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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Apr 30. 2024

외출의 신

 bgm,

https://youtu.be/hwZFQhum2n8?si=-YHxCQOkIUWtOye_


요새는 밖에 나갈 일만 생기면 신이 난다. 별 일이 아닌데도 그렇다. 

프리랜서로만 거의 일했던, 집에 있는 생활을 오랫동안 한 나로서는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답답하다. 직장인과 같이 빠듯할 일도 없었고, 몸도 아팠으니 어쩔 수 없이 집에 있게 됐다. 집이 쉼과 회복의 장소가 되기보다는 그냥 갑갑하고 숨이 막히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한창 활동할 나이에 집에만 있게 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시간이 많을수록 더 하는 일 없이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게 되고,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러면서도 더욱 무기력한 것에 매여서 변화하지 못하고, 뒤쳐져가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무언가를 하려면 엄청난 용기와 힘이 필요했다.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결과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던 것 같다. 


 큰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것. 복잡했던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어서 아프지 않다. 몸도 생각도 정신도 마음도. 그래서 훨씬 더 에너지가 많아졌다. 문제는 여전히 무언가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꾸준히 하는 것들이 한두 가지 있긴 하지만 그 마저도 힘을 내서 해야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되다 보니 더 많은 일들을 자연스럽게 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혼자 나가서 무언가 하는 것이 요새는 어려운데 혼자 잘 다니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한 일이다. 오랫동안 혼자 생활하다 보니 이제 혼자 지내는 것이 조금 지겹고 그만하고 싶은 일이 된 모양이다. 동네에 산책을 하러 나가는 것도 혼자 가기보다는 엄마와 함께 가고 싶고, 누구라도 편안한 상대와 함께 하고 싶어 진다. 나이가 이만큼 먹으니 각자 사는 것이 다르고 생활권도 달라져서 그리 편안하게 함께할 상대가 적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나가지 않게 되고, 집에 있으면 여전히 무기력하고 답답하고 갑갑하고 텐션이 떨어진다. 


 엄마를 설득해서 밀린 도서를 반납하러 도서관에 가는 길에 등산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공원도 구경하고 상점들도 구경하다가 동네에서 시의 큰 행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하루 내리 놀게 된 며칠 전이 너무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핸드폰 속 세상이 아닌, 현실에 몰입하여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봄의 계절은 날도 선선하고 해도 좋고, 꽃과 풀들의 향긋한 내음들도 다가와서 숨만 쉬어도 기분이 환기가 된다. 그런 계절에 집에만 박혀있는 것은 삶이 아니다. 살아있음을 느끼려면 밖에 나와야만 한다. 


 오늘도 무력한 몸뚱이와 정신이 나를 지배하다가 엄마가 이불빨래하러 코인세탁점에 가자는 제안을 해서 나갔다 왔다. 나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강아지가 "산책?"을 들었을 때처럼 들뜨고 기분이 좋아져 버렸다. 나간 김에 바깥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고, 기다리는 동안 근처를 걷기로 했다. 돈 때문에 힘들었던 지난 십몇년의 세월 동안 엄마는 밥 한 끼 물건 하나 사는 것에 망설이는 생활을 했기에 이불빨래를 돈 주고 한다는 것은 난생처음의 시도였다. 나는 그저 나갈 스케줄이 생긴 것이 반가웠다.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 무기력해지는 나에게 활기가 되어주는 바깥구경이 좋았다. 


 겨울 내 뭉개서 꼬질꼬질해질 만큼 꼬질꼬질해진 내 이불과 엄마의 비교적 단정한 겨울 이불 두 개가 빨랫감이었다. 주차가 편한 상가에 있는 크린토피아 코인세탁점을 찾아 만 원짜리 지폐를 오백 원짜리 동전 10개로 바꿔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30분, 우리에게 주어진 점심식사시간이었다. 그러나 근처에 먹을만한 식당도 없고 브레이크타임이라 편의점에서 천 원짜리 도시락 컵라면을 집었다. 군것질거리로는 중학교 1학년 때 종합학원 다니던 시절, 자주 사 먹던 오다리와 엄마가 집은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 그리고 여덟 개 정도 들은 요구르트 묶음. 편의점 앞 나무 테이블에 앉아 하원하는 초등학생 중학생 그리고 그들의 엄마와 할머니들 가끔 지나가는 걸걸한 청년들을 구경하며 컵라면을 불어 먹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맛있네, 를 뱉으니 엄마는 집에서 그렇게 반찬을 해줘도 맛있다는 소리 한마디를 안 하고 먹더니 그건 맛있냐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서 "어디 한 번 나도" 하면서 한 젓가락 하더니 "맛있네, " 라며 어이없이 말했다. 봄날의 날씨에는 집 근처 구멍가게에서 먹는 컵라면 한 젓가락도 맛이 있었다.  


 30분 알람이 울리고는 급하게 먹은 것들을 정리하고 다시 코인세탁점으로 갔다. 잘 빨려진 이불 두 개를 옆 건조대에 옮기고 다시 30분. 이제는 산책타임이다. 도서관에 가서 화장실에 들른 후, 물 한잔 마시고 뒷산을 탔다. 며칠 전 도서관에 갔을 때의 코스다. 그런데 조금 다른 길로 올라가는 등산길. 저번보다 더 가파르고 흙으로 된 길이어서 더 좋았다. 엄마가 항암수술을 한 후로는 체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나보다도 체력이 좋았는데 이제는 한참 뒤에서 헉헉대느라 내가 기다린다. 반면 아프던 나는 어느새 나아서 이 정도 산길은 아무렇지 않게 오른다. 그런 스스로에 즐거운 마음이 들면서도 엄마의 약해진 체력이 못내 안쓰럽다. 조금만 더 가면 동네산의 정상이었지만, 엄마는 내려가자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빠르게 내려갔다. 다시 물 한 모금 하러 도서관에 들렀다가 코인세탁점에 가니 2분이 남은 세탁물에 요구르트 한잔씩 하면서 기다렸다. 뜨겁게 보송해진 이불 두 개에 베이킹을 하고 결과물을 보는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둘이서 이불의 끝을 잡고 큰 비닐에 접어 넣었다. 용용하게 깨끗하고도 큰 비닐을 준비해 왔다며 만족해하는 엄마의 외마디로 이불을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번 목적지는 맛있는 빵을 사는 것. 엄마는 뭐 하러 멀리까지 가서 빵을 사냐고 뭐라고 하면서도 "어딘지 네비로 찍어"라고 했다. 간 김에 뭐 먹을 거 있으면 좀 먹고 오자고. 오늘도 용건 하나만 보고 집으로 돌아가긴 글렀다. 나랑 나오면 늘 이런 식이다. 이제는 엄마도 나와 함께 집을 나서면 용건만 보고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져서 못 이기는 척 따라온다. 


 빙빙 돌면서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구석지 길들을 지나 나에겐 익숙하고 엄마는 어딘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상가로 차를 댔다. 하교시간이 되어 집에 가는 학생들과 학원에 가는 학생들 장을 보러 나온 주부들로 가득했다. 엄마는 이곳이 동네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골목인 것 같다고 하면서 신기해했다. 조금 비싸지만 맛있다고 느꼈던 빵집에 들렀는데 빵이 몇 개 안 남았다. 바게트를 사고 싶었지만 없어서 크루아상과 치아바타만 하나씩 사고 주차시간을 부탁하면서 아이스 라테를 추가로 주문했다. 카페인에 약해진 요즈음인데 더워진 날씨에 당기는 라테를 시켰다. 빵을 잘하는 집이라 그런가 가격 대비 라테 맛이 좋다. 라마르조코라는 비싼 커피머신을 보고 주문하기를 잘했다. 과일가게, 국밥집, 옷가게, 올리브영 등 엄마랑 동네상가들을 둘러보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그때는 엄마를 따라 장을 보고 동네 구경을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이사 온 동네를 더 잘 알고 엄마를 이끌고 다니고 있었다. 상가 지하에 들어가니 집집마다 이것저것 파는 식당이 있고, 다이소랑 이마트도 있어서 늦은 점심으로 초밥을 사고 다이소와 이마트에서 살 것들을 샀다. 너무 일상적이고 당연한 소비인데 이런 것들을 우리는 한 지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별 거 아닌 것들을 보면서도 즐거워하고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찰나들을 엄마와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렇게 양손 무겁게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미세먼지는 뿌옇지만 마음속 대기만큼은 맑다. 평소 같았으면 무겁다고 최대한 가벼운 것만 들으려고 꾀를 부렸겠지만 오늘은 양손 무겁게 이불빨래랑 장 본 것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힘이 넘친다고 하면서도 짐이 무겁다고 뺏어 들었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온 순간 집의 공기에 또다시 답답함을 느꼈다. 집을 상쾌하게 느끼게 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의 공간보다 많은 짐들을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나 좋아하는 분위기로 집을 꾸미는 등의 변화 말이다. 어쨌거나 밖에 나가서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어 기쁨이 가득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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