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_탐닉
그는 항상 동그란 두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건 뭐야?”, “어떻게 생겨났는데?”, “왜?”와 같이 무한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존재는 나에게 있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억지 코골이 소리를 내며 자는 척도 했었다. 시체 놀이를 하자며 무한히 엎드려 있는 것도 제안했다. 하지만 호기심을 못 풀면 당장 죽는 그의 집요함은 시체 상태인 나의 눈꺼풀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집게를 만들어 들어 올려 강제로 뜨게 했다. “시체 놀이 끝나면 뭐 할 거야?”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었다. 그 어떤 성인군자가 와도 하루에 100여 개의 질문을 쏟아내는 그를 마주하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워 그의 동그란 두 눈 속에 나를 가득 채운 뒤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으며 대답해 줘야지. 아주 먼 훗날의 그를 위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위해서.
해가 좋은 날이면 꽃가지를 꺾어 물병에 담아 놓았다.
날이 흐리면 바깥으로 나온 지렁이가 불쌍하다며 모종삽 가득 흙을 퍼 집으로 데려와 키우자 했다.
날씨가 더워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릴 때면 손바닥으로 휘휘 내 등을 식혀줬다.
함께 첫눈을 본 날에는 눈송이가 반짝거린다며 내 눈앞으로 바짝 손바닥을 내밀었다.
궁금한 게 많은 그의 세상은 신기한 것 투성이었고, 모든 새로운 것들을 내게 보여주며 함께 기뻐하길 바랐다. 그가 만들어낸 세상 덕분에 내 세상도 조금씩 넓어져갔다. 그리고 이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나를 숨 쉬게 했다. 알랑알랑 귀찮았던 그는 점점 내 인생에는 없어서는 안 될, 절대 잃을 수 없는 귀한 소유물이 되었다. 살면서 무언가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나에게, 무언가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나에게.
둘이 손잡고 걸어가던 어느 날. 그는 눈앞의 아이스크림에 집중해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못 보고 걸려 넘어졌다. 다행히 내가 한 손을 잡고 있어 왼쪽 다리에만 힘이 풀려 무릎만 살짝 까졌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구하지 못했다. 그의 두 눈에는 하나둘 물방울이 가득 차 똑똑. 하고 떨어지며 시멘트 바닥에 짙은 동그라미를 만들어냈다. 고개를 휙 돌려 마주한 그는 왜 아이스크림을 살려내지 못했냐는 원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렇게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웬 중년 한 명이 지나가며 “어이구, 엄마 때문에 잔뜩 속상하나 보네~”라고 했다. 우리는 지나가는 뒤통수를 함께 바라봤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엄마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욕심내 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이 쏙 들어간 그는 특유의 동그란 두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마 너는 처음 들어본 단어였을 테지. 그는 물었다. “엄마가 뭐야?” 단 한 번도 나는 그에게 ‘너’, ‘나’ 외의 다른 지칭 대명사를 사용해 본 적이 없어 엄마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이것도 무수한 질문 중 하나이니 빨리 답해줘야 한다 생각했지만, 눈가에 자꾸 아른거리는 얼굴 하나가 그의 얼굴 위에 덮어씌워진다. 나는 대답을 망설인다. “좋은 거야?” 그는 대답을 재촉한다. 조금만 더 늦으면 옷자락을 잡고 보챌 텐데. 어쩌지.
그러니까 이건 나만 알고 그는 모르는 아주 비밀스러운 첫 만남에서 시작됐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못 해내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골집으로 내려가기를 택했다. 고기 구워 먹는 것이 맞냐는 슈퍼 사장님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마당에서 구워 먹어도 되냐는 질문으로 답하며 번개탄을 검은 비닐봉지에 여러 개 담아서. 20년이 넘도록 발길이 없는 우리 집은 식상한 설명을 내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삶과 죽음의 굴레를 겪고 빈집으로 남아있었다. 그냥 아, 여기에 이 정도의 추억이 있었는데~ 정도만 있지 내게 눈물 흘릴 정도로 애달픈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애가 닳는 장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구천을 떠돌며 머물겠지. 이왕 하직할 예정인데 번개탄을 마법 진 모양으로 예쁘게 배치했다. 뭘 이렇게 공들이나 싶지만 마지막인 만큼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서 멋지게 장식되고 싶은 욕심이다. 신중하게 배치한 별 모양의 번개탄을 지나 가방에서 청 테이프를 꺼내 겉에 붙은 비닐을 제거한 뒤 손톱 끝으로 시작점을 찾아 더듬거릴 때였다. 거짓말처럼 마당에서 앙앙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소리는 점차 커지며 닫아 둔 창문을 뚫고 내 귀를 가격했다. 잔뜩 치솟은 짜증 때문인지 입을 닫고 있는데도 숨소리가 뜨거운 바람과 함께 뿜어져 나온다. 내 죽음은 아름답고 고요하게 치를 예정이었는데 누가 이렇게까지 방해하나 싶어 가만두지 않을 생각으로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현관문 소리에 압도되어서일까, 마당의 모든 소음이 멈추고 문이 닫히려는. 끼익 소리만 났다. 그러니까 내 눈앞에 있는 바구니 속의 아기는 뭘까. 왜 저 아기는 마당 밖에서 우는 게 아니라 마당 안에서 혼자 울고 있는 것일까. 신종 베이비 박스 사기? 아니 그것보다 누가 여기에? 나는 황급히 철문을 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구냐고 나오라고 소리쳤지만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처럼 죽은 듯 고요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다. 아닌가 내가 드디어 미쳤나. 아니면 이미 죽었나. 형편없이 죽으려 해서 벌이 내려진 걸까. 죽으려고 쳐둔 마법진에서 진짜 마법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 숨을 고르고 나니 다시 귀가 열린다. 바구니 속 아기는 다시 울기 시작한다. 세상에 태어나 이토록 작은 생명체를 마주한 적이 있던가? 나는 쪼그려 앉아 바구니 속 아기를 들여다본다. 익숙한 얼굴이다. 너무 익숙해서 갑자기 눈물이 나와 나도 아기처럼 앙앙 울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고, 그가 작은 손으로 내 옷을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평생 죽을 수는 없겠구나.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몰입이라기보다, 스스로를 기꺼이 가두는 감옥에 가까웠다.
다시 아까의 상황으로 돌아와 이야기하자. 나는 체념한 듯 오른쪽 무릎을 꿇어앉아 그와 눈높이를 맞추고 대답한다. 나의 귀한 소유물에게. 나의 세상에게.
“엄마는 지켜주는 사람이야.”
“그러면 엄마야?” 그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응. 엄마야.”
탐닉은 무언가에 빠져 몰입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사실 주제를 단순하게 놓고 보니 생각나는 거라고는 무언가를 놓지 못하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만 생각났습니다. 그러다 제미나이한테 도움을 청했습니다. <단순히 '좋아한다'를 넘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소음이 차단되고 오직 그 대상과 나만 남는 몰입의 상태를 묘사해 보세요.> 제미나이의 말입니다. 저에게는 다양한 탐닉 대상이 있지만, ‘소음이 차단되고’에 초점을 맞추니 시작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무언가를 놓지 못하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