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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Jan 27. 2022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은

나의 관심사는 빼박 '예체능'이다. 그중 정확히 말하자면, '예'에 가깝다. 하지만 '예'나 '체'가 같이 묶인 이유는 그들이 똑같이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얼마 전 카페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발견했다가 적절한 표현이려나. 마스크를 썼음에도 잘생긴 외모에 시선이 갔고, 보다 보니 아는 얼굴 같아 '혹시'하고 생각했다. '혹시'가 '확신'에 가까워진 데에는 그의 양말 덕이었다. 내 나이 또래가 정갈히 차려입을 만한 캐주얼 의상에 긴 축구용 양말을 신고 있었기 때문.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에 진심이었던 그 남자애는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축구를 하며 사는 게 분명했다. 


동창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도무지 이름까지 기억은 나지 않아 집에 와서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를 돌아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애의 이름을 세 바퀴째에 찾게 되었다. 이름은 땡땡땡 그제야 기억이 났다. 나보다 키가 큰지 아닌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잘생기고 젠틀하고 바르기까지 해서 남몰래 흠모하던 여학생이 많았던 친구. 나도 내심 관심을 가지고 멋있다고 생각했던 오래된 감정이 떠올랐다. 그러니 집에 돌아와 졸업하고 거의 처음으로 졸업앨범을 뒤지는 수고까지 했지.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아 보이는 그 친구의 잘 큰 모습이 왜인지 조금 흐뭇했다.


그리고 앨범을 덮으려다 내가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받은 상장이 끼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장 부반장 위임장 외엔 별 다른 상을 받은 기억은 없었고, 실제로 별 상은 없었다. 많은 상장은 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받은 것들. 상 부문은 '글짓기 우수상' '동요 부르기 대회 장려상' '영어 팝송 부르기 대회 장려상' '포스터 최우수상' '일기 우수상' '사전 찾기 금상' '백화점 사생대회 입상' 등 죄다 '예'에 해당되는 상장들이었다. 나는 20대까지도 예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재능이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것 치고 직업도 예술과 관련된 일을 갖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의 머릿속에 '나는 예술을 업으로 살 수 있는 특출 난 사람은 아니야'라고 인식하며 살아왔다. 


그 사고가 깨어진 시기는 바로 작년, 진로에 대한 총체적 난국과 고민을 가지며 회사를 들어가야 하나, 살던 대로 어떻게든 혼자 살아내야 하나를 결정하던 시기에 나는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과 같이 전형적인 삶을 살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제로 많은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기도 했고, 최종 면접에 올라가기도 했으며, 몇 군데에서는 합격통보를 받았으나 도저히 회사에 나를 끼워 맞출 자신이 없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취향은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심도 깊게 탐색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운 좋게 좋은 세미나를 들을 수 있었고, 라이프 코칭도 받게 되었다. 


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탐색하면 할수록 '아, 나 좀 특이하구나'와 나는 예술적인 취향과 동시에 재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기 쓰기,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사진 찍고 느낀 점 블로그에 기록하기, 혼자만 적어왔던 글을 남들에게 보이게 브런치 시작하기, 다양한 문학서적 읽기, 아이들에게 그림 가르치기, 그 김에 나도 다시 그림 그리기, 취미생활로 꽃꽂이하러 다니기, 도자기 만들러 다니기 등등 참으로 예술적인 일들을 탐닉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며 사는 삶이 나는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지 못하면서 적당한 돈을 버는 일에는 더더욱 관심을 끄게 되었다. 


나는 결심한다, 돈을 좀 적게 벌더라도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내가 좋아하는 이런 '예'를 계속적으로 행하는 삶을 살기로. 그리고 이제 시대가 달라졌으니 예체능으로도 꽤나 잘 먹고 잘 사는 사례들이 많아지는 일에 앞잡이가 되어보고 싶다. 한 가지에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일은 되다 말았으니, 이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적절히 조합해서 제너럴리스트가 되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많은 제너럴리스트와 또 스페셜리스트의 예체능으로 먹고사는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매거진의 첫 페이지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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