 나아지게 해주고 싶은 것이었을 뿐, 정말 나를 싫어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나에겐 너무 지나치다. (아마 아빠를 많이 닮은 내가 겪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같다. 이 둘은 사이가 좋지 않다.) 칭찬은 어쩌다 한 두 번 하는 것이 전부이고(그 마저도 내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 풀어주려고 하는 것 같지만) 잔소리나 내 성격을 부정적으로 짚는 말들을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내뱉으니 나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자존감을 지키기가 어렵다.


남이라면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만, 가족이라 그럴 수 없을뿐더러 엄마는 내게 중요한 존재라 난 그녀의 말에 늘 신경을 쓰고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받아들이고 고치려고 애를 썼다. 그 덕에 나아진 점도 분명 많을 테지만, 난 더 이상 내가 가진 어쩌지 못한 성격적 특성 때문에 힘들어하고 싶지 않다. 어떤 성격적 특성도 긍정적인 면만 있지 않고, 양면성을 가지는데 엄마에 의하면 엄마 같지 않은 나는 모든 걸 고쳐줘야 하는 부족한 면뿐인 ‘아이’인 것 같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엄마의 평가에 짙은 영향을 받으며 나 스스로를 긍정하기 어려운 모습에 나는 이제 많이 지쳤다. 엄마의 우려와 달리 나는 내 성격대로 잘 산다. 내 무의식과도 다르게 나는 대게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편이다. 10명을 만나면 8명 정도에게서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편이니 사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내 성격 때문에 엄마가 우려하는 만큼의 치명적인 실수나 대미지가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대인관계에 대한 잔소리보다는 개인 생활에 대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아서 아마 엄마는 아빠의 모습이 내게서 보이는 것이 싫은 걸 것이다. 그래서 아빠를 연상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내게서 도려내고 싶은 걸 것이다. 그걸 너무나 잘 알아서 나는 상처 받은 엄마의 마음에 괜찮은 아빠의 모습이 되어주려 부단히 도 애썼다. 하지만 엄마에게 상처를 준 건 내가 아니고 아빠다. 아빠와 닮았다는 이유로 엄마가 내게 행하는 말들은 너무 불합리할 뿐 아니라, 내가 나로 살기 어렵게 하는 큰 장애물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언니처럼 살고 싶지도 않고, 아빠처럼 살지도 않을 거다. 난 그냥 나로 태어났으니 나답게 살고 싶다. 내가 나이기에 때로는 엄마가 하지 않는 실수를 할 테고, 아빠와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수를 통해 난 나의 잘못을 깨달을 권리가 있다. 엄마가 실수할까 염려가 되어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고치는 것보다 내가 나답게 살다 넘어져서 배우고 깨닫고 싶다. 난 매사에 배우는 사람이고, 나의 잘못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싶지만, 내게 늘 부정적인 엄마의 말을 이제는 좀 멀리 하고 싶다. 내게 당연히 있는 단점을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강점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엄마도 사실은 아빠의 좋은 점을 보고 결혼을 했지만, 살다 보니 그런 좋은 점은 잊고 단점만 보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게 된다. 조금만 그 사람이 풍기는 느낌과 비슷한 모습이 보이면 그게 싫고 피하게 된다. 엄마도 내가 사랑하는 딸이니 좋으면서도 아빠의 단점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 부분은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버리고 싶었을 거다. 이해한다. 내 무의식은 계속해서 엄마를 이해해왔지만, 이제는 내 의식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빠를 많이 닮은 나는 엄마가 뭐라 하든 아빠를 닮아 좋은 점을 잘 활용하는 나다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나의 단점에 주목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 주세요. 그 단점이 가진 많은 장점도 있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Noth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