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인스타툰 작가로서의 고충

그냥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

by 임수진

여전히 처음으로 외주가 들어왔을 때가 생생하다. 국민체육진흥회였었나? 체능력자 테스트에 대한 인스타툰을 제작해달라는 문의였다. 처음이라서 단가를 어떻게 책정하고, 어떤 과정으로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지 조차도 몰랐어서 꽤나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단가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너무 낮나? 너무 높나? 다들 어떻게 받지? 이렇게 하면 거절할까? 저렇게 하면 바보 되는 거 아냐?의 무한반복)


현재 작업 프로세스

[문의 - 협업진행 확정(주요내용전달) - 콘티작업 - 피드백 및 수정 - 피드백 후 최종본 작업 - (업로드)] 순으로 진행된다.(혹시나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참고해도 좋을 것)


아무튼, 그때 처음으로 광고툰이라는 걸 그렸다. 기쁨도 잠시 그 이후에도 내 메일함은 조용했다. 외국에서 보내는 스팸메일이 전부였던 날. 당시에는 영국에 있었어서 간절함이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나도 여느 작가들처럼 협업도 하고 그림도 계속 그리고 싶었다. 나에게는 그 광고툰이라는 것이 인기의 지표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러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달이 조금 지난 시점부터 신기하게도 나에게 협업문의가 비교적 자주 들어왔다. 꾸준히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달에 서너개는 작업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격차가 너무나도 차이가 많이 나서 협업문의가 없는 나날에는 다이어리에 불안하고 무섭다는 이야기가 빼곡하다. 메일함에 뜨는 0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공허하고 무섭게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올리브영 주말알바. 내 불안감을 조금 덜어줄 곳이 필요해서였다.


괜한 자존심으로, 안정적으로 지내지 못하는 내가 싫고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마음 속에서 자꾸 비교하려는 마음이 피어나서 내 자신을 나무랐다. 너의 능력으로는 이게 한계일 거라고, 거봐 이렇게 불안하게 될 일이었잖아 하면서 말이다. 그때가 아마도 지난 5월쯤.


그래도 나는 내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려야 했고 창작을 해야 했다. 살아 남아야 하니까. 아무리 힘든 일이 일어나도 쉴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가 그렇다. 계속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누군가가 찾아주어야 한다.


프리랜서의 수익은 매달 천차만별이다. 프리랜서는 자기가 하는 만큼 무한대로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하고 싶다고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양날의 검같은 일. 불안함이라는 건 어쩌면 프리랜서를 하려는 자는 필수적으로 견뎌내야 할 꾸준한 고통이 아닐까싶다.


내년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알고리즘을 중단한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언니에게 처음 들었을 때 불안감이 엄습했다. 늘 상상만으로 하던 생각. 갑자기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이 사라졌을 때,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내가 다시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 아무래도 알고리즘이 사라지면 콘텐츠가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 것이다. 지금의 나의 일이 모래로 지은 성처럼 느껴진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암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러한 고충이 있다는 것.. 그래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고 창작하며 콘텐츠 제작하는 일이 정말 정말 즐겁고 좋다. 내가 사랑하는 일.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이 어느 날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분명 다른 곳에서 다시금 또 나의 콘텐츠를 제작하며 살고 있을 거다. 스스로 살 길을 분명히 찾을테니 말이다. 오래오래 나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또 그 콘텐츠를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2022년에는 더 단단히 나의 자리를 잡아서 지금의 나를 뿌듯한 얼굴로 돌아볼 수 있었음 좋겠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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