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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Oct 26. 2021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나의 시간

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씻은 이후의 시간이 참 좋다. 햇살이 밝은 대낮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혹은 조금은 더 좋은 시간이 자기 전의 무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이다. 그래서 이 시간이 되면 마음이 설레거나 매우 차분해지는데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서 그렇다. 이 시간에 나는 아주 나른한 음악을 틀어놓거나, 책을 읽는다. 일기를 쓰거나 글을 쓰기도 한다. 사실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보다가 시간이 다 가서 하루를 정리하는 데에 할애하는 시간이 미뤄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나는 나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예민해지곤 한다. 이런 나를 정의로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하는 기억들이 떠오른다. 연애를 할 때에도 나는 상대가 지나치게 나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꺼려한다. 집착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이라도 나의 시간을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헤어짐을 고했다. 그만큼 나의 시간에 대해 단호한 편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사수하려고 하는 것이 나의 특성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나는 회사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나의 시간이 중요하고, 그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기에 정말 좋아하는 일들을 하지 않는 이상, 회사에 들어가서 나다움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좋아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업무를 잘하려고 애쓰는 일은 나에겐 곤욕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지금으로선 프리랜서로 불안정하더라도 나의 시간을 가지며 사는 것이 좋다. 이렇게 여유롭게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좋다.


아마 조금은 늦은 이 시각까지 내가 잠을 자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나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비로소 이런 나를 인정하고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중이다. 좋아하는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보내고, 그 속에서 어떤 사소한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 행복하다.


이런 여유로움을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정한 할 일들을 잘 해내야 한다.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무엇을 바라지 않는 삶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 이루고 싶은 일들이 많다. 그래서 크고 작은 목표들을 정해 한 달을 꽉 채워 살아간다. 내 맘 같지 않고, 어려운 일들도 많고,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해야 하는 일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그건 어느 곳에 있든 마찬가지일 것이니 나만의 고단함은 아닐 것이라 위안한다.


일기를 막 쓰고 적고 싶은 메모가 있어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 '나는 지금도 충분하다.' 언제나 나를 닦달하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어쩌면 다짐하듯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닦달하며 살지 말고,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살아달라는 내 안의 어떤 자아가 하는 말 같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부터다. 우선은 어린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야 하겠지만, 그 아이의 모습 그대로 온전하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아이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나 그 아이이기 위해서 장난감을 더 잘 정리해야 하거나, 이를 더 잘 닦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아이의 더 나은 생활습관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그 아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무언가 더 해야 할 것도, 잘 해내야 할 것도 없이 그 자체로 온전하다.


이는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고유의 특성을 가진 온전한 존재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해야  자질이나 배움 같은 것이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갖추지 못했다고 온전하지 못한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지어진 모습을 잃지 않고  안에서 가장 좋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와 비교하는 일도 없을 테고,  자신만의 속도대로 저마다의 삶의 의미를 찾아 살아갈 테니까.


그리고 나는 나라도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다. 더 이상 이런저런 이유로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나의 지어진 목적대로 가장 나답게, 가장 좋은 나를 찾아 살기로 했다. 당연히 삶이 순탄하거나 평화롭지만은 않을 테지만, 가뜩이나 쉽지 않은 인생길에 나답지도 않은 옷을 입고 낑낑 대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조금은 불안하더라도 그 속에서 평화를 찾고, 숨 고르기를 하면서 내게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고 싶다.


내게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버릴 생각들을 정돈해 두는 것에 의미가 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이야기와 순간의 마음을 붙잡아 의미가 되게 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책까지 읽기는 어렵겠다. 숙면을 취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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