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글감_선택

by 올림

녹음이 무성한 곳에 한 사람이 울고 있다. 히끅 히끅. 아무도 없는 숲이라 마치 멧비둘기의 울음소리 마냥 히끅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무도 없는 곳인데도 아랫입술을 꾹꾹 이로 물며 운다. 손으로 바지 무릎을 쥐고 이내 무릎을 오른 주먹으로 퍽퍽. 친다. 무엇 때문일까. 무슨 감정일까. 흐르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도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다가 가쁜 숨을 내쉬며 앞을 본다. 숨을 고루 쉬길래 다 운 줄 알았는데 엉엉. 큰소리로 소리 내어 운다.

초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고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이곳에서. 초는 생각했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태어난 것일까.’ 아직도 그 해답은 찾지 못했다. 이곳이 숲이라는 것은 안다. 숲에는 초를 비롯한 다른 푸른 것들이 살고, 개중에는 다른 것들이 관심을 가지는 알록달록한 것도 있다. 사람들은 그걸 ‘꽃’이라고 불렀는데, 아무도 초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자 초는 자신이 꽃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간단하게 알 수 있었다.

숲에는 푸른 것과 꽃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산다. 날기도, 걷기도, 달리기도 하는 그런 것.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매일 서두른다. 그리고 초는 그것들을 보고 또다시 깨닫는다. 나는 움직이는 것도 아니구나.

하루는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와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작은 사람이 초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안 아파?” 큰 사람은 씩 웃더니 작은 사람의 손을 잡고 “이건 잡초야. 잡초는 밟아도 괜찮아.” 말한다. 작은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초~”하고 말한다. 그 뒤로 초는 초가 되었다.

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해 처음에는 울화가 치밀기도 하였다. 나는 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하물며 꽃도 피워내지 못해서 모두가 나를 밟고 다니지? 나는 왜 존재하는 거지? 하지만 어떤 생명이든 그렇듯이 불평한다고 달라지는 사실은 하나도 없었고, 체념과 함께 이제는 가만히 있는 자신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기다리기로 했다. 매일 숨을 쉬다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초는 매일 숲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만나고, 동물들을 만나고, 주변의 식물들을 관찰했다. 계절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주변의 색과 나의 색, 사라지고 작아지는 것들. 그런데도 다시 계절이 바뀌면 초는 다시 주변을 만날 수 있었다. 초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고,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달라지는 나날을 만나려고 살아있는 건 아닐지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초는 하염없이 우는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다. 나 같은 의미 없는 잡초도 감정을 느끼는데, 잡초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감정을 느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바라보는 것에서 그쳤겠지만, 너무 오래 울고 아파하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이 있다면 손을 뻗어 지난번 큰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손을 잡아줄 텐데. 내가 잡초라서 괜찮았던 것처럼 괜찮다고 말해 줄 텐데. 초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람의 힘을 빌려 사람의 발목을 간질이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그런 초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계속해서 발목을 간지럽히는 초를 내려다보며 울분에 찬 표정으로 초를 밟아버린다. 그리곤 일어나서 쿵쿵 세게 짓이긴다. 초는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위로의 간지럽힘이 사람을 화나게 했는지 모른다. 그저 여름밤의 바람 소리만 스쳐 지나갈 뿐. 나는 위로해 줬는데. 나를 왜 짓밟는 거야? 초는 생각했다.

사람은 꼭 쥔 주먹을 풀고 다시 털썩 벤치에 앉는다. “이런 데에 화풀이한다고 뭐가 달라져.” 한숨을 내쉰다. 사람의 얼굴은 점점 원래의 색을 되찾아갔다. 잔뜩 울고 화를 내서 괜찮아졌구나. 오늘도 초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 나를 밟고 괜찮아졌다니 다행이야. 초는 언제 미웠냐는 듯이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아무래도 나 같은 잡초보다는 사람이 더 살아서 존재할 가치가 있으니까. 화풀이했으니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해”

사람이 초를 보고 말한다. 왜 미안하다고 하지? 미안해. 초는 처음 들어보는 말에 놀랐다. 아무도 잡초를 밟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 너처럼. 다시 괜찮아지겠지. 너처럼”

초는 잘못 들은 것이 맞는다며 고개를 살랑거렸지만, 사람의 눈은 여전히 초를 보고 있었다.

초는 여태 살아오면서 매일 하나씩 배워갔다. 그리고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세상을 알게 되고, 존재 이유를 찾아갔다. 그 이유들은 초의 삶의 전부였다. 오늘은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울다가 화가 나기도 한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찮아진다는 것. 위로의 크기는 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쩌면 다른 입장에서는 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초는 사람을 위로했고, 초는 오늘도 존재 이유를 찾았다. 초는 짓이겨져도 행복했다. 그리고 짓이겨져도 괜찮았다. 사람의 말처럼 초는 다시 살아나니까. 그게 나. 잡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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