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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Nov 09. 2021

나에 대한 발견

좋아하는 것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 내게 맞는 것은 무엇인가.

올 한 해 나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토록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내 주변 사람들보다도 나에 대한 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면서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는 것으로 보였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떠돌아다녔다. 그 기간은 꽤나 긴데, 이십 대 후반에서 서른의 시간까지 내리 그랬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외부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를 방치했다. 아주 가혹할 정도로. 지금에서는 후회가 되지만, 분명 그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유 또한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들여다봤다. 아주 추상적인 감정부터 구체적인 순간까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감사하게도 좋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는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라고 했다. 내가 나열한 단어들은 '요가, 걷기, 등산, 색연필, 패러글라이딩, 음악 감상, 이야기하기, 전시회, 그림, 빵, 나눔, 좋은 카페, 노래, 악기 연주, 꽃, 맛집 탐방, 표현하는 것, 강아지, 사진, 맛있는 음식, 일정 짜기, 생각, 책, 여행, tv 시청, 라디오, 초대, 유학 가고 싶어, 글쓰기(공감받기, 브런치라고도 적혀 있었다.)'가 있었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나의 열정적인 캐릭터를 감당하기 어려워하여 매우 평온한 것들에 마음이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내가 좋아하는 무드 보드의 이미지도 아주 평온하고 잔잔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고, 주로 듣는 플레이리스트도 대부분 미디엄 템포의 잔잔한 연주곡이다. 나의 성향이 강하니까 균형을 이루기 위해 평온하고 차분한 것들로 나를 다스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는 나의 무의식적인 패턴이 아니었을까. 20대 초반에는 북적이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매우 즐겼는데, 이십 대 중반부터 조금씩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것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성격도 활발하고 왁자지껄했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런 타고난 성격이 존재하지만 조용하고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 된 것 같다. 


사람과 교류할 때는 다수보다 일대일이 편하고, 좋아하는 공간은 고재를 사용하여 어두운 색감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나무의 질감을 좋아하며, 어두운 나무에 편안함을 느낀다. 밝고 색감이 쨍한 것에는 어쩐지 마음이 잘 가지 않아 인상적이라는 느낌은 받을지 몰라도 재방문은 하지 않는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고 자꾸 가게 되는 공간들은 대부분 어두운 색 고재를 사용한 공간이더라. 아직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나의 집 인테리어 색감은 이미 정해진 것 같다. 마음을 풀어놓고, 쉴 수 있는 편안한 곳으로 훗날 내 집을 이루고 싶다. 


너무 많은 다양한 자극에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사람이었다. 지난주에 친애하는 코치님의 추천을 받아 자주 다니는 지역에 한 한의원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8 체질 중 하나로 나의 체질을 진단받았다. '금음 체질'로 모든 육고기와 밀가루는 피해야 하며, 푸른 잎채소를 잔뜩 섭취하는 것이 좋고 해산물과 어패류가 잘 맞는다는 식이요법에 대한 권유를 받았다. 이 체질의 특징으로는 간이 약하다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먹는 것이 굉장히 제한되고, 건강 보조제 같은 것들도 챙겨 먹지 않는 편이 더 유익하다고 했다. 다행히도 건강 보조제를 딱히 챙겨 먹는 편이 아닌 터라 이는 예상 밖에 내 체질에 맞는 이로운 습관이었다. 


긴장을 잘하는 편이라 몸과 신경이 예민한 기질이 있고, 그 때문에 다한증과 알레르기가 나타나는 것이라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다한증은 해가 지날수록 나아졌지만 알레르기 증상은 심해졌는데, 식이요법과 침 치료를 병행하면 많이 좋아질 거라 했다. 실제로 침을 맞은 바로 다음 날, 몸에 이상하게 긴장이 풀리고 졸리더니 아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너무 신경이 예민하고, 긴장을 많이 하고 지내서 이유 없이 몸이 아픈 증상이 심했는데, 그런 증상도 말끔히 사라졌다. 이렇게 독한 약이나 칼을 쓰지 않고도 증상이 나아지는 경험 덕에 나는 한방 의학을 좋아한다. 


한의사 선생님은 내게 평소에 짜증이나 화를 많이 내는 편이냐고 물어봤는데, 이상하게도 가는 한의원마다 내게 질문하는 것이라 내가 짜증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집에서는 그렇고, 밖에서는 거의 티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가급적 화나 짜증은 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감성적인 자극에도 예민한 편이라 다른 사람들은 100의 자극에 70 정도로 반응한다 하면, 나의 경우엔 95 정도의 자극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그러니 너무 많은 외부 자극을 받는 것은 좋지 않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조절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가지를 하는 것을 지겨워하고,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늘 다양한 자극들에 둘러싸여 살아왔는데, 요새 느끼는 것은 이제 좀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프리랜서라 고정적인 자극의 환경이 아닌, 매번 새롭고 달라지는 환경에서 지내야 하는데 그런 외부 환경에 나는 꽤나 취약했다는 것을 이제야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일하고 나면 2~3일을 내리 쉬었어야 했구나.' 이제야 이해가 간다. 다양한 것에 관심이 있는 것도 이제는 조금 추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너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자극도 말이다.


이번 달에는 일적인 스케줄이 많지 않아서 사람들과의 약속을 많이 잡았는데, 나의 의지로 잡아 놓고도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하루도 단순하게, 일도 단순하게, 만나는 사람도 단순해지면 조금 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나의 삶의 루틴에 선택과 집중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한 것 같다. 아직도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이 있고, 해보고 싶은 것이 많지만, 무게 중심을 둘 것과 가볍게 두어야 할 것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인생은 꽤 길고, 아직 나는 삼십 대에 불과하니 하고 싶은 것들을 꼭 지금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긴 템포로 살아가는 것이 신체와 정신, 마음의 건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의 나를 존중하며 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예전에 기대했던 바대로 살고 있지 못하더라도 나는 꽤 괜찮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성장과 성숙이 있으니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떠하든 받아들인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잘 알아가고, 존중하며 나와 잘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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