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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진 Jul 25. 2023

스노보드에게 배운 것

그냥 해, 계속하면 돼.

작년 겨울에 처음으로 동생과 스노보드를 타러 갔다. 배워본 적도 없는데 그냥 타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둘이서 간 곳이었다. 동생은 전날 밤에 유튜브 영상을 봤다고 하는데 난 그 마저도 귀찮아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스키장에 갔다.


슬로프에 올라가서 동생이 배워온 것들을 따라하며 보드를 발에 묶었다. 이제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일어서질 못한다..?! 운동신경이 좋은 동생은 금방 일어서서 타고 내려갔는데 당시만 해도 저질체력이었던 나는 1시간내내 그 긴 슬로프를 엉덩이로 내려왔다.


그래도 계속 시도하니 조금씩 일어서졌고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워낙 기본이 없었던 탓에 계속 넘어지고 서고를 반복했는데 이상하리마치 계속 시도하고 싶었다.


‘아, 이렇게 하니까 넘어지네? 이번에는 이렇게 해봐야지.’, ‘오! 진짜 이렇게 하니까 됐어!’, ‘흑.. 나름 중심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네.’ 등등 끊임없이 시도하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며 나도 모르게 보드에 푹 빠져있었다.


한번은 넘어지는 내 모습을 보며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웃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저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난 지금 이 순간 내가 보드를 조금 더 능숙하게 타는게 가장 중요해.’ 정말 그게 가장 중요했다.


더.. 잘 타고 싶어!!!!!!!


그때 느꼈던 그 감각이 참 묘했다. 예전 같았으면 쪽팔린다거나 민망하다거나 해서 금방 포기했을텐데 그보다도 내가 즐기고 실력이 느는게 더 중요하고 재밌어서 나머지는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혼자서 초보 슬로프를 제법 능숙하게 내려오는 정도까지 연습할 수 있었다. 엄청난 결실이었다.


이때의 순간은 지금까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내가 즐거워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을 때. 그리고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준 날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의 시선에 멈칫할 때면 나에게 그때의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듯 나는 다시 한번 일어서서 나아가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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