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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Mar 08. 2022

몸이 간지럽다면

할 일이 있는데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다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그런 태도를 취한다는 한 정신과 전문의가 한 말이 기억에 난다. 그 전문의는 또한 자주 누워있는 사람은 게으른 게 아니라, 긴장감이 높은 사람이라서 그 긴장감을 풀기 위해 그런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이 두 가지는 최근의 내 모습을 대변해주는 이야기이다.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면서 지나치게 게으른 생활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프리랜서라는 직업 유형이 그렇듯 내 시간에 시간표를 정하는 사람은 나이기에 부지런히 움직이다가도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무언가 목적의식이 사라지면서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요소라, 나는 직면하기보다 회피하는 걸 택했다. 한없이 늘어지고 게을러지는 것. 한동안 재미있는 것이 있다고 해도 보지 않았던 tv 프로그램을 몰아서 봤고, 별 관심 없는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면서 시간 때우기 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마음속에 죄책감이 느껴지지만 그 마음을 바라볼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누워서 몸에 안 좋은 것들은 다 한 것 같다. 눈이 아플 정도로 핸드폰 보기, 과자 먹기, 정크푸드 시켜 먹기 등등. 


이런 게으르고 몸에 좋지 않은 생활을 하다 보면 슬슬 몸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한다. 그 신호는 살이 찌고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 그런 생활을 하니 몸이 간지러운 반응이 나타났다. 살이 찔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반갑지는 않은 현상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지금 몸을 불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촬영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날짜를 정하지 않았을 때는 그렇다 쳐도 날짜까지 정해놨는데도 무기력을 이유로 몸만들기를 미룰 수 있는 최대한으로 미뤄뒀다. 이는 그 정신과 전문의 말대로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이다. 


근래에 나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하지 않았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식이를 조절하며 건강한 몸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운동이 귀찮아지면 재미 붙여놓은 운동을 내팽개친 채 칼로리 높은 음식을 찾아 폭식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1년간 나의 운동과 식습관을 살펴보면 주기적으로 열심히 한 시기와 모든 걸 내려놓은 시기가 번갈아 존재한다. 마음먹고 할 때는 열심히 하지만, 그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건 나의 큰 약점이다. 아무튼 이상적인 몸으로 생활한 지가 오래된 터라, 몸 만드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압도되어 실천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날짜는 이미 정해졌고,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지장 없이 일을 마쳐야 한다. 내게는 일주일에 7kg을 감량한 경험이 있다. 이 경험에 의지하여 아주 오랜만에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뤄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어제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어제는 그냥 워밍업 정도였다면, 오늘은 일주일에 7kg을 감량했던 때와 거의 비슷한 루틴으로 운동하고 식사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복으로 공원 한 바퀴 걷기, 토마토와 오이 반개에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를 조금 곁들인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 달걀을 하나 삶아, 팽이버섯을 기름 없이 구워 먹었다. 이후에는 누워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불편한 옷을 입고 집에서 할 일들을 처리하고, 4시 즈음에 홈트로 1시간 30분 운동을 했다. 샤워를 하고, 단백질 셰이크 한잔을 저녁으로 타 먹은 후 또 해야 할 일을 잠시 하다가 마지막 저녁 운동으로 공원 2바퀴를 뛰는 러닝을 하루의 운동으로 마쳤다.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운동을 세 번하면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다. 운동을 이렇게 힘들게 해도 식단을 평소대로 먹는다면 살은 절대 내가 원하는 만큼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은 최대로 하고 식사량은 최소로 한다. 첫날이니까 아직은 그동안 섭취해둔 고열량의 칼로리들 덕분에 거뜬하지만, 3일째만 돼도 아마 기운 없는 느낌이 들 거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체중계에 올라가면 꽤나 짜릿한 감량 수치를 만날 수 있다. 내일이 기대되기도 하는 이유다. 이런 다이어트 방법은 사실 극단적인데, 꼭 지켜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때에는 가장 효과가 좋다. 한동안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열심히 하는 나를 보고 가족 구성원들은 일이 잡혔다는 걸 금방 눈치챘고, 미련하다고 한 소리씩 덧붙인다. 


꾸준히 습관을 가지고 운동을 하고 식단을 관리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걸 알지만, 그게 참 어렵다. 아무튼 이렇게 몰아서 운동을 할 때에는 몸이 또 간지러운데, 이건 살이 빠진다는 신호다. 간지러운 느낌은 살이 찔 때나 빠질 때나 동일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불었던 살이 줄어들고 있다는 반응이니, 그 느낌이 좋지는 않지만 반가운 일이다. 내게는 8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아마 오늘의 루틴으로 8일간을 보내야 할 거다. 살은 빠질 거고, 기운은 잃어가겠지만, 원하는 몸무게에 도달하는 기분은 꽤나 상쾌할 것이다. 1-2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체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몰아서 운동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제는 나도 운동이 꽤나 즐겁다는 것이다. 시작을 하기까지가 어렵지, 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운동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적정 시간과 강도를 들여 운동을 마무리한 후에 느끼는 기분은 언제나 새롭게 좋다. 음식을 먹고 느끼는 만족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쾌한 기쁨이다. 콧노래도 절로 나온다.


이번에는 꼭 촬영이 끝나고 난 후에도 운동과 식단관리를 지속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며, 목표 체중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일주일 내내 내 몸은 엄청나게 간지럽겠지만. 이전에 극한 감량을 했을 때에는 결국 무리로 인해 얼굴에 대상포진 같은 뾰루지가 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부디 그 정도의 부대낌이 나타나지는 않기를 바란다. 비타민과 영양제를 잘 챙겨 먹을 생각이다. 내 몸, 파이팅! 간지러움을 잘 참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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