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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Apr 15. 2022

믿는 만큼 자란다.

나는 일 년 정도 라이프 코칭을 받고 있다. 좋은 기회로 청년 코칭을 시작하게 됐다. 나의 코치님은 우리 어머니 또래에 이타적인 분이시다. 처음 코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건 교회에 같은 셀의 조원을 통해서였다. 자신은 라이프 코칭에 관심이 많은데 미국에서 시작된 직업이고, 사람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런 게 있구나', '신기하다' 정도로만 생각을 했고, 워낙 열정이 넘치는 그분의 캐릭터를 생각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어후, 너무 힘들겠다.' 고 머리를 저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3년 정도가 지나고 내가 그 라이프 코칭의 덕을 톡톡히 보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한번 들어본 적이 있는 직업이어서인지 '아 그때 들었던 코칭이 한국에서도 시작되었구나, '라고 간단한 소회로 시작했다. 나는 국가나 여러 기관에서 주최하는 청년정책이나 복지를 잘 찾아봐서 혜택을 누리는 편인데, 이번에도 그런 기관을 알게 되었고, 마침 모집하는 공고가 있어서 지원을 해 선정되었다. 나는 운이 참 좋은 편이다. 이런 모집에 지원을 하면 늘 선정되는 편이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선정되는 것들에도 잘 뽑히고, 라디오 사연을 내도 잘 뽑힌다. 글 쓰는 재주가 있기 때문인 걸까. 운이 좋다고 믿기 때문인 걸까. 무튼 난 이런 선정에 있어 항상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이루어진다.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어주는 거라고 했다. 지금 나와 맺어진 코치님이 해당 프로그램 ot때 프레젠테이션을 해주셨는데 좋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어두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 전적으로 누군가가 믿어주는 경험을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만큼은 한 사람의 잠재력과 됨됨이를 열렬히 믿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믿어주는 만큼 그 사람은 성장한다고 그건 단순히 마인드셋이나 최면이 아니라 통계가 보여주는 사실이라고 했다. 여러 실패로 좌절했던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당당히 성취의 결과물 앞에 서서 찍은 사진은 감동적이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는데, 저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곳이 있어서 힘을 냈어요. 덕분에 제가 이렇게 될 수 있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였다. 


그 환한 웃음이 얼마나 밝던지, 알지도 못하는 내가 다 기뻐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통계자료에 근거한 결과를 나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뭐든 시작하는 일이 생길 때 의욕이 넘치는 것처럼, 코칭을 바탕으로 나의 삶의 계획도 실천도 많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했다. 약발은 3개월 정도 갔나. 여러 가지 생각들은 넘쳤지만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무언가 하다 말고, 하다 말기를 반복하면서 잠깐은 성취감도 느끼고 자기 효능감도 얻었지만, 자꾸만 믿음이 사라졌다. 코칭에서 그 사람이 믿을 만하기 때문에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믿어주는 것이라 배웠는데도 나는 자꾸 믿을만한 구석을 내게 찾지 못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갔다. 


그러던 중 코치님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 (우리는 대게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진다. 본래 약속된 만남은 끝났는데도 말이다.) 코치님께 내가 나를 잘 못 믿어주는 것 같다는 고민과 그 이유에 대해 솔직히 나눴다. 코치님은 이야기를 귀담아들으시고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를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있네?" "내가 보기에 류는 정말 많이 성장한 것 같은데 아직은 그게 보이는 것들로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을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할 수 있나? 류가 누군가 좋았다고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좋은 점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것 아니었어?" 생각해 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신선하게 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내면이 좋을 때 좋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물론 보이는 것도 안 볼 수는 없지만, 그것 자체로 그 사람이 좋은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나를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있었지? 싶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나를 꽤나 좋아한다. 특히 나는 나의 됨됨이를 좋아한다. 거짓되지 않으며,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의도적으로 불의를 행하지 않으며 늘 반성하는 태도로 삶을 되돌아본다. 유머를 가지고 있으며, 삶을 즐길 줄도 안다. 많은 경험들에 시간을 내며,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토록 나는 나의 내면을 마음에 들어 한다. 하지만 외적인 보이는 것들 가진 직위, 돈 같은 것들로 판단하며 스스로를 계속해서 폄하해왔다. 믿어주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데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계속 주저앉히고 말았다. 당첨운은 그렇게 좋다고 믿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험들을 만들어 가면서도 정작 나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믿음은 갖지 못했다. 


그래서 코치님이 나를 믿어주시는 것처럼 나도 나를 더 믿어주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미래를 꼭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고, 삶을 더욱 능동적으로 살기로 다짐해본다. 여태 너무나 수동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같거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꼭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겠다. 사람은 믿는 만큼 자라는 게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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