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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Mar 04. 2022

먹는 것도 사는 게 재밌어야

가장 즉각적인 만족감과 즐거움은 음식을 통한 것이다. 이십 대 초반까지 다이어트라는 걸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마르고 입맛 없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지금에야 그 시절이 그립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먹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알약 몇 개를 먹으면 영양소가 내 몸에 다 채워지기를 바랄 만큼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관심사가 많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어찌 됐건 먹는 즐거움을 몰랐고, 먹는 일이 귀찮을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음식에 대한 집착이 생긴 건 모델을 하기 위해 난생처음 다이어트란 걸 하면서부터다. 저체중에 온 몸이 말랐지만, 다리가 길고 상체가 짧은 체형 탓에 유독 복부에는 살이 있는 체형이었다. 이 체형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복싱은 생각보다 운동 초보자에게는 힘이 많이 드는 운동이었고, 거기에 식단 관리란 걸 하게 되면서 음식을 제한당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한 달 만에 4 킬로그램 정도를 감량하면서 체형도 교정되는 것 같았으나, 시험 기간이 겹치면서 운동을 잠깐 쉬는 동안 나의 식욕은 폭발하여 요요현상을 겪으며 한 달에 7 킬로그램이 증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렇게 몸무게를 빼본 적도 처음이지만 급하게 살이 찐 것 역시 처음이었으며, 처음 겪는 음식에 대한 집착과 강한 욕망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배가 특별히 고프지 않은데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 가서 햄버거 두 개에 치즈 두장씩을 넣어서 앉은자리에서 다 먹고도 허기를 느끼는 지경이었다. 그렇게 온갖 음식을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을 먹는다는 사람들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맛이 뚝 떨어져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던 난데...


그렇게 스물세네 살에 다이어트와 요요현상을 겪으며 음식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그 이후로 다이어트와 요요현상 그리고 음식에 대한 열망 등을 번갈아 느끼고 주기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간다. 현재의 상태를 이야기하자면 사실 입맛이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먹고 싶은 게 강하게 있지도 않지만 그저 어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찾는다. 가장 빠르게 달콤함과 맛을 통해 잠깐이라도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음식이기에 나는 먹을 것을 찾는다. 이 말은 현재 내 삶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이제는 어린 나이라고 떳떳하게 소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 자기 처지를 비관하는 조금은 나이를 먹은 여자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던 나였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처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현재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낙담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활력이 생기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요새 사람들이 가장 추구하는 N 잡러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N 잡러로 살아간다는 게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 낭만적이거나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다. 1잡러보다도 경제적인 고민과 걱정을 더 해야 하고, 스스로 더 많이 움직이며 일을 벌여야 하며, 끊임없이 기회를 찾아야 한다. 하나의 길을 뚫은 것 같아 보여 조금 안심해도 될까 하면, 그걸로 쉬이 안정의 길로 접어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시시 때때로 느끼게 되고, 그런 일들의 반복으로 인해 조금은 지치게 된다. 그렇다. 나는 조금 지쳐 있는 상태다. 무언가 목적을 잃어 배회하는 모습이다. 딱히 원하는 게 없고, 꼭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러니 무기력하고,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자연히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는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스스로에게 잠깐의 환기를 주기 위해 읽을 책과 다이어리 때로는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한다. 쌉싸름하고 향긋한 커피와 아주 달콤하고 꾸덕한 쿠키 하나를 시켜 기쁨을 주기 위해.


오늘은 가족 구성원이 모두 집에 있는 날이었다. 이런 날일수록 내 처지는 더 눈치가 보이고, 집에 있는 게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오후 3시까지 집에서 뒹굴거리다 눈칫밥에 짐을 싸서 집 근처 골목으로 나왔다.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딱히 갈 데가 없어서 평소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가게에 들어갔다. 그래도 지날 때마다 사람이 꽉 차 있어서 어느 정도 맛은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고는 이 카페로 들어온 걸 후회했다. 곧이어 나온 브런치 메뉴인 파니니도 빵이 고무 씹는 맛이었다. 분위기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식사만 마치고 서둘러 나왔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색상 심리상담을 해준다는 평소라면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 같던 카페였는데, 심리상담을 한번 받아볼까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가격을 듣고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한 시간에 7만 원이란다. 내가 평소에 다니는 심리상담센터와 맞먹는 가격이다. 가볍게 소비하기엔 그 돈을 낼만큼 전문적인 것 같지도 않고,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맛있게 먹은 적이 있는 브라운 치즈를 곁들인 크로플 세트를 주문했다.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좋았다. 그런데 한 입 맛을 보니, 커피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디저트는 가격을 뛰어넘는 맛이 아니었다. 결국 두 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내 취향이 아니었어서 사람이 없어서 한가한 장점 말고는 특별히 다시 올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고 집으로 바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요즘 생각났던 닭발을 저녁으로 먹으러 근처 가게로 향했다. 혼자 나와서 벌써 3차라니.. 나는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느끼고, 역시 평소라면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던 가게로 들어갔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청결하지 않은 가게의 기름 전 내 같은 게 났다. 그래도 포털사이트에 평점이 꽤나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숨은 맛집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던 살짝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국물 닭발 하나를 시켰다. 혼자 먹기엔 조금 많은 양이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그냥 시켰다. 뼈 있는 닭발은 먹은 지가 오래되어서 어떤 느낌인지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뼈 없는 메뉴가 없어서 주문해 나온 닭발은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니었다. 살은 흐물흐물하고, 뼈다귀는 조금 징그러웠다. 콩나물이 많다는 게 조금 마음에 든 점이었으나,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그렇다고 남기지는 않았고, 다 먹자마자 서둘러 계산을 하고 나왔다.


집에 걸어가는 동안 '아 진짜, 사는 게 조금 정신없고 흥미로워야 뭘 먹어도 맛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길을 걷는 동안 먹는 걸로 얻은 만족감이 이리도 별 볼일 없을 수 있다는 사실에 허무했다. 그렇다고 내가 음식에 대한 추구가 사라질 것은 아니겠지만, 인생을 좀 더 재밌게 만들어야 먹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잠깐 밖에서 쓴 돈과 시간에 비례해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와 환기가 되어 해야 할 일을 열었고, 오늘의 느낀 점을 글로 적어본다. 이 순간, 나는 먹는 것에서 얻은 만족감보다는 조금 더 농도가 짙은 만족을 얻는다. 돌아오는 한 주는 머릿속에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을 벌여서 살아가는 재미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쉽게도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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