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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롤 Oct 14. 2023

나는 에어컨을 싫어한다.

나는 여름을 싫어한다. 더위 때문이 아니라 추위 때문에 여름을 싫어한다. 서울 여름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시대에 추위 때문에 여름이 싫다니 무슨 헛소리인가 싶지만, 나는 정말  추위가 싫어서 여름이 싫다. 빌딩과 자동차 그리고 아스팔트가 토하는 도시의 열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라도 버틸 수 있지만, 그런 여름의 더위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에어컨이 뿜는 추위를 난 버틸 재간이 없다. 창문을 활짝 열 수도 없는 원룸을 여름 햇볕이 달구어도 나는 민소매 차림에 얼음을 씹어먹으며 선풍기에 매달려 버티기만 했을 뿐 원룸에 달린 에어컨을 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봄에 이사 왔을 때 다른 잡동사니와 함께 보관해 둔 에어컨 리모컨이 어디 있는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만큼 나는 에어컨을 싫어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에어컨을 피할 수 없는 여름을 싫어한다.


내가 여름을, 아니 정확히는 에어컨을 싫어하게 된 건 중학교 때 처음 혹독한 냉방병에 걸리면서부터였다. 해야 하는 일(공부)과 목적(시험을 잘 보는 것)이 명확했던 시절, 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아이였다. 시험일이 정해지면 시험 한 달 전부터 독서실 정기권을 끊어 매일같이 출석도장을 찍고는 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2학년쯤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독서실에 갔었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땀을 흘리며 도착한 날 보고 독서실 아저씨가 열 좀 식히라고 배려를 해주신 걸까. 그날 배정된 자리는 에어컨 바람이 바로 그대로 쏟아지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5시간 가까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에어컨 냉기를 맞으며 공부를 하다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감기 몸살이 난 것처럼 이틀을 앓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그게 냉방병이었단다. 그 후로는 에어컨 바람을 조금이라도 쐬면 금방 머리가 띵 해지면서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서서히 목구멍이 칼칼해지고 손끝과 발끝에는 냉기가 고인다. 그 상태로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여지없이 바로 그날 저녁 몸살에 걸린 듯 뻗어버리고 만다.


그 후로 나는 에어컨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름엔 공공장소 어디를 가도 에어컨을 피할 길이 없는 한국에서는 항상 두꺼운 외투를 챙겨 다니며 에어컨 바람이 최대한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다녔다.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견뎌야 하는 사무실에서는 한겨울용 기모 스웨터와 담요를 가져다 두고 출근하자마자 바로 온몸을 꽁꽁 싸매곤 했었다. 반팔 차림으로 출근하자마자 기모 스웨터를 입고 담요로 허리밑을 꽁꽁 싸매는 날 보며 동료들은 모두 신기한 듯 쳐다보곤 했다. 신기할 만도 했다. 한여름 실내용 카디건도 아니고 기모 스웨터라니. 내가 봐도 참 신기했다. 아니 사실 우스웠다. 중학교 2학년, 14살 그 어린 시절 처음 앓은 냉방병을 30살이 넘도록 이겨내지 못하고,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에 생존용품이라도 되는냥 필사적으로 기모 스웨터를 챙겨 다니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참 우스웠다.




작년 여름은 장마가 유독 길었다. 긴 장마 탓에 찐득찐득한 습기가 살에 쩍쩍 엉겨 붙는 불쾌한 날씨가 이어졌다. 내가 스스로 나를 고립시켰던 원룸도 햇볕에 달구어지고 습기에 젖어갔다.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무언가를 해보려 책상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그 손끝에 찐득찐득한 땀방울이 맺히는 듯했다. 환기도 잘 안 되는 작은 원룸에 갇힌 습기가 바닥부터 차오르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열기와 습기로 가득찬 원룸을 어기적어기적 유영하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에어컨을 틀 수는 없었다. 에어컨으로 앞자리 숫자가 바뀔 전기세도 전기세거니와 작은 원룸에선 에어컨의 냉기를 피해 앉을 사각지대가 없었다. 결국 더위를 먹을 것이냐 냉방병에 걸릴 것이냐의 문제였다. 내 손에 남은 건 처량한 선택지뿐이었다. 그나마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냉방병을 선택했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 여름이면 웬만해선 가지 않는 카페로 피신하기로 했다. 에어컨 냉기에 바로 반응할 몸이 걱정됐지만 그나마 기모 스웨터를 입고 에어컨의 사각지대를 찾아 앉으면 한, 두 시간이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버티면서라도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했다. 도저히 더워서 또는 추워서 아무것도 못하겠단 핑계를 대며 여름을 날리기에는 공백기가 1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나는 기꺼이 냉방병에 걸릴 각오를 하고 카페를 옮겨 다녔다.


그렇게 동네 카페를 전전하던 어느 여름날, 나는 작은 중정이 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밖에서 볼 땐 평범한 건물 같았는데, 카페에 들어가 보니 건물이 니은자 모양으로 지어져 안쪽에 작은 정원이 숨겨져 있었다. 중정에는 우뚝 선 큰 벚꽃 나무 그늘 아래로 흰색 야외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해 사람이 가득했을 중정이었겠지만 한여름에 찾은 중정은 텅 비어있었다. 나무그늘만이 홀로 조심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여름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실내에서 얼음 가득한 커피잔을 들고 에어컨 냉기를 쐬며 열기를 식히기 바쁜데, 에어컨은커녕 나무 그늘 사이사이로 햇볕이 쏟아지는 중정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우연찮게 발견한 그 중정이 너무 반가웠다. 그동안 카페를 전전하며 에어컨의 냉기가 최대한 닿지 않는 구석 자리를 찾아 기모를 껴입고 '생산성'을 되찾고자 애쓰는데 지쳐있던 터였다. 그래서 반갑게 에어컨이 없는 중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도 앉지 않은 한여름의 중정은 고요했다. 역시 더웠지만 테이블 위로 드리워진 나무 그늘 사이로 비추는 햇살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니은자 건물 모양을 타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습도도 적당히 말려주었다.


그동안 작은 방에서 응시하던 뻘밭 같은 천장과 자기소개서에 채우지 못한 빈칸이 번쩍대는 노트북 모니터가 아닌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원룸 천장에 가려져 한참이나 보지 못했던 여름 하늘, 벚꽃이 언제 피었다 졌는지도 모른 채 지나간 작년 처음 본 벚나무. 모두 아름다웠다. 특히 햇살이 벚나무 위로 부서지며 빈 테이블 위로 빼곡히 그리는 동글동글한 나뭇잎 모양의 그림자는 언제 마지막으로 웃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를 절로 미소 짓게 했다. 그래서 나는 짐도 풀다 말고 테이블 위에 놓으려던 노트북은 무릎 위에 얹어 놓고선 가벼운 바람에 우아하게 흔들리는 그림자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날아가는 풍선에 시선을 빼앗긴 아이처럼 넋을 놓고 테이블 위의 그림자 모양을 쫓던 내 앞에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였다. 적당히 견딜만한 온도와 습도의 중정에서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딱 적당했다. 냉방병과 더위 먹기의 처량한 선택지에서 벗어나 정말 오랜만에 여름을 제대로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테이블 위에 올린 노트북을 여는 손 끝이 상쾌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첫 잔을 비우고, 두 번째 잔을 주문하러 카페 문을 열자 실내를 가득 채웠던 에어컨 냉기가 훅 끼쳐왔다. 춥지 않나 싶을 정도로 낮은 온도로 설정된 카페의 최신 에어컨과 카페 구석마다 놓인 써큘레이터를 보며 어깨를 떨었다. 중정과의 온도차에 자칫하면 몸이 또 예민하게 반응하겠다 싶어 주문을 서둘렀다. 두 번째 잔을 주문하고 다시 아무도 없는 중정에 돌아왔다. 중정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카페 안을 가득 채운 냉기는 가시고 다시 한여름의 햇볕과 습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주문한 커피가 오기를 기다리며 통유리창 너머로 카페 안쪽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씩 여름의 더위를 피해 모인 사람들로 카페 안은 가득 차 있었다. 나처럼 노트북을 놓고 작업하는 사람도,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도, 연인과 함께 시간을 나누는 사람도 모두 유리창 너머에 있었다. 시끌벅적 사람 냄새 가득한 유리창 너머 카페 안의 모습을 바라보니, 자청해서 앉은 중정의 자리가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햇살이 테이블로 위로 그림자를 그리는 소리, 간간히 부는 가벼운 바람소리가 선명히 들릴 정도로 텅 빈 중정은 고요했다.


카페 안의 사람들과 나는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카페를 방문하여 커피를 마시고 더위를 식히는, 분명 똑같은 사람들인데 전혀 똑같지 않았다. 통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실재하지 않지만 넘을 수 없는 경계가 뚜렷이 있었다. 분명 중정에서 카페 안으로 향하는 문을 열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었는데 나는 어쩐지 문을 열고 들어가 그 틈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두 번째 커피를 주문하러 그 문을 열고 들어갔었지만 나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주문을 마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뜨기 바빴다. 그 사람들의 세상과 내 세상을 가르는 게 '냉방병'이라는 사실이 우스웠다. 황당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원룸의 매트리스 섬을 겨우 빠져나와 온 힘껏 들어간 세상에서 결국 사람들 틈에 자리잡지 못하고 아무도 앉지 않는 여름의 중정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침대를 섬 삼아 나를 고립시키던 그 모습과 조금도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장소만 실내에서 실외로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나는 또다시 나를 고립시켰다.




14살의 나는 유난히 활발해 치마 교복을 입고서 학교 계단을 열 계단 씩 훌쩍 뛰어넘어 다니고 제일 높은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게 특기였던 아이였다. 무릎과 정강이는 물론 양쪽 팔꿈치에도 상처를 달고 다녔다. "여자애 다리가 그래서 어떡하니" 걱정하는 어른들의 말씀을 그대로 귓등으로 흘려보내던 나는 까진 왼쪽 무릎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오른쪽 정강이에 새로운 상처를 만들어 오고 마는 그런 아이였다. 14살에 생긴 정강이의 상처는 아직도 내 다리에 남아있다. 나름 열심히 연고도 바르고 밴드도 붙였지만 새살이 나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를 만드는 매일이었으니, 깨끗하고 매끈한 다리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대로 시간과 함께 상처가 많이 옅어져 특별히 신경이 쓰이거나 거슬리진 않았다. 어쩌다 한 번 바지를 갈아입다 정강이 위의 옅어진 상처를 의식하게 될 때면 '아, 나 철봉 진짜 잘했는데.' 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이렇게 14살에 생긴 상처도, 너무 자주 다쳐 예쁘게 아물지 못했던 상처도, 결국에는 시간의 힘을 빌어 점점 옅어져 갔다.


그런데 내 냉방병은 그렇지 않았다. 냉방병이 상처라면 이미 피가 멈추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도 붙여 딱지가 생기고, 장난스레 딱지를 한번 벗겨 다시 피가 났다가도 결국엔 다시 어떻게든 아물어 20여 년이라는 시간의 힘으로 상처는 어린 날의 옅은 흔적으로 남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 냉방병의 흔적을 보게 될 때면 나는 '아, 그땐 그랬지'하며 머리 위로 에어컨 냉기가 쏟아지던 그 독서실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 말아야 했다. 그게 순리였다. 하지만 내 냉방병은 아직 그대로다. 아니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어릴 때는 그래도 가을에 입는 카디건 정도면 그럭저럭 버텼던 것 같은데 이제는 기모 스웨터에 겨울 담요를 챙길 정도니 에어컨 냉기에 더 예민해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과연 내 냉방병이란 상처의 피가 굳은 적은 있었을까. 딱지가 생긴 적은 있었을까. 그냥 처음 냉방병을 앓고 난 후 나는 에어컨을 필사적으로 피함으로써, 피가 멈추고 딱지가 생길 시간조차 주지 않고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고를 바르거나 밴드를 붙이지 않고 상처를 그대로 방치해 오히려 덧난 것은 아닐까. 딱지가 떨어지고 상처가 시간과 함께 옅어져 과거의 흔적으로 남을 과정조차 주지 않고 나는 그저 '아픔'이 두려워 두꺼운 외투를 들고 다니며, 에어컨이 닿지 않는 구석자리를 찾아다니며 '아픔'을 견디고 치유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여름을 제대로 즐기는 것 같다며 기쁘게 마셨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첫 잔과 달리, 두 번째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는 짙은 쓴맛이 났다.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차지한 여름의 중정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기엔 잡생각이 너무 많아진 것 같아 노트북을 닫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로 늘여놓았던 내 짐을 치우자 처음 중정에 앉았을 때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동글동글한 그림자가 테이블 위에 다시 나타났다. 한, 두 시간 전만 해도 아름답다고 넋을 놓고 바라봤던 그 땡땡이 그림자가 이제는 햇살이 머금은 빗방울 같았다. 에어컨을 피해 나무그늘 위로 부서지는 햇볕을 맞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햇살이 뿌리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으며, 또다시 홀로 여름의 중정이란 섬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14살에 생긴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도 못한 채, 아니 치료하려 해보지도 않고 피하기만 하다 결국 서른이 넘는 나이까지도 냉기를 피한다는 핑계로 햇살이 뿌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아픔'을 정면에서 마주하지 않고, 치료하려 하지 않고, 대충 유야무야 피하기 바빴던 지난 10여 년의 결과, 나는 삼삼오오 모여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 찬 카페 안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카페 밖 빈 중정을 홀로 서성였다. 미련했다. 카페를 나가기 위해 지나쳐야 했던 카페 안의 에어컨 냉기를 맞으며 여전히 어깨를 떠는 내 모습이 하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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