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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롤 Oct 14. 2023

나는 소확행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사 후 무력감이 쏟아졌다. 달성해야 할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에 몰두해서 전력을 쏟아야만 불안해하지 않는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이사: 해야 할 일' 목록을 만들어 하나씩 지워내며 이사를 준비했다. 그렇게 별 일 없이 준비하고 계획 한대로 이사를 했고 마지막으로 짐 정리까지 마치며 목록의 마지막 '할 일' 위에 선을 주욱 그었다. 가로줄로 꽉 찬 목록을 보며 어쩐지 달성감과 후련함 대신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텅 빈 목록에 공허함을, 막막함을 느꼈다. 공백기가 1년이 되어가면서 마음이 굽이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난 목적지가 있어야 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기꺼이 몸을 갈아내지만, 목적지 없이는 첫 발을 내딛는 것조차 너무 버거운 사람이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열심히 해나가다 보면 어느덧 바라는 미래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성공한 사람들의 말에 나도 고개를 절로 끄덕였지만 그뿐이었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고 하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도 정말 현실적이면서도 생산적인 조언이란 생각에 '맞아, 그렇지' 맞장구를 쳤으면서도 그뿐이었다. 뇌의 어느 부분이 더 튀어나오고, 덜 튀어나와서, 혹은 마음의 어느 부분이 삐뚤어지고, 어느 부분이 부서져서 내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초등학교 4학년, 세상만사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TV 뉴스 속 전쟁 한 복판에서 뉴스를 전하던 기자를 처음 보고 '종군기자'라는 직업을 알게 된 순간, 가족에게 장래희망은 종군기자이고 커리어를 위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던 그날부터 난 그냥 이모양이었던 것 같다.


11살 종군기자를 꿈꾸며 비혼을 선언했던 초등학생이 30살이 훌쩍 넘어 이젠 그냥 비혼주의의 취업준비생이 된 내게 어머니는 조심스레 물었다.


"넌 왜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거니?"


너무 어릴 적부터 비혼을 선언해서 그랬는지 부모님 그 누구도 내게 연애는 안 하니, 결혼은 안 하니 단 한 번 물어본 적도, 내 결정에 말을 얹은 적도 없었다. 다만 아무것도 모른 그 치기 어린 시절 내뱉은 선언으로부터 20여 년이 흐르고 내 안에서 '종군기자'라는 장래희망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도 비혼주의는 그대로인 것을 보면서 어머니는 왜 그렇게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정말 호기심 가득한 말투로 물어보셨다.


"그냥, 나한텐 커리어가 제일 중요하니까."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여성이 이 사회에서 커리어와 가정 둘 다 일구어 내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자 무게인지 전혀 모르던 그때부터 그냥 나는 커리어, '내가 하고 싶은 일', 이 하나에 내 삶을 바치기로 다짐했다. 본능이었던 것 같다. 내 삶 하나를 바쳐서 무언가를 이루어 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11살 어린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법한 생각이었지만, 비극은 그 생각이 사실 착각이었음을 인지한 이후로도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데에서 시작되었다.


20살, 어두운 수험생활의 터널 끝에 비치는 햇살처럼 반짝거리는 시기에 나는 11살부터 나를 움직여온 동력을 잃었다. 지독한 수험생활에 혹독하게 흔들리던 나를 지탱해 준 유일한 동력이었던 '종군 기자'라는 꿈을 대학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스스로 내려놓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때였다.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포기한게 아닐까 스스로도 가끔씩 돌아 볼 때가 있지만, 난 아마 20살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되어도 똑같이 '종군 기자'의 꿈을 스스로 내려놓을 것이다. 11살부터 날 힘차게 밀어왔던 동력이었던 만큼, 그 꿈에 정말 진심이었고 진지했던 만큼, 그 길의 문을 열어 젖히기 전 문의 손잡이만 잡고서 알아챌 수 있었다. 난 이 길로 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후 날 움직인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자는 목표였다. '종군기자'처럼 구체적인 직업, 떠올릴만한 롤모델, 게다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가이드도 하나 없는 막막하기 그지없는 목표였지만 그래도 저 멀리, 내 삶의 끝 즈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삶을 헌신하고 만족스럽게 죽음을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그래서 이 나라, 저 도시를 옮겨 다니며 온갖 알바를 섭렵하고, 해보고 싶은 일들은 전부 다 저질러보고, 해외 여행 리스트에도 없던 프랑스로 대학원을 갈 정도로 무모하게 움직였다. 20살, 한번 목적지를 잃었을 때 내가 얼마나 비참하고 무기력했는지 알았기에, 나는 이 두 번째 목표가 나를 꿈으로 안내해 줄 유일한 생명의 동아줄 마냥 '하고 싶은 일' 찾기에 매달려 20대를 보냈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가 겨우겨우 사력을 다해 붙잡고 있던, 나의 20대를 이끌었던 목표가 손아귀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했던 도전과 여정이 내가 귀국을 선택한 동시에 실패로 귀결되면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이뤄낼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11살의 순수한 마음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냥 보통의 사람이었다. 특별한 재능도, 그 남다른 재능들을 뛰어넘을 만큼 노력하는 재능도 없는 그냥 보통의 사람. 내 삶을 커리어에 다 바쳐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것으로 내 삶과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했던 내게 '나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현실과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니었다. 애초에 대통령이나 위대한 팝스타 같은 것을 꿈꾼 것도 아니었고, '내가 세계 최고가 될 거야'라는 일본 소년만화 같은 생각은 애초에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아주 작고 하찮은 흔적일지라도 세상에 남아 미미한 힘이라도 지니고 있기를 바랐다.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내 삶을 다 바칠 각오가 되어있었다. 11살 그때부터,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삶을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한계는 나의 바람과 달랐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딨어? 다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사는 거지'


맞다. 틀린 말 하나 없다. 나 조차도, 20대의 여정에서 그리고 귀국 후 첫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 하나를 하기 위해 아홉 개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했다. 그러니 내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귀국 후 취직 한 첫 회사에서 아홉번의 인내 끝에도 더 이상 '하고 싶은 일' 하나를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자, 다시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싶어 망설임 없이 일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을 그만두고 나니 '하고 싶은 일'처럼 보였던 것이 신기루처럼 손 끝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분명 '하고 싶은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들조차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을 그만두고 공백기가 길어지며 실패가 하나씩 쌓일수록 손에 닿을 것 같았던 그 '일'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애초에 난 무엇을 원했던 건지 조차 알 수 없어진 것이 문제였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기꺼이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커리어에 삶을 바치고자 했으니까. 근데 그 '하고 싶은 일'을 모르겠다는 게, 그래서 그 '일'을 향해 삶을 헌신하고 대차게 망할 수도 없다는 게 비참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인지한 순간 비극의 2막이 올랐다.  


'등 따숩고 배부르니 하는 소리지. 당장 내일 굶어 죽을 것 같으면 무엇이든 하게 되어있어'


맞다. 역시 틀린 말 하나 없다. 내가 당장 오마카세를 먹을 돈은 없어도 햇반 하나 렌지에 돌릴 여유는 있었기에 부리고 있는 응석이었다. 당장 부모님의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 아니기에 가족보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치였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더 자괴감이 몰려왔다. 스스로도 수백 번 수천번 물었다.


'대체 왜?'

'나는 대체 왜 이모양일까?'


목적지를 잃고 서울의 작은 원룸 하나라는 섬에 스스로를 걸어 잠근채 침대에 누워 갯벌 같은 천장을 보며 매시간 물었다. 나는 대체 왜 이런 걸까. 왜 이모양일까.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뭐 특별하게 잘난 것 하나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내가 왜 아직도 살아가는 목적을 찾고 있는 걸까.


'오늘 먹는 따뜻한 밥, 출근길에 불어오는 바람, 친구들과 맥주 한잔 기울이며 털어놓는 푸념, 이 모든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 어떤 대단한 성공만이 행복이 아니야. 1등만이 행복한 게 아니야. 행복은 바로 우리 곁에 있어'


맞다. 일상에서, 평범한 것에서,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말이, 오랜 수련 끝에 삶의 깨달음을 얻은 성직자와 성공한 리더들의 말이 전부 맞았다. 능력주의와 결과주의로 대다수를 엑스트라 1, 2, 3으로 뭉뚱그려버리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의 정의에 대한 인문학 도서도 읽었다. 밑줄을 그으며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는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그 삶의 끄트머리 즈음 내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상상하며 꿈꿀 수 없다면, 그래서 그 노년의 내 모습을 향해 달려 나가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저녁을 보내며 머리가 울릴 만큼 박장대소를 한다 해도, 머릿속 어느 작은 부분에선 '그걸로 너는 만족하니? 넌 정말 행복하니?'라는 소리가 속삭이듯 울려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고생을 덜해봐서,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등 나의 이런 마음을 설명하는 말들은 너무도 많았다. 그 설명들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난 그 설명들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나는 내가 살아가야 할 목적이 없는 매일 속에선 도저히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라서.'




20대 초, 처음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기 전 친한 친구에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딱 10년이야. 10년. 그동안 내가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안되면 그때는 포기해야지. 30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고 뭐고 그냥 무엇이든 해야지. 그땐 어른이니까 돈을 벌어야지.'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낼 것이라는 착각.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알고 있다는 착각.


그때 다짐했던 10년은 이미 지났다. 난 그때 다짐대로 '어른'으로서 무엇이든 해내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가차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냥 보통의 나는 착각을 버리지 못하고 외려 집착하며 아직도 원대한 꿈을 찾아 헤맨다. 그렇게 찾아 헤매다 빼곡하게 가로줄이 그어진 이사 목록과 달리 텅텅 빈 내 달력을 보자 현실감이 몰려왔다. 30살이 넘은 나이에 1년 가까이 백수라는 현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철없는 나의 텅 빈 매일. 이사 준비로 잠시 구석으로 미뤄 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감정의 무게를 견딜 힘이 없던 나는 새로 찾은 보금자리에 놓인 작은 매트리스에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잠시 쉬어가도 돼, 괜찮아, 모두 잘 될 거야.'

'도망가도 괜찮아.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모두 잘 될 거야.'

'꿈이 없어도 돼. 꿈이 없는게 뭐가 어때서. 무엇이든 꿈이 될 수 있어'

'소확행, 소확행, 소확행....'


나는 쉼표를 선택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뭐지?', '난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거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도 해낼 수 없는 사람인데 아직도 이렇게 집착하고 있는게 맞는건가?',  '나 정말 이대로 괜찮은걸까?'.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표의 벽에 가로막혔을 뿐이다.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냥 보통의 인간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야 할 나이에 인생의 목표를 찾으려다 길을 잃고 작은 매트리스에 고립 되었을 뿐이다.


꿈이 없어도 나는 괜찮지 않다. 꿈을 향해 살아가는 것만이 나의 본능적인 삶의 이유다.


그리고, 나는 소확행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그냥 나의 게으름과 실패를 합리화하고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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