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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롤 Oct 14. 2023

나는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2022년이 마지막 달에 접어들었다. 공백기는 1년을 넘어 2년 차의 절반을 넘어갔다. 나는 여전히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무기력하게 흘려보내 버린 공백기의 첫해와는 달리 그래도 구직공고를 살피며 내가 써 볼 수 있는 곳엔 지원서를 쓰며 계절을 보냈다. 소위 '허용되는 공백기'인 1년을 훌쩍 넘긴 상황에서, 무엇이든 내 관심사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공고가 있으면 일단 지원을 했다. 중간중간 면접도 봤고, 나름 무언가를 기대할만한 단계까지 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취직은 하지 못했다. 그 망할 놈의 '좋아하는 것'도 아직 찾지 못했다. 2022년이 끝나가는데 결국 이번 해에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옥죄었다. 통장 잔고를 보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가늠하며 이젠 구직 공고와 함께 알바 공고까지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무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삶이라 하지만, 2022년마저 이렇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끝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나의 예상과 바람을 보기 좋게 비껴갔다. 연말 특유의 축제 같은 분위기가 도심을 채워가는 가운데, 내가 선 자리에만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치 맨홀 같이 한번 떨어지면 그대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깊고 새까만 그림자였다. 지난 봄 이사 후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계절을 통째 날려버렸던 기억을 되짚으며, 그렇게 또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도심을 가득 채운 빛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12월의 어느 날, 2022년에 유일무이했던 행복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유럽에서 현대미술가로서 살고 있는 언니가 한 대회에서 수상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거의 15년 가까이 유럽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아티스트로서 노력해 왔던 언니가 처음 이룬 성과였다. 물론 그전에도 언니는 여러 나라를 돌며 프로젝트에 선발되어 전시를 하고, 최종 심사까지 진출하며 수상을 한 적도 있었지만, 딱 한 명의 아티스트만 뽑는 대회에서 수상을 한건 처음이었다. 언니가 그 대회를 준비하며 얼마나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노력했는지 알았기에, 아니 그 이전에 약 15년간, 동양인도 거의 없는 외국 도시에서 유학 직전에 배우기 시작한 낯선 언어를 쓰며 미술계라는 황야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나가고자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알았기에, 언니의 첫 수상이 진심으로 너무 기뻤다. 현실적으로 이 대회에서 상을 탔다고 해서 언니의 아티스트적인 입지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정해진 '답'이 없는 세게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10여 년이 넘게 싸워온 언니에게 처음으로 미술이 언니에게 '너는 틀리지 않았어'라고 답해주는 것 같았다. 성공의 가능성을 따지자면 정말 얇다 못해 한없이 가느다라 거의 보이지 않는, 실낱같은 끈 하나를 붙잡고 황야의 밤을 횡단하는 것 같은 아티스트로서의 삶, 특히 현대미술 아티스트로서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 나날인지 나는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없다. 내일이 두려워, 과거로 도망치고자 필사적이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걸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을 걷는 언니의 삶은 감히 따라 해 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2022년은 언니에게도 쉽지 않은 해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계속해서 언니가 하고 싶은 미술 작업을 해나가기 위해 새로 공부하고 있던 디자인 학교에서의 엄청난 양의 과제를 감당하며, 동시에 언니는 계속 각종 공모전과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응모하며 바쁜 매일을 보냈다. 그야말로 몸과 정신을 갈아서 그 모든 것을 해나갔다. 그러면서도 언니는 종종 내게 한국 계좌번호를 보내고는 이쪽에 입금을 부탁한다며, 해외 송금이 안 되는 한국의 온라인 디자인 강의를 등록하고선 디자인 프로그램을 따로 또 공부했다. 나는 그런 언니의 부탁을 받을 때마다 언니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매번 새롭게 놀라고는 했다.


사실 언니가 지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언니는 이미 몇 번이고 번아웃을 겪었을 터였다. 특히 언니의 모든 것을 갈아 생존해 나가고 있던 작년, 언니는 마지막 학기만을 앞둔 디자인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내게 종종 얘기하곤 했다. 나는 그럴 때면 '언니가 정말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 근데 언니가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해 왔는데 마지막 학기만 남기고 그냥 관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라고 언니에겐 어떤 힘도 되지 않을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언니에게 어떤 조언도 해 줄 수 없었다. 꿈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내가 언니 같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할 자격 따위는 없었다. 그저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선 언니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무의미한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것 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언뜻 밖에서 기웃거리며 슬쩍 보아도 정말 막막하기만 한 아티스트로서의 삶인데, 언니도 늘 불확실성과 불안을 껴안고 살고 있을 터였다. 무엇을 얼마나 더 노력해야 언제쯤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작품으로 밥값을 벌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답이 없는 물음의 연속인 삶이었다. 그런 언니도 내게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만두겠다고. 그런 언니에게 내가 물었다.


"마흔 살이라면, 한국 나이 마흔이야, 유럽 나이 마흔이야? 근데 그 성과의 기준은 뭐야?"


그러자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글쎄, 그건 모르겠네."


언니가 처음으로 '그만둔다'는 말을 내뱉어서 순간 긴장했던 나는 언니의 답을 듣고 안심했다. 언니는 유럽나이 마흔 살이 되어도, 한국 나이 마흔 살이 되어도, 언니는 적어도 가까운 미래엔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언니는 아직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언니, 언니는 작업하는 게 재미있어? 질리지 않아?"

"음, 아니. 재미있어. 작업하는 게 재미있어."


언니는 아직도 미술을 좋아한다. 유럽 생활을 제외하고도 한국에서의 미술공부까지 합하면 거의 20년 정도 미술 외길을 파온 언니에게, 아직까지 (이번 첫 수상을 제외하면) 어떤 긍정적인 화답도 확신도 주지 않은 미술을 언니는 아직도 너무 좋아한다. 그러니 언니가 그만둘 리가 없었다. 언니가 미술을 그만두게 될 때는, 언니가 정말 미술이 싫어졌을 때일 것이다. 그전까지 언니는 그 실낱같은 가능성의 끈을 붙잡고, 실낱같은 끈에 온 손바닥이 베어 피투성이가 되어도, 새까만 밤의 추운 황야를 걸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에 짓눌리면서도 무너지지는 않은 채.




내가 매주 챙겨 듣는 일본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wacci라는 일본 밴드의 프런트맨 하시구치 요헤이가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다. wacci는 2009년에 결성해 2012년에 메이저 데뷔를 한 일본의 밴드였다. 2022년이 그들의 메이저 데뷔 10주년이었다. 10주년을 기념하며 발매 한 앨범 'suits me! suits you!'에는'トータス(tortoise, 거북이)'란 제목의 노래가 실려있는데 이 곡은 '재능 따윈 없었다고 걸어갈수록 깨달아가(才能なんてなかったんだと 歩いてくほどに 気が付いていく)'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그 라디오 프로그램의 퍼스널리티(한국으로 치면 DJ)는 하시구치에게 이 노래를 언급하며, 이 노래를 쓴 하시구치에게 어떤 의미의 가사인지 물었다. 그러자 하시구치는 이 노래는 자신의 밴드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라며, 자신들에게 재능 같은 건 없다는 걸 음악 활동을 하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떻게 음악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걸까, 라디오를 듣고 있던 나도 궁금하던 차에 하시구치가 말했다.


"단순히 그만둔다는 선택을 그냥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単純に辞めるという選択をただしなかっただけです)"


스스로에게 재능이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음에도 음악을 '그만둔다', '그만두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그만두지 않는다'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하시구치는 말했다. 언니가 걷고 있는 미술계처럼 역시 성공의 가능성은 실낱같은 음악계에서 인디씬에서부터 메이저로 올라온다는 것, 그리고 메이저로 올라와서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을 건 도박에 가깝다. 특히 스스로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가 명확히 보이는 현실 속에서, 재능에 열정까지 갖춘 다른 사람들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그들의 멀어져 가는 등을 바라만 보는 매일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는 것은 대체 어떤 강함이 있어야, 어떤 단단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일까.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하지 않고 '그만두지 않았다'라고 말한 하시구치의 말에선 무언가를 꼭 이루어내겠다고 말겠다는 엄청난 야망과 꿈보다도, 성공 가능성과 상관없이 그냥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나가고 싶었다는, 음악을 향한 애정어린 진심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무엇인가를 그만두는 데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현실과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꿈꾸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의 선택이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인정받고, 박수를 받는 요즘이다. 그럼 현실과 한계를 깨닫고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또 얼마나 엄청난 각오와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일까. 계속 노력을 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조차 없는 현실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는 그 마음은 대체, 그냥 계속 하기로 결정하는 그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열심히 해도 무언가를 이루어내기엔 한계가 분명히 보이는 현실 위로 만들어진,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기로 한 그 결심을 감히 상상해 보았지만 나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을 그 각오와 용기.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었다.




12월 초 카톡으로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한창 바빠 통화를 하지는 못했던 언니와 12월 말에 가까워져서야 오랜만에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미 축하한다는 메시지는 몇 번이나 보냈지만 다시금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 후 나는 언니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온갖 잡담을 떠들기 시작했다. 언니의 영향으로 다양한 음악과 영화, 드라마, 책에 일찍 눈을 뜨고 깊게 파고드는 성향이 된 나는 그동안 본 다양한 콘텐츠 얘기를 하며 감상을 나누고 의견을 나눌 상대가 언니밖에 없었다. 결국 언니의 수상을 축하하며 시작되었던 통화는 근래에 서로 보았던 인상적인 콘텐츠에 대해 얘기하며 토론하는, 우리가 전화 통화만 하면 늘 빼지 않고 하는 그 주제로 넘어갔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일본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있던 나는 wacci의 하시구치가 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단순히 그만둔다는 선택을 그냥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언니에게 내가 듣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아주 인상적인 인터뷰를 들었다며, wacci라는 밴드의 백그라운드를 한참 설명하고선 언니에게 하시구치가 한 말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언니의 답을 듣게 되었다.


"맞아. 나도 그냥 그만두지 않았을 뿐이야. 정말 그것뿐이야."




나는 내가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꿈을 찾아 질질 끌며 2년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언니처럼 좋아하는 것을 향해 전력으로 달릴 수 있는 사람이기를, 모든 것을 걸고 쏟아부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2022년 한 해 동안 침대 위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고립시킬 때 언니에게 인터넷 강의 등록을 부탁받으면 언니의 열정에 놀라고, 그 후엔 어김없이 자괴감에 빠지곤 했었다. 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저렇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왜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건지 스스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책망했다. 난 재능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이니까 이젠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알약을 삼키려 마른 입을 적셔보다 결국 삼키지 못하고 혀에 잔뜩 쓴맛만 남기고 뱉어버리듯, 나는 이제는 정말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삼켜내지 못하고 토해놓고 말았다. 대체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이제는 변해야 할 때였다. 30대였다. 공백기가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2022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냉정한 현실을 삼키지 못하고 토하는 것을 반복하기만 했다.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찬사 받는 시대에 난 그만 둘 용기조차 없는 비겁하고 찌질한 사람이었다. 하찮았다. 그래서 나와 달리 치열하게 달리고 있는 언니를 동경했다.


나는 항상 언니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릴 적부터 바라봐 온 언니는 예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일찍이 그 재능을 발견해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전진해 왔다. 미술을 업으로 삼을 거라는, 특히 그전까지 언어를 배워본 적도 없는 나라에 가서 미술 공부를 할 거라는 언니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조차도, 언니가 특별한 사람이니까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미술을 좋아했던 나는 재능이 넘치는 언니를 보며 내가 미술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아주 일찍 깨닫고 다른 꿈을 찾기 시작했다. 언니를 보면서 예술을 계속해나가야 하는 건 저런 사람이지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래도 예술은 아니더라도 언니의 좋아하는 것을 좇는 삶은 따라 하고 싶었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20대의 시간 동안 세계를 유랑했고 결국 귀국하게 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 모두 착각에 불과했고 나는 그저 보통의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리고 공백 2년을 향해 달려가는 2022년의 마지막까지도, 나는 여전히 목표를 찾아 헤매었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재능이 없는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않았다고 말하는 하시구치와, 그런 하시구치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언니의 말을 듣자 내가 그동안 제대로 잘 못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언니도, 내가 그렇게 동경하던 언니도 그냥 보통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내가 항상 '언니는 재능이 있으니까.', '언니는 감각이 있으니까'라고 말할 때마다 '아냐, 네가 진짜 재능 있는 사람을 몰라서 그래.'라고 답하는 언니의 말을, 나는 언니의 진심이 아니라 언니의 겸손 또는 너무 지쳐 낮아진 자신감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냥 그만두지 않았을 뿐이야'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언니의 말을 듣고 돌이켜 보니, 언니의 말은 정말 진심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그 세계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하게 싸워오면서 스스로에게 특출난 재능이 없다는 것을, 하시구치처럼 깨닫고 현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냥 꿈을 좇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을 뿐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언니는, 하시구치처럼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껴안고, 언젠가의 '성공'을 꿈꾸며 '포기하지 않기'보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미련하다, 비현실적이다, 이기적이다, 이상주의자다, 각자의 말로 해석할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그저 한없이 강해 보였다. 단단해 보였다. 나는 상상하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아, 아예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시구치의 각오와 용기가 언니에게 있었음이 그제야 보였다. 특별한 사람도, 보통의 사람도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로 한 그 선택. 자신의 선택이 틀리든 맞든 상관없이,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말 거라는 '성공'이란 결과에 대한 집념과 상관없이, 그냥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 그게 언니였다.


나는 여태껏 언니가 '성공'의 가능성이란 실낱같은 끈을 붙잡고 깜깜한 황야를 걷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 언니는 그 끈조차 붙잡지 않고 그냥 묵묵히 좋아하는 것을 하나 하나 해 나가며 깜깜한 밤이든, 낮이든, 황야든, 녹원이든, 언제의 어느 곳이든, 그냥 그만두지 않고 천천히 쭉 직진해 나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동경해야 할 것은 꿈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건 언니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과 상관없이, 성공 가능성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기로 선택한 그 각오여야 했다. 불안을 견디고, 아니 때론 불안과 불확실함에 짓눌리면서도,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를 보지 않고 그저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나갈 수 있는 용기. 그만두지 않는 것을 선택한 그 용기. 그걸 나는 동경해야 했다. 닮고자 해야 했다. 따라 하고자 해야 했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니까라는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책망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던 2022년의 끝 무렵에서야 난 그걸 깨달았다.



*2022.11.08 CBC <むかいの喋り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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