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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Nov 01. 2021

시월의 마지막 날

N잡러의 고백

정말 바쁘게 보낸 시월이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N 잡러 가 되어 정말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모델 일로만 먹고살 수 있던 때에는 이렇게 사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고, 또 그럴 에너지도 없었다. 분명 지금보다도 더 젊은 날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오로지 모델 일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일을 할 마음의 여유도, 용기도, 힘도 없었다. 한 달에 고작 며칠을 일하는 게 다였지만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많은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 너무 많은 시간이 있다는 것이 힘들었다. 일을 할 때에도 하지 않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모델 일이 생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조였다.  


회사와 계약한 이후 3년의 시간 동안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여행도 한번 자유롭게 가지 못했고, 정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365일 일 생각뿐이었다. 일을 많이 해서 일중독인 게 아니라, 일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일중독이었다. 일종의 집착이고 우상이었다. 이걸 깨닫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깨닫고 난 후에 인정하기까지도 또 많은 시간이 들었다. 처음 모델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한 건, 18년도 여름이었다. 당시에 모델 일이 많지 않아 수입이 부족한 상황이 생겨서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모델 회사와 계약을 했고, 몇 달이 지나고부터는 모델 일로 생활하는 데에 어려움 없을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대학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한 덕분이었고, 또 운이 좋았다. 때문에 내게는 취업 준비 기간이랄 게 없었다. 모델 회사와의 계약이 내게는 일종의 취업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다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수많은 메뉴의 레시피를 외우기도 그랬지만, 성향 자체가 낯선 사람을 대할 때 친절하고 싹싹한 편은 아니다 보니 응대하는 일이 힘들었다.  그리고 머리가 커서 어렸을 때 시키는 대로 "네~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학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꽤나 오래 했는데, 그때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기쁘고 즐거웠는데도 나는 무뚝뚝한 점원이라는 인상을 주는 편이었다.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몰리는 카페라 바쁜 탓에 지친 것도 있었지만, 그만큼 서비스직에 적합한 성격이 못된다. 똑 부러지게 할 말을 잘하고, 남들 눈치를 안 보는 편이라 단호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더 잘 맞다. 그래서인지 대학시절 프레젠테이션이나 리더십이 필요한 과목에서는 A+를 놓친 적이 없었다.


아무튼 이런 성격 탓에 나는 서비스직이랑 정말 잘 맞지 않는데, 아르바이트로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서비스직이 가장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비스업을 해야 했다. 2달 정도 일을 했을까. 처음에 내가 제안했던 내용을 카페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일을 하기 시작한 거였는데 나는 당황스러웠고, 그쪽에서는 본인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러면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고, 카페에서는 주휴수당을 무기로 당장에는 그만둘 수 없다며 협박했다. 안 그래도 과도한 요구사항 같은 것이 힘들어 억지로 버티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쪽의 편의를 봐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카페에 피해가 없는 쪽을 택하는 게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할 것 같아 그들이 말하는 주휴수당을 받기에 합당한 며칠을 더 일해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퍽 많이 서러웠다. '나 참 열심히 살았는데... 모델이 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았는데, 나는 왜 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수많은 의문과 현실에 대한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모델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면,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나지막이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사진을 찍는 동생의 졸업작품 전시에 쓸 작품에 모델이 되어주는 일을 했다. 처음 만나는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일하는 하루 새에 꽤 친해졌고, 우리는 그 이후로도 종종 만나 시간을 가졌다. 내가 의상학과를 나왔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것과 새로운 일을 구한다는 걸 안 그중의 한 친구가 내게 유명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했다.


모델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프로 모델로 데뷔를 할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을 때, 내 꿈은 계속해서 디자이너였다. 그림을 좋아해 화가가 되기를 꿈꾸던 어린 시절을 지나, 그림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줄곧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상학과에 간 것도 실기 미술을 하지 않은 내가 갈 수 있는 미대와 비슷한 곳이었기 때문이었고,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나는 모델이라는 일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항상 디자이너로 살기를 꿈꿔왔다. 그런 내게 그 제안은 달콤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가지고 있던 포트폴리오로 제출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면접을 보게 됐다.


모델로 일하면서 수많은 오디션을 보기 때문에 웬만한 자리에서는 긴장을 잘하지 않지만, 새로운 분야에서의 면접이었기에 긴장이 되었다. 면접관은 내 나이 또래의 앳되 보이는 남자 한 명과 부장님으로 보이는 40대 즈음의 남자였다. 내 또래의 남자가 내가 가지고 온 자료들을 대충 훑어봤고, 40대 남자가 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위주로 했다. 나는 모델 일을 하면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포지션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기 때문에, 뽑아만 준다면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월급도 가장 낮게 책정해서 제시했다. 후에 이것이 큰 실수가 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합격을 했고,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과도하게 많은 일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해결해내야 한다는 걸 근무한 지 며칠이 지나 알게 된 나는 처음 내가 제시한 월급이 얼마나 적은 금액이었는지 깨달았고, 월급을 올려 달라고 제시했다. 처음 제시한 금액이 워낙 낮은 금액이었기에 많은 인상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조금은 인상된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브랜드의 남성 넥타이를 디자인하는 업무를 했고, 그와 동시에 나를 면접했던 또래의 남자가 추진하는 새로운 브랜드 론칭 사업의 몇 안 되는 팀원으로 많은 업무를 맡아 일했다. 3달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는데 얼마나 일을 많이 했던지 4-5개월은 일한 것 같이 느껴진다. 일이 과도하게 많았고, 회사의 목표치는 과도하게 높았으며 체계는 잡혀 있지 않았던 터라 체력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정돈되지 않게 혼란스러운 생활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모델 일을 할 수 있게 시간을 빼줬지만, 그 이후에 야근으로 내가 빼먹은 시간들을 채워야만 했으며 그와 관계없이도 야근은 일상이 되는 시간을 보냈다. 모델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인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뿌듯함과 기쁨도 잠시,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는 이제 모델 일은 그만두고 회사에만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 시간 동안 나는 과도한 노동착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주는 달콤함에 눈을 떴다. 왜 그리도 많은 직장인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은 스스로 배우는 것이지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서 누군가가 차근차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하면 내 회사에서 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이 지금의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다. 물론 지금 브랜드를 열심히 운영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잘해 볼 생각이 있어서 이것저것 배우는 과정이다. 정신없이 지시 사항에 휘둘리고 업무를 부딪히며 일을 배우는 시간 동안에 사는 게 정말 치열하고 힘들다는 탄식이 자주 나왔다. 어찌 됐건 남들과는 다른 특혜를 누리면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을 잘해야 했다. 그것이 내게 압박감이 되어 더 치열하게 일할 수밖에 없는 동기였다.


성과를 내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일한 동료들은 나를 인정해 주었고, 상사로 있었던 내 또래의 (알고 보니 나보다 한 살 어렸던) 팀장 또한 내 열심을 알아주었다.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이었지만 그런 인정으로 인해 자신감 있게 일할 수 있었고,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시중에 팔리는 경험도 특별했다. 이 회사에서의 경험들은 내게 꽤나 귀중한 가치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후에 나는 다시 모델 일이 조금 자리를 잡아 모델로만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또 시간이 지나서는 다시 아르바이트도 병행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모델이라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는 생계를 위한 일도 병행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적어도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이니까.'라는 정신승리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시월의 오늘은 여러 가지 job을 통해 내가 원하는 수입을 만들어 생활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나의 메인 job인 모델일, 나는 올해 초에 yg케이플러스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레슨이다. 디자인에 관련된 과를 졸업한 연유로 미술수업을 맡을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초등학생 한 명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이 일은 수입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림이라는 나의 오랜 동경과 갈망을 해소하기 위한 환기를 얻는 일이다. 세 번째도 레슨인데 '숨고'라는 플랫폼에 올려놓은 모델 레슨에 관한 문의가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모델이 되고 싶은 사람들과 워킹 및 사진 촬영을 위한 준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델과 관련된 코칭을 진행한다. 내가 몰입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고, 내게 큰 에너지를 준다. 네 번째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인데, 나의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되는 스튜디오 일이다. 스튜디오에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스타일링해주는 일인데, 스타일리스트가 하는 업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스타일링은 재미있지만, 옷을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등의 그동안 내가 모델로서 일할 때 스텝들에게 제공받았던 일들을 제공하는 것이 꽤나 힘이 드는 일이다. 다섯 번째가 브랜드 일인데, 의상학과를 졸업했고, 10년 동안 패션모델로 일한 경험과 패션회사에서 짧고 굵게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아직은 많은 에너지를 브랜드에 쏟고 있지 못하지만, 조금 더 시간과 정성을 쏟아볼 참이다.


 열심히도 살았다. 지금은 성과가 보이지 않는  같지만,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내는 지금의 내가 대견하다. 그리고 격려하고 싶다. '너는 너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언젠가  많은 경험과 열심이 하나의 줄로 꿰매지는 시간이  거라고 말이다.'  


시월의 마지막 ,   없이 바삐 움직였던,  와중에도 무언가 배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나에게  살아내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만 11월도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11월에도  이렇게   있을까?' 쉽지는 않을  같다. 11월에는 여유도 조금은 가지면서 지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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