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 만의 연락이었을까. 메시지도 아닌 전화 버튼을, 그것도 한 밤 중에 누른 건 정말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작년 가을 유럽의 '나'가 묻은 지갑을 잃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20대 유랑의 시작점이었던 일본에서의 사진을 외장하드와 함께 전부 날려버려 이성이 고장 난 상태였던 탓이다. 10년 동안 연락을 안 했는데 내 연락을 받을지 안 받을지도 모르는 B에게 메시지도 아닌 전화를 걸만큼 나는 현재의 '나'가 정말 견딜 수 없어 과거의 '나'를 붙잡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탓이다.
다행히 B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밤늦게 전화를 걸었지만 B가 있는 곳은 아마도 오전 중이었을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과 시차, 대양을 넘어 B와 연결되었다. 오랜만에 듣는 B의 목소리가 반가운 만큼 어색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니?', '응 난 잘 지내'와 같은 텅 빈 말들로 대화를 시작했다. 전화를 건 사람, 특히 10여 년의 공백을 넘어 연락을 한 사람은 나였기에 내가 왜 연락했는지 우선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엔 빙빙 돌려 '그냥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라는 말로 어색한 전화의 이유를 얼버무리려 했지만 영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나는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요코하마에서 찍은 사진을 찾았는데 그때가 생각나서 전화했다고.
요코하마 사진으로 대화를 트자 텅 빈 인사로는 알길 없던 나와 B의 현재의 민낯이 드러났다. 우연인지 불운인지, 슬프게도 B와 나 모두 비슷한 공백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요코하마 항구 터미널 바닥에 누워 텅 빈 밤하늘을 보며 신나게 떠들던 B와 내가 그리던 미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현재였다. 편집장이 되고 싶다며, 뉴요커에 기고를 하는 것도 좋겠다고 떠들었던 나는 꿈을 잃은 채 1년이 훌쩍 넘도록 공백기를 보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백기 2년 차에 들어간 지 한참이었다. 나는 그렇다 치고 B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며 도쿄에서도 항상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던 B가 지금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쿄의 작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구석에서 늘 작은 스케치북에 손으로 직접 깎은 연필로 일러스트를 그리던 B였다. 그런 B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근래에 불운한 일을 겪고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둔 B는 일러스트와도, 디자인과도, 스탠드업 코미디와도 전혀 상관없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세를 버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B는 이젠 목표가 없다고 말했다. B는 나와는 달리 엄연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림도, 스탠드업 코미디도, 꿈도 B의 삶에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내게는 B의 현재도 그의 삶의 중심이었던 알맹이가 텅 빈 공백기처럼 느껴졌다. B는 그렇게 좋아했던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않는다는 말도, 불운한 일을 겪었다는 말도, 그리고 이제는 삶의 목표가 딱히 없다는 말도 전부 덤덤히 말했다. 그 덤덤함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딱히 재미는 없어. 그래도 월세는 내야 하니까 하는 거지."
"요즘엔 카페에서 그림 안 그려? 카페에서 그림 그리는 거 좋아했잖아."
"응. 안 그린 지 한참 됐어."
"나도 요즘엔 사진 안 찍어. 필름도 너무 비싸고 현상비랑 인화비는 더 올랐어. 필름 카메라를 안 꺼낸 지 정말 한참 됐다."
사실이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쟁여두었던 필름들은 이미 유효기간이 한참 지났을 터였다. 그렇게 사진을 안 찍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B가 그림을 안 그린다는 말에 맞장구를 치듯 나온 말이었는데, 스스로 정말 오랫동안 사진을 찍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속이 쓰려왔다.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요코하마에서 꿈꾸던 미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애써 웃으며 덤덤히 말했다. 화상통화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거짓말도, 연기도 잘 못하는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덤덤한 듯한 쓴웃음을 굳이 들키고 싶지 않았다.
B가 내게 대체 그 요코하마 사진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래서 한참 사진을 말로 묘사하다, 나는 후면 카메라를 켰다. 차마 내 얼굴을 비추는 정면 카메라는 킬 수 없었다. 덤덤한 척했지만 말 한 마디마다 추를 단 듯 한없이 무거워져 간 대화를 어떻게든 가볍게 환기하려 후면 카메라를 켜서 사진을 B에게 보여주고는 바로 카메라를 껐다.
"이게 그 사진이야. 오랜만에 이 사진을 찾고서 반가워서 액자에 넣어서 여기에 이렇게 두었어."
그러자 B는 잠깐만 기다리라며 B도 카메라를 켜서 집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크게 현상되어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을 비춰주었다. 바다 사진이었다.
"너 이 사진 기억나? 너랑 같이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
기억났다. 그 사진은 내가 B와 같이 도쿄 외곽의 가마쿠라에 갔던 때 B가 필름카메라로 찍은 바다 사진이었다. 요코하마 야경을 보고 그랬듯 B는 가마쿠라의 바다를 보고 한참이나 사진 찍기에 골몰했었다. 그때 찍은 바다 풍경이란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내 관람차 사진이 그렇듯, B의 가마쿠라 바다 사진도 그날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진이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B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요코하마에서 신나게 꿈을 외치던 B와 내가 그리던 미래가 이런 모습이 될 줄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가 그리던 미래가 이런 현재가 된 것은 무엇이 잘못되었기 때문일까. 무엇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한 걸까. 어디서부터 우린 길을 잃은 걸까. 그렇게 꿈이 많았던 B는 삶의 목표가 딱히 없다고 말하고, 그렇게 야망에 가득 찼던 나는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몰라 2년 가까이 방황하고 있었다. 성공과 상관없이 어떻게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했던 B가 월세를 벌기 위해 "딱히 재미있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으면서, 또 믿겼다. 그게 현실이었다. 우리는 젊은 날의 가능성에 취해 우리가 무엇이든 될 것이라 믿고 꿈을 꾸지만 우린 모두 보통의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우린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냥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B는 그걸 인정하고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나는 그걸 아직도 인정하지 못해 발버둥 치며 스스로를 좀먹고 있을 뿐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 차라도 끓이려 주방을 향하는데 가장 잘 보이는 데에 세워두었던 요코하마 관람차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B와 통화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청춘의 한 순간이 가득 담긴 소중한 사진이었는데, 이젠 그냥 서글프게 느껴졌다. 사진에 박제된 과거의 '나'가 꿈꾸던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도, 그리고 B도, 모두 달랐다. 너무 달랐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몇 시간 전 관람차 사진을 발견하고 과거의 '나'는 아직 이렇게 생생하다며 액자에 소중히 끼워 넣던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이 이제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 속 관람차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그 순간에 멈춰있다는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멈추지 않고 네온 빛을 뽐내며 끝없이 돌던 그 요코하마의 관람차는 더 이상 돌지 않았다. 그리고 B가 내게 보여주었던 가마쿠라의 파도도 더 이상 일렁이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바보였다.
10여 년 전,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다고 꿈을 얘기하며 의지를 다지던 B와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액자 속에만 그렇게 쓸쓸히 박제되어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B와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는 나. 더 이상 딱히 삶의 목표가 없다는 B와 더 이상 무엇을 향해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는 나. B와 나는 우리가 꿈꾸던 사람들이 되지 못했다. 우리가 꿈꾸는 대로, 사람들이 뭐라 하든, 세상이 뭐라 하든, 돈이 있든 없든, 명예가 있든 없든,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나가자 다짐했던 우리는 지금 더 이상 청춘도, 학생도, 떳떳한 어른도 아닌 존재가 되어있었다. 30대라는 삶의 애매한 지점에서 목표도 사랑하는 것도, 그것을 다시 찾아 일으킬 동력과 자존감도 모두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이에게 지나온 과거는 너무 유혹적이다. '그땐 그랬지'라는 자기 연민과 그때 해맑게 외치던 '난 할 수 있어'라는 빛이 바랜 자기 최면이 유일한 위안이니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예상치 못한 삶의 해프닝 속에서 무너져버린 계획으로 변해버린 현재의 '나'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나아가기엔 오늘이 너무 버거웠다. 알 수 없는 내일은 더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액자에 과거의 '나'를 박제하고 멈춰버린 관람차를 다시 돌리고 싶어 10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늦은 밤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전화로 깨달은 것은 슬프게도 변해버린 B와 나, 꿈꾸었던 우리가 되지 못한 B와 나, 그리고 그때를 추억할 수는 있어도 현재에서 도망쳐 과거의 '나'에 취해 머물 수는 없다는 현실이었다. 버스에서 떨어뜨린 지갑, 어느 날 갑자기 고장 나 버린 외장하드. 이 두 개의 작은 사건이 모두 경고등을 켜고 내게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귀를 막고 눈을 감았었다. 그리고선 겨우 한 장 찾은 10여 년 전의 사진을 붙들고 차마 바라보기도 힘든 현재의 '나'에서 벗어나고파 과거의 '나'로 도망치려 했다. 그 사진 속에 담겨있는 순간을 함께 했던 B와 대화하면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던 날, 더 이상 돌지 않는 관람차가 단호하게 '현재'로 불렀다. 이제 그만 놓아주라고.
여전히 잠에 들지 못한 새벽. 동이 트며 창 밖이 점점 밝아졌다. 나는 한참을 침대에 앉아있다 일어나 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던 그 액자를 집어 액자 채 서랍장 가장 밑단에 깊숙이 넣었다.
지나버린 추억들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뒷걸음질만 치는 내 꼴이 공백기 2년 차에 들어간 '취준생', 아니 30대의 '백수'보다 더 비참하고 비겁했다. 세월에 수명을 다한 그 외장하드처럼, 그때의 '나'는 유효기간을 다했다. 오늘의 모든 것이 어그러져 어제로 도망가려 한 나는 다시 오늘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액자를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