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책을 읽자!
[도서 반납 예정일이 지났습니다. H마트에서 울다 외 3권]
[도서 반납 예정일이 지났습니다. 위험한 관계 외 2권]
또 책을 연체해버렸다.
흔히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또는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나는 책 읽는 일을 꽤나 좋아라하고, 그건 내가 즐기는 일들 중에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리고 세상 전체가 권장하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해서 스스로도 꽤나 든든하게 생각하는 취미다. 내게는 좋아하는 일이 책 읽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있지만, 이런 전략적인 이유로 누군가가 취미를 물으면 ‘독서’라고 나는 흔히 대답하고는 한다. 말하자면 이자카야의 주인이 ‘우리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건 뭐니뭐니 해도 타코와사비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막상 손님이 메뉴 추천을 원한다면 고민 끝에 “튀김 정식은 어떠실까요?”라고 말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달까. 튀김 정식처럼 누구나 책 읽기에 대해서라면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독서가 취미 중 하나인 건 든든하고 또 정말 다행인 일이다. 이자카야에 타코와사비 같은 메뉴만 있다면 금방 망해버릴 테니까 말이다.
여간 뭐 꼭 가을이라서 책을 읽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말들은 조금 더 박차를 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는 한다. 그래. 날씨도 선선하고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다들 말하니, 나도 덩달아서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이나 읽어야지 하고 마음 먹게 된다. 보통 책을 읽을 때는 도서관에서 빌려오거나, 서점에서 샀었는데, 사실 요즘은 대부분 사서 읽는 편이다. 그 이유는 서두에 쓴 것처럼, 고백하건데 나는 정말 구제불능에 가까운 악질적인 상습연체범이기 때문이다.
변명처럼 들릴 지 모르지만(실제로 변명이긴 하다), 책을 연체하게 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도서관에서의 선택은 서점과는 달리 돈이 드는 것은 아니므로 별 고민 없이 하게 되지만, 막상 집에 와서 보니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 어차피 읽지도 않을 테니 반납하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빌렸다는 건 그와 나 사이에 최초의 끌림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감정이 시들할지라도, 왠지 언젠가는 읽고 싶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번도 끌림이 없는 사이는 있더라도, 한 번만 끌림이 있는 사이가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언젠가 뜨거워질 가능성만을 내포한 채 기약없는 썸의 신경전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신경전을 벌이다보면 하루, 이틀 그리고 반납기일까지 지나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또, 한번 연체를 하게 되면 그것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데, 도서관을 찾아가 반납을 하는 게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왠지 도서관에 너무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아서, 그 죄를 직면하기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도서관에서 그런 일로 혼내는 사람은 없지만, 연체했을 때는 도서관을 가는 길 내내 반성하게 되는 기분이지 않나. 반납 예정일이 지났다는 문자를 받는 일은 화가 난 연인의 문자를 받아 보는 심정과 비슷하다. 언젠간 봐야겠지 하면서도, 당장은 피하고만 싶은 일들이다. 두 경우 모두 부끄럽지만 나의 대처방법은 같은데, 그것은 한 쪽 구석으로 스윽 밀어 두는 것이다. 마치 급식판에서 싫어하는 반찬을 한쪽에다 모아놓는 것처럼 내 마음 속에는 그런 마주하기 싫은 것들을 모아두는 칸이 하나 있다. 그곳에다 잠시 놓아두면 한동안은 잊고 잘 지낸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백이면 백 상황을 악화시키고 만다. 잠깐의 대화나 애교면 해결될 화가 몇 시간이나 얘기해야 풀릴 일이 된다거나, 자그마치 1달이나 연체되어 이제는 정말 전국사서협회 같은 것이 있다면 도서관 입장을 보이콧 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대역죄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참고로 나의 최장 연체기록은 사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3개월이 넘게 반납하지 않은 것인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회사에서 사서님으로부터 내선전화를 받고는 화들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 우리는 서로 웃으며, “어서 반납하세요~”, “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간단히 문답을 주고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내 메일함에는 ‘반납하지 않은 도서가 3권 있습니다’라는 메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내 급식판의 분리기능은 정말 효과가 확실했다. 왜 메일을 본 기억이 없었을까. 주변에 물어보니 사서님의 전화를 받은 연체자는 나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빌리는 책들은 주로 인기가 그다지 없거나 옛날 책들이어서 보통은 대출 대기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책들도 나와 함께인 것이 덜 외롭지 않았을까' 라며 내심 변명해보지만, 200% 잘못한 일임을 지금도 반성한다.
여튼 그런 연유로 이제는 빌려보기 보다는, 주로 책을 산다. 그래도 도서관에 가는 일은 좋아서 종종 도서관에 놀러가긴 하지만, 웬만하면 책을 빌리지는 않는다. 혹여나 빌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책이 너무너무 읽고 싶어 견디지 못하겠다 싶을 때, 그리고 서론 정도는 읽어보고 책과 나의 궁합을 확인한 후에 빌린다. 방탕하게 이리저리 책임지지도 못할 추파를 던졌던 지난 날의 과오를 반성하며, 이제는 신중하고 책임질 수 있는 만남만을 해야겠다고 도서관을 갈 때마다 다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도서관에만 가면 나는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깊은 사이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지만 선뜻 읽지는 않을 그런 책들에 끌리곤 한다. 누가 그랬던가. 바람은 불치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