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바른 Nov 03. 2018

오늘의 사물 : 오랜만에 꺼내볼까 36번 유니폼


 

 SK와이번스가 6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루 늦게 하이라이트로 경기를 봤다. 엎치락 뒤치락 서로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좀 재밌네..? 웃으면서 보다 점점 불안해진 10회, 홈런을 쳐버렸다.


 꿀잼.


 인천사람. 학연지연무슨연 이런 거 싫어하는 편. 하지만 이건 어쩔 수가 없다. SK와이번스 팬인 인천사람이다.


 SK와이번스의 피가 수혈된 건 고등학생 때, 마침 전성기였다. 인천에서는 야구 열기가 뜨거웠다.


 수업을 일찍 마친 선생님들이 인심쓰듯 TV를 켜 야구경기를 보게 해주셨던 고등학생 때 야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공부 빼곤 다 재밌던 (지금도 물론 그렇다) 그때, 짬 내어 보는 야구는 마치 학습지를 다하면 놀러갈 수 있는 자유시간 같았다. 야구경기는 교과서 목차와는 다르게 다음 장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재밌다.

 

 처음엔 김광현 선수가 멋져보였지만 그렇게 한 경기 두 경기 챙겨보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있었다.


사진 출처 : 오마이포토


 박정권이다.


 처음 그를 봤을 때 야구 만화에서 본 것 같다, 고 생각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부터 달랐다. 4번 타자, 반짝이는 안경알로 심각한 표정, 타석에 선다. 배트를 휘두른다. 배트에 공이 맞아 그 공이


 내 머리를 땅! 하고 때렸다.

 홈런이다.

 머..멋있어!!



  성인이 되고 나서야 문학경기장에 갔다. 비장했다. 36번과 그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 받아) 입었다. 그러곤 기운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박정권! 을 외쳤다.


 내 안의 피가 3루까지 마구 뛰는 게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안경알만큼 반짝이는 홈런을 쳤다.

  

 서울역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사람들이 DMB를 켜고 야구를 봤다. 마침 한국시리즈에 SK가 진출했고, 이때다 싶은 나는 강의를 듣다 땡땡이를 치고 한국 시리즈 7차 전을 예매했다.


 그러나 경기는 7차전까지 가지 못하고 삼성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그 이후에도 SK와이번스는 계속 야구를 했다. 적당히 잘했고 또 가끔씩 못했고, 꽤 길게 부진할 때도 있었다. 교복을 입고 TV 앞에서 보았던 SK와이번스랑 다르게 느껴질 때면 슬펐다.


 그땐 잘했는데, 와 같은 한탄은 한 번에 아웃되는 뜬공처럼 허무했다. 36번 박정권은 나에게 여전히 멋있었으나 그의 이름 앞에 부진이니 슬럼프니 하는 수식어가 자주 붙었다.





 그리고 얼마 전, 박정권이 홈런을 쳤다. 1할대 타율을 유지하고 있던 그였다. 그가 홈런을 치면서 다시 야구를 챙겨봤다. 한 경기 한 경기씩 그들은 이겨냈다. 그리고


 6년 만에 SK와이번스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순간을 보며 교복을 입고 TV앞에 앉았던, 강의실을 몰래 도망나오던 내 모습이 스쳤다.

 

 가을 DNA가 꿈틀거린다. 인천 집에 있는 유니폼이 자꾸 생각난다.


 *아씨오 36번 유니폼!


*아씨오: 해리포터 속 주문으로, 물건을 소환하는 마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사물 : 금빗현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